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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가을.


9월 3일. 현승의 생일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의 현승은 꽤 뛰어난 집안과 디자인 실력을 인정받아 여러 회사에서 일찍이 스카우트 제의를 여러번 받은, 그리고 지금도 받고있는 뛰어난 디자이너였다.

이미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취업에 성공하여 아르바이트 삼아서 디자인 작업을 해 주며 돈을 벌곤 하였다.

그리고 이런 그에게는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서로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한. 그런 사람.


9월 3일, 그 날도 사랑하는 이의 부름에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인 논현동으로 향했다.

몇개의 정거장을 지나쳤을까 역에서 내린 현승은 하늘을 쳐다봤다.

“비가오려나.”

하늘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여있었다.

그런 하늘과는 다르게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리고 현승은 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근처의 한 카페로 들어섰다.

“준형아-”

그의 애인의 이름을 부르며 카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바깥이 어두워서일까.

불이 꺼진 카페안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밖에서 어럼풋이 들어오는 빛 덕분에 보이는 케이크와 풍선 등을 보아하니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려 부른 것이 틀림 없어 보였다.

푸스스, 웃음을 터트린 현승은 한껏 기대를 한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자신을 깜짝 놀래키려고 어디 숨어있는건가.

두리번 두리번.

준형을 찾기위해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로 향한 현승은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준형..아?”

분명 현승을 부른건 준형이였다.

혹시나 약속에 늦을까 30분이나 먼저 온 현승이였다.

그러나 30분 먼저 오지 말 껄 그랬나보다.

먼저 온 그의 눈 앞에 보이는건 다른여자와 함께 마주앉아 웃으며 허리에 손을 두른채로 입을 맞추고 있는 준형이였다.

준형과 현승.

둘만의 데이트를 위해서 빌린 듯 해 보이는 카페에서 낯선 여자와 키스를 나누는 준형이라니.

“용준형 씨발새끼야.”

낮게 들려오는 화난듯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준형의 눈이 살며시 떠졌고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여자에게서 멀어졌다.

“ㅇ..어? 현승.. 아니. 잠시만. 저리 꺼져봐.”

준형이 급하게 여자를 떼어내고 현승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그러나 현승의 몸이 더 빨랐다.

“현승아!!! ”

어두웠던 하늘에서 결국 뚝뚝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것인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천둥번개까지 치는 밖으로 가방도, 우산도 들지 않고 뛰쳐나갔다.

비를 모두 다 맞으며 뛰어가는 현승을 준형이 그 여자를 카페에 덩그러니 내팽겨쳐 둔 채로 빠르게 뒤따라 갔다.

그러나 앞에 나타난 횡단보도.

신호에 의해 둘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그에 현승이 달리는 속도를 늦춰갈 때 즈음.

인도 바로 옆 공사장의 크레인에서 나무판자가 떨어지는 모습이 준형의 눈에 들어왔다.

“장현승!!”

미처 피할틈도, 준형이 뛰어가서 막아줄 틈도 없었다.

그대로 쿵. 하고 현승의 뒷통수로 떨어진 판자.

정말 그 중에서도 다행이였던건 떨어뜨린 위치가 2층이였다는 것과 현승의 빠른 발걸음 덕에 머리에 비껴 맞았다는 것 이였다.

“현승아!! 장현승!”

우산을 쓰는 것도 잊어버리고 신호도 무시하고 현승만 보고 달려온 준형은 현승의 몸을 부여 잡고 흔들었다.

준형이 흔드는 그대로 따라 흔들리는 현승의 얼굴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주르륵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현승은 누군가 연락을 한 듯 잠시후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



“TA(Traffic accident : 교통사고)야?”

“아뇨. 공사장에서 떨어지는 나무판자를 맞은 뇌출혈 의심 환자에요.”

“그럼 빨리 CT(컴퓨터단층촬영) 찍고 OR(수술방)잡아.”

“예.”

“..저기- 저 환자 어떻게 되는 거죠?”

준형이 의사와 간호사의 알 수 없는 말들이 의학용어들이 오고가는 대화 내용을 이해 하지 못하고 물었다.

“뇌출혈이 의심되어 CT.. 즉 컴퓨터 단층 촬영을 해서 그 사진으로 정확히 판단하고 바로 수술 들어갈 예정이에요. 혹시 보호자분 이세요?”

“네.”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친구에요.”

“..아. 그럼 환자분 부모님 불러 주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럼 바로 연락 좀 취해주세요. 이 수술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해서 빨리 와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환자 이름이?”

“...장.. 현승이에요.. 현승.”



연락을 부탁한 간호사의 말에 준형은 병원 로비로 나와 현승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준형입니다.”

“어. 준형아. 왠일이니? 현승인 너 만나러 나갔는데. 못 만난거니?”

“..사실 그게 아니라 ....지금 현승이가 수술실에, 들어.. 가야하는 상황이라서요..”

