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연재입니다! 엄지, 댓글은 작가가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되어요 :)
*아직 암호닉은 받고 있지 않습니다. 암호닉 신청은 따로 페이지를 만들어 다섯번째 에피소드를 마친 후에 받을 예정입니다.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아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A to Z의 각 에피소드들은 연개성이 없는 별개의 단편들입니다.
*A부터Z까지 26개의 에피소드가 모두 완결된 후에는 독자님들의 투표를 받아 가장 득표 수가 많은 에피소드 하나를 정식으로 연재할 계획입니다 :)
(추후에 정식으로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ETERNALAND-1
영원의 나라
*
아무렇게나 손을 내밀어선 안 되는 거였다
여기야, 여기
보고 싶다고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되는 거였다.
하재연 <밤의 눈동자> 중,
*
슈가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 나는 아직도 그와 마주한 순간을 스냅사진처럼 기억해.
왼손에 빨간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던 그는 하얀색 와이셔츠와 무릎과 허벅지가 잔뜩 찢어진 검은 청바지를 입고,
목에 걸쳐진(맸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느슨했어) 와인 색의 넥타이를 오른 손으로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고 있었어.
“첫 눈에 반해버린 거야?”
대마 잎을 페이퍼에 말던 앨리스가 특유의 어린애같은 목소리로 묻더니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나는 입을 삐죽대며 포크로 다 식은 맥앤치즈를 부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자 눈동자를 크게 한바퀴 굴리더니 깡마른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뭔데? 억울하면 스토리를 얘기해줘야 할 거 아냐, 케이."
완성된 조인트를 입에 문 앨리스는 라이터를 딸깍이더니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렸다. 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독한 연기가 뿌옇게 찼다.
그러니까, 그 애의 머리카락은 초록색이었어. 진한 미역같은 그런 초록이 아니라, 밝은 초록 있잖아. 왜, 민트와 연두의 중간쯤 될 법한 그런, 묘한 색깔?
그날 내가 갔던 파티에 유독 크레이지한 애들이 많기는 했지만 적어도 머리가 초록색인 사람은 없었거든.
처음에는 그냥, 진짜 파티를 좋아하는 무슨 힙스터라도 되는 줄 알았어. 아니면 일본 애니메이션에 미쳐있는 놈이거나.
*
“뭘 그렇게 쳐다봐.”
백인인 줄 알았다. 아니, 당연히 백인일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구릿빛으로 태닝 된 대부분의 남자애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흰 피부. 여기는 캘리포니아, 더군다나 여름이다. 이맘때 쯤 피부가 하얀 사람이라고는 햇볕을 즐길 수 없는 병 같은 게 있는 사람이거나 집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해대는 너드(nerd)들 정도였다. 초록머리라니, 괴짜인가. 하지만 저렇게나 샷을 잘 마시는 너드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지금까지 본 것만 해도 다섯 잔 이상은 들이킨 것 같은데, 조금의 변화도 없이 태연하다. 시끄러운 클럽 음악에 맞춰 흥을 타는 모습도 전혀 찌질해 보이지 않았다. 뇌까지 근육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 듯한 멍청한 백인 마초들보다 훨씬 쿨해보였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쳐다보냐고.”
그를 이쯤 파악했다는 건 내가 꽤 오랜 시간동안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눈썹을 찌푸린 그가 방을 가로질러 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놀랍게도 모국어였다. 익숙하고 능숙한 한국어. 그리고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
“하,한국사람?”
“그럼 뭐 중국사람일까.”
“저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나는 그냥 머리카락을 보느라…,”
“머리카락?”
“초록색으로 염색한 게 특이해서. 아니! 이상한 쪽으로 특이하다는 게 아니라, 멋있다고-.”
플라스틱 컵에 담긴 위스키를 비운 그는 좀처럼 감정을 파악하기 힘든 얼굴을 하고 한참이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복수라도 하나, 싶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길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불쑥 내민다.
“민윤기. 근데 다들 슈가라 불러.”
“어어, 안녕. 나는 케이. 그런데, 어떻게…”
“네가 한국인인 걸 알았냐고?”
독심술이라도 하나. 나는 묘하게 색정적인, 잘생긴 얼굴을 회피하며 속으로 투덜댔다. 슈가는 반쯤 웃었다. 활짝 웃는 것도, 그렇다고 아예 웃지 않는 것도 아닌, 고요한 미소였다.
“너는 나를 몰라도, 나는 너를 아니까.”
“나를 안다고?-,”
“종종 보자, 케이.”
“저기, 잠깐-!”
“See you in eternaland.”
이터널랜드. 직역하자면 영원의 나라, 영원한 나라.
영원의 나라에서 보자.
시끄러운 EDM이 쿵쾅대는 파티에서 슈가가 남긴 말은 그랬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다짜고짜 사라져 버렸다.
See you in eternaland. 종종 보자는 말과는 다르게, 그 날 이후로 슈가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불현듯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호기심에 종종 그의 이름이나 ‘이터널랜드’를 구글에 쳐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
슈가를 다시 만난 것은 올 여름, 피츠버그 깡촌에 위치한 낡아빠진 놀이공원에서였다.
"케이, 여기 낡았어. 봐봐. 간판도 떨어졌잖아! 여기 가기 싫어."
나는 방학을 맞아 베이비시팅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못마땅한 얼굴로 내 옷깃을 잡고 떼를 쓰는 꼬맹이의 손을 끌고 간판이 떨어진 놀이공원을 찾았다.
"케이, 케이, 나 솜사탕 먹고 싶어!"
한숨을 쉬며 솜사탕 기계 쪽으로 다가가는데, 회전목마 옆에 기대어 있는 인영이 보인다. 근 일년만인가. 물 빠진 초록 머리에 시큰둥한 표정, 백짓장처럼 하얀 피부까지 모든 게 그대로여서,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든 감정은 본능적인 반가움이었다.
잠깐, 반가움? 고작 하루, 그것도 단 몇분 대화를 나눈 타인일 뿐인데, 대체 왜?
“케이! 어디 가?”
“너, 여기 가만히 있어야 돼.”
스스로에게 드는 의문들을 꾹꾹 눌러 삼키며 회전목마 옆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그를 향해 달려간다.
“오랜만이네. 와주었구나.”
“와주었다니, 대체…”
헉헉대며 뛰어오는 나를 쳐다보는 슈가의 표정은 태연했다. 마치 내가 올 것을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투였다.
나를 알아보기는 한 걸까, 의심이 들 정도로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름대로 반긴다는 의미인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물고 있던 담배를 느긋하게 피우는 태도며, 길게 늘어지는 말투며, 그 특유의 분위기가 그날과 똑같다.
“너, 우리학교 학생 아니더라."
“나는 너를 학교에서 만났다고 한 적이 없는데.”
“이터널랜드가 대체 뭐야?”
“응?”
“See you in eternaland. 그때 분명히 나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하고 싶은 질문은 넘쳐나는데, 슈가는 그걸 대답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잠깐, 잠깐. 나 담배 좀 피우고. 휴식시간 딱 10분이란 말이야.
빛 바랜 분홍색으로 칠해진 회전목마 중 하나에 짧아진 담배를 비벼 끈 그는 끝내 장초 한대를 더 피우고 나서야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이터널랜드가 뭐냐니, 네가 지금 서 있는 데가 이터널랜드잖아.”
+)사담
이번 에피소드는 한 편으로 끝내기엔 무리가 있어서 다음편과 이어집니다!
정말 오랜만에 돌아와서 죄송합니다ㅠㅠ 곧 암호닉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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