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sweet, sweet.
1.
"백현이 형!"
나는 오늘도 카페 sweet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첫눈에 반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아주 하얗고, 달콤하며 다정한 사람. 그를 처음 보자마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완전, 완전, 완전, 내 이상형이었다. 딱 보자마자 '하얗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랑 연애해보고 싶어.'라는 내 말에 진짜 진짜 거짓말 안치고 적합하다고 느꼈다고 해야하나? 여하튼, 나는 그를 처음 보자마자 반했다. 내가 게이였나? 이렇게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가 너무 좋아서, 진짜 들이대기 바빴으니까.
"경수 왔어요? 오늘은 되게 빨리 왔네요."
"이제 곧 방학이라서 오늘부터 단축수업한데요."
"좋겠네? 오늘은 뭐 마실 거에요? 저번처럼 카페라떼?"
"아니요! 오늘은 핫초코요."
나를 웃으며 반겨주는 그가 너무 빛난다. 이 정도면 중증인 것 같은데, 매일매일 더 좋아지는 걸 어떡하지. 주문을 하고 카운터에서 대각선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푹신푹신해.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그제야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오늘따라 손님이 작다. 평소에는 북적북적 까지는 아니어도 꽤, 손님이 있는 편인데 오늘따라 손님은 나 밖에 없다.
"오자마자 백현이랑만 이야기하고 쏙 가버리냐. 어? 매일 오면서 나는 찾지도 않지. 이 똥강아지야."
주방에서 나온 준면이 형이 나에게 딱밤을 먹이더니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준면이 형은 외사촌형인데 아주 오래전에 카페의 파티쉐로 취업을 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그게 계속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결국 언제 올거냐고 역정을 내는 준면이 형 때문에 그날 찬열이를 데리고 바로 와버렸다. 남자 둘이서 카페가 뭐야. 서로 툴툴거리면서 왔지만 카페의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그 말을 도로 집어넣어야 했다. 응. 거기에는 바로 백현이 형이 서 있었으니까.
"아니야. 형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거짓말하지 마. 올 때마다 변백 보고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너?"
"헤헤."
매일매일 여기로 출근 도장을 찍은 지도 벌써 두 달째다. 너 돈이 어딨어서 여기 맨날 와. 하며 핀잔을 주던 준면이 형이었지만, 사실 백현이 형은 가끔씩 돈을 안 받으시거나 항상 서비스로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주시기도 했다. 흥. 반해서 매일매일 보고 싶은 걸 어떡해. 그래서 나는 용돈을 받으면 꼬박꼬박 저금해서 여기로 온다. 찬열이가 매일매일 놀자고 징징거리지만 찬열이랑 놀면 카페에 올 수가 없잖아. 그렇다고 여기 데려오기에는 난 백현이 형이랑 둘이 이야기하고 싶단 말이야.
"김준면. 농땡이 피우지 너."
백현이 형이 한눈에 보기에도 진한 핫초코와 딸기 타르트를 탁자에 놓으며 내 앞에 앉았다.
"농땡이는 무슨. 반죽 다 해서 나중에 굽기만 하면 돼."
"그래도 더 일해. 경수 많이 먹어요. 딸기 타르트 좋아하지?"
"어…, 네. 네! 좋아해요 저."
"야 그거 만드는 건 난데 생색은 니가 내냐."
나는 준면형이 만든 딸기 타르트를 제일 좋아했다. 두 달 동안 온 노력이 그래도 있는지 백현이 형은 내가 딸기 타르트를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시고 계시나 보다. 준면이 형은 타르트를 제일 잘 만들었다. 나는 준면이 형의 타르트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형이 제일 자신 있어하는 것인 딸기 타르트를 제일, 제일 좋아했다. 싱싱한 딸기와, 달콤한 딸기 크림, 그리고 바삭한 타르트지가 조화를 이룬 준면이 형이 만든 딸기 타르트.
"맛있다."
사실 지금도 느끼고 있는 거지만, 나는 준면이 형이 파티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형은 공부를 잘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전교 1등도 몇 번 해본 걸로 안다. 나는 형이 당연히 선생님이나, 의사나, 뭐 그런 직업을 가지고 살 줄 알았다. 근데 형은 공부를 잘 했지만 요리도 잘 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바쁘신 부모님 대신에 날 업어다 키운 것은 준면이 형이었다. 집에 밥이 없을 때 밥을 지어서 차려주기도 하고 학교에도 데리러 오고, 같이 놀러도 가주고. 형이 없던 나에게 준면이 형은 친 형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 대단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학문 쪽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파티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큰 이모는 반대하셨다. 왜 좋은 길 놔두고 굳이 힘든 길로 가려고 하냐고. 그렇지만 형은 확고했다. 진짜, 후회 안 하고 할 자신 있어요. 형은 큰 이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끈질긴 설득 끝에 큰 이모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때, 큰 이모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데 준면이 형보고 거머리같이 그러지 말라고 한 게 아직도 머릿속에 콕 박혀있다. 하여튼. 형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끈질기게 잘 한다. 가끔은 그게 거머리 같기도 하지만.
