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육성재란? 라는 이름이 박혀있었다.
본받고 싶고 부러운.
가장 완벽한 아이.
그렇다면,나에게 육성재란?
한심하고 바보 같은.
가장 완벽한 싸이코.
나의.
.
"징그러워!"
뚱뚱한 아이가 성재에게 돌을 던졌다.
성재에게 닿지 못한 돌이 바닥에 떨어졌다.
성재가 꺄르르 웃었다.
"미쳤어,너."
아이가 몸서리를 쳤다.
성재의 발 밑에 내장이 터진채 뱃속에 나무 막대기가 꽂힌 들쥐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안 미쳤어."
웃음을 멈춘 성재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돼지야."
성재가 돌을 던졌다.
아이의 볼에 생채기가 났다.
피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볼을 손으로 한 번 훑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성재에게 달려들었다.
"피…피 나잖아…!"
성재가 웃었다.
"낄낄낄."
아이가 성재에게 주먹을 날리려고 한 순간,성재가 커다란 짱돌을 집어 아이의 얼굴에 가져다 박았다.
콧대가 눌리고,두개의 콧구멍에선 피가 흘렀다.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치아가 다 깨지고,흔들리기 시작한 유치가 다 뽑혀버렸다.
아이가 충격에 눈만 크게 뜨고 멍하게 성재를 보았다.
턱이 닫히지 않았다.
"널 보면,"
성재가 아이의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삼겹살이 먹고 싶어."
돼지야.말을 마친 성재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 사이의 바닥에 누워있는 들쥐의 시체에서 비린 냄새가 났다.
피 비린내.
결국 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멀리서 젊고 날씬한 여성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성재는 재빠르게 웃음을 감추고 아이의 한 팔을 거들었다.
"울지마.괜찮아?"
-얘,왜 우는거니?
아이의 턱이 닫히지 못한 채 여성을 보았다.
조용히 성재의 눈치를 한 번 본 아이가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누가 이랬어,응?
짐짓 화가 난 듯 엄한 목소리로 성재를 보았다.
하지만 그저 어린 성재는 그 말간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하면 되는것이었다.
"제가 그런게 아니예요."
최대한 순한 표정을 지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면,어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의심하는게 아니야.
그러면 성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이."
어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커다란 손에 부축되어 힘들게 눈을 뜬 아이만이 성재를 알아보고 두려운듯 몸을 떠는것이었다.
성재가 겨우 여덟살 되던 해였다.
.
성재네 학교에서 수영장으로 체험학습을 왔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웠지만,아이들은 환호하며 누가 먼저랄것 없이 시원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무리 속엔,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도맡아 하는 성재가 끼어있었다.
"꺄아악-!"
락스 냄새가 나는 물 표면 위로 두둥실,뚱뚱한 아이의 몸이 떠올랐다.
얼마전 빠진 턱이 회복되어 오랜만에 학교에 나온 아이였다.
놀러 온 대학생 무리가 아이를 물밖으로 건져내었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구급차가 싸이렌을 켜고 달려왔다.
선생님들은 아이의 학부모에게 전화를 드리고 있었고,경찰이 다가와 사건 경위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누구하나 안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에,
성재는 살며시 웃었다.
그때,처음 아이를 건져낸 대학생 무리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경찰에게 말했다.
"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자신에게 쏠리자 머쓱해진 남자가 머리를 긁었다.
"저 아이가 그랬습니다.제가 봤어요."
그리고는 그 손을 뒷통수에서 빼내어 긴 손가락을 펼치고 성재를 가리키는것이었다.
성재가 웃음을 멈추고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그런게 아니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서도 기분이 묘했다.
알수 없는 당혹감과,
쾌락.
경찰이 성재를 한 번 내려보더니 성재와 눈높이를 맞춰 구부정하게 앉았다.
"꼬마야,저 친구가 왜 저렇게 됐는지 알고 있니?"
"정말 제가 한 게 아니예요.정말인데…."
성재가 울먹거렸다.
"저랑 친한 친구란 말이예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경찰이 성재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래,그래.알겠어,의심해서 미안해."
소매로 눈물을 닦은 성재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씨익 웃었다.
머릿속에 무엇인가 스쳐간 탓이다.
성재가 얼굴을 가리던 팔을 내렸다.
그리고는 대뜸 이렇게 말하는것이었다.
"저 아저씨가 그랬어요."
성재의 작은 손이 그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가 봤어요."
