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ve me
"그래서 내가 걔한테 '야, 인마. 너 그러면 안되지!' 라고 하고 내가 막 쩌이쩌이해서 쩌이쩌이 했다니까?"
"..."
"탄소야, 내 말 듣고 있어?"
"..."
계속 내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이 아이는 김태형. 몇주 전부터 내 등하굣길에 착 달라 붙어 시끄럽게 하는 아이다.
"음.. 아무래도 난 너가 진짜 좋은것 같애. 진짜라니까?"
또 시작된 거짓말.. 얼마 전 내 등교길에 갑자기 따라와서 왜 따라오냐고 물으니까 내가 좋다는 둥 내 신비주의 컨셉이 맘에 들었다는 둥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때부터 날마다 계속 저 소리다. 난 절대 믿지 않는다! 그까짓 사탕발린 말들 지나가는 개한테도 할 수 있는 거짓말, 개뻥이다!
"탄소야, 넌 내가 싫어?"
어떻게 좋아할 수 있냔 말야! 난 김태형을 본지 한 달 밖에 안됐고 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사실 예전에 나였더라면 '어이구 감사합니다. 저도 당신이 좋습니다.' 하며 넙죽 받아 들였을 것이다.
솔직히 김태형은 얼굴도 반반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착하다. 어른들한테 하는걸 곁눈질로 보면 인사도 잘하고 예의도 바른걸 보면 내 이상형에 중박은 한다. 그런 애가 내가 좋다고 이렇게 들이대다니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이지만 지금의 난 준비가 안됐다.
"탄소야! 무슨 생각해. 지금 빨간불이야."
김태형이 땅만 보고 가던 나를 잡아 세웠다.
"아.. 고마워"
"뭐라고? 다시말해봐"
"...고맙다고."
갑자기 김태형이 방방 뛴다. 덩치도 큰게 폴짝폴짝 뛰어대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와 김태형을 쳐다본다.
"야. 그만해"
"뭐라고? 그만하라고? 너 지금 말한게 나한테 한 다섯번째 말이야! 으하하하 여주가 나한테 다섯번이나 말했다"
보다시피 얜 약간 제정신이 아니다.
"첫번째는 '왜 따라와' 두번째는 '하지마' 세번째는 '아니' 네번째는 '고마워' 다섯번째는 '그만해'. "
뭐야 이제 말 안할래
"어 다왔다. 여주야 고마워~ 조심히 들어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 옆 창문으로 1층을 내다 보니 아직 집에 가지 않고 땅에 신발을 비비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대체 뭐가 고맙다는건지.'
"다녀왔습니다."
"왜 또 울상이냐? 또 지민이형 생각났냐? ㅋㅋ"
"너 진짜 죽을래? 내가 아침에도 그만하라 했지. 너 이리와. 이리 안와?"
동생이랑 한바탕한 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털썩 앉았다.
주변이 조용하니 또 머릿속에 지민이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고 있다.
"나쁜놈.."
나와 박지민은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커플이었다. 지민이는 소꿉친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자꾸만 커져가는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학교 졸업식 날 겨우겨우 고백을 했다. 지민이는 환하게 웃으며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졸업했으니 짜장면을 사주겠다며 내 손을 잡고 앞장서 걷던 지민이였다. 그렇게 중학교 내내 매일 같이 등하교를 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하면서 3년을 보냈다. 중학교 졸업식때도 어김없이 지민이는 짜장면을 사주겠다며 내 손을 잡고 앞장서 걸었다. 난 우리가 영원할 줄 알았다. 고등학교 입학식날 때만 해도 말이다.
입학식이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으러 교문을 통과하던 때였다.
"지민아 뭘 그렇게 빤히 봐. 안가?"
"어..어 가야지.. 가자!"
그 때 알아 차렸어야 했다. 점심을 먹고 헤어진 그 날부터 지민이는 연락이 없었다. 학교 쉬는시간에 반에 찾아가도 어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3학년 선배들이 새학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큰 사고를 쳐 학년부장이였던 지민이네 반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하지않고 애들을 보내는 바람에 지민이가 먼저 가버려 함께 하교도 할 수 없게됐다. 전화도 문자도 안 받아서 집에 찾아 가 보니 지민이네 아줌마께선 맨날 밖에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온다고 하셨다. 점점 불안해졌다. 지민이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건 입학식 날 이후 일주일만이었다. 5시에 ㅇㅇ광장 앞으로 나오라는 문자 하나를 달랑 보내놓고 내 답장을 모두 무시했다. 그래도 지민이를 오랜만에 만나는거라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예쁜 옷을 꺼내입고 화장도 완벽하게 했다.
'지민이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나?'
'보면 깜짝 놀랄텐데'
자꾸만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고 광장으로 갔다.
지민이를 찾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민이는 광장 무대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지민이의 얼굴에 반가워 달려가 인사하려 했다. 지민이도 날 봤다. 분명히 날 보고 미소 지어줬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무대 앞으로 갔다. 그러자 지민이는 옆에 있던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잘 봐."
나를 보고 한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아 정신이 없긴 했지만 지민이의 눈은 내가 아닌 내 옆에 있는 우리학교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안희주에게 가있었다.
춤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그건 지민이가 정말 몸치였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장기자랑 때 지민이가 춤을 추는 걸 보고 춤 춰보라는 소리는 두 번 다신 입밖에 꺼내지 않았는데 그런 지민이가 지금 춤을 춘다. 그것도 내가 아닌 내 옆에 있는 다른 여자를 위해서.
누가 뒷통수를 망치로 때린듯이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고개가 떨구어졌다. 눈물이 났다. 시끄럽던 음악이 꺼지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어느새 지민이가 내가 서있는 무대 앞에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옆에 있는 다른 여자 앞에 지민이가 섰다.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지민이는 내 옆에서 다른 여자에게 고백했다.
"좋아해"
다음날 지민이에 대한 소문이 전교에 퍼졌다. 몸치인 1학년 박지민이 안희주에게 고백하려고 춤 학원을 등록해 일주일동안 빡세게 연습 후 고백을 해 안희주가 받아줬다는 것이다.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중학교 때는 전교생이 아는 커플이었던 지민이와 나였지만 우리가 다닌 중학교에서 지민이와 나만 이 고등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가 사귀는걸 알지 못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박지민과 안희주의 소문에 나까지 얽히지 않아서.. 그렇게 나와 박지민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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