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김태형] 과일 시리즈 ; 포도
W. 어반
사실 태형은 성격 자체가 순하고 유들유들해서 인지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 녀석은 모자라게도 착해 빠져서는 무조건 자기가 지는 성격이었다. 가끔 그런 태형이 답답하게 보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당하기만 하는 녀석이 아니란 걸 알기에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태형을 지켜보기만 하는 편에 속했다. 순두부같이 언제나 헤헤 거릴 것만 같던 태형이 화난 모습을 보인 건 무척 더웠던 지난 학기 여름이었다. 우리 학교 1 학기의 꽃은 3월의 입학식도 아니고 6월 모의고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바로 체육대회였는데 체육대회에서 우리 반은 운 좋게도 축구 결승전까지 가게 되었다. 체육대회 당시 태양은 평소보다 뜨거웠고 아이들의 열기 역시 태양을 이겨 먹을 듯 이글거렸다. 오전 경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우리는 오후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후 경기의 첫 번째는 바로 축구였다. 몇 명 남자 아이들은 밥 먹고 뛰면 배가 아프다며 점심을 굶기도 했으며 태형과 그의 무리들도 그중 하나에 속해있었다.
"너네 밥 안 먹어도 되겠어?"
"응 태형이는 여주 사랑이면 충분해!"
"…진짜 지랄 났다. 야 저리 썩 꺼져."
"왜 우리 여주한테 욕하고 그래? 전정국 너나 꺼지시지!"
정국은 꼴 보기 싫다는 듯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나와 태형을 밀어 댔다. 결국 어떻게 하다 보니 나와 태형 둘이서 쉼터에 앉아있게 되었는데 마침 운동장 스피커에서 '잠시 후 오후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니 모두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하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태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오늘 태형이가 골 넣을 거니까 여주는 나 칭찬할 준비만 하면 돼!' 라는 말과 함께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사실 말로만 녀석이 내게 안겼지 실상 제 3자가 그 광경을 봤다면 내가 태형의 품에 안긴 꼴이었을 거다.
"…가기 싫다. 이렇게 더워 죽겠는데 축구를 가장 더운 시간에 한 담?"
"그러게. 많이 마시면 배 아프니까 한 모금이라도 물 마시고 나가, 알았지?"
"네에 -! 아 여주랑 이렇게 같이 있고 싶ㄷ…"
"야 김태형! 너 뭐하냐? 빨리 안 와?"
"ㅇ, 어? 나 지금 가려 던 참이었어. 찾아오게 해서 미ㅇ…"
"미안하면 네가 알아서 일찍 오던가. 김여주랑 노닥거리고 오는 거 뻔히 눈에 보이는데, 짜증 나게."
순간 나와 태형 사이에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다. 같은 반 친구의 말에 태형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어졌고 나는 그런 태형의 손을 꽉 잡을 뿐이었다. 여태껏 우리 반이 계속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 축구 결승전에서 이기게 된다면 우리 반이 종합우승을 거머쥐게 되는 것이 확실해질 뿐더러 후덥지근한 날씨에 모든 아이들이 예민해진 지금, 태형을 나무라는 찬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태형 또한 그랬을 것이고. 하지만 찬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태형을 자극했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한 태형은 그에게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야."
"…김, 태형."
"…방송 듣고도 늦게 간 건 정말 미안한데,"
"……."
"김여주 욕은 왜 해, 개새끼야."
태형은 그 말을 남기고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인원을 체크하려는 듯 축구 유니폼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모여있는 운동장을 향해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났다. 태형에게 맞아 입가가 부은 찬식은 내게 '미안하다.' 라는 말을 남기고 태형을 뒤따라 운동장을 향해 걸어갔다. 벤치에 혼자 남게 된 나는 축구가 끝나고 난 후 물을 찾을 태형을 위해 포카리 스웨트를 사러 매점을 들렀다. 마침 매점에는 운 좋게도 포카리가 딱 하나 남아있었고 나는 시원한 포카리를 손에 쥐고 우리 반이 있는 운동장 벤치로 걸어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벌써 경기 시작했어."
"…이거 사려고."
"포카리? 마시고 싶으면 얘기하지. 나 마시려고 가져왔는데."
"아니. 나 말고 김태형 줄 거야."
"뭐야, 완전 닭살!"
수정은 닭살이라며 양 팔을 비비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짧게 웃어준 뒤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태형을 눈에 담았다. 경기 전 골을 넣겠다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닌지 태형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전반전에서는 아쉽게도 골을 넣지 못했다. 전반전이 끝났다는 휘슬과 함께 나는 여전히 시원한 포카리와 물에 적신 수건을 들고 태형을 마중 나갔다. 태형은 내 모습에 놀란 듯 동공을 확장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표정이 굳어있었다.
"김태형."
"…여주야."
"수고했어. 이리 와."
"……."
