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속도 헤아리지 못하고 내 귀에 충격 발언을 속삭여준 경수 형 때문에 제대로 공황 상태에 맞닥들인 난, 바싹 얼려 굳은 동태마냥 책상 위에 널부러져 패닉 상태를 만끽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우울증의 증세 중 하나가 불면이라는 걸 수업 시간에 잠이 안 오는 기이한 현상을 통해 몸소 체험했다. 용솟음치는 질투심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자신에게 계속 자문을 하며 희망고문을 하는 것뿐이었다. 순전히 백현이 친구로서 좋아서 잠결에 그런 소리를 했을 수도 있다, 아니다, 있다. 어느쪽이든 형이 꿈결에 찾은 사람이 백현이라는 것이 날 분에 차게 했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헝클며 다시 책상 위에 엎어졌다.
순정소설
w. 아우디
딱딱한 나무판의 촉감에 더 미쳐버릴 것 같았을 때 세훈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침부터 세훈과 말을 섞지 않았다. 옆에 앉은 세훈은 이미 엎어져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번뇌에 휩싸인 사춘기 소년의 전형적인 시뮬레이션을 펼치고 있었다. 지금 세훈에게 태민이 말해준 이상한 소문의 근원을 물었다가 심기를 건들까 두려웠지만, 둘도 없는 나의 교우에게 나라도 관심의 손길을 뻗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세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고개를 돌린 세훈이 내게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왜."
"너 이상한 소문 돌더라. 중국어한테 고백했다고."
"걔 얘기하지 마."
"말 안 해주기냐? 졸라 치사하다."
"그거 그냥 식당에서 장난친 거야."
"야 근데 그거 애들이.."
"아 좀, 말시키지 마."
싸가지가 풍년인 세훈 덕분에 우리의 대화는 별 수확 없이 끝났다. 우리를 이상하게 여긴 건 태민과 병진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미동도 않고 자리를 지켰으니 누구라도 뒷자리의 저기압을 감지했을 것이다. 내 기분은 저기압으로 친다면 열대성저기압을 동반한 초속 2미터의 태풍이었다. 태민이 꼴답잖은 몸개그까지 보이며 나의 안면 근육 운동을 돋우려고 노력했으나 씨알도 먹힐 리 없었다. 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색하게 웃으며 형식적인 반응을 해줬다. 아무리 느려도 시계의 초침은 꾸준히 촌촌전진했고, 난 점심시간이 돼서야 밍기적거리며 일어났다.
급식판을 앞에 두고 아이들은 대한의 건아답게 빠르게 수저를 놀렸다. 애들이 수저를 놀릴 동안 난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상황에도 경수 형을 찾고 있는 내가 유독 진상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찾아도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형은 내가 자길 찾는 것도 모르고 어디 구석에서 오물오물 밥을 먹고 있겠지. 지저분해진 식탁 위에 나와 태민만이 마주보고 앉았다.
"김종인. 너 뭔 일 있지?"
"없어."
"진짜 없어? 있잖아. 나한테만 말해봐."
상사병 말기 증세를 어디 털어놓을 곳도 없어서 답답했던 차에, 태민이 은근슬쩍 나를 찌르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말하려는 사실은 아주 중대하고 비밀스러운 것이다.'를 강조하기 위해 난 사뭇 경직된 표정을 하고 말하기를 꺼렸다. 태민이 나한테만 말해보라고, 하며 한 번 더 나를 부추겼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야.."
"그 사람이 너 찼냐?"
"아니 그게 아니고, 그.. 다른 사람이 있는 거 같거든?"
"야. 겨우 그까짓 일로, 아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거 아니다. 이뻐? 우리 학교야?"
"동아리."
"와, 너 티 존나 안 낸다. 나 지금까지 몰랐잖아. 빨리 누군지 말해봐."
"..혜, 혜리."
차마 경수 형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기에 무턱대고 동아리에서 가장 예쁜 혜리의 이름을 대버렸다. 이기적인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마음에도 없는 여자애 이름 좀 팔아도 무방하다. 태민이 입단속만 잘해준다면 괜찮을 것이다. 딱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며 한 마디 거드는 태민이었다. 박찬열이 경쟁 상대냐? 외모론 네가 졌네. 오묘하게 날 돌려까는 태민의 말에 내 기분마저 오묘해졌다.
"그래도 내가 밀어줄게. 여자애들 꼬시는 거 별거 없어. 그냥 존나 멋있으면 돼."
"얼굴이?"
"얼굴은 니가 졌다니까, 이 친구야. 옷이라도 멋있게 입어라. 학교 끝나고 교복 줄이러 가자."
