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은 원석을 수천번은 깎아내어 만들어진다.
대개의 모든 고객들은 대형 홀에 내보여도 손색이 없을 완벽한 상품화를 원한다. 돌덩이가 붙은 원석의 찬란한 빛 따위에는 일체 관심이 없어하는 그들을 만족시키려면 몇 번이고 피와 살인 돌덩이를 깎아야 한다. 돌덩이를 깎아내면 그 다음은 레이저로 된 혹독한 작업이 원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바닥은 그것과 같다. 여태껏 입고 있던 진부한 껍질을 스스로 깨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낙오되는 세상이다. 마른 몸을 선호하는 직업의 특성상 정장 모델은 젓가락만큼 말라야 한다. 불필요한 살덩이는 곧 모델에게 죄악이요, 수많은 파티에 참여하여 웃고 떠들면서도 먹은 것들을 전부 화장실에서 뱉어내지 않는다면 화보를 찍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 바닥은, 그런 세상이다.
피해를 입건 말건, 당신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 조금만, 조금만 더 옆으로 가 봐요. "
찬열은 주기적으로 셔터를 눌러대며 렌즈 너머로 포즈를 취하는 모델을 본다. 지극히 정석적이고도 다듬어진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다. 카메라를 향해 취하는 포즈는 지극히도 정석적이다. 정석적이라는 말은 곧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확실히, 결코 그녀가 최악의 상대는 아니었다.
" 다른 포즈는 불가능한가요? "
- 글쎄요.. 저게 가장 하이패션으로서는 특성화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다른 의미로는 진부하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케이트 모스와 트위기가 주도한 마른 모델 열풍은 반 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그 명맥이 시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업계의 모델들은 점점 진부해지고 있다. 마른 모델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찬열은 무조건적인 마른 몸매보다는 몸의 곡선이나 다양한 포즈가 자아내는 느낌을 더 우선시하는 편이었지만, 트렌드가 그랬던 만큼 카메라에 담기는 모델들은 마른 게 필수조건적이었다. 그러나, 마른 모델들은 매력이 없다. 마른 만큼 새로운 포즈를 개발하기보다는 그저 과거의 트위기 그대로의 오마주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잦다. 그랬기에 진부하고 평이한 화보만이 나오는 것이다. 다양한 포즈는 이미 자아도취에 취해 완벽히 정체되어 버렸다. 마른 몸매가 이득이 되기는 한다. 사진이 더 잘 나오니까. 하지만 매력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퇴색과 정체에 묻혀버린 지 오래다. 빳빳하게 굳은 어색한 초짜 모델보다 더욱 죄악인 것은 진부한 발전 없는 모델이다. 그게 반복된다면, 과정은 오르가슴이 없는 식어버린 섹스와 같아져 버리는 것이다.
" 수고하셨습니다. "
마지막 셔터가 터지고, 촬영이 끝난다. 찬열은 의문한다.
이게 하이패션일까?
라스트 컷을 마무리한 찬열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한동안 정체감을 느껴야 했다. 밑질 게 없는 촬영이었다. 그러나 얻은 것도 없다. 언젠가부터, 모델을 뮤즈라 느껴본 적이 까마득했다. 아니, 있기나 했을까? 무료한 감정에셔터를 누르는 손은 점점 더 괴로워져만 갔다.메이크업을 벗겨내는 모델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그러나, 찬열의 표정은 밝지도 어둡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푸른 느낌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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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입니다. 사정상 닉네임 바꿔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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