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오늘 하루의 일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은 로스트 브라우니에 로열 허니티입니다. 여기, 들어오도록."
조용히 방 문이 열리더니 미끄러지듯이 은쟁반과 식기가 들어왔다. 베이지색 식탁보가 새로 깔렸고, 조용히 아침 준비를 마친 시종이 다시 문 밖으로 나가더니 허리를 숙여 깊이 인사를 드렸다. 시종이 백현의 앞에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찬열은 백현의 방에 달린 두꺼운 레드 커튼을 걷혔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왔으나 백현은 졸려 죽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전 8시까지 준비를 마치셔야 합니다. 욕실을 데워놓았으니 아침식사 후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9시부터는 하이브레드 교수님께서 방문하십니다. 저번 시험에서 통과를 못 하셨다는 말을 들으시더니 특별 보충을 해야 한다고 적극 권장해주시더군요."
"보충 안 해도 다음 시험에선 통과할 수 있어."
"혹시 모르는 일이죠."
"그럼 수업시간을 미뤄줘. 12시부터는 골든 클럽에 가야 하잖아. 안 그래도 요즘 무역이 기운다 싶어서 고민인데, 2시간 수업을 하고 나면 시간이 너무 촉박해."
"교수님께서 아침에 수업을 들어야 두뇌의 활동에 좋다며 9시를 제안하셨습니다."
거짓말.
이 살인적인 스케쥴의 시작은 며칠 전에 백현이 사교파티에 가서 웬 레이디 하나와 소식을 주고 받자고 약속한 것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자 연락하지 말라는 협박이 분명했다. 제 집사이자 비서인 박찬열은 항상 그랬다. 어디 가서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친해지려고 하면 일정을 살인적으로 잡곤 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하는 데에는 딱 적정인 셈이지. 그래도 그 상대가 남자라면 좀 나았다. 벌인 셈 치고 -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찬열이 이끄는 대로 꼬박 하루종일 시달리고 나면 그 다음 날부터는 다시 재조정해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여자인 경우면 좀 곤란했다.
"수업, 미루고 싶죠?"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은 찬열이 다가와 침대에 앉아있는 백현의 손목을 잡았다.
"돼, 됐어. 안 미뤄도 돼. 계속 해. 골든 클럽 다음엔?"
"그 후에도 티타임이 전혀 없다면?"
"뭐?"
찬열이 고개를 숙여 백현에게 이마를 마주했다.
"그러니까, 제가 그 레이디는 안된다고 했잖아요."
'그' 레이디가 아니라 '모든' 레이디가 안되는 거면서.
미소짓고 있던 찬열의 입술이 백현에게 닿았고, 찬열은 그대로 혀를 내밀어 부드럽게 백현의 입술을 쓸어내렸다. 경직된 채로 눈을 꽉 감고 있는 백현을 잠시 쳐다보던 찬열은 이내 웃으며 떨어졌다.
"식사부터 할까요?"
백현은 오늘 하루동안 이렇게 시달릴 걸 생각하니, 눈 앞에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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