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로 보는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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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처음은 힘들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분위기.
모든 것에 적응하느라 애쓰느라 지친 너봉은 멀리 떠나고 싶다고 생각해.
하지만 쉽지 않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까.
그날도 같았어, 하루 일과를 끝내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어.
문 앞에 서서 너봉은 중얼거렸어.
"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좋을 텐데. "
말도 안 되겠지, 픽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갔어.
그런데 뭔가 이상해.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심지어 불도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했지. 다시 문을 향해갔어.
너봉은 깜짝 놀랐어. 현관문과는 전혀 다른 문이 있었거든.
조심스럽게 문 손잡이를 돌렸어.
문이 열리고 너봉은 어느 곳에 도착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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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봉오리 |
너봉은 포근함을 느끼며 눈을 떠, 그리곤 암막 커튼이 쳐져 있는 듯한 주위에 흠칫 놀라. 사실 너봉은 꽃 속에 있는 거였어. 아주 동화스러운 일이었지. 곧 꽃잎이 열리며 밝은 빛이 쏟아졌어. 갑작스런 빛에 너봉은 손등으로 눈을 가려. 빛에 익숙해진 너봉이 팔을 내리는데 바로 앞에서 누군가 입을 헤 벌리고 너봉을 쳐다보고 있었어.
" .... "
너봉은 온몸을 들썩일 만큼 깜짝 놀랐어, 왜냐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너무나 커다랬기 때문이야. 자신은 기껏해야 남자의 검지 손가락만 한 정도였지. 그제서야 너봉은 고개를 획획 돌리며 주변을 돌아봤어. 침대, 책상, 책과 연필 등등.. 모두 자신보다 커져있었지. 커다란 방에서 가장 큰 남자. 남자!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느라 남자를 깜빡 잊고있었어.
너봉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구김이 생긴 원피스를 탁탁 털었어. 그리고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원피스를 손끝으로 살짝 들었다 놓았어. 항상 디즈니에서 공주들이 하던 인사였지. 엄지공주가 된 기분에 샐쭉 웃음이 나왔어. 정말 마법 같은 일이야!
" 대박... " 너봉이 인사할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던 남자는 처음으로 소리를 냈어. 남자의 목소리에 너봉은 다시 한번 움찔했지. 그 모습을 본 건지 남자는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어.
" 안녕 나는 석민이야, 이석민 " " 진짜 귀엽다.. 쪼끄매 " " 꼬박꼬박 물을 줘서 다행이다! 진짜 꽃에서 나오다니! " " 꽃님. 꽃님이라 부를래 "
너봉은 석민의 쏟아지는 말에 정신이 없었어. 그저 석민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한 발 앞으로 다가섰을 뿐이었어. 석민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너봉에 신난 석민은 더 재잘재잘거렸어. 그때 너봉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났어. 석민이 입을 다물 정도로. 너봉의 얼굴은 새빨게졌어, 석민은 배가 고프냐며 걱정을 하며 팔자 눈썹이 돼서 방을 나갔어. 작아져도 배고픔은 그대로네. 당연한 거지만 너봉은 새삼 모든 게 신기했어.
문이 열리고 석민은 품에 무언가를 한아름 들고 왔어. 그리곤 너봉 앞에 내려두는데 빵과 케이크, 작은 컵과 접시, 물 등 가득했어. 컵과 접시는 장식용 미니어쳐 같았어. 석민이 조심스럽게 컵에 물을 담아 전해줬어.너봉은 두 손으로 들고 꿀꺽꿀꺽 마셨지. 작게 떼어준 빵과 먹을 것들도 허겁지겁 먹었어. 석민은 너봉이 먹는걸 아주 흐뭇하게 바라보았어. 너봉의 배가 뽈록해지고서야 대화를 나누었지.
" 꽃님은 너무 작다, 애기 같아. "
석민이 너봉을 귀여워하는 게 대화의 반이었지만 석민은 너봉이 하는 이야기도 집중해서 잘 들어주었어. 하지만 석민은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않았어, 가족이나 어릴 적 이야기 같은 것들 말야. 너봉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 그냥 사이가 안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했지. 또 석민이 생각할 틈을 잘 안 주기도 했고.
석민과 너봉은 금세 친해졌어,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기했지. 석민은 너봉에게 굉장히 다정했어. 너봉이 실수로 컵을 엎어서 자신의 과제를 못쓰게 되어도 석민은 인상 한번 쓰지 않았어. 항상 웃으며 너봉과 대화를 나누고 너봉에게 많은 걸 해주고 싶어 했어.