태민이 힘찬 격려의 뜻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교복 줄이는 데 돈을 써버린다면 자금난에 쪼들릴 걸 알면서도 그날 반강제적으로 태민과 수선집에 갔다. 태민은 내게 절대적으로 5통을 추천했다. 5통이 얼마나 타이트한 사이즈인지 감지하지 못했던 난, 수동적으로 그 말을 따랐다. 태민이 알아서 잘 조언한 거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엔 혈액 순환을 철저히 지양하는 스타일의 교복 바지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등교를 해야 했다.
난 내 고통에 대한 보람을 복도를 활보할 때 나에게 꽂히는 무간지 미생물들의 선망의 시선을 통해 얻었다. 옷이 날개라던가, 복도가 런웨이라도 되는 양 나도 모르게 우쭐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제는 동아리 시간에 도통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태민에게 했던 거짓말은 오해의 오해를 낳고, 형을 보기에도 아까운 동아리 시간에 태민이 엄한 혜리에게 내 몸을 떠밀었다. 밀어준다더니 정말 말 그대로 날 밀어줬다. 혜리는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며 몸을 은근슬쩍 피했다. 아니 나도 관심 없다니까? 전방 2m에서 우릴 지켜보던 찬열 형이 저리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혜리랑은 말 한 번 제대로 섞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안 비킬 이유가 없었다. 태민이 나보다 더 답답해했다.
"등신아. 혜리 갖고 싶으면 박찬열한테 지지 말아라."
"그래도 이건 좀 그래."
동아리 시간 내리 내 눈엔, 앞에서 안무를 보이는 형의 흰 목과 말끔한 뒷통수만 보여서 동작 단 하나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형은 뒤돌아 세심하게 동선을 설명했다. 축제 때까지 세 곡을 완곡해야 하니 이런 건 미리 정해둬야 한다면서, 아이들의 포지션을 잡아줬다. 형이 나긋나긋하게 한 명 한 명 자리를 지정해줄 때마다 난 주제 파악도 못하고 다시 심장이 두근댔다. 딱 그만큼의 관심을 나에게 다 쏟아줬으면 좋겠다.
"종인이 너는 아직 조금.. 부족하니까 뒤쪽에 서도 괜찮지?"
"저랑 종인이랑 앞에 설 건데요?"
아까부터 날 유심히 보고 있던 태민이 수업 시간 발표 때도 들지 않는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태민의 생각은 나조차도 간파하기 쉬웠다. 아마 춤을 멋있게 춰서 찬열 형을 이겨버려라, 쯤 되는-본인 딴엔 획기적인-고안책일 것이다. 춤을 제대로 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형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데, 거기서 확 자존심이 상해버려 심심한 오기가 생겼다.
"너 잘할 수 있겠어?"
"네. 앞에 설래요."
"알겠어 그럼.."
형은 끝까지 떨떠름했다. 나중이 돼서 후회를 했지만 이미 쏜 화살이요, 주워담을 수 없는 물인데 어쩌겠는가?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을 바꿨다간 줏대 없는 놈처럼 보일 것이다. 형에게 잘 보이고 싶단 욕심만이 날 칭찬했다. 동아리 시간이 끝나고 짙은 아쉬움을 감추며 방을 나가려는데 형이 나를 막아섰다.
"종인아 잠깐만. 너 정말 앞에 설 거야? 비근한 예로 작년에 찬열이가 앞에 섰다가 동선이 꼬였어. 안 그럴 자신 있어? 축제 때 전교생이 다 보는 건데 너 정.."
"저 무시하지 마세요."
"아니야. 무시하는 게 아니라... 화났어?"
"무시했잖아요. 저도 하면 되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시비조가 묻어난 경솔한 발언이었다. 형과 백현을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쌓인 화를 괜히 형에게 풀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형에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어요, 공손한 투로 말하고 싶었다. 이제 형에게 난 성격 더럽고 사나운 후배로 찍힐 게 뚜렷했다. 나는 형의 시선을 피하며 곁눈질로 넌지시 형의 눈치를 살폈다.
"화내려던 게 아닌데 죄송해요."
"아니야 종인아.. 너가 이렇게 열심히 하려는 줄 몰랐어. 선배가 도와줄게. 너처럼 도전 정신 넘치는 애들이 우리 동아리에 왔었어야 하는 건데.."
나는 잠깐 동안 어리둥절했다. 형이 앞으로 나를 꺼릴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형은 내가 가르쳐줄 테니 절대 포기하지 않고 춤을 추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를 보내줬다. 형과 단둘이 연습을? 서쪽 하늘에 삼보일배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쥐구멍에도 볕이 들었다.