그리고는 얼척이 없다는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꼬마야,더 자세히 이야기 해줄래?"
"저 아저씨가 제 친구의 머리를 잡고 물속에서 못나오게 했어요.막 살려달라고 했는데,저 아저씨가 절대 안 놓아줬어요."
"……."
"전 튜브 가지러 갔다 오는길이었어요."
자신의 배에 감겨 있는 튜브를 만지작 거리던 성재가 말을 마쳤다.
여전히 성재의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경찰관은 생각에 빠진듯 하다가 일어서서 그 남자에게 다가가 팔을 잡고는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경찰서에서 하시죠."
이젠 남자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미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악한 새끼."
노려보는 것처럼 성재와 눈을 맞추던 남자가 성재에게서 등을 보이기 직전,살짝 웃으며 성재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그 남자는 경찰관과 함께 점점 더 성재에게서 멀어져갔다.
성재는 자신의 기분이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이상했다.
.
반쯤 나체의 상태로 누워있던 성재가 몸을 돌렸다.
그 옆에는 전라 상태의 여자가 울며 매달리고 있었다.
"성재야…응?"
"아,좀."
성재가 귀찮다는 듯 여자를 쳐내고 침대 옆 서랍장 위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하얀 연기를 뱉어내었다.
어느덧 작던 손은 성재의 키가 커진 만큼 성장해 있었다.
"성재야…된 거…맞지?"
그렇게 한참을 울며 매달리던 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성재가 살짝 고개를 틀어 여자를 마주보았다.
"됐을거라고 생각해?"
순간 멍한 눈으로 성재만을 응시하던 여자가 흐느끼며 울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만 나오라고 할때까지 나와,소문 퍼지는거 싫으면."
성재가 이불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여자가 옷가지를 챙겨서 방안을 빠져나왔다.
쾅,하고 세게 문닫는 소리가 울렸다.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오게 된 성재는 여전히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
게다가,2년 연속으로 반장을 하게 되었다.
제작년에는 전교 회장을 했었는데.
씁쓸한 담배 연기를 내뿜은 성재가 헛웃음을 뱉었다.
길이가 얼마 되지 않는 담배를 재털이에 지져 끄고 난 성재가 몸을 일으켜 베란다의 새장으로 갔다.
두마리의 작은 유황앵무가 가둬져 있었는데,한마리는 말을 할 줄 알았고 한 마리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이 두 마리의 앵무새는 성재네 집에 살면서 유일하게 죽지 않은 동물이었다.
성재는 새장을 열고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앵무새 한 마리가 성재의 손가락 위로 올라가 앉았다.
"나왔네."
성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날씨가 참으로 맑았다.
일훈은 빛을 오랜만에 보는 것 마냥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고,눈을 찡그렸다.
그 얼굴엔 장난기가 서려있었다.
이번에는 팔을 크게 하고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날씨가 참-좋네."
.
몇년동안 사람 하나 들이지 못한 집이 쌀쌀했다.
차가운 방바닥에 발을 얹었다.
양말에 먼지가 붙는것 같았다.
방안에 들어가 완성을 기다리던 캔버스를 만지작 거렸다.
어떻게 들어간 학교였는데.
일훈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곤 비닐봉지에 완성되지 못한 그림들을 넣고 밖으로 나갔다.
"어."
일훈의 앞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멈춰섰다.
이 근방 고등학교였다.
일훈은 쳐다보지도 않고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걸음을 계속했다.
"아저씨."
가슴께에 달린 명찰속
"오랜만이예요."
아이처럼 웃었다.
일훈은 성재의 뒤에서 받쳐오는 햇발이 눈부셔서 눈을 감을 수 밖에…,
.
"아저씨,나 기억 안 나요?"
성재가 고개를 갸웃 거리었다.
어디서 봤더라,많이 봤는데…….
생각해보면,내가 이 아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탓은,감옥에 수감되어 있을동안 본 것이 아닐테니 족히 십년도 전에 만났던 아이라는 점때문이다.
그러니까 앞의 이 아이는 많아도 열아홉일테고,
그렇다면 십년 전 나이는 많아야 아홉살일테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훈에 성재가 웃으며 말했다.
"영악한 새끼."
그 웃음에,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난 아저씨 기억나요."
소름끼치게,성재의 입이 더욱 찢어졌다.
"낄낄낄."
멍청이.
일훈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성재를 쳐다보았다.
왜 나를 찾아왔어?
