피곤해 죽겠다. 탄식은 하늘에 섞여 제 모습을 감췄다. 과제를 겨우 마감내고 본가로 돌아온 게 화근이었나. 몸이 축축 처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잠깐 나왔다긴 하다만... 어딜 가야 하는지 길을 잡지 못해 무작정 앞으로 직진하니 고등학생 때 자주 다니던 호수공원이 나왔다. 제일 앞에 보이는 벤치 위에 엉덩이를 가볍게 안착했다. 여기서 조금만 뻑이다 가자... 퍽퍽한 눈꺼풀을 붙이며 생각했다. 꿈뻑꿈뻑 눈을 느리게 감었다 떴다. 시야 틈 사이로 보이는 노을이 참 붉었다. 날씨는 더럽게도 좋다. 온몸이 나른해졌다. 저마다의 사람들이 눈 앞을 지나다녔다. 체력들이 남아도나 보다. 과제 폭탄을 내려주고 싶다는 못된 심보가 들 때쯤 오른쪽 종아리에 실타래와 비슷한 털뭉치가 닿아왔다. 시선을 내리깔아 쳐다보면 흰색의 강아지가 위치했다. "애기다... 애기야, 여기서 뭐 해?" 강아지는 시선을 올려 나와 눈을 마주했다. 눈이 참 초롱초롱한 애기였다. 단전한 용모를 보아 절대 유기견으로 보이진 않는데... 누가 잃어버린 건가? 왼쪽에 빈 공간을 탕탕 치자 강아지는 껑충 뛰어 올라왔다. 세상에 말도 잘 듣네. 작은 두상을 하염없이 쓸어 넘겼다. 으... 귀엽다. 진짜 귀엽다. 우리 집 못난이들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조용함이 무척 긍정적이게 다가왔다. (우리 찌비와 만두 사랑한다.) 손가락 끝에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닿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기다란 털 속에 파묻힌 목걸이가 보였다. 뼈다귀 모양을 뒤집자 강아지의 이름과 주인의 번호가 보였다. 랩몬이... 강아지의 이름을 작게 읊조리며 휴대폰을 꺼내들어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지 않은 통화 연결음이 끝나자 다급한 남성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아, 네 여보세요? 다름이 아니라 랩몬이 주인 되시나요? 공원에 돌아다니고 있어서..." "랩몬, 아니 거기 어디세요? 여동생이 산책 나갔다가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거기 어디예요?" "아 여기 호수공원, 정문 옆에 벤치예요." "금방 갈게요." 전화가 뚝 끊겼다. 많이도 급한가 보다. 저 만치 멀리서 검은색 모자를 뒤집어 쓴 남자가 급히 뛰어왔다. 랩몬아, 저 시람이 랩몬이 주인님이야? 랩몬이는 답이 없었다. 어느새 허벅다리를 베개 삼아 편안히 누운 랩몬이는 잠이 오는 듯 눈 껌뻑임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나도 못 자는 잠을 네가 자는구나... "랩몬아...!" 뛰어오던 남자가 주인이 맞는 듯했다. 무릎을 손으로 짚은 채 꽤 긴거리를 뛰어왔는지 거친 숨을 내뱉었다. 물이라도 있었으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을 천천히 고르던 남자는 대뜸 꾸번 고개를 숙여 목례를 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찾지 하고 있었는데." "뭘요. 다 랩몬이가 순해서 그렇죠." "답례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 "답례는 무슨, 괜찮아요." 남자는 엎드린 랩몬이의 목을 짚더니 목걸이를 찾아 목줄을 걸었다. "스피츠예요?" "아, 네. 스피츠 맞아요." "친구가 같은 종을 키우거든요. 저도 강아지 키워요. 진돗개랑 말티즈." "진돗개요? 우와, 멋있겠다." 남자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 진돗개 키워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진돗개 멋지잖아요. 훌륭하고. 남자의 칭찬에 멋쩍게 웃었다. 우리 집에서 놀림만 받는 막내 만두가 이렇게나 칭찬을 받다니... "털 길어서 관리하기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털도 잘 빠지고 매번 빗질도 해줘야 되고... 근데 그런 것들은 주로 여동생이 해서." "그렇구나. 몇 살이에요?" "올해 막 두 살 됐어요." 남자가 랩몬이의 두상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옆에 앉아도 되죠?" "아, 네." 