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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이 곳은 벚꽃이 많이 보입니다. 

 그대가 계신 곳에도 꽃비가 내릴까요, 

 그대가 늘 내 곁에 계셨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이만 줄입니

곱지만 여인의 손은 아닌 손이 또 종이를 곱게 접어내 방 한켠의 문갑에 집어넣는다. 위로 올려둔 꽃살문은 아직은 찬 공기를 맞이하듯 살짝 덜컹였다. 

불어오는 바람덕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마당을 휘돌아 바깥으로 나갔다. 벼루에는 채 마르지 않은 먹물이 있었고 그 곁에는 질 좋은 먹이 놓여있었다. 

민석은 닫힌 문갑을 재차 열어냈다. 안에는 아직 보내지 않은, 그리고 영원히 보내지 못할 편지가 놓여있었다. 그를 그리며 한 통씩 써낸 서찰은 문갑을 가득 채웠다. 

곧 삼백하고도 육십일이 되는 날이다. 그와의 약조가 지켜질 날. 윤달이 끼지 않은 해라는 것이 이리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건만. 민석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바깥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불투명한 살을 살짝 들추어 밖을 살피니 늙은 시종이 빗자루를 들고 민석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왠지모를 불길한 기류가 흘렀다. 

민석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왜 그러느냐. 노복은 마당을 쓸고 있어야 할 비를 부들대는 손에서 떨어뜨리고는, 주름이 많은 입가의 입술을 열어냈다. 



전하께서, 승하하셨다하옵니다.



발을 위로 들고 있던 민석의 손이 떨어졌다. 차락대는 나무발이 떨어지는 소리가, 그리도 크게 울릴 수가 없었다. 






화우 (花雨) , 꽃비. 








언제나 날 선 작두위를 걸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사대부집안이면 무엇 하는가, 고작 서자일 뿐인데. 민석은 누구보다도 학문을 즐겼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었다. 

제 형은 저보다 뛰어난 민석을 못마땅해 했고, 민석은 말 없이 짐을 꾸렸다. 제게 붙은것은 젖어미와 늙은 시종. 그리고 성벽안이지만 안이 아닌 지역의 집. 

그 간극에 위치한 집 만큼 민석의 위치도 애매했다. 과거는 치를 수 없으나 양반이 아닌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양반노릇을 하기에는 미묘한 제 신분. 

민석은 늘 제 신분을 혐오했다.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닌, 혐오. 그래서였을까, 그와 처음 마주친 곳은 저자의 기루 앞에서였다. 


- 샌님같은데, 이런데도 오시나보오? 


한량놈이 또 시비를 걸어 돈이라도 털어내려 접근하는건가, 하고 민석은 갓을 슬쩍 들었다. 앞에는 꽤 멀끔한 옷을 입은, 장신의 사내가 민석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민석은 청국에서 온 사내일 것이 뻔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말투를 곱씹었다. 눈을 올려 얼굴을 확인했다. 단정한 눈썹과 콧날은 제가 미남이라 외치고있었다. 


- 오건, 오지 않건은 댁이 상관할 바는 아니실텐데. 

- 내가 누군 줄 알고 말을 놓는거요? 


기루에 가 그나마 머리가 찬 연아와 시화나 나누러 갈 참이었는데, 그 길마저 방해하는 모습에 민석의 미간이 좁혀졌다. 복색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다.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오늘은 집에 가 서책이나 뒤적이고 난이나 칠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민석의 어깨를 우악스레 쥐어잡는 손이 있었다. 그였다. 


- 나는 범이라 하오. 그대는?


민석이 생각하기도 전에 튀어나간 이름은 민석을 지금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꽃비가 내렸다. 




그와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친구 이상의 감정은 가진 적이 없다 느꼈다. 그런데 왜 일까, 그는 자주는 아니지만 민석의 집을 찾아오고는 했다. 

젖어미는 군말없이 탁주와 어느정도의 안주를 내어오는것으로 제 일을 마쳤다. 이미 늙어버린 그녀는 제 자식같은 민석이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범이 민석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기루에 가지 않겠는가? 민석은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같은 이유에서 기루를 찾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희야, 치마를 열어 보거라. 


민석은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거문고를 타던 연아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개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가보겠소. 기녀, 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범에게는 말을 하지 않고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신경쓰며 밖으로 나갔다. 기루 마당의 정원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좋은 크기를 자랑했지만 그 계절남은건 한그루 적송뿐. 

민석은 한참이나 피지 않았던 연초를 허리춤에서 찾았다. 언제부터 이것을 끊었던가, 습관적으로 챙길정도로 자주 했던 것을 왜 하지 않았나 기억해내려 노력했다. 

밤의 별빛은 밝고도, 차가웠다. 부싯돌을 꺼내 불을 붙였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연기가 달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리도 달게 느껴졌던 것을. 민석은 하얀 숨을 뱉어냈다.

범은 기방안에서 희의 아래춤을 매만지다 깨달았다. 민석이 어느새 사라졌다는 것을. 범이 화들짝 놀라 몇냥을 계집애들에게 던져주고 뛰듯이 나왔다. 

그리고 머지 않은 곳에 터벅터벅, 걷고있는 민석을 발견했다. 차가운 날씨탓이 아닌 연기가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것을 본 범은 걸음을 재게 놀려 민석에게 다가갔다. 


- 왜 가는겐가. 

- 꽃잠까지 자려는게 아니었는가.


