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밖에 존나 더워. 통닭 될 뻔."
"에어컨 앞에 가서 바람 좀 쐐."
전정국의 집에 들어가자 그는 시선을 텔레비전에서 떼지 않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원래 저런 놈이니까 나는 익숙하게 소파의 끝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입구에 얼굴을 들이댔다. 뜨거운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닿자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아, 너무 좋다.
"김여주 방금 뭐 먹고 들어오는 길?"
"아니."
나는 전정국이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 안다.
전정국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몸을 틀어 내 어깨에 힘을 가해 나를 소파에 눕히더니 내 위로 올라탔다. 그 일련의 행동들에 나는 반항하지 않았다. 감정이 담긴 행위가 아니기도 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이 나는 좋으니까. 전정국은 나를 제 품에 가두듯이 팔을 고정하곤 고갤 숙여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붙였다. 나는 그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지는걸 지켜봤다.
"건조해. 립밤 좀 발라."
"입술에 대고 말하지 마. 이상해."
입술을 댄 채로 하는 대화는 짧게 끝났고 전정국은 한손을 내 머릿밑으로 넣어 뒤통수를 약하게 감싸 쥐며 혀를 넣었다. 내 입에 무언갈 심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키스가 더 야하게 느껴졌지만 정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린 둘도 없는 친구고,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나이에 맞게 호르몬이 마구 분비되고, 그 욕구를 서로에게 풀고 있을 뿐이었다.
키스꾼들 0
W. 프로망상러
전정국과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 녀석의 볼은 붉고 통통했고 딱히 기쁜 일이 없어도 방긋하게 잘 웃어 보였던 모습들뿐이다. 지금의 전정국만 아는 사람들은 작고 귀여웠던 아이를 전정국과 매치시키지 못할 정도로 180도 달랐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그의 찹쌀떡 같은 볼을 잡아 당기는게 이상하게 재밌었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 괴롭히는 일을 즐겼다는 말은 아니다. 내 괴롭힘의 대상은 전정국 뿐이었다.
초등학교 6년을 그렇게 톰과 제리의 관계로 보냈는데 우리는 운명 공동체인지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로 배정받았다. 전정국은 한동안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왔는데 그 모습이 딱해서 나도 그를 잘 받아주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전정국에게도 친구들이 생겼다. 흔히들 말하는 양아치들이었지만 뭐 중학생이 놀아봤자 얼마나 놀겠나 싶어서 나는 전정국에 대한 걱정을 일체 접었었다. 그런데 그 애들이 전정국한테 뭐라고 지껄였는지 놈은 나를 점점 무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그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나는 못된 짓이란 걸 알면서도 괜히 아이들한테 전정국의 욕을 하고 다니며 관심을 끌려 했지만 전정국의 그 낯선 무표정은 바뀌질 않았다. 결국, 난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길 관뒀었다.
그리고 우린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배정받았다. 입학식까지만 해도 나와 전정국은 '우리'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민망한 사이였다. 당시의 '우린' 1반의 전정국과 4반의 김여주가 적절한 관계 정의라고나 할까. 복도의 양 끝에 위치한 서로의 반 덕분에 그와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다. 난 정말 영원히 전정국과 남 같은 애매한 관계로 지낼 줄 알았는데 개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정국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야."
김여주도 아니고, 여주야도 아닌, 야. 자음 하나, 모음 하나. 정말 성의 넘치는 인사라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는 건 거짓말이고 저 싸가지 없는 한 글자짜리 인사에도 나는 그간 우리 사이의 공백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어떻게 널 하루아침에 남 취급했던 애가 해주는 인사에 그렇게 기뻐하냐고 혀를 찼지만 나는 정말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7년 넘게 붙어 다니던 애가 말을 걸어줌으로써 이 뭣 같았던 '남 같지 않은 남' 관계가 정리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전정국을 보면 꾸준히 인사를 했고 그도 내게 아는 척을 해왔다. '안녕', '뭐 하냐' 정도의 인사가 '오늘 급식 개노맛', '존나 인정하는 부분' 등의 친근감 있는 인사로 바뀌었고 학교 안에서만 진행되던 관계의 발전이 '오늘 집 같이 가자', '콜' 학교 밖까지 이어졌다. 비록 초등학생 시절의 우리보다는 쓰는 언어가 거칠어졌고 정신도 당시보다 더럽혀졌지만 같이 손잡고 등하교를 하던 꼬꼬마 시절과 오버레이 돼서 행복했다.
몸뚱이가 많이 커버린 나와 전정국 사이는 (중학생 때보다) 순수함 한 스푼 정도가 모자란 관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어느날 야간 자율학습을 끝나고 같이 집에 돌아가던 길에 전정국이 저지른 일 덕분에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순수함 한 스푼은 무슨, 순수함 열 스푼도 모자라 열 국자가 사라진 관계다.
"그래서 박보검이 막 혜리한테 키스를 하는데,"
"응."
"진짜 내 심장이 다 떨리고 와..."
"설렜겠다."
원체 상대방의 얘기에 잘 호응 해주지 않는 녀석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앞만 보고 걷는 전정국한테 신나게 야자 시간에 몰래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걷다 보니 가로등이 고장 나 어두운 길에 들어서게 됐지만 남자인 전정국이 옆에 있으니까 별다른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런데 내 옆의 인기척이 사라진 것이다.
