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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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지구에 커다란 운석 하나가 떨어지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냥 단지, 흥미롭달 것 하나 없는 내 인생이 허무하디 허무해서? 별 시덥잖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신중히 생각을 한 결과는 항상 같았다. 재밌겠다.
- 누나, 누나는 그럼 커서 뭐 할 거예요? 편의점 사장? 아니면, 현모양처?
비웃음인지, 가슴에서 나오는 순도 100%의 웃음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띄운 채로 제 품을 가득 차지하던 막대 사탕들을 계산대 위에 쏟아붓는다. 이런 뻔뻔함에 놀라는 것도 한 두번이지. 내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눈을 마주하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존나, 귀찮다.
*
음악 한답시고 다니던 고등학교를 관둔지 어언 3년이 됐다, 어떻게 말하면 집안 사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억지로라도 부여잡던 연필을 놓은지 2년째, 쓰러져가는 집안을 단시간에 다시금 세운 엄마는 나에게 편입을 권했다. 음악을 하는 데에도 배움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어영부영 지인을 통해 작업실을 얻어 작게나마 수입을 내고 있던 나는 당연히 거절을 했지만, 이미 편입신청을 끝낸 엄마는 나에게 교복과 교과서를 안겨주고는 이내 일이 바쁘다며 급하게 집을 나섰다. 언제나 막무가내다, 이 집안은. 교복과 교과서를 대충 방 안 쪽으로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그냥 평화롭게 돈이나 벌고 싶다.
- 던힐 한 갑, 4500원입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알바하던 편의점은 엄마가 입에 올린, 내가 다닐 학교의 바로 앞에 위치했다. 평소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돈을 받고 힐끔 올려다본 손님의 목에는 삐딱하게 넥타이가 걸쳐져 있었다. 요즘 고딩들은 존나, 까졌다. 편의점 알바를 한지 5개월째, 나는 요즘 청소년의 교육을 의심했다. 어떻게 된 학교가 학생의 80%가 기본적으로 몸에 담배를 지니고 다녔다. 한심하다, 한심해. 불건전한 분위기가 만연한 학교에 굳이 편입해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된 한숨을 푹 내쉬고 핸드폰을 들었다. OO고등학교의 야자가 끝난지 30분, 이제 손님은 가까이에 있는 오피스텔 주민들 외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렸는지 종소리가 울렸고, 방정맞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어폰 한 쪽을 귀에 꽂고 작업을 같이 하는 오빠가 보내준 파일을 듣고 있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문 앞을 비춰주는 CCTV 화면 속엔 교복을 입은 남학생 다섯명이 비춰졌다. [이번 거는 좀 괜찮은 거 같은데 넌 어때.] 온점 하나까지 정확하게 찍은 오빠의 메세지에 머리를 골똘히 굴렸다. 뭐라고 감상평을 남겨야 오빠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앞 쪽 인트로는 ㅇ]
- 호석이 형, 나는 폴라포! 포도 폴라포 알죠, 포도 폴라포?!
- 아니까 좀 닥쳐, 김태형.
- 짐나, 짐나. 나 이번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응?! 즌증국이, 넌 어때?
- 남준이 형 말대로 그냥 닥치고 좀 비켜요, 안 그래도 안 하던 야자 억지로 해서 피곤해요, 저.
아까 한 인사는 지금 결과에 대한 예고편이었는지 방정맞은 목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마지막을 향해가던 멜로디를 뚫고 나의 귀로 들어와 꽂혔다. 덕분에 진지하게 감상평을 써내려가던 나의 손은 OFF 버튼을 누른 기계처럼 움직임을 뚝 멈췄고, 골똘히 굴러가던 머리도 녹 슨 소리를 내며 회전을 중지했다. 시끄러워. [앞 쪽 ㅇ] 결국 써내려가던 메세지 창의 2/3 를 지웠다. 차근차근 다시 처음부터 들어보자.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편 손으로 다시 액정 화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처음 시작할 때요, 오빠가 저번에 말했던 ] 나에겐 한 번 시작한 일이 중간에 끊기면 그때까지 해왔던 것들을 엎고 다시 시작하는 피곤한 습관이 있었다.
