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어두컴컴하고도 추웠다.드르륵,캐리어를 끄는 소리가 새벽을 시끄럽게 울렸다.손이 다 얼 것 같았다.주먹을 꼭 말아 쥔 민석이 입김을 후 불었다.거의 내몰리듯 집에서 쫒겨난 민석은 먼 동네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했다.읍내까지 40분을 줄창 걸어나오니 어느새 새벽 동이 트는게 눈에 들어왔다.1007번 시내버스,1164번 시외버스….머릿속으로 학교까지 가는 방법을 둥둥 떠올리고 있었다.이른 새벽부터 출발 한 지라 피곤했던 민석은 버스에서 내내 잠을 잤다.꼬박 3시간을 달려 도착 한 곳은,서울이었다.황량한 서울의 달동네,새벽 버스정류장에 홀로 남겨진 민석이 멋쩍은 듯 콧잔등을 부비며 다시 캐리어를 끌었다.
북적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학교는 외부시설부터 내부시설까지 완벽했다.곧 민석이 묵게 될 기숙사까지 둘러 본 결과 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정도로 좋은 시설이었다.아침에 잠깐 만난 기숙사장은 민석에게 701호에 지낼것을 권유했다.같은 기숙사를 쓰게 될 루한,그를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민석은 기다란 기숙사 복도를 지나 꼭대기층 구석에 위치한 701호 앞에 도착했다.벨을 수십차례 누르고 난 후에야 현관문이 열렸고 피곤에 찌든,짜증이 잔뜩 얽힌 얼굴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뭐야 넌.”
“나?…김민석.”
“그니까,뭐냐고.”
“전학을 왔는데,너랑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야한데.”
“후……일단,들어와.”
기숙사가 원래 자기것인 마냥 텃세부리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는게 영 맘에들지 않았다.민석이 캐리어를 끌고 숙소 안에 발을 들이자 루한은 넓디넓은 방 구석에 쳐박혀있는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그 옆에 있는 옷장이나 책상 등을 차례로 가르키며 민석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숙소의 범위를 각인시켰다.
“그럴리 없겠지만,내 침대에는 앉지도 마.”
“그래,그럴리 없어.”
“그럼 됐어,내 옷장도 열지말고.”
“남의 옷장을 왜 열어?나 변태 아니거든!”
민석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루한이 쌩ㅡ 뒤를 돌았다.나름 다섯마디나 나누었다고 비죽이는 농담을 던져 본 것인데,정말 무안하게도 무시당해버렸다.입술을 두어번 씰룩거린 민석이 방 구석으로 가 캐리어를 풀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짐을 정리하느라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는 조그만 한 뒷태를 쳐다보던 루한이 고개를 젖혀 천장을 쳐다봤다.깊은한숨을 내쉰 루한이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황금같은 주말,일요일 아침부터 왠 봉변이람.눈을 감고 몇 분 쯤 민석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루한이 눈을 떠 힐끗 민석을 쳐다봤을 때,민석은 곱게 접은 흰 티셔츠를 손에 꼭 쥔 채로 침대에 기대 졸고있었다.그 모습이 꼭,햄스터 같다고 루한은 생각했다.
한참을 침대에 기대서 불편하게 자는 꼴에 괜히 눈쌀을 찌푸리게 된 루한이 자고있는 민석에게로 가 민석을 바닥에 제대로 눕혔다.침대위에 있는 이불을 내려 꼭 덮어주곤 못다한 잠을 청한 루한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야 눈을 떴다.기숙사 안에는 달큰한 갈비찜냄새가 폴폴 풍겼다.어쩌면 음식 냄새에 잠에서 깨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눈을 뜬 루한이 처음 본 것은 기숙사 한 가운데에 놓여진 카페트 위에 멀뚱 멀뚱 서서,루한을 쳐다보고 있는 민석의 모습이었다.언제부터 서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방금 잠에서 깨 꽉 잠긴 목소리로 루한이 민석에게 물었다.
“뭔데 거기 서 있어?”
“점심식사가 왔는데,네가 여긴 넘어오지 말라며.”
“……야,그래도 점심이면 깨워야지.”
엉뚱한건지 순수한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여태 민석은 제 침대 주변으로는 접근하지 말 것을 요구한 루한 때문에 정말 말그대로 침대 주변만을 빙빙 맴돌고 있었던 것이었다.루한이 깨어 난 것을 본 후에야 식어버린 갈비찜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민석이 말했다.
“근데,사실 네 밥 한 숟가락 먹었어.급식이 맛있더라고.”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오물거리는 입술에,루한이 그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더니,꼭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았다.뒤를 돌아 주방을 향해있는 얼굴인데도,아까 얼핏 보았던 오동통한 볼살이 힐끔힐끔 보이는 것 같아 루한이 조금 웃었다.손으로 툭하고 건들면 잔뜩 물이 들어 버릴 것 같던 귀여운 두 볼.어쩌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루한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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