"전정국, 듣고 있어?"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괜히 무서워서 책가방 끈을 꼭 쥐고 전정국을 서너번 더 불러봤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웃는 전정국이 걸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전정국이 장난 친 거라는걸 깨닫고 손바닥에 났던 땀을 하복 치마에 벅벅 닦아냈다.
"너 진짜 그런 장난 치는 거 아니다."
"장난치려던 건 아닌데 네가 벌벌 떠는 게 재밌어서."
"재밌냐? 네 친구가 무서워하는데? 쓰레기네."
"미안, 미안."
전정국은 제 장난이 심했다는 걸 알긴 아는 모양인지 집 앞까지 날 바래다줬다. 집 가는 내내 툴툴거려도 성이 안 풀려서 나는 마지막으로 전정국의 등짝을 아프지 않게 때리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그가 내 팔을 갑자기 붙잡더니 끌어당겼다.
"왜? 할 말 있어?"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숨을 들여 마시었다가 내뱉는 전정국을 기다려줬다. 한참 동안 움직임이 감지 되지 않자 천장에 달려있던 센서 등이 꺼지는 바람에 우린 완벽한 어둠 속에 갇혔었다. 평소 제 속을 드러내지 않는 전정국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심각한 고민이나 말 못할 비밀이라도 얘기해주려는 건가, 걱정하고 있던 찰나에 전정국의 어딘가 흐트러진 듯한 숨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그의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이건 내가 방금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과 똑같은데 상대만 달랐다, 전정국이었다. 그의 입술이 닿아왔고 그의 따뜻한 혀가 내 입술을 몇 번 할짝이다가 틈을 벌리더니 입안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머리가 쥐가 난 듯이 아팠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느꼈던 감정은 혼란스러움, 죄책감 그리고 약간의 흥분감이었다. 전정국에게 느끼는 설렘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전정국와의 키스는 달콤한 독 같았다는 것이다.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황홀해서 밀어낼 수가 없었다.
키스를 마친 후에 그는 내게서 서서히 몸을 떼었고 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 전정국도 바로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다음 날 학교에서 나는 그의 뒷모습만 봐도 소스라치면서 냅다 도망쳤었다. 쉬는 시간이면 여자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못 했다. 그곳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전정국이 찾아오지 못하는 곳이어서 그랬다. 일주일을 채권자 피해 다니는 빚쟁이처럼 지냈을까, 반 아이들은 '전정국이 너 찾던데?', '너 반에 없다고 말해주는 것도 지친다', '걔 좀 만나주고 끝내 그냥' 등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나를 보챘지만 나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사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전정국이 날 야자 시간에 찾아왔다. 반도 다른데 성격이 지랄 맞기로 유명한 선생님이 감독으로 들어오신 야자 시간에 말이다. 전정국은 패기 넘치게 앞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선생님에게 내 부모님이 오셨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날 빼냈다. 조용하고 어두운 복도로 그와 나가자 역시나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벽에 기대서 날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전정국은 참다못해 입을 뗐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다?"
"그러네."
"내가 너 쌩 깠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네."
"더러워."
"눈 피하지 말고, 응? 우리 할 얘기가 좀 있잖아."
"무슨 얘기?"
"그때 아무 느낌도 안 들었어?"
"......"
"막 나한테 설레거나 그런,"
"없었는데."
"그래?"
"...나도 아무 느낌 없었어. 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 지내자, 우리."
내가 일주일 동안 한 고생이 무색해지게 가벼운 어투였다. 솔직히 이대로 넘어가도 우리 둘 중 누구에게도 손해는 없을 거다. 다만 내가 찝찝하게 여기는 건,
"너 다른 여자애들한테도 막 입술 비비고 다니냐?"
전정국이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닐까 봐서다. 전정국을 좋아해서 질투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난 이 녀석이랑 오랜 친구인데, 만약 다른 여자애들한테도 나에게 했던 짓과 같은 짓을 한다면 그건 내가 그 의미 없는 애들이랑 동급이 되는 것 같아서 싫은 거다.
"너한테만 한 건데?"
...나한테만 했다니까 다행이다. 전정국은 눈을 여전히 내게 고정한 채로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고 뻐근했는지 몸을 풀었다.
"그냥 앞으로도 할까?"
그리곤 내 정수리에 핵폭탄을 투하했다. 나랑 멀어졌던 몇 년 사이에 애가 뭘 보고 배운건지 친구한테 키스 파트너 제안을 하는 걸까. 전정국이 진심으로 걱정됐다. 내가 알던 애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성이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이 내게 속삭여왔다. '저번에 약간 흥분했었잖아. 그리고 솔직히 너 요즘 욕구 불만이잖아. 윈윈이라고. 그리고 뭐 어때? 사귀는 것도 아닌데.' 고민할 문제가 아닌데 마치 내 양어깨에 천사와 악마가 날 설득하려고 싸우는 것 같아서 나는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전정국은 그런 날 보고 소리 나게 웃었다. 고민하는 거 보니까 제안이 좀 끌리나 봐? 따위의 농담을 치면서 말이다. 얄미운 놈. 나는 전정국의 정강이를 걷어차곤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물론, 들어가기 전에 대답도 해주었다.
하든지 말든지.
악마, 승.
처음 뵙겠습니다! 프로망상러이에욧- |
키스하는 친구 사이...어우 부도덕행! >_< 하지만 너무 발리지 않나요...? 제 글 말고 그냥 소재가...예..필력 딸리면서 망상 풀기... 포인트 아까우니까 댓 쓰고 다시 받아가세요 진심..그럼 20000 덕질하러 총총,, +프롤로그라서 짧은 겁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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