- 저기요! 저, 누나…! 던힐 한 갑이요!
'… 청소년한테 담배는 팔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의례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모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 편의점은 앞 학교에선 '쉽게 뚫리는 편의점' 으로 유명했다. 사장도 수입의 지분률 50% 차지하는 담배를, 소위 말해 학생들에게 파는 담배를 포기할 순 없었는지 유연하게도 담배의 종류를 입에 올리는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담배를 건네주었다. 이를 말하며 학생에게 계산된 소주를 봉지에 넣어 건네주던 오후 알바의 인수인계를 받던 나 또한 별 생각없이 학생들에게 담배와 술을 팔았다.
[그리고 그 벌스에서는] 지금 집중력이 끊기면 안 된다. 메세지 창에선 벌써 7줄의 글이 줄줄 써내려져가고 있었다. 신중에 신중을 가한 감상평이 다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뒤를 돌아 담배를 건네주는 것 대신 감상평에 집중하며 오랜만에 도덕적인 말을 입에 담는 것을 택했다. 매번 불법적인 일을 하다 이렇게 도덕적인 척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에이, 누나 그러지 말고…. 저, 누나? 저 좀 봐주시면, 저기, 누나?' 마침내 이어폰을 통해 들리던 멜로디는 끝을 향하고 있었고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도 마지막을 맞이했는지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 짐나, 짐나… 어떡해? 아, 나 오늘도 실패하면 강제 금연 4일이란 말이야!! 응?!
- 시끄러워. 나도 너때문에 하지도 않던 야자해서 피곤해. 금연을 하든가 말든가 맘대로 해. 난 어차피 저기서 뚫렸으니까.
- 아, 존나 치사해 박지민! 피는 건 너랑 즌증국이밖에 없단 말이야…. 정국인 운동 때문에 요즘 금연이고…. 좀 도와주라, 응?
- 하아.
[그래서 결론은] 드디어 마지막 한 줄이었다. 이것만 마무리하면 감상평은 완벽하게 마무리 된다. 답지 않게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속으로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온점만 찍으면….
- 던힐 한 갑이요.
아, 씨발. 결국 온 점 하나를 찍으려던 손가락은 고딩의 한 마디에 갈 곳을 잃고 삐걱댔다. 잘 가라, 심혈을 기울여 쓴 감상평.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좆같은 편의점 알바. 다른 알바 찾든가 해서 얼른 관둬야지, 씨발. 결국 감상평을 포기하고 여태껏 핸드폰에 집중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처들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아이스크림통에 머리를 집어넣을듯 허리를 숙이며 아이스크림을 찾는 고딩과 바나나 우유 두 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고딩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 앞에선 흥미로운 눈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딩이 보였다. 또한, 마지막 절정의 순간 나를 방해했던 좆같은 고딩과도 얼굴을 마주했다.
한 놈은 피어싱에, 한 놈은 노란 머리, 한 놈은 삐까뻔쩍한 반지. 불건전한 청소년의 집합체였다. 좆같은 고딩은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여 밝은 빛을 냈다. 다 불태워버릴 거야, 청소년들. 뻔뻔하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좆같은 고딩은 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체감 2분. 정적과도 같던 고요함이 지나가고난 후 먼저 눈을 피한 나는 몸을 돌렸다. 피고 뒤져라, 개같은 청소년아. 판매대에서 꺼낸 던힐 한 갑을 앞에 있던 좆같은 고딩의 주머니에 손수 꽂아넣어줬다.
- 4500원입니다, 손님.
돈은 주고 뒤져라. 억지로 상냥히 말을 내뱉고 돈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혹시 몰라 다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결과, 불략 학생이 더 확실해졌다. 한심하다, 한심해. 좆같은 고딩의 가슴팍에는 '박지민' 이라고 쓰인 이름표가 삐딱하게 붙어있었다. 점점 팔이 아파와 손을 더 쭉 내밀었다. '4500원입니다, 손님.'