그런건, 아닐세. 하고 애써 변명을 뱉어내는 범의 모습에 왠지 속이 탄 민석이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혀끝에 닿는 냉한 곰방대끝이 제 마음같이 느껴졌다. 

민석은 고민한다, 왜 내가 어째서 그곳을 그렇게 나와버렸는가. 내 앞에서 뉘가 꽃잠을 자는 것이 싫었던 것이었을까, 끝도없이 들이마신 하얀 연기가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배꼽까지 들어찼을법한 연기를 밖으로 모조리 뱉어내고는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희야가 많이 애달아할걸세, 가보지 그러는가. 하고 말하는 민석은 혼란스러웠다. 

입은 그리 말하고 있으나 어찌하여 마음은 그렇지 못한가. 민석의 머리속은 모든것이 뒤엉켰다. 저는 왜 말을 제대로 꺼내지를 못하나. 


- 나중에 보세, 범.

- 민석, 아니, 


6척은 넘을 사내가 저보다 한참은 작은 사내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꽤 가관이라고 민석은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연초를 모조리 태워내겠다는 생각으로 빨아들였다. 

밖으로 뱉어내는 연기는 범이 뱉어내는 입김과 섞여 흩어졌다. 툭툭, 재를 털어내고는 아직 식지않은 것을 손에 든 민석이 그럼, 하고 고개를 숙이고는 제 집쪽으로 가는 순간.

어깨가 붙잡혀 몸이 돌려졌다. 제 앞에 들이밀어진 얼굴에 민석은 주춤, 하고 반발짝 물러났다. 얼굴을 들이민 범이 입을 열어, 말을 뱉어냈다. 


- 이 감정을 어찌 정의해야 하는지는 모르곘다.

- …무엇을 말하는,

- 가장 비슷한건, 연모라는 단어가 제일 흡사하네.


민석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 설마 아까 희야를

- 자네를, 연모하고 있네. 민석, 자네.


민석은 눈을 크게 떴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에는 내리지 못할 꽃비가 내렸다. 범과 민석이 한번에 본, 실제로는 내리지 못한 꽃비. 

통금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 누군가의 발끝도 보이지 않던 그 곳에서 둘은 말없이 서로의 입을 맞췄다. 



누구도 끼어들지않는, 둘만의 평온한 일상, 그것을 깬 것은 단 두 글자. 


전하.


낯선 음성에 마당을 보니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 허리에 차는 것이라고는 곰방대 뿐이었던 민석과 다른 풍채, 다른 위치의 사람들, 당황한 범. 

민석은 제 좋은 머리를 굴렸다. 어느 집에 사는지는 모르나 찾아오는 시간을 보면 성벽 안임은 분명하지만 사가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던 그. 

늘 궁과 제 집의 중간지점까지 저를 데려다주던 그, 홀연히 나타나 연모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자신과 입을 맞추던 그. 


전하, 이제 가셔야하옵니다. 


잡고있던 손을, 더 꽉 쥐는 범과 힘없이 늘어져버리는 민석, 범은 그런 민석을 꼭 껴안고 귓가에 빠르게 읊어내렸다. 


- 북한산 중턱 절, 꼭 일년후에 내가 갈테니 기다려 줄 수 있겠는가. 오늘은 사월 초파일이니 꼭 다음해 사월 초파일에 가겠네. 그날, 같이 연등을 달 수 있게.


전하, 가셔야하옵니다. 


이후 민석이 들은 소식은 그의 혼인소식, 합궁일에 회임시켜 아이가 그 겨울, 2월의 끝자락에 태어났다는 소식.


전하께서, 승하하셨다하옵니다. 


그의 죽음. 






7일간의 국장. 범은 북한산 중턱으로 사월 초파일에 돌아왔다. 그날 성벽안이지만 안이 아닌 그 곳의 집에는 늙은 젖어미와 시종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민석과 함께 묻힌 작은 문갑, 문갑안의 편지는 누군가가 읽기는 했을까. 



병에 걸렸습니다. 그대는 건강하시길


달포정도밖에 살 수 없습니다. 


화우가 내립니다. 그대도 보십니까. 


그대가 너무 보고싶습니다. 


형님이 내게 약을 먹였다 실토했습니다. 

서자따위가 어찌 적자의 자리를 노리겠습니까, 

형님도 멍청하십니다. 


오늘은 난을 쳤습니다. 

손이 떨려, 모두 망가졌습니다. 


기억이 흐릿합니다. 그대는 잘 계십니까 


옥안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주가 남았으니, 잘 지내시겠지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대와 만날 날도, 우리가 영원히 이별할 날도. 

의원이 말하기를 사월 초파일도 어려울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대가 보고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왜 먼저. 떠났습니까. 


붓을 들기조차 힘듭니다. 오늘은 한바가지는 피를 토했습니다. 

젖어미와 노복에게 미안합니다. 그들에게 내 몇없는 재산을 쥐어줬습니다. 

단 하나, 그대가 나에게 준 연적은 가지고 있겠습니다. 


그대가 사주었던 먹이, 짧아져갑니다. 


내일이 사월 초파일입니다. 선산은 아니나, 그곳에 저를 뿌려달라했습니다. 

곧, 뒤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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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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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ㅠㅠㅠㅠ 기다리라고 해놓고 기간이 거의 다오니까 크리스가 죽은건가여?ㅠㅠㅠ 가슴아프다ㅠㅠㅜ 아련함 어쩔거야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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