그런 석민이 어느 날 얼굴이 엉망이 되어 들어왔어, 볼은 빨개져있고 팔과 다리에는 멍이 들어있었어. 입술은 터져서 빨갛게 딱지도 져있었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렸던 것으로 보아 집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하고 짐작했지.
놀란 것도 잠시고 처음으로 석민의 조용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저렸어. 너봉은 연고를 발라주려 조용히 자기만한 면봉을 들고 석민의 앞을 왔다갔다거렸어.
그런 너봉을 보는 석민의 표정이 묘했어, 화를 참는 것 같기도 했고 눈물을 참는 것 같기도 했지. 너봉은 조용히 다친 부분에 연고를 발라줬어. 석민은 작은 너봉이 닿기 쉽도록 고개를 숙여줬어. 연고를 다 바를 때까지 아무 말도 않던 석민이 입을 열었어.
" 내가 지켜줄게. "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너봉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 이후로 석민은 평소와 같았어. 가끔씩 들려오는 거실의 큰 소리만 빼면 말이야. 너봉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어주고 즐거워했지.
그런데 거실에서 평소보다 더 큰 소리가 오고 가던 날, 일이 벌어졌어. 한 남자가 거칠게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어. 뒤따라 허겁지겁 들어오는 석민의 표정이 파랗게 질려있었어. 너봉은 겁을 먹고 책상 구석에 몸을 작게 웅크렸어.
" 만날 이것만 바라보고 있는 꼴 더는 못 보겠다. "
남자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화분으로 다가왔어. 석민이 남자의 어깨를 잡아돌렸어. 석민은 떨고 있었어.
" 건드리지마요. "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석민을 남자는 발로 차버렸어. 그리곤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쳤어. 그 모습을 보던 너봉은 눈물이 흐를 것 같았어. 입가가 터져 피를 흘리면서도 남자의 바지 가락을 잡고 있는 석민을 한 번 더 발로 차고는 책상 위에 있는 가위를 들었어. 그리고는 꽃줄기를 잘라버렸어, 꽃봉오리가 바닥으로 떨어졌어.
분홍빛을 띠던 꽃잎들은 하얗게 질려버렸어. 순식간에 시들어버린 꽃을 보던 너봉은 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 너봉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지며 형체가 사라져갔어. 부은 눈으로 너봉을 바라보던 석민이 절규했어.
" 안돼!!!! "
석민의 찢어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너봉은 암전이 된듯 조용함을 느껴. 그리고 주위를 바라보고 너봉의 방으로 돌아왔음을 깨달았어.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어.
|
| 보름달 |
너봉이 처음 본건 앞으로 쏟아질 듯 커다란 달이었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돌아봤어. 이 주변은 사람이 사는 곳 같지 않았어. 한발한발 천천히 걸었어. 발 밑에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무서운 상상이 들게 했지. 부엉이의 소리마저 소름이 끼쳤어. 너봉은 이제 뛰기 시작했어.
아무리 뛰어도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어. 숨이 턱턱 막혀오는 걸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했어. 누군가 뒤에서 나타날 것 같은 느낌에 말이야. 그때 나무뿌리에 발이 걸렸어. 뛰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너봉은 그대로 비탈을 굴렀어. 온몸이 욱신거림을 느끼며 서러움에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어.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훌쩍이는 너봉의 소리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어. 그 소리가 너봉 앞에 멈추었음을 알아채고 어깨를 떨었어.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 차 고개를 들었어.
한 남자가 너봉 앞에 허리를 숙이고 앉아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 그 눈빛에 어깨가 더 움추려들었어. 남자는 마주 보는 너봉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는 속삭였어.
" 우리집에 가자. "
남자의 말이 귓가에서 멀어지며 정신을 잃었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색적인 분위기의 방 안이였어. 바닥에 새겨진 처음 본 문양들과 오래된 서적들이 중세 시대를 재현해 놓은 듯 했어. 사방이 초들로 가득했고 일렁이는 불빛이 어지러웠어. 무심코 뒤를 돌아보자 그 남자가 있었어. 남자는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는 것 같아, 흥미있는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 기분에 거슬렸어.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어.
" 너 여기 사람 아니지 "
다 안다는 말투에 너봉은 어쩔 줄 몰라 했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생각해보면 너봉은 납치당한 거나 마찬가지였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너봉에 남자는 픽 웃으며 방을 나갔어. 남자가 나가고 너봉은 벽에 기대어 앉았어. 손톱을 만지작거리던 너봉은 그제서야 자신의 팔과 다리에 감겨진 붕대를 발견했어. 어젯밤 숲속에서 굴러 생채기가 난 곳이었어. 너봉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갔어.