준형의 말을 듣자 다급해하시고 떨리는듯한 현승의 엄마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전해졌다.

다급히 병원을 묻는 엄마의 말에 준형이 얼른 병원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만을 주시하던 준형의 시야에 현승의 부모님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무슨일이니.”

횡설수설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는 준형의 말의 의미를 알아챈 현승의 아빠가 준형의 뺨을 짝. 하고 때렸다.

정말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붉게 올라온 준형의 오른쪽 뺨에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짐작이 되었다.

“...내가. 내가 얼마나..”

분이 풀리지 않은 듯한 모습의 현승의 아빠는 분에 못이겨 한참을 심호흡 하였다.

수술동의서를 작성 해 달라는 간호사의 말에 끝까지 욕을 지껄이다가 동의서를 작성하러 향했고 준형과 현승의 엄마 둘만이 남아있었다.

“준형아.. 일단, 너도 힘들고 아프겠지만 현승이 아빠의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 너희 둘 사랑한다는거 가장 밀어 주셨던 만큼 널 믿었던 분이란다. 그리고.. 이번 일은.. 확실하게 네가 잘못한거, 맞지?”

“...네.”

“아마도 널 믿었는데 그 배신감에 그런 행동을 하셨으리라 생각하는데, 볼은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그래. 아줌마가 좋아하는 준형이라서 하는 말이야. 그렇다면 오늘을 마지막... 으로 현승이와 만나지 않아줄 수 있겠지?”

“.....네..”

“그래. 미안하다. 그리고 정말 너희 둘이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오늘 연습있다고 일찍 만나자고 했다고 하던데 어서 가보거라. 여긴 우리가 있을거야.”

“..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이게 현승이의 운명이지.. 그리고 현승이는 무사할거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씁. 괜찮아. 계속 그럼 화낸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나중에 현승이 퇴원소식은 연락해주마.”

연신 ‘죄송합니다.’와 ‘안녕히계세요.’만 남발하던 준형은 연습을 위해 근처의 회사 연습실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뺨을 왼손으로 때려주신 아버님의 배려와 끝까지 자신을 챙겨주신 어머님에 감사하며.



***



“용준형. 정신 똑바로 안차려?”

“죄송합니다.”

“10분만 쉬었다가 다시가자. 휴식-”

휴식이라는 말에 바닥에 누운 준형 곁으로 요섭이 다가와 앉았다.

“무슨 일 있는거죠?”

“아니야.”

그리고는 ‘나 무슨 일 있어요.’ 라고 홍보하듯 한숨을 포옥 내 쉬던 준형이 요섭보고 들으라는 듯 조금은 크게 혼잣말을 했다.

“다 내탓이야.”

“......”

“내가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지켜주지 못했어. 더 잘 해주려고 했는데..”

“누가...요?”

“...현승이. 우리 현승이.”

“...현스..ㅇ.. 아, 형이랑..”

“오늘 생일인데. 기쁘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준형이 횡설수설 오늘 있었던 일을 요섭에게 털어 놓았다.

말사이가 끊기기도 하고 울음을 참는 듯 목이 메인 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대충을 알아 들은 요섭이 말 없이 준형을 토닥였다.

사실 다 준형의 잘못이였다.

현승을 전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있던 그 카페에 파티를 해 주겠답시고 불러 냈던것도, 그 여자가 자신을 들어오기에 돌려보내지 못하고 들어오라 이야기 한 것도 자신이였다.

현승만을 위한 자리에 자신의 전 여자친구를 들이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한 짓이였다.

자신이 왜 그러고 있었는지 변명하는 것 조차 미안했다.

왜 그런 적 다들 있지 않는가.

너무 미안해서 변명도 하기 미안한 그런 상황.



조금은 준형이 그 사건에 무뎌졌을 즈음.

약 2달이라는 길게만 느껴진 시간이 지나고 준형에게 한통의 장문 메세지가 도착했다.

「현승이가 널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기억하지 못해.
기억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것이라 그러더구나.
현승인 재활치료 후 유학을 떠날거야.
현승이가 돌아오기 전 까지 멋진 가수가 되렴.
난 여전히 네 팬이란다. 고맙고 고마웠다. - 현승엄마」


이랬던 준형이 그 후 2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9월 3일이 되던 날 데뷔무대를 가졌다.

현재 최고의 그룹인 Zenith의 래퍼로써.

더 멋진 가수가 되어야 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 Zenith,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 모두가 인정하는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작사와 작곡에도 관심이 많던 준형은 이내 앨범을 프로듀싱하기에 이르렀다.

신나고 행복한 곡은 현승과의 좋은 추억들을 생각 해 내며 써 내려갔고, 슬프고 애절 한 노래는 현승과의 마지막 그 순간을 생각 하며 써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 그의 곁에는 그렇게 기다리던 현승이 살아 웃고 있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인, 다시는 못볼 줄 알았던 그가. 자신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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