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처음본건 두달전이였다.
나는 그 대학교 졸업생이였고, 그 남자는 재학생처럼 보였다.
그리고 처음본 그 순간부터 만날때마다 나는 그사람에 대한 관찰일기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끄적였다, 공무원 시험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에 나에게는 그냥저냥 시간 떼우기 용이였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관찰일기 쓰는건 하루일과 중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
2016. XX, XX 날씨: 맑음
- 오후 2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내 옆 테이블에 정말 훈남, 아니 존잘이 앉아있다.
콧대가 너무 높아서 코밖에 안보인다. 과연 저 코는 자기꺼일까? 성형한걸까?
아니면 혼혈? 인가???
속눈썹도 겁나 길다... 성냥개비 몇개 올라갈까?
아 공부 하기싫다, 시발.... 딱 봐도 21살? 군대는 갔다 왔으려나.....
*
내 첫 관찰일기였다.
거의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
2016. XX. XX. 날씨: 맑음
-오늘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왔네...
머리 안감았나? ㅋㅋㅋ 나도 오늘 머리 안감았는데ㅋㅋ 찌찌뽕이구나
근데 시발 모자 쓰고 왔는데 저렇게 얼굴이 자기주장이 강하면 어쩌자는거? ㅋㅋㅋ
쟤는 늘 무슨 공부를 하길래 맨날 오는걸까? 난 학교 다닐때 시험기간에만 공부했는데... 쟤는 정말 부지런하네
어제 내가 준 캔커피는 마셨을까?
괜히 올려놓고 갔나... 좀 부끄럽네....
공부하기싫다~ 날도 좋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딱 좋을텐데!
커플지옥, 솔로천국 ㅠㅠ
*
2016. XX. XX 날씨: 맑음
-미세먼지 씨발....
중국 망했으면 시벌탱......
쟤 여자친구 있나보네, 아주 블링블링 반짝반짝 빛이 나는구만
왼쪽 네번째 손가락 은반지!!
사귀지도 않았는데 차인기분
시발
짜증나
*
나는 주변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도서관 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하고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들었다.
탁탁, 라이터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켜지냐 짜증나게!! 나는 짜증이 나서 라이트를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요새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만날천날 이름도 모르고 내 존재도 모르는 남자애나 지켜보는 관찰일기나 쓰고 있는건지...
한숨을 푹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던진 라이터를 주우러 도서관 뒷쪽으로 더 깊게 들어갔는데 순간 헉소리가 날 정도로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그 남자애였다.
나는 그걸 보고 돌 처럼 굳었다가 여기 있으면 큰일 날거같은 기분이 들어 당장 도서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관찰일기를 썼다.
*
2016. XX. XX 날씨: 몰라 씨발
-그 남자애가 남자애랑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존나 찐하게...
멘붕
뭐지 씨발... 내가 뭘 보고 온거지?
*
관찰일기를 다 쓰고 도저히 공부를 못할거 같아서 책을 다 집어넣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멘붕 멘붕 이런 멘붕이 없다.
터덜 터덜 도서관을 빠져나가고 있는데, 때마침 복도 끝에 그 남자애가 서있었다.
도망가야해.... 왜 그런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필사적으로 도망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 남자애가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만 들리게 내귀에 속삭였다.
"봤죠?"
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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