한 달 남짓 남은 중간 고사 공부는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경수 형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춤 연습에 돌입했다. 형은 점심 시간마다 날 동아리실로 불러냈다. 태민이 나에게 스파르타식으로 춤을 주입시킬 땐 내가 추는 것이 춤인지 국민 체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는데, 이젠 내가 처한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아 꿈이라면 깨지 않길 빌고 생시라면 아직 몇 달 남은 축제가 200년 뒤로 미뤄지길 간절히 소망했다. 형의 금 같은 하루 48분할 중 하나를 독점한 장본인이 나 김종인이었다. 오늘도 들뜨는 마음에 속성으로 급식판을 비우고 일어나려는 찰나, 세훈이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붙잡았다.
"아무래도 너한테 호모 바이러스 옮은 것 같아 새끼야."
"뭔 바이러스? 왜?"
호환마마보다 무섭던 세훈의 침묵이 해제되고 세훈은 지금껏 중국어와 있었던 일을 줄줄이 실토했다. 세훈의 긴긴 스토리를 간결히 요약하자면 이랬다. 경수랑 밥 먹으러 간 날, 복수 차원에서 루한 쌤한테 장난을 좀 쳤다. 그래서 중국어 시간에 나한테 시비 튼 거다. 나도 빡쳤고 쌤도 빡쳐서 교실 밖에서 한 판 했다. 싸우다 쌤이 훌쩍대는데 그게 묘하게 심장을 울렸다. 이 대목에서 세훈은 이 말도 빼먹지 않았다. 난 징징 짜는 게 제일 싫은데 왜 그랬지? 씨발 더러워. 아무튼 자꾸 신경이 쓰여서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지더라. 근데 아까 중국어 시간에 쌤을 다시 보자마자 똑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끝이었다. 세훈이 말을 마치고 나서 이제야 후련하다는 듯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세훈에게 별다른 말을 해줄 수 없었다.
"그냥 인정해. 나 형 보러 가야 돼서 이만."
내가 대신 고민해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건 세훈 스스로 끝장을 봐야 할 일이다. 난 우주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경수 형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세훈을 두고 나왔다. 동아리실의 구조는 형을 관찰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사방이 거울이라 형의 옆모습이든 앞모습이든, 내가 내킬 때마다 시선을 바꿔 볼 수 있다. 형은 춤을 출 때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을까? 하기야 자기가 얼마나 귀여운지도 모를 텐데.
"종인아! 방금 형이 한 데까지 빨리 해봐."
"모르겠어요. 한 번만 다시 보여주세요."
"다섯 번째거든? 알았어 보여줄게. 이번엔 진짜 잘 봐."
사실 난 형에게 쪽을 되파는 일을 면하기 위해 미리 집에서 미디어매체 학습을 확실하게 했다. 춤은 못 춰도 그건 잘할 수 있다. 형이 보여준 동작이 몇 번 반복되고 몇 분 몇 초부터 어디까지인지 외울 정도였다. 면접 때의 수모를 다시 재현하긴 죽기보다 싫었기에 내 피엠피에 인강 대신 안무 영상을 넣고 다닌 결과물이었다. 나는 내 능청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마음 편히 형을 관조했다.
"아... 힘들어. 설마 또 모르는 거 아니지..? 빨리 해봐."
나는 형에게 뭘 보인다는 게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무리에 껴서 어설프게 태민의 몸짓을 따라하던 내 모습을 상기하면 당장이라도 벽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
"천천히 해도 괜찮으니까 얼른~"
그래도 언제까지 미룰 순 없는 것이었다. 나도 한다면 한다. 자기 암시를 걸었지만 몸은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춤을 시작했다. 일련의 동작들이 하나하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 상체만 뒤도는 포인트 안무에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순간 허리에서 삐끗 하고 느껴진 강렬한 고통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뒤돌지도 못하고 멈춰섰다. 척추 끝부터 목뼈까지 타고 오르는 아픔에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왜 다음부터 안 춰? 까먹었어?"
"형 저.. 허... 허리가.."
형이 놀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어떡해,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픈 건 둘째 치고 일단 쪽팔렸다. 왜 하필이면 형 앞에서.. 신은 나에게 시련도 함께 주는 걸 잊지 않으셨나 보다.
의사선생님께서 허리 인대가 늘어났다고 청천병력 같은 통보를 했다. 영영 허리를 못 쓰는 줄 알고 얼마나 쫄았는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라고 했다. 한 주 가량 입원하고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거라고 조언을 받은 난 입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병상에 드러누웠다. 보통 학생이라면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방방 뛰었겠지만 난 경수 형과의 꿈 같던 교습의 나날들을 곱씹으며 마음 아파했다. 한편으론 형의 병문안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바라는 형 아닌 태민이 애들을 우르르 데리고 병문안을 왔다. 불청객이라고 하기엔 미안했지만 병실 안이 시끌벅적해서 내심 빨리 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구 되니까 좋냐? 그러게 내가 스트레칭 중요하댔지, 아오."