"타르트만 먹지 말고 목 매이니까 핫초코도 같이 마셔요. 너무 다려나. 우유 데워서 갖다 줄까요?"
"아니, 괜찮아요. 핫초코랑 같이 먹으면 돼요!"
두 달동안 백현이 형을 귀찮게 하면서 내가 힘들지만 포기하지 못한 것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나를 배려해주는 그런 배려심 때문이다. 놓을까, 놓을까. 싶다가도 나는 어느 새 여기로 달려와 있고 형은 그런 나를 보면서 웃어준다. 계속 와서 귀찮게 구는 내가 귀찮을 법도 한데 형은 올 때마다 웃어주고 반겨줬다. 그런 형의 웃음을 볼 때마다 결국 무너지는 것은 나다. 이렇게 계속 계속 하염없이 좋아져도 되는 걸까. 계속해서 이렇게 빠져들어도 되는 걸까. 지금 이게 맞는 걸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백현이 형에게 첫눈에 반했고. 형을 가지고 싶다. 아니 그냥, 가까워졌으면 좋겠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욕심은 계속 커져만 가지만 그래도. 그래도. 가지고 싶다. 점점 커져만 가는 내 마음을 나는 주체할 수가 없다. 다정한 형의 모습에 나는 무너져 가지만 그래도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다정하게 하는 게 더 싫을 것 같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형에게 주는 만큼 형이 나에게 돌려주는 날이 내게 올까. 왔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
"도갱. 오늘은 마치고 뭐 해."
"뭐 하긴. 나 백현이 형 보러 가야 돼."
날씨가 추워진 탓에 온몸을 꽁꽁 싸매도 춥다. 너무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세훈이가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내가 요즘 너무 백현이 형만 보러 갔나... 오세훈이랑 박찬열이 조금 서운해하기도 하겠다. 어떡하지…. 고민돼. 형 보러 갈까, 아니면 세훈이랑 오랜만에 놀아야 하나.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아?"
"응.응. 완전!"
"나보다 더?"
"응!"
내 말에 오세훈이 삐졌는지 아무 말도 없다. 세훈아. 세후나아. 삐졌어? 응? 세훈아. 오세훈이 삐져도 단단히 삐진 것 같아서 나는 오세훈의 팔을 잡고 칭얼거렸다. 세훈아 무슨 일인데. 오늘 마치고 너랑 놀게. 응? 마치고 놀자. 그런 내 말에 삐진게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시내 나가자.
"시내는 왜?"
"볼 것도 있고. 요즘 너랑 안 논지도 오래됐고. 너 피시방 가자고 하면 안 갈 거잖아."
"응. 알았어, 알았어. 그럼 마치고 시내 가자."
결국 오늘은 백현이 형한테는 못 가겠다.
*
학교를 마치고 세훈이와 자기는 안 데려가냐고 찡얼거리는 찬열이도 같이 시내에 나왔다. 나왔는데 딱히 할 게 없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볼 게 있어서 나왔다던 세훈이는 이리저리 쏘다니며 쇼윈도우를 보며 걸어 다니기 바빴다. 분명히 계획도 없이 자기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아무거나 사려고 나온 게 틀림없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간 끝도 없지 싶어서 세훈이와 찬열이를 꼬셔서 피자를 먹으러 갔다. 피자. 피자. 피자. 피자가 먹고 싶었는데 잘 됐다. 포테이토 피자 라지 사이즈를 하나 시키고 샐러드바도 추가하니 세훈이가 사이다도 하나 하자며 사이다도 시킨다. 리필 되니까 한 개만 시키자. 응.응. 주문이 끝나고 직원이 계산서와 샐러드 바에서 쓰는 접시를 가져다준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떠올게. 라고 말하고 샐러드바로 걸어갔다. 신난다. 젤리도 먹고 과일도 먹고, 씨리얼도 먹어야지.
"그런 것만 먹으니까 키가 안 크는 거야. 도갱. 젤리 같은 것만 퍼지 말고 샐러드도 좀 담아."
어느 새 따라온 찬열이가 내게 핀잔을 준다. 젤리가 제일 맛있거든.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박찬열이 내 손에 쥐어진 접시를 뺏어가서 샐러드니 나쵸니 이것저것들을 담기 바쁘다.
"나 젤리. 젤리!"
쥐꼬리만하게 퍼진 젤리에 박찬열을 째려봤다. 저걸 누구 코에 붙여. 박찬열 나쁜 놈.
"피자도 나오니까 이거 먹고 나중에 더 가져다 먹어."
"알았어."
찬열이랑 자리로 돌아가니 피자가 나와있다. 세훈이가 얼른 먹으라면서 나한테 피자 한 조각을 덜어준다. 나는 호호 불면서 포테이토 피자와 젤리를 먹었다. 흥. 얼른다 먹고 젤리 더 가져다 먹을 거야. 내가 말없이 피자와 젤리를 먹고 있으니 찬열이가 내 입에 사이다를 대준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사이다도 마시면서 먹어. 이따 젤리 더 가져다 줄테니까 천천히 먹고."
…박찬열 나쁜 놈이라고 했던 거 취소다. 젤리 많이 많이 가져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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