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fectation 크리스 x 첸 그러니까 나는, 지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껏 치켜올라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네 눈꼬리가 축 쳐져 눈물을 달고 있는 것도, 쉴 새 없이 독한 말을 내뱉던 그 입술이 꾹 맞물려 하얗게 질려가는 것도. 뭐가 문제였을까. 분명히 애초에 이 다툼의 시작은 내가 아닌 너였다. 너의 이유모를 심술이 시작이었고 가슴이며 팔뚝이며 내려치는 원망 섞인 주먹을 받아낸 건 나였다. 무시무시한 독설을 뿜어낸 건 너였고, 그걸 듣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는 말이다. 사실 나를 향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스스로 하는 말을 듣는 너 역시 편치 않았을 것이다. 원체 다른 이에게 상처 주는 것을 싫어하는 너이기에. 그런데 대체 뭐가 너를 아프게 했을까. 계속 흐르는 눈물에 발갛게 짓무르는 눈가와 잇새로 씹혀 하얗게 질리다 못해 퍼런 멍이 들어가는 네 입술을 보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아줄 수도, 손을 댈 수도 없는 분위기였기에 멍하니 바라만 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고, 용기를 내어 네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너는 예의 눈물 어린 얼굴을 유지하며 힘없이 손을 들어 내 팔을 잡아내렸다. 그리고는 불쑥, 내게 말했다. " 미안해. " 다시 한 번,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싫어하지만 자존심이 센 편이라 사과는 잘 하지 못 하는 너였는데. 갑작스레 들려온 미안하다는 말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 하고 그저 눈만 껌벅였다. 이어진 너의 말에 나는, 한 마디로 '멘붕'이었다. " 나 나갈게. 오늘 안 들어올 거야. 기다리지 말고 잘 자. 내일 봐. 사랑해. " " 종대야, " " 형. " " 후... 응. " " 형은, 나 사랑해? " " 어? " " 사랑해? 나, 사랑하냐고. " " 응. 사랑하지. " " 그렇구나. 형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 말, 형 마음은 온전히 나를 향해 있다는 걸로 생각해도 되는 거야? " " 갑자기 왜 그래, 종대야. 형은 너 사랑해. 내가 가진 모든 것, 너한테 줄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 사랑해. 무슨 일 있는 거야? " " 그래. 그렇겠지. 난 이럴 수 밖에 없는 거겠지. 형은 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난 형이 하는 말이라면 믿을 수 밖에 없는 거지. 내가 더 사랑하니까. 또 한 번 믿어야겠지. 형, 사랑해. 근데 사실 나 다 알고 있어. 이제 나도 힘들다. 사랑해, 사랑해. 형, 내일 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올게, 나. 걱정하지 마. 안녕. "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쏟던 종대는 그를 끝으로 얇은 가디건과 지갑을 들고 현관을 나섰다. 테이블 위에는 종대가 두고 간 휴대폰의 화면이 애처롭게 반짝였다. 별 생각 없이 그것을 집어들다가 곧 종대와 연락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뒷골이 울려왔다. 늦은 밤, 사랑하는 연인이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휴대폰도 없이 집을 나섰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웠다. 연인이 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설마, 정말 다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숨겨오던 오랜 비밀을 종대는, 다 알고 있는 걸까.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Baby don't cry tonight 어둠이 걷히고 나면 Baby don't cry tonight 없었던 일이 될 거야 순간, 테이블 위에 두었던 종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왠지 그 노랫말이 종대의 마지막 말과 묘하게 비슷한 듯 들려 괜시리 신경쓰였다. 휴대폰 액정을 확인해 보니 발신자는 백현이. 그냥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친구는 몇 없는 종대의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수신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 종대야, 나 백현이! " " 백현아. " " 누구세ㅇ, 아. 크리스? 종대는요? " " 오늘 좀 다퉜는데 방금 나갔어. 어디로 간 건지도 모르겠다. 휴대폰도 이렇게 집에 두고 가서 연락도 못 하는데. " " 아,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종대 우리 집 오기로 했는데, 이제 오려나 봐요. 일찍 와서 저녁 먹고 간다고 해 놓고는 안 오길래 무슨 일 있나 해서 전화한 거거든요. 지금 오면 자고 가야겠다. 그래도 되죠? " " 안 그래도 종대가 오늘 안 들어온다고 했어. 내일 아침에 보자고. " " 김종대가요? 원래 그럴 애가 아닌데, 대체 뭐 때문에 얼마나 싸웠기에 안 그러던 애가 외박까지 한대요? " " 그러게 말이야. 걱정도 되고 왜 그러는 건지 이유도 몰라서 지금 답답하고 조금 무섭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는데. " 휴대폰 수화기 너머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은 잠시만요, 하더니 인터폰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듯 했다. 이내 방문자의 얼굴을 확인한 백현이 현관을 향해 잠시만 기다리라고 외친 것 같았다. " 크리스, 지금 온 거 종대에요. 내가 종대 기분 좀 풀어주고 내일 집에 보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푹 자요. " " 고마워, 백현아. 종대 좀 잘 부탁할게. 민폐 끼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 " 민폐는요. 어차피 오늘 만나려고 했던 건데 무슨 민폐에요. 저도 오랜만에 종대 보고싶었는데 잘 됐어요. 밤새 얘기나 하죠, 뭐. 그럼 늦었는데 잘 자요. " 그 때, 방에 두었던 내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에 만날, 보고 싶었던 사람의 전화인 것 같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백현과의 통화를 대충 마무리짓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크리스! 나야, 나 안 보고 싶었어? 어쩜 그렇게 먼저 연락 한 번 안 해? 종대라는 친구가 얼마나 예쁘길래. 이제 나한테는 관심도 없나 봐? " " 무슨 소리야. 너도, 종대도 둘 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들인 걸. " 내가 오랫동안 숨겨오던, " 크리스, 지금 보고 싶어. 만나자. " 나의 비밀의 연인. " 좋아. 오랜만에 만나네. 내 집으로 와. 오늘 밤은 같이 있자. " 어쩌면 더이상은 비밀이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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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맥심을 정기구독해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