나가자마자 따뜻한 음식 냄새가 코를 스쳤어. 식탁에는 먹을 것이 가득했어. 남자는 너봉에게 맞은편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어. 너봉은 그제야 허기를 느끼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어. 스프 그릇에 얼굴을 박고 먹던 너봉은 남자가 호탕하게 웃는 소리를 듣고 머쓱함에 그릇을 내려놨어.
남자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본 너봉은 신기했어, 아이처럼 웃는 남자가 순수해 보여서. 남자는 입가에 웃음을 띤 채로 너봉에게 몸을 숙였어, 그리고는 너봉의 코를 손으로 쓱 닦았어.
" 스프 "
아.. 급하게 먹느라 코에 묻은지도 몰랐는 모양이야. 너봉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지만 빨개진 귀는 숨길 수 없었어. 남자가 픽 웃는 소리를 들으며 너봉은 더욱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어.
그 후로 남자와 너봉은 말을 트게 되었어. 너봉의 상황을 아는듯한 남자에 원래 살던 세계를 얘기했어. 남자는 조용히 듣기만 했어. 질문도 하지않았지. 그저 너봉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흥미로운 눈빛을 보이는 게 다였어. 그런 남자가 편했는지 너봉은 자주 이야기를 먼저 꺼내곤 했어. 남자는 말이 별로 없는 편이였어. 하지만 너봉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만들어준다던가,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약을 발라주며 자신이 다친 듯 인상을 찌푸리곤 했어.
점점 너봉이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갈 때 호기심이 생겼지. 밖은 어떨까, 이 세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남자는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결국 너봉은 밖으로 나가보기로 마음 먹었어. 남자가 항상 집을 비울 시간대를 기억해두었다가 남자가 없을 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어.
어느새 봄이 왔는지 밖은 너무도 아름다웠어. 분홍 꽃들이 눈처럼 내리고 새싹은 푸릇푸릇했지. 잔디에 누워서 한참을 뒹굴거리며 상쾌한 바람을 느꼈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어.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던 너봉은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는 걸 느끼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어.
집에 돌아온 너봉은 어두운 실내에 흠칫 놀랬어. 곧 벽에 기대어 고개 숙이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어. 남자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눈높이를 맞췄어. 남자는 고개를 들어 너봉을 보고는 와락 껴안았어. 살짝 떠는 남자에 너봉도 어깨를 마주 안고 토닥였어.
" 다시는.. 떠나지마 "
남자의 물기 어린 말에 너봉은 고개를 끄덕였어. 그날 남자는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너봉이 있는 방을 불안하게 쳐다보았어.
그 후 남자가 집 밖에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었어.
남자의 무릎을 베고 창밖을 보던 너봉은 보름달이 뜬 걸 발견했어.
너봉의 말에 남자는 귀엽다는 듯 웃으며 이마에 입 맞췄어. 간지러움에 너봉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지. 그런데 어렴풋이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어.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듣는 다른 사람의 소리였지. 몸을 벌떡 일으킨 너봉은 창밖을 바라보았어.
붉은빛을 띠는 횃불들이 집을 감싸고 있었어. 사람들은 소리 지르고 있었지.
" 마녀! " " 우리 마을을 망하게 할 거야! " " 괴물 같은 것."
사람들은 악의가 가득한 말을 퍼부었어. 너봉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때 남자가 너봉의 귀를 막았어.
" 듣지마. "
남자는 너봉의 이마에 입술을 마주 대었어. 그리고 너봉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방으로 데려갔어. 남자는 분주하게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어. 밖에서는 불빛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어. 어느새 천장까지 불이 붙어 나뭇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어. 남자는 불길에 아랑곳 않고 그림을 완성했어. 그리고 너봉을 그 중앙에 두고 꼭 안았다가 뒤로 물러섰어.
" 내 소원은 니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의 위로 불붙은 나무 기둥이 쓰러졌어. 집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며 너봉은 눈을 감아. 곧 방안의 푹식한 침대를 느끼고 너봉은 흐느껴울어.
|
| 복도 |
감춰둘 내용을 여기에 입력하세요.
너봉은 소란스러움에 눈을 떠. 뻐근한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자 난생처음 보는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해질 지경이었어. 반짝이는 대리석에 높디높은 천장, 한눈에 보기에도 구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림들, 모두 신기했지. 그 신기함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걸 느껴. 분명 어린 여자아이들의 목소리 같았는데 말이야.
순간 돋아 오르는 닭살에 겁에 질려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때 갑자기 여자아이들이 나타났어. 정말 순식간이었어. 그 아이들은 화관을 쓴 채 너봉의 주위를 둘러싸고 웃어 보였어. 너봉이 놀라 뒷걸음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얀 꽃으로 만든 화관을 머리에 씌워주었어. 그리고는 너봉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어.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손을 잡아 끄는 아이들에 긴 복도를 달리고 있는 너봉이였어. 아이들은 통통 뛰는 발걸음으로 고운 노래를 불렀어. 덩달아 신이 난 너봉도 이제 아이들이 이끌지 않아도 따라 달렸어.