"오세훈은?"
"걔 오늘 수업 시간에 중국어한테 또 까불어서 벌청소 존나게 열심히 하고 있을걸. 야. 부장이 너 뭐 사주라고 돈 줬다. 내일 온대."
"내일? 진짜냐?!"
허리를 가급적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순간 잊어버리고 몸을 벌떡 일으키는 나였다. 병석에서 마음의 병과 몸의 병을 함께 앓고 있던 내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애들이 가고 나서 난 내 환자복에 별 짓을 다 해봤다. 바짓단을 접었다가 다시 돌려놨다가, 이틀 동안 땀내라도 배었을까 간호사 누나에게 새 환자복을 달라고도 했다. 엄마 대신 밥을 갖다주러 온 친누님께선 이런 나를 보고 말했다. 허파에 바람 들어갔니?
분명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점심 시간까지는 시간이 빠르게 갔는데 그때부터 학교가 끝날 시간까지는 시간이 느리게 갔다. 난 시계의 분침과 초침을 번갈아 확인하며 오로지 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다고 해놓고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지, 다섯 시부터 초조해졌다. 여섯 시부턴 김이 새버려 몸에 있던 긴장감이 다 풀렸다. 그때 경수 형이 형 몸집만한 과일 바구니를 들고 병실 안에 들어왔다. 어정쩡하게 이마를 짚고 있던 내 팔목을 내리고 성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니야, 일어나지 마."
"형 저 무거운 걸 여기까지 들고 왔어요?"
"하나도 안 무겁던데? 몸은 좀 어때?"
"저 진짜 멀쩡한데 병원에서 억지로 입원시킨 거예요. 저 되게 튼튼해요."
"거짓말. 이게 다 형 때문이야. 부장이 돼서 너한테 너무 힘든 걸 시킨 거 같아.."
아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세요 형. 미천한 제 몸이 춤 하나 제대로 감당 못한 잘못이죠. 묵묵히 속으로만 대답했다. 형은 착한 마음씨 때문에 날개만 있었다면 천국으로 날아갔을지 모른다. 날개 없이 형을 이 땅에 내려준 하늘에 감사 드린다.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더 나빠지면 큰일이야."
형이 상투적인 말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미친 난 아랫도리가 뻐근해짐을 느꼈다. 형을 지켜주기도 전에 응큼한 생각이나 하는 나 같은 새끼는 말살 당해도 싸다. 나는 형과 대화를 얼마 주고 받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쳐갔다. 맨 끝 칸에 들어가서 환자복을 내리고 진정한 남자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순간에 형을 생각했다는 죄의식은 떨쳐낼 수 없었지만 금딸은 몸에 좋지 않다고 성교육 시간에 배웠다.
병실 문을 열기 전 안에서 혼자 종알거리는 형의 목소리에 손을 멈칫했다. 형은 그랬어? 지금 어디야? 하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형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
"나는 지금 후배 병문안 왔어.. 아니 별로 안 친한데 그래도 내 책임인 것 같아서."
형과 조금이라도 친해졌다고 착각했던 내가 얼마나 주관적인 생각을 했는지 후회하면서도 형에게 서운했다. 그래도 형과 난 모르는 사이에서 발전한, 별로 안 친한 사이이다.
"진짜? 나도 백현이 보고 싶어서 죽겠어."
나는 문에서 귀를 떼고 형이 통화를 마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이제 더이상 실날 같은 희망으로 날 괴롭힐 일은 없어졌다. 울고 싶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병실에 들어갔다. 형이 나 이제 가볼게, 하고선 가볍게 웃어보였다. 형이 웃어주는 건 그저 형이 너무 착한 탓에 친하지도 않은 내게 웃어주는 것이다. 단 몇 분 만에 혼자 하는 삽질은 없는 일이 되었다.
"형.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백현이란 사람이랑 형이랑 무슨 사이에요?"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바깥에서 통화하는 거 들렸거든요. 그게, 형 통화하는 거 방해하기 싫어서 안 들어오고 있었는데 들렸어요.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 들었어?"
"보고 싶다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말 안 할게요."
"진짜 말 안 할 거지? 백현인 학생 회장이고 애들한테 인기도 많은데 이상한 소문 돌면 안 된단 말이야. 정말 얘기하면 안 돼."
나는 생소할 정도로 단호한 말투의 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하나 추스리기도 어려운 차에 그 얘길 어디 떠들고 다닐 수 없었다. 형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병문안에 와서 내 마음을 여러 갈래로 찢어내고 집에 돌아갔다. 형은 집에 가는 길에도 백현에 대한 걱정만 하며 돌아갈 것이다. 찢겨진 마음은 누가 붙여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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