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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추천서나 자기소개서등으로 자신의 출발지점을 높이려고 든다. 밑바닥에서 시작하는것은 일도 힘들고 시간도 아깝고

주변 사람들의 인정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면에 힘쓰기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발전시키는데 혈안이다.

어떻게든 남들보다는 조금 더 높게, 좀 더 많은 보상을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잊고있는게 있다.

“인생은 실전이지 씨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새벽, 정장을 빼입은 채 우산을 들고 골목에 서있다. 곧 감사팀이 옆 대로 길을 지나갈 것이다

최근 비리가 발견된 지방 귀족을 조사하기위해 급하게 꾸려진 감사팀이다. 감사팀은 중앙 귀족들이 선임한 총감사관과 그가 선택한 보좌관 3명

그리고 이력을 높이려고 달려드는 젊은 귀족 불나방들과 전문가들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빈틈이 있다.

 

“비켜라!!”

 

가까워지는 말의 투레질 소리와 함께 목소리도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감사팀이다. 총감사관이 탄 마차가 거친 소리를 내며 중앙대로를 지나갔다.

이어서 무장한 기사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고 한참 뒤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대로에 나타났다. 이 무리들은 이류 전문가집단과 하인들이다.

때가 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무리의 중간에 다가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아무도 앞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소변을 보고온것처럼 바지춤을 열댓번 잡아 추어 흔들었다. 도중에 어떤 늙은 하인과 눈이 마주쳤지만 민망한 듯이한 헛기침 몇 번에 관심을 꺼버린다.

 

 

“이번 사건은 제법 크단 말이야. 우리 소영주님도 이번에 당당히 내세울만한 업적을 갖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나도…….”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들린다. 무시하고 걸었다. 지루한 여정의 끝에는 성채가 있었다.

도착하자 보좌관 옷을 입은 사람이 하인과 전문가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일은 보좌관 중에서도 제일 계급이 떨어지는 하급이 한다.

그래도 3명밖에 없는 보좌관이니까 얼굴을 자세히 익혀둔다.


 

“하인들은 모두 이쪽으로 움직이고 전문가 분들은 저쪽에 있는 명부에 서명하고 숙소로 들어가십시오.”

 

당연히 하인들보다는 전문가들의 숙소가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저 명부 때문에 그쪽으로 갈 수가 없다. 난 망설이지 않고 하인들을 따라갔다.

우산을 접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비린내에 섞인 그들의 고단한 삶의 채취가 코를 자극한다.

그들의 남루한 복장에 대비되는 나의 정장차림은 아직 크게 주목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한결 여유가 생기면

나의 튀는 옷차림은 당연히 주목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행동하기도 힘들어진다. 일단 피하고 봐야겠다.


 

어느 정도 하인들을 따라가다가 건물 내부로 향하는 통로가 보이자 당당하게 들어갔다. 원래 가야하는 길인 것처럼 말이다.

내부에 들어오니 온몸이 물에 젖어 축 처지는 느낌이 든다. 잠깐 숨을 고르고 있는데 역시나 감사중인 성채라서 그런지 감시가 철저했다.

건물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긴 출입금지 지역입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경비원이다. 하인복장을 하고 있었다면 당장 호통을 첬겠지만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정장이라서 당장은 존대한다.

하지만 내가 엑윽엑엑 취급받는 평민이라는 걸 알아도 이렇게 대접할까? 나는 머리와 옷의 물기를 털며 말했다. 명분은 벌써 머리에 있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저는 이번 감사팀의 하인들을 총괄하는 하인장입니다. 비가 너무 심해서 잠깐 피하고 있었습니다.

실례지만 수건 하나만 주시겠습니까?”

 

“하인장님이셨군요. 멍청한 하인들을 다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금방 시녀를 부르겠습니다.

그 경비원이 손짓을 하자 뒤에 있던 하급 경비원이 재빨리 어디론가 뛰어갔다. 곧 시녀가 수건과 마른 정장 옷가지를 가져왔다.