조금 더 자리를 오른쪽으로 옮겼다. 넓어진 벤치 위로 앉은 그는 랩몬이의 두상 위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강아지를 참 좋아하는 듯했다. 하기야 좋아하니까 기르겠지. "말티즈랑 진돗개의 조합... 뭔가 신선하네요." "그쵸? 말티즈가 누난데 전혀 누나처럼 안 보여요. 등치차이가 산만해서 그런가." 쓸데없는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애견인들의 끝도 없는 강아지 대화. 남자는 구구절절 이어지는 강아지들과의 일화에 박수 치며 웃기도 했으며 미간을 살짝씩 찌푸리는 듯 반응을 보였다. 좋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서 깬 랩몬이는 심심한 듯 발톱을 새워 허벅지를 벅벅 긁었다. 붉게 살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남자는 당황한 듯 쩔쩔매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랩몬 너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아 괜찮아요. 한두 번인가요. 집 들어가면 더해요." 랩몬이를 허벅지 위로 올려 끌어안았다. 참 좋은 향이 코 끝을 찔렀다. "얘 샴푸 어떤 거 써요?" "그게 잘... 여동생이 씻겨서요. 셔워 끝난 다음에 여동생이 샤워 코오롱 뿌려주는 것 같던데." "저도 한 번 샤워 코오롱 뿌려줘야겠어요. 우리 집 강아지들은 개 냄새가... 그래도 귀여우니까..." "맞아요, 귀여우니까 됐죠.".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몇 번 터치를 하더니 화면을 내게 돌렸다. 귀엽죠? 랩몬이 어릴 때예요.
"완전 귀엽다. 그대로 컸네요. 눈 초롱초롱한 것봐. 지금이랑 진짜 똑같다. 너무 예쁘게 생겼어요." "더 애기 땐 진짜 귀여웠어요. 걷는 것도 아장아장 걷고." 몇 번 더 넘어가는 화면 안은 랩몬이 사진뿐이었다. 개 키우는 사람은 다 똑같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저 나왔다. 지잉, 지잉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진동했다. 급히 꺼내 확인하자 엄마라는 단어에 흠칫했다. 화면을 내려다 본 남자는 눈치챘다는 듯 랩몬이와 함께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 만나서 반가웠어요." "저도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봬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랩몬아 잘 가." 격렬히 랩몬이에게 팔을 흔들어 보인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너 왜 안 들어와 기지배야!?" "언제는 나가라며..." "빨리 들어와." "어..." 짧은 통화를 끊고 멀어져 가는 남자와 랩몬이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간간히 나를 향해 뒤를 돌아보는 랩몬이의 모습이 보였다. 응... 그래 랩몬아 다음에 또 보는 거야, 우리. 누나가 그땐 간식 사줄게. 랩몬이의 모습은 점차 멀어져 갔다. 그것이 랩몬(김남준과 랩몬이)'s와 탄소의 첫 만남이었다.
랩몬이의 시선. "미친다... 진짜 미친다. 랩몬 너 미쳤냐?!" 주인은 아까부터 계속 혼잣말을 지껄이는 중이다. 나를 향한 말임이 분명했지만 난 들을 수 없는 말이므로 혼잣말이라고 해두자. "너가 살다 살다 이렇게 도움이 되는 날이... 있을 줄은 난 정말 몰랐어...! 몰랐다고...!" 급기야 팔뚝에 얼굴을 파뭍고 우는 시늉을 해댄다. 참... 저게 주인이라고. 망! 망! 불편함을 가득 담아 목소리로 표현했건만 주인은 알아듣지 못했는지 오히려 더욱 세게 끌어안을뿐이다. 정말... 주인 누나가 보고 싶어진다. 이따가 주인 누나 오면 다 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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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덮으려고 연예인들 무더기로 기사가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