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래 만났지. 자그마치 14년 이라고.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했어. 6살 유치원에 처음가던 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신나 뛰어들어가던 나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울던 너. 날 가리키며 친구처럼 씩씩하게 들어가야지 말 했다던 너희 어머님은 내가 싹싹하고 밝고 예쁘다고 좋아 했지. 우리 유치원에서 했던 첫 발표회 기억나? 안녕 디지몬 에 맞춰 율동을 하다가 너 혼자 동작을 잊어버려 무대위에서 엉엉 울었던거. 짝꿍 이였던 내가 얼마나 당황 했었는데, 그래도 손잡고 율동 하는 부분부터 다시 안틀리고 잘 했었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난 후 한동안 혼자 교실 못 찾고 헤매던 너 였는데, 한참 지나야 있는 너내 반 까지 같이 데려주고 왔던게 기억나.내내 옆반만 하다가 딱 한번 3학년때 같은 반이 됐지. 그때 소풍으로 아쿠아리움 가서 너는 수중 터널 위에 상어 지나가는게 무섭다며 뛰어 도망가다가 넘어져 다리 부러졌고, 너 다리 깁스 풀 때 까지 내가 책가방 들고 등하교 했던 일로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놀렸던건 좀 미안했어. 중학교에 들어가서 다른애들이 사귀는거 아니냐는 둥 비아냥 될 때도 저런 시비에 친구 잃는건 싫다고, 꼬박꼬박 나에게 놀러 왔어. 그때 나는 그 소리가 싫어서 여자애들이랑 놀 거라고 가라고 했었지만, 너가 싫었던건 아니야. 그래도 우리 방과후 엔 우리집이나 너내집가서 잘 놀았으니까. 그렇게 큰 반항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중학교 생활도 끝났지. 고등학교를 가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다른 학교에 진학했어. 너는 남고에 나는 여고에. 수포자 너와 이과생인 나는 많이 못 만나도 가끔 독서실이나 학원에서 마주치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봤어. 가끔 카페에서 수학문제도 풀곤 했지.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넌 수학을 포기하길 정말 잘한거 같다. 사람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너가 수학 하는걸 보며 알았어. 그래도 넌 문과 과목은 정말 잘했었어. 그렇게 수시로 나는 대학을 갔고, 너는 정시까지 나보다 조금 더 긴 고3생활을 했지. 너 수능 전날에 내가 얼마나 긴장했었는데. 너 좋은 점수 받게 해달라고 안 하던 기도도 해봤어. 어쩌다 보니 다시 대학까지 같은 곳에 붙어 버렸어. 아 내 정시 등급은 9999 였지. 너의 등급을 보니 나도 제대로 풀어볼 것 그랬어. 수능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수험표를 들고 이곳저곳 다녔어.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염색해 보고, 휴대폰도 2G에서 lte로 갈아타고,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어. " 야 김여주 너 다음 강의 늦으면 안된다며. 지금 가도 아슬아슬 할 거 같은데." " 어차피 어제 빠져서 재수강 해야될거 같은데. 그냥 가지말까?" " 이 기지배가, 그 교수님 하루 빠진다고 f 안 주신데. 너내과 선배가 그거 다 뻥이래." " 야 니가 우리 과 선배를 어떻게 알아." " 저번에 번호 따 간 누나가 니내 과 잖아." " 아...선주 언니? 아 그 언니가 나한테 F 라고 했는데, 그 언니는 날 못 놀려먹어서 안달이 났나." " 너가 너무 순수하게 믿은거 아니야?" " 아 몰라. F 아니면 가야겠다. 지금 출발해도 늦는데!!" 대학교를 온 후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넌 잘생겨서 인기가 많은데 대학에선 더 잘 먹힌다는 거.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옆에 있는데도 예쁜 여자들이 니 번호를 따가는 거. 근데 넌 거절 안하고 다 주고 있는 거. 그리고 연락도 꾸준히 한다는 거. 물론 나도 번호 몇 번 따여 봤고, 연락하는 오빠들도 있지만, 고등학교때까지 한번도 보고듣지 못한 니 행동, 니가 하는 말, 니 주위 사람들 등등 뭔가 널 잘 모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서운해. 여자 친구도 아니고, 서운해 할 이유는 없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걸까. " 여주야!! 수업 가지 말고, 나랑 놀자!!"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넌 날 불러서 놀자고 해. 자기 수업은 어쩌고 나한테 놀러 가자는 거야?" 왜 이리 빨라. 누가 계주 출신 아니랄까봐." " 너 수업안가?" " 1학년은 원래 노는거래. 그냥 날도 좋은데 놀러 가자." " 많이 컸내. 수업도 막 빠지고." "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모범생이었어. 맨날 야자 빼고 나오라고 하더니." " 너 너무 변했어. 요즘 왜그래?" " 뭐가?" " 내가 알던 김민규는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 너랑 10년을 넘게 붙어 있었어. 우리엄마 유치원 때 부터 소원이 너 반만 닮는거였는데." 라고 말하더니 씨익 웃는 너야. 나를 닮아서 라니... 고3 여름방학때, 집 근처 공원에 날 불러 내더니, 맥주캔 두개를 들고 한잔 하자고 했던 니가 생각났어. 누가봐도 니가 할 행동은 아니었는데 " 어머 닮아가면 서로 좋아하는 거라던데." " 나 좋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넌 눈에 안들어와." " 군대만 다녀와 봐라. 복학하면 너도 찬밥 신세야." "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 거품 다 빠져도 넌 옆에 있을 거 잖아." " 그때가면 늦는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마." " 누가 널 데려 가겠냐. 그렇게....." " 그렇게 뭐." " 아 또 너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거 같기도 하고" " 뭐야 싱겁게, 누나는 치맥이 땡긴다. 너가 쏘는거지?" " 더치페이 하자. 친구 끼리" " 아 누구때문에 수업도 늦고, 이래선 재수강 하겠다. 빨리 수업 들으러 가야지." " 볼케이노 맞지?? 알바비가 들어와서 갑자기 치킨을 사주고 싶어지네." " 1학년이 재 수강이 무서워서 수업들어가나 놀러 가야지, 그렇지 밍구야?" 언제 부터 넌 날 닮아 갔고, 이제서야 그걸 눈치 채고 알았어. 그게 뭔가 웃기면서도 또 미묘하다. 우린 오래 만났고, 그만큼 닮은 부분도 많이 있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더 닮아있을까. " #김여주." " 왜?" " 그런데..... 서로 닮아가면 서로 좋아하는거야?" .... " 서로 좋아해..?" 어 글쎄...-당황한 나와 성큼성큼 먼저 걸어 가더니 빨리 안오면 치킨은 없다는 너. ....나 지금 김민규 처럼 당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