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이하이 - 미련한 사랑
“뭐야, 왜이러고 있어.”
“..불 켜지마. 가.”
탁. 말 끝나기가 무섭게 켜진 불. 그래, 당신이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지. 진절머리나는 당신의 그 고집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지경까지 온거고. 보이니?
어디 하나 쓸만한 게 없을만큼 박살난 물건들로 사방팔방 어지러진 집안 꼴, 그 사이에 여기저기 생채기 나고 터진 퉁퉁 부은 얼굴,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주저앉아있는 미친년같은 내 모습. 그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거야.”
“보면 몰라? 정말 몰라서 물어? 잘나신 김주영씨, 당신 어머니 짓이잖아!”
한참이나 울었던 탓에 목소리는 잠길대로 잠겼고 소리를 지르자 머리가 울렸다. 깨질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최악이겠지 지금 내 모습.
하지만 처참한 몰골과 질릴만큼 표독스러운 내 표정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는 나를 안아들고 침대로 향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는 그의 손을 애써 쳐냈다. 깨진 거울속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은 끔찍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고개를 돌렸다.
보고싶었어. 응? 나 좀 봐봐. 답지않게 다정한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얼굴을 매만지는 그의 손길도 싫었다.
어깨를 감싸며 깊게 입을 맞춰오는 그를 밀어낼 힘은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그거 알아? 당신은 항상 날 나약하게 만들어. 나는 그게, 싫어. 자꾸만 기대고 싶게 만들지 말란 말이야.
“근본도 없는 막돼먹은것이 어디서 감히 내 아들을, 그것도 가정 있는 사람을 넘봐!”
도대체 오피스텔의 주소는 어떻게 안 건지 난데없이 들이닥친 그의 어머니는 집안에 있던 물건들을 잡히는대로 던져 부수기 시작했다. 그와의 시간과 추억이 남은 물건들이 처참하게 부서지며 나뒹구는 꼴을 멍하게 바라보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머리채를 잡히고 뺨을 맞았다.
“더러운 것.”
현관을 나서며 그의 어머니가 던진 말이었다. 쾅. 현관문이 닫히고 나는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맞은게 아파서도 아니었고 더럽다는 말이 상처가 되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보고싶어서, 내사랑이 안쓰럽고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보고싶어. 보고싶어 김주영. 얼른 와서 나 좀 안아줘.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발…
진작에 그만 두었어야 하는 관계였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지금껏 아쉬울 것도, 남부러울 것도 없이 살아온 그는 2년 전,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그럼에도 지독하고 질긴, 어긋난 인연의 끈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5년간이나 이어졌다. 결혼하기 전날 밤까지 그는 나를 안았다. 숨막히도록 슬픈 정사가 끝나고 울고 있는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내 마음은 여기 두고 가겠다던 그의 말을, 바보같은 나는 아직도 믿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같은 불안한 이 관계를 이어왔다.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껍데기뿐이어도, 나는 김주영 당신을 놓을 수가 없으니까.
언젠가는 놓아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 겁나. 평생 당신 못잊을까봐. 평생을 당신 그리워하면서 미련하게 살까봐. 그래도, 이러면 안되는거잖아. 당신,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해야되는거잖아. 끝내자 이제.
“이렇게 사는 거, 지겨워. 그러니까 그만하자 우리…정말로..”
허리를 감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정말 끝낼거야. 떠날거야. 그래서 당신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남들한테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욕 안먹는 그런 사랑할거야. 나는 네 사랑이 필요해. 그 여자랑 당신 나눠갖고싶지 않아.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뒤에 와닿아 느껴지는 그의 시선이 슬펐다.
나는 늘 목마른 사람이었고, 그는 바다같은 사람이었다. 갈증을 없애려 바닷물을 마시면 곧 괜찮아질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갈증은 더 심해진다. 그러면 더 많은 물을 마시게 되고, 갈증은 더욱 심해져서 결국 사람을 죽게 만든다. 그와의 사랑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더 심한 갈증에 시달려 죽어가고 있었다.
“도망갈거야, 나. 유부남 꼬셔낸 더러운 여자라고 소문났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아. 아무도 모르는데로 도망가서 평생 당신 저주하고 원망하면서 살거야. 그러니까, 그만하자. 여기 오지마.”
“나 떠날 생각 하지마. 너 아무데도 못 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일으켜 자신의 무릎에 마주보게 앉히고 입을 맞춰왔다. 그의 머리를 감싸며 눈을 감았다. 알고있다. 몇번이고 그만두자고 말하면서도 끝내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할 바보같은 나, 그리고 내가 도망쳐도 다시 날 붙잡아 곁에 둘 그를.
사랑해. 사랑해.
귓가에 끊임없이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결국 나는 무너져내렸다.
“아무데도 못보내. 죽어도 내 품에서 죽어.”
“나쁘다, 당신 진짜 나빠. 미워, 김주영.”
또다시 눈물이 터졌다. 미련한 사랑이 또다시 심장을 옭아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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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쓰니가 또...?! 하시겠죠
죄송해요 다음번에는 꼭 멀쩡한 글, 막장글 아닌걸로 들고 오겠다고 약속 드렸는데.....
예전에 써둔 글입니다. 김주영 결혼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오면서 제 쿠크다스를 부수던 그때 울면서 썼습니다. 잘가라 김주영 행쇼ㅠㅠ 하면서
진짜로 결혼하면 못 올릴것 같아서 지금 올리고 사라지렵니다. 여전히 부족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그대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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