아마 경기 전 찬식과의 다툼 때문인 것 같았다. 아마 태형은 처음 화난 모습을 본 내가 그에게 실망했을 거라, 싫어졌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들고 온 수건으로 태형의 땀을 닦아주었고 그는 나와 거리를 유지하며 땀을 닦는 내 손길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태형아. 어? 포카리, 지금 마실래? 아, 아니. 있다 끝나고 마실게. 그래.
어느덧 쉬는 시간이 절반 가량 지나고 태형을 비롯한 남자아이들은 다시 운동장에 들어가려는 듯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몸을 푸는 태형을 아무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고 곧이어 후반전이 시작 되려는 지 체육 선생님의 휘슬 소리가 운동장 전체를 울렸다. 태형은 저벅저벅 운동장 한 가운데를 향해 걸어가다가 잠깐 멈칫하는 듯 싶더니 뒤를 돌아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러다 괜히 태형이 경기 도중 다칠까 싶어 나는 태형에게 다가갔고 태형은 여전히 나를 보며 표정을 굳힐 뿐이었다.
"…태형아."
"……."
"나는 너를 이해해."
"여주야아…."
"골 넣고 오겠다면서. 열심히 하고 와."
"……알았어…."
"골 넣고 오면,"
"……."
"…뽀뽀나 하던가."
그리고 태형은 후반전 경기에 혼자서 두 골을 넣으며 우리 반을 종합우승까지 가게 만들었고 그날은 내 입술에 침이 마르지 않았던 날이 되었다.
***
"여주야아."
"……."
"김여주우…!"
"…시끄러워, 김태형."
"그렇지만 태형이는 너무 너무 심심한 걸? 문학 시간은 나한테 지루하단 말이야…."
"그럼 자면 되잖아."
"자면 여주 얼굴 보는 시간이 줄어들잖아!"
"하아…. 난 괜찮으니까 좀 자면 안될까?"
"태형이가 안 괜찮은ㄷ…"
거기 뒤에 둘! 내 시간에 떠들었다는 건 밖에 나가고 싶다는 얘기지? ……. 그대로 일어나서 복도로 나가.
나와 태형의 말소리가 조금 컸던 모양인지 문학 선생님은 안경을 치켜세우며 손가락질 했고 앞에 앉아있던 정국은 뭐가 웃긴 지 아예 교과서 고개를 쳐 박으며 큭큭 - 거리기 바빴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른 세수를 하며 복도로 나오면 역시 겨울이라 그런지 교복 사이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숭숭 들어갔고 태형은 얼굴 가득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김태형. 응 여주야…. 신경 쓰이니까 가만히 있어. 나 때문에 자기가 수업 못 들어서 어떡해…. 그거 수업 놓쳤다고 아무 일도 안 생겨. 그니까 제발 좀 가만ㅎ…
태형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따뜻한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싸왔다. '우리 여주 볼이 너무 차갑다. 다 태형이 때문이야!' 하며 입을 삐죽 거리는 태형은 제법 밉지 않아 보였다. 태형은 내 얼굴에서 손을 떼더니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내게 입혀주고는 마지막으로 걸치고 있던 마이마저 벗으며 내 허리에 둘러주었다.
"야 이러면 네가 춥잖아…!"
"태형이는 천하무적이라 한 개도 안 춥지요. 우리 여주 감기 걸리면 태형이도 아파."
"…바보."
"맞아. 나는 여주 밖에 모르는 바보야!"
나는 그런 태형을 껴 안았고 그는 잠시 놀란 듯 주춤하더니 이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두 팔을 벌려 나를 품에 가득 담았다. 부끄러워 볼이 붉어짐을 느낀 나는 태형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태형을 안은 손에 깍지를 꼈다.
아 여주야. …왜.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이면…. …적극적인 게 뭐…. 태형이 설레서 심쿵해….
"야 김태형."
"응? 왜 여주야?"
"포도는 열매가 많은데 너는 포도를 닮아가는 건지 포도처럼 어쩔 땐 미련 곰탱이처럼 착하고 또 어떤 때에는 네가 아닌 것처럼 엄청 무서워지잖아."
"……."
"근데 또 포도처럼 달기는 엄청 달아요."
"……."
"너 그냥 내 포도할래?"
"……."
"아니다. 그냥 평생 김여주 포도 해라."
내 말이 끝마치자마자 태형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춰왔다. 사랑을 먹고 자라서 그런가. 김태형 포도는 점점 더 달아지네.
| 암호닉 |
[유자청] , [테형이] |
| 어반 |
과일 시리즈는 이제 바나나, 딱 한 편 만을 남겨두고 있답니다... ^_ㅠ 원래 같은 주제의 단편이라 ‘시리즈’ 라 이름 붙이기엔 너무 거창하지 않았나 싶네요ㅠㅠ 제 글들은 가볍게 읽으시면 좋을 글 들이에요. 아 참, 이 글이 뭐라고 암호닉을 두 분이나 신청 해주셨어요ㅠ_ㅠ 신청해주신 두 분 복 받으실 거에요, 분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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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잔 뭔가 단어하나에 너무 집착하는경향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