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아름답네.' 오늘도 남우현은 그 말을 빼놓지 않았다. 총을 잡은 손이 땀으로 인해 미끌거렸다. 한 번, 두 번. 숨을 고르고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히 남우현의 가슴께에 맞았을 것이다. 어둠 속으로 쓰러지는 우현의 모습을 보다, 손에 쥐어진 총을 건물 저 밑으로 던져버렸다. 남우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죽지 않았다. 기껏 새로 바꾼 총이었지만 결국 남우현을 죽이지는 못했다. 아마 몇 주일 정도가 지나면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달이 아름답다느니 하는 진부한 말을 뱉으리라. 성규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5년이 다 되어간다. 남우현이 성규에게 찾아와 저런 말을 하기 시작한 지. 26살, 뒷 조직 생활로 빠져든 성규를 아무것도 모르는 채 따라왔을 때부터, 지금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때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같이 지내 온 우현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 찝찝한 일이긴 했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고 싶다고 발악을 하는 것인지. 남우현은 항상 자신을 찾아왔다. 아무 무기도 없이. 한 조직의 어엿한 보스인 김성규가 무기도 없는 남우현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오늘도 허탕이에요?"
성종이 총을 닦으며 물었다. 성규가 대답이 없자, 금방 커피를 타와 그에게 내밀었다. '인스턴트라서 맛은 없을 거에요.' , 성종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오늘은 무슨 일로 허탕을 치셨나? 우리 보스께서."
"…총으로 분명 가슴을 맞췄어. 그런데 안 죽더라고……."
"맨날 그 핑계."
성규가 아직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한 잔 더 타줄까요? 성종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 금방 커피냄새로 가득 찼다. 성종이 다시 종이컵을 내밀었다. 남우현은 뭘 해도 안 죽어. 성규의 말에 성종이 소리 없이 웃었다. 온 몸이 부서지도록 패도 안 죽고, 보통 사람들은 조금만 맡아도 까무러친다는 약을 뿌려도 안 죽고, 마약을 탄 물을 먹여도 안 죽고, 심지어 총으로 급소를 쏴도 안 죽는데. 남우현이 진짜 불사신이라도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보스가 진짜 죽이려고 마음을 안 먹으니까 그런 거죠."
"이제 5년이다. 5년 째 별 짓을 다 했는데."
"온 몸이 부서지도록 패는 건 뭐. 약은 숨을 안 쉰다거나, 마약은 알고 교묘하게 피했을 수도 있죠. 총은 방탄복 엄청나게 껴입으면 되잖아요. 말 하고 보니 남우현이라는 사람도 진짜 대단하네요. 뭐 그래야 한 조직의 보스라고 할 수 있나? 보스도 방탄복 입은 거 알면서도 맨날 가슴만 쏘면서."
"……."
"보스, 잘 생각해봐요. 한 번만 쏘지 말란말이야. 필사적으로 해야 해요. 우리 조직의 목숨이 달린 건데."
성종이 표정을 굳히며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성규의 물음에 성종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성종의 말에 성규는 어디 불편한 어린애처럼 종이컵을 연신 씹어대기만 했다.
"보스가 그런 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냥 막 난사를 하던가, 방탄복 같은 거 없는 머리를 정확히 맞추던가. 둘 다 합치는 게 제일 괜찮겠네요."
* * *
남우현을 총으로 쏜지 정확히 16일이 되는 날이었다. 옥상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데 남우현이 나타났다.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옆에 있던 총을 집었다. 차가운 쇠의 감촉에 심장이 뛰었다. 머리 속에 자꾸 성종의 말이 되풀이됐다. '보스가 그런 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 이번에는 꼭 죽일 거다. 총을 붙잡고 남우현을 겨눴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사람을 죽여봤다. 처음에는 손이 떨리고 구역질이 났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남우현은 아니었나 보다. 총을 붙잡은 손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달이 참 아름답네."
"……."
"오늘은 진짜 죽일 것 같으니까 그냥 갈게."
남우현은 재빠르게 몸을 돌려 계단으로 사라져갔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어둠 속에서 남우현의 머리가 빼꼼 튀어나왔다.
"김성규. 너 고등학생 때 맨날 문학시간에 졸더니……. 일본 문학 기억 안 나? 멍청이."
"……?"
"나츠메 소세키. 바보야."
남우현의 마지막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에 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 * *
남우현은 다시 일주일 뒤에 찾아왔다. 언제나 똑같이 성규는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남우현은 끄트머리 계단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고. 우현의 뒤로 뜬 달이 유난히 예뻤다. 커다란 보름달 빛에 우현의 얼굴이 보였다. 고등학생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김성규는, 고등학생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졸기만 하던 김성규가 조금 똘똘한 부하 이성종을 두었기 때문에. 우현이 말하기 전에 성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규의 말에, 우현은 너무 좋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헤벌쭉 입을 벌렸다.
"…달이 참 아름답네."
"나 죽어도 좋아."
* * *
13년 전, 고등학교 교실은 잠의 유혹에 푹 빠져버렸고, 모범생 남우현과 몇 학생만이 눈을 부릅 뜨고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 이건 여담인데. 일본 문학에서 나츠메 소세키가 'I love you' 를 어떻게 번역했는지 아는 사람? …없어? 문학책 좀 읽고 살아라. '달이 아름답네요', 라고 했어. 멋있지. 그럼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I love you' 를 뭐라고 번역했는지 알아?"
"나 죽어도 좋아,"
"그래, 남우현이 책 좀 읽었구나. 아, 참 그리고 니 뒤에 김성규 좀 깨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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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하게 문학적으로 고백하는 현성이^~^... 오늘 어떤 분이 저 말을 해주셔가지고.. 필 꽂혀서 썼어영ㅎㅎ.ㅎㅎ.ㅎ..ㅎㅎ 그래서 좀 짧아여 똥글망글 ㅈㅅㅈㅅ 혹시 이해가 안 가시면 I love you = 달이 아름답네요 I love you = 나 죽어도 좋아. 암호닉 신청해주셨던 멜바님, 다우니님, 감성님 감사합니다 ^~^* 저 잊으셨을 듯ㅋㅋㅋㅋㅋㅋ엌ㅋㅋ 감사합니다=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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