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전정국] 폭군의 연정 1 (부제: 봄이 오려면 멀었나 봅니다)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2/31/23/1f841e2232720e5117e3e855eabe5429.gif)
폭군의 연정 w. 채셔
정국은 턱을 손으로 괸 채, 앞에 선 승상을 지켜보았다. 어떤 흥미로움도, 아주 자그마한 관심도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백성들에게 소문이라도 난다면, 민심은 바닥이 될 겝니다.'하고 떠들어대는 승상의 입을 무심코 바라보던 정국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어찌 하란 것이오. 정국은 피곤에 짓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젯밤 정국은 한 궁녀 아이를 두고 밤새 지분거렸더랬다. 아직도 제 몸에 남은 혈기왕성한 기운이 모두 빨린 듯 하여 계속 해서 관자놀이를 주물러야 했다.
"여인과 살생을 멀리 하시고, 이제 정사를 돌보셔야 할 때입니다."
"……."
"보위에 오르신지 이제 1년이나 지났습니다."
"………."
"폐하의 춘추가 미령하시니 후사도 얼른 보시어야 그 기반이 탄탄해질 테지요."
정국은 그대의 말을 알아들었으니 물러가시라 아주 공손하게 답해주고는 곧바로 연희들을 황룡전에 들라 하였다. 제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는 신성한 정전에 연희들을 들인 이유였다. 물러가라고 말했는데도 그 자리에 우뚝 선 승상을 바라보며 정국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나가지 않소. 성난 목소리로 묻자 승상은 갑작스레 무릎을 꿇었다. 정국은 승상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턱을 한껏 들고 눈을 내리깔아 승상을 쳐다보았다. 그 고귀하신 무릎을 어찌 내게 꿇으시오.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비아냥대는 말투로 진정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폐하를 보위에 앉힌 것은, 토지제와 여러 굵직한 정사의 문제들에 있어 제 뜻과 폐하의 뜻이 일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헌데 어찌 이러시는 겝니까. 벌써 황궁에… 폐하께서 반란의 댓가로 미쳐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
"황후부터 들이시옵소서. 그것이 폐하가 가질 힘일 겝니다."
간절히 고하는 승상의 말을 듣고 있던 와중, 환관이 크게 고했다. 폐하, 연희들 들었나이다. 정국은 직접 황상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주었고, 연희들이 우르르 들어와 읍을 했다. 와중에도 승상은 찬 밥 신세였다. 승상은 결국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폐하, 제가 누구입니까. 정국은 뜬금없는 질문에 연희들에게 어깨 동무를 하다말고 승상을 바라보았다. 승상은 몸을 돌려 똑바로 정국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정국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승상과 저는 절대 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 마치 평행선의 사람처럼 느껴졌음에였다. 정국은 반란 이후 늘 차고 다녔던 칼집을 꾹 쥐었다.
"제가 누구지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게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황가의 별 볼 일 없던 사내를, 천자로 만들었습니다."
듣고 있던 정국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럴 때에는 늘 참을 수가 없었기에, 분노를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정국은 찰나에 칼을 빼 들었다.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허나 승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무섭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정국은 칼을 들고 천천히 승상에게 다가갔다. 승상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가, 이내 정국은 천천히 칼을 옮겨들어 연희 열 명의 목을 순식간에 베었다. 빠른 속도로 연희들은 신음 한 번 내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정국의 얼굴에 잔뜩 피가 튀었음에도 승상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찌 또 쓸모없이 귀한 목숨들을 죽이십니까."
승상의 뒷말에 '천자가 되어서는.'이라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 같아 정국은 차갑게 웃었다. 얼굴 곳곳으로 연희들의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피로 낭자한 정전을 보며 정국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랫것들이 천자에 대한 모욕을 듣고 있는데, 살려두어 되겠소. 정국의 말에 승상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천자를 잘못 선택했다고. 그리 현명했던 이가 이렇게 폭군이 되어 저리 피 칠갑을 하고 있을 줄이야. 승상은 정국이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정국의 마음 속에 자라고 있던 야망을 간파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늘 태자를 투기했었다, 정국은. 그리고 태자라는 자리를 늘 탐난다 했었다. 또한….
"이리 구시는 게…."