긴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커다란 문이 보였어. 아주 튼튼하고 왜인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지는 너봉이었어. 아이들은 웃으며 문에 손을 대었어 아주 손쉽게 열리는 문에 너봉을 어리둥절했지. 너봉은 아이들의 손에 밀려 문 안쪽으로 들어갔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문은 닫힌 채였어.
방 안은 창문을 통해 겨우 들어온 달빛으로 형체만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어. 너봉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어. 그때 뒤에서 어깨를 잡는 손길이 느껴져 놀라 몸을 돌렸어.
"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소년이 중얼거렸어. 그리고는 너봉이 쓴 화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어 보였어.
" 달님이 내 소원을 들어줬나. "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너봉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너봉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어. 소년과 꽤 긴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건 소년이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것과 그가 다정하다는 거였어.
소년은 방안이 답답하지도 않은지 여유롭게 책을 읽고는 했어. 하지만 방 안이 답답해진 너봉은 항상 나가고 싶어 했지.
그에게 밖에 나가게 해달라고 했지만 소년은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나갈 수 없다고 말했어. 그에 훌쩍이다가 잠든 너봉이었어.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던 날이었어. 그날도 나가고 싶다며 너봉은 눈물을 글썽이며 잠었어.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 퉁퉁 부은 눈을 힘겹게 뜨자 그가 너봉을 바라보고 있었어. 눈이 마주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소년이 입을 열었어.
" 나갈까, 우리. "
너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신이 나서 소년을 끌어안자 그는 그저 너봉을 꼬옥 안아줬어. 그리고 어서 나가자고 발을 동동 구르는 너봉에게 겉옷을 입혀주었어.
그가 항상 책을 읽던 책상 아래의 카펫을 치우자 나무 문이 있었어. 소년은 문을 열고 밑으로 들어가고는 너봉이 내려오는 걸 받아주었어.
아래로 내려오자 낡은 복도가 보였어. 이런 곳에 나갈 문이 있는지 전혀 몰랐던 너봉은 그를 쳐다보았어. 그는 너봉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어.
얼마 달리지 않아 어떤 문에 도착했어. 문을 열자 안은 꽃들로 가득했어. 너봉의 입이 헤벌어질 정도였지. 그런 너봉을 보는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있었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에 너봉은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어. 그것도 잠시 너봉은 꽃들 사이로 뛰어다녔어. 그러다 문득 그를 처음 본 날 썼던 화관이 생각이 나서 쭈그려 앉아 화관을 만드는 너봉이었어. 그도 덩달아 옆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봤어. 너봉은 서툰 솜씨로 완성한 화관을 머리에 쓰고 그에게 어떠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어.
" 예쁘다.. "
그에 말에 부끄러운 듯 웃는 너봉이었어. 함께 비를 맞으며 뛰어다닌 탓에 둘 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지만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어.
너봉을 보고 웃던 그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는 등 뒤로 너봉을 숨겼어.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였어. 그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소년이 몸을 떠는 게 느껴졌어. 마침내 사람들이 너봉과 소년의 주위를 포위했어. 그중 한 남자가 총을 장전하면서 말했어.
" 형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죽이려던 걸 그곳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 시켜주었더니. "
너봉은 정신이 아찔했어. 분명 자신 때문에 소년이 위험해졌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야. 덜덜 떠는 너봉의 손을 그는 큰손으로 꽉 잡고는 말했어.
" 저는 상관없어요. " " 이 애만 돌려보내 줘요. "
소년이 그 말을 하며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갔어.
남자는 총을 소년에게 조준했어. 소년은 두 눈을 감았어. 쏟아지는 비에 어떤 게 눈물이고 빗방울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였어. 그저 너봉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어.
총이 발포되는 소리가 났어.
곧 느껴져야 할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소년은 눈을 떴어.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쓰러지는 너봉을 보았어.
" 왜, 왜.. "
쓰러진 너봉을 끌어안으며 소년은 중얼거렸어. 너봉은 소년에 품에 안겨 희미해지는 정신 사이로 그의 울음소리와 쏟아지는 총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비가 내리는 소리가 선명히 들리는 캄캄한 익숙하고 방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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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녀 여러분
요정체셔에요.
우선 '꽃봉오리'와 '보름달'은 리네이밍글입니다.
'복도'는 이번에 새로 쓴 글이에요.
앞으로 여행을 떠나실 소녀들
재밌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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