- 씨발.
- …?
- … 지민아 왜 그래. 내가 너 없을 때 종종 불도 나눠주고 할게. 그러니까 화내지 말, 억?!
'네, 네 거잖아, 그거! 빠, 빨리 돈 내라! 씨발, 그리고 내가 언제 담배를 폈다고 그래!'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듯 읊조리며 욕을 뱉어내곤 걱정스레 저를 살펴보는 고딩에게 제 손에 들린 담배를 던진 좆 같은 고딩은 격정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계산대에서 세 걸음 물러났다. 모서리를 보이며 제 얼굴을 때리고 떨어진 던힐을 가까스로 받아낸 친구 고딩의 눈이 동그래졌다.
- 어, 엄마, 씨발…. 남준이 형!!!!!!!! 즌증국이!!!!!!!!! 박지민 미쳤어요!!!!!!!!!!!!
*
- 누나 무슨 생각해요?
- 가라, 제발.
- 2시간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내가 옆에 있으니까 덜 심심하죠?
그 날 이후 좆 같은 고딩은 그러니까, 박지민은 하루도 빠짐없이 편의점을 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OO고등학교 야자가 끝난지 30분 후에. '아, 씨발 지민이 형 미쳤나봐! 야자 좀 그만하자고요!' '편의점은 왜 맨날천날 오는 건데, 병신아!!' '짐나, 미쳐도 곱게 미쳐….' 올 때마다 그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고딩들의 원성도 무시한 채로 박지민은 오자마자 계산대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은 인사라고 주장하는 좆같은 인사질을 한다. '오늘도 예쁘네요, 누나는'
사건 이후로 박지민은 던힐 대신 막대사탕을 계산대 위에 올려두는 일이 잦았다. '누나, 저는 담배 같은 거 안 하는 거 알죠. 저기 덜떨어진 새끼들이나 하죠, 그런 건.' 첫 막대사탕을 올려두며 하는 이야기에 아이스크림을 고르던 고딩 셋은 얼굴을 찌푸리며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의 데시벨에도 불구하고 박지민은 씨익 웃으며 계산이 완료된 초코 막대사탕의 껍질을 벗겨내 나의 입에 물렸다. '그래서 누나 몇 살이라고요?'
- 아무튼, 나는 누나가 커서 현모양처나 했으면 좋겠는데.
- 야.
- 그런 거 있잖아요. 남편 일 갔다 오면 곱게 저녁 차려놓고 예쁘게 맞이해주는 아내 같은.
- ….
- 내 꿈이 현모양처 데리고 사는 거거든요. 아, 누나 잠시만 전화 좀요.
내 꿈은 니가 사라지는 거, 좆고딩아. 마지막 한 줄을 완성하지 못한 채 커서가 깜빡거리는 메세지가 액정을 통해 보였다. 만약 평화롭디 평화로운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면, 나는.
- 그러니까, 씨발. 그 새끼들이 지들 맘대로 나도는 걸 나보고 어떡하란…, 아.
- ….
- 전정국. 씨발, 전정국! 이거 니가 대신 받아.
그냥 사라질랜다, 씨발.
- 앞으로 할 말 있으면 전정국한테나 전화 처 해, 씨발.
[여보세요, 지민아? 박지민! 야!]
- 요즘 쓸데없이 날아다니는 벌레들이 참 많아요. 그쵸, 누나?
- ….
- 아, 맞다. 누나, 이거 먹을래요? 오늘 급식에 나왔는데 맛있길래 옆에 있는 새끼 거 뺏어 왔는데.
존나 사라질 거다.
| + |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__) 보고 싶었어요. ;ㅅ; + 한번쯤은...! 중2병 글을 저도 써보고 싶었습니다, 네. (어제 올린 글은 수정 전 글을 실수로 올린 것이라 바로 삭제했습니다. 죄송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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