"………."
"혹 혜비 때문이십니까."
태자의 비, 그러니까 승상의 딸 또한 가지고 싶다 하였다. 승상이 어떤 사람이던가. 제 딸이 폐태자의 비가 되어 비참하게 살아갈 것을 알면서도 반란을 주도한 이였다. 가정보다 나라를 택한 것이었다. 뜻밖에 여주가 정국의 눈에 띄어 겨우 살아났다 해도, 제 딸의 비난 어린 눈초리를 받으면서까지 일구어낸 천자의 나라는 지금……. 승상은 한숨을 쉬며 정국에게 물었다. 혜비? 정국은 혜비라는 말에 눈썹을 올리며 승상을 바라보았다. 혜비. 괜히 가슴이 시큰거려 정국은 칼을 꼭 쥐었다. 혜비. 그래,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였다. 혜비, 김 가(家)의 고귀한 경지옥엽이자 폐황태자의 비. 그리고 정국에게는 절대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던 발칙한 여인네. 정국은 입술을 짓이겼다. 빌어먹을. 이내 정국의 입술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폭군의 연정
승상이 나간 뒤로 정국은 가만히 죽은 연희들을 내려다보며 주저앉았다. 내가 이리 된 것은 다 너 때문이다. 정국은 소매로 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곤룡포에 피가 묻어 지저분해져 있었다. 정국은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이내 곤룡포를 보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너도 주인을 닮은 게지. 이리 지저분해진 곤룡포와 같이, 정국 제가 꿈꿔오던 천자의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거칠게 무너지는 세상의 균열은 당연스레 혜비를 향하고 있는데,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찾을 수조차 없다. ……이런 망할. 정국은 욕설을 내뱉으며 환관을 불렀다. 밖에서 '예.'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남준이 들어왔다. 남준은 크게 놀라 서둘러 문을 닫았다.
"어찌 이러고 계십니까. 아랫것들이 보면 소문이 날 겝니다."
"……승상이 이것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였다."
정국은 제가 죽인 연희들의 피가 제 무릎을 적시는 것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피가 제 몸을 적시는 것은 아무리 익숙하게 느끼려고 해도 최악이었다. 남준은 서둘러 정국을 일으켜세웠다. 침전으로 모시겠습니다. 남준이 정국을 부축해주었다. 평소와 같았다면 남준에게 제 몸을 만지지 말라며 차갑게 굴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스멀스멀 저를 붙잡는 악몽에 정국은 이미 혼을 빼앗긴지 오래였다. 그리고 제 자존심을 끊임없이 긁어오는 혜비의 존재도. 정국은 숨을 길게 내뱉었다. 온갖 것이 다, 최악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어찌 이러십니까!'
'국아, 울지 말거라. 강해져야 한다.'
남준은 호석에게 널려있는 연희들의 시체를 치우라 명했다. 또한 이 일이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 지시를 내린 뒤 정국을 침실까지 뫼셨다. 꼭 사람을 베면 이리 미약해지면서 어찌 매일 그 일을 반복하는지 남준은 항상 의문이었다. 이내 남준은 피에 젖은 듯한 정국의 얼굴을 서둘러 깔끔히 닦고, 정국의 몸을 덮고 있는 황룡포를 벗겨 내었다. 맨몸으로 선 정국은 거의 떨고 있었다. 시녀들의 손이 아닌 제 손으로 남준은 정국의 침의를 입혀주었다. 이렇제 겅국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을 때는 시녀들에게 무언가를 맡길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남준에게는 그랬다.
"봄이 오려면… 멀었나 봅니다."
남준은 이불을 끝까지 올려준 뒤, 점점 땀에 젖기 시작하는 정국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아무나 만질 수 없는 정국의 체모였으므로 남준은, 이따금씩 힘겨운 숨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곧 창백한 정국을 침상에 뉘인 후 나가려는 남준을, 고통에 찬 목소리가 서둘러 불러세웠다. 서라. 정국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말했다.
여주를 불러다오.
남준은 똑바로 서서 정국을 바라보았다. 망설이는 남준을 보던 정국은 힘주어 말했다. 이번에도 오지 않겠다 한다면, 그 호위무사라는 작자를 죽여서라도 데리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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