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 dream
'안녕, 나는 당신의 머릿속에 있어요.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당신을 만나러 올게요.'
세상에서 빛날 수 있는 장치는 모두 가져다 놓은 것처럼 내가 보고 있는 문은 말도 안 될 만큼 환히 빛나고 있다. 들어가 보고 싶지만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서 발길을 막았다. 아, 그냥 가지 말아야겠다.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대로였다. 그래서 뛰었다. 뛰고, 뛰고 또 뛰어도 주변은 어두컴컴했고 밝게 빛나는 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조건 저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건가. 미간을 찌푸렸다. 꽤 오래 그 자리에 서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꿈이다.
“정답.”
공간 가득 울리는 목소리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있어, 여기.”
“어디?”
여기. 내 물음에 사람의 형체가 문 앞에서 반짝 거렸다. 한 걸음 다가갔지만 다시 망설여졌다. 혹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눈을 뜨면 현실이어야 하는데 현실 세계가 아니면 어떡하지. 앞으로 나갔던 걸음을 뒤로 한 발자국 물렀다.
“되게 걱정이 많은 타입이었네. 하지만 눈을 뜨면 현실 세계일 거라는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맞다. 자각 몽을 꾸는 건 처음이 아니니까. 그런데 상대방이 어떻게 알지?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나를 기억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상대의 말에 무서움에 떨던 다리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던 손도, 어떻게든 굴려 보려 애썼던 머리도, 모든 게 멈췄다. 그리고 달렸다. 상대방을 향해, 그를 향해. 오랜만이었다. 그가 내 꿈에 온 건. 환하게 빛나는 문을 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그에게 달려가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나를 잊지 않았구나. 고마워. ㅇㅇ야.”
따뜻한 음성. 아, 좋다. 더럽혀진 내 이름이 그가 불러줌으로써 깨끗하게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덩달아 나 자신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품에 조금 더 파고들었다.
“…왜, 이제 왔어요.”
“미안, 조금 바빴어.”
그의 대답에 쀼루퉁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거짓말, 많이 바빴던 거죠? 내 물음에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응, 들켰네. 머쓱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에요?”
“너를 위한 공간.”
“와-. 천국이 있다면 이렇겠죠?”
“딱히 그렇지만은 않아.”
천국에 가봤어요? 아니. 뭐야, 가본 것처럼 얘기하더니.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행동에 한 가지 사실을 눈치 챘다. 그는 천국에 가봤다는 것. 그도 내가 알아챘다는 걸 알 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곳이 어떤지 묻지 않았다. 알아서 득 될게 없을 것 같으니. 무엇보다 그 생각은 순식간에 지워지기도 했다. 그가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공간은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니,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볼 줄 알았던 것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니.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꽃들이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신기해?”
“네, 엄청요.”
그는 서로 맞잡은 손을 고쳐 잡았다.
“이제 너를 만나러 자주 올게.”
그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정말요? 그는 언제나처럼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긍정의 뜻이었다. 좋아요! 정말로 좋아요! 매일은 아니더라도 이제 그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막막하기만 했던 현실 세계의 나도 예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방 뛰는 나를 멈춘 건 그의 온기였다.
“너는 어디에 있어도 예뻐. 그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일 거야.”
그의 말에 귀가 뜨거워졌다. 그는 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만 꺼냈다. 그리고 그가 내 꿈에 나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좋은 일만 생겼다. 이상할 정도로. 그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왠지 알려주면 그가 다시는 내 꿈에 들어와 주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가 해주는 예쁜 말들을 다시 못들을 것 같은 이기심 때문에 그에게 형실 세계의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요즘의 너는 어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 와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는 내가 깨어야하는 시간이라며 우리가 다시 만났던 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바깥에서는 문의 형체도 잘 안 보일만큼 환한 빛이 가득한 문이었지만 이곳에서의 문은 이 공간에 맞게 디자인 되어있는 아주 평범한 문이었다.
“또, 올 거죠?”
“그럼, 당연하지.”
그는 내 머리칼을 흩뜨렸다. 나는 그의 손길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는 내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그는 또 나를 위로해 주는 거다. 헤어짐에 울적해진 나를. 나는 그의 따스한 온기가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눈을 깜박였다. 아, 현실 세계구나. 창밖에서 들어오는 눈부시도록 밝은 햇살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시 잠들 수 없는 것을 알지만 그의 따뜻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해준 말도.
“곧, 다시 만나자. ㅇㅇ야.”
'내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주저 말고 말해줘요.'
'내가 필요하지 않다면 당신의 꿈에서 사라질게요.'
'당신의 꿈에 내가 들어가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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