정장 옷가지는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다. 나는 근처 빈 방으로 들어가서 재빠르게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비때문인지 씻은 것 같은 상쾌함도 맛볼 수 있었다.

 

“젖은 옷들은 제가 한꺼번에 맡기겠습니다. 어차피 젖을 건데 그 편이 시녀 분들도 편하겠죠.”

 

젖은 옷가지들을 달라고 하는 시녀들을 그렇게 처리했다. 여기서 옷을 줘버리면 나중에 옷을 세탁해서 돌려줄 때

내 정체가 탄로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을 대로 하시지요. 하인장님”

경비원이 내 편을 들어줬다. 나는 경비원에게 이름과 몇 가지 안부를 묻고 우산을 펴서 하인들의 줄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아까와 좀 달랐다. 새로 받은 정장은 금테 자수가 놓여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뭐라도 된 것 같은 차림이다.

난 단단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비켜라!!! 하인장 나간다! 빨리 빨리 비키라니까! 젠장!!!”


 

화들짝 놀란 근처 하인들이 나를 본다. 여세를 몰아야한다. 나는 덩치가 좋은 하인 몇 명을 지목한 후 말했다.

 

“거기 너!!, 너 그리고 너 길을 열어라! 포상은 후하게 주마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비는 맞기 싫구나!!”


 

지목받은 하인들은 우물쭈물 거리다가 내 호통 몇 번에 목소리를 높인다.

본인들이 주변에 있는 하인들 보다는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서게됬다는걸 본능적으로 자각한 것이다.

영리한 하인들이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다. 자신이 높아지면 그걸로 좋다.


내가 진짜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하인장님 납신다!!”

 

 

“비켜!! 이 미친놈이! 어딜 감히 하인장님 나서는데 비켜라!!!”


 

“비켜라!!”


 

복잡한 인파 가운데에 한 가닥 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검은색 우산을 쓴 내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길을 비킨 하인들은 우천에도 내 얼굴을 익히려고 필사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하인들이 향하는 끝 쪽, 하인들의 숙소에서도 이 사태를 감지했는지

나름대로 책임자가 접대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젠장, 이쯤 되니 아무리 나라고해도 가슴이 뛴다.

나는 별 어려움 없이 하인들의 숙소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하인장님. 저는 이곳을 담당하는 하인장입니다. 미리 언질을 받지 못해서 대접하는데 소홀함이 있을 수 있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질을 받았을 리가 있나?

다행히 지방 하인장이 이번에 따라온 하인들의 숫자와 규모에서 압도당한 것 같았다.

자기 가문이 죄를 지었다는 인식도 한몫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먼저 숙이고 들어왔다. 이건 기회다. 놓치면 안 된다.


 

“아닙니다. 우리 같은 처지에 한두 번 겪는 일인가요? 하하하. 여기 실무자가 있다니 저도 마음이 놓입니다.

여기일은 그쪽에 전적으로 위임하겠습니다. 제가 나설 일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군요. 만약에 능력을 보여주신다면야…….”

 

떡밥이다. 내가 높은 사람과 연결되어있다는 암시인 동시에 일도 모두 떠넘겼다.

사실 책임자가 하인이여도 다 떠넘길 생각 이였으니 직책이 누가 되어도 상관은 없었다.

당연히 집사정도의 위치는 여기올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후.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좀 쉬겠습니다. 참, 이 세 명에게는 따로 방을 하나 내주세요. 먹을 것도 좀 신경써주시구요, 그럼”


 

나에게 길을 열어준 덩치 길잡이 3인방에게 특별 취급을 요청했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비친다.

이걸로 내가 그들에게 보장한 포상은 끝났다. 애초에 내가 가진것에서 준건 없지만말이다.

‘감사합니다. 하인장님’ 인사를 하는 착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하인의 안내를 받아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 건물의 최고층에 내 숙소가 잡혔다. 숙소에는 유리로된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하인들이 인원점검을 받고 있는 방향이었다.

나는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창문너머를 지켜봤다. 


폭우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장대비속에는 줄을 맞춰 선 하인들이 보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하인장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하……. 씨바”

 

평민이 허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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