"보고 싶어서요."
성재가 웃음을 멈추고 숨을 크게 한 번 내쉰 후 말했다.
"어떻게 살고 있나,궁금해서."
"오늘 출소 했는데."
쩝쩝 거리며 입맛을 다시던 일훈이 자신의 손에 들린 비닐봉투를 내려다 보았다.
"미술 전공하셨나봐요?"
무거운 비닐봉투에서,성재에게로.
시선을 올린 일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제 못하니까,버리려고."
일훈의 말에 싱글벙글 웃던 성재가 갑작스레 일훈의 손에 들려 있던 봉투를 빼앗아가 속을 뒤적거렸다.
그 속엔,그림 몇장이 들어있었고 그 그림들은 붉은 색 계열의 강렬한 추상화가 대부분이였다.
흐흐,하고 웃은 성재가 마음에 든다는듯 그림을 감상하더니 그것들이 든 봉투를 두팔로 감싸 안았다.
"난 마음에 드는데,버릴거면 저 주세요."
성재의 말에 한참을 쳐다보던 일훈은 별 말 없이 뒤를 돌았다.
"허락한거죠,아저씨?"
일훈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낡은 아파트 건물로 들어섰다.
성재는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일훈의 뒤를 졸졸 따랐다.
그런 성재를 보기 위해 일훈이 뒤를 돌았다.
왜 따라와?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성재는 대답해주었다.
"궁금해서요."
"왜?"
"왜 다른지."
안 멍청하잖아요.
성재가 그림을 받치고 있던 손 하나를 빼어 손가락을 입에 물고 킬킬 거렸다.
"나 멍청해……."
다시 뒤를 돈 일훈이 감흥없이 말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그런 일훈의 허리를 성재가 감쌌다.
"아니야,보면 알아요."
엘리베이터는 꽤나 고층에 머물러 있었고,아직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십년 전,아저씨가 나를 범인이라고 했을때,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요?"
일훈의 시선은 엘리베이터 층수를 알려주는 전광판에 머무르고 있었다.
"죽일거야."
그러던가.
무심하게 말을 뱉은 일훈의 시선은 여전히 성재에게로 가 있지 않았다.
일훈의 말에 성재가 웃었다.
성재의 귀가 붉어졌다.
"난 미친게 아니예요."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아주 가까이.
"영악한거지."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응……."
일훈이 자신의 허리에 감겨져있는 성재의 커다란 손을 탁 소리 나게 쳐내고 열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알고 있어."
"죽일거라는 말,"
성재와 일훈이 동시에 말했다.
일훈이 자신이 살고 있는 층수의 버튼을 눌렀다.
"진심이예요."
일훈은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성재가 없어진 것 같았다.
.
[3층입니다.]
타는 사람도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일훈은 성가시다 생각하며 닫힘 버튼을 눌렀다.
[4층입니다.]
다음 층수에도 멈추었다.
타는 사람 없이 컴컴한 공동현관만이 일훈의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일훈이 다시 짜증을 내며 닫힘 버튼을 눌렀다.
[5층입니다.]
또 멈추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6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7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8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9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10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11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12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13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14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15층입니다.]
타는 사람이 없었다.
닫힘 버튼을 눌렀…….
어이쿠.일훈이 열림 버튼을 눌렀다.
생각 없이 닫힘 버튼을 연속해서 누르다 보니 집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어두컴컴한 공동현관이 보였다.
일훈은 그 어둠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불이 환하게 켜지고,그 앞에 어둠속에 숨어 있던 성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놀랐죠,아저씨."
성재를 눈으로 한 번 흘긴 일훈이 자신의 집 쪽으로 몸을 틀었다.
성재가 미소 지었다.
"우리집도 지나칠 뻔 했잖아."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얇고 가늘다.
"이 집이구나."
"……."
"비밀번호는 1004?"
일훈이 대답하지 않고 문고리를 돌렸다.
"아저씨 없는 동안 집이 어지럽혀져 있다거나,누가 마구 뒤진 흔적이 있으면."
일훈이 듣는 척도 하지 않으며 문을 열었다.
"그건 저인줄 아세요."
쿵.
두꺼운 문이 한기를 만들어내며 닫혔다.
성재가 키득대었다.
비투비 600일 기념으로 쓴 싸이코 물입니다!
사실 조각으로 가려고 했는데ㅜㅠ
언제까지 연재할진 저도 모르겠어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