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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온앤오프 성찬 엑소
판타판다 전체글ll조회 845l 1


 

 

 

 

 

 

 

 

 

"어머니!"

 

"그래, 아가."

 

"달님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우리 공주를 닮았지."

   

"우아-! 달님은 참으로 고운가 봅니다. 그렇지요, 어머니?"

 

"그럼. 달님은 우리 야화를 쏙 빼다 박아 너무도 곱지."

 

 

 


"훗날 공주도 저기 저 하늘 달님처럼 세상을 곱게 밝혀줄 겝니다. 이 어미가 장담하겠습니다. 그런 날이, 꼭 올 겁니다."

 

 

 

 

 

 

*

 

 

 

 

 

 

 

"내가 이 나라의 황제가 되어야겠다."

 

"… …."

 

"내가 황제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해다오."

 

"… …."

 

"내 너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야."

 

"… …."

 

"그러니 나를 위해 살 거라. 나를 위해 싸우거라. 알겠느냐."

 

 

 


"예, 아버지."

 

 

 

 

 

 

 

 

 

虎熊傳

호웅전 ; 밤에 피는 꽃

01




 

 

 

 

 

 

-

"수천 년 전 이 땅엔 호랑이를 섬기던 호족과 곰을 섬기던 웅족이 함께 행복하고 사이좋게 살았대. 하지만 그 평화는 얼마 가지 않았고 욕심이 날로 늘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이어지게 되었지. 이에 보다 못 한 하늘 님이 땅의 자식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거야. 전쟁을 일으킨 탐욕스러운 두 부족의 족장들이 각각 포학한 호랑이와 곰으로 변해 제 형제들인 부족민들을 잡아먹게 만들었대. 수많은 사람들의 몸이 사방으로 찢어지고 땅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갔어.
그제야 잘못을 뉘우친 두 부족장은 하늘 님 앞에 무릎 꿇고 삼일 밤낮으로 빌고 또 빈거야. 다신 전쟁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두 마리의 동물들이 흘린 눈물로 땅이 촉촉이 젖어 갈 즘 하늘에선 다시 모든 땅의 피를 씻어내릴 비가 쏟아졌고 호랑이와 곰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대. 또다시 못된 마음을 품게 되면, 그땐 더한 벌을 내리겠다 하시면서 말이야. 그 후 두 부족은 서로 화합하고 도우며 다신 칼을 겨누어 싸우지 않게 되었대."



 


다시 몇천 년이 흘러 비극이 휘몰고 간 자리엔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니 호족의 후손들은 그 나라를 일양(日陽)이라, 웅족의 후손들은 월음(月陰)이라 이름 지었다. 두 나라는 서로 교역하며 좋은 것들은 나누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며 여전히 화목하게 살아갔다. 땅은 비옥해져갔고 백성들의 입에선 배를 채워 기분 좋은 소리들이 끊이질 않으니 더할 나위 없구나.

 

그러던 중 일양국의 왕이 가늘고 길었던 생을 다하여 그뒤 다음 계승자인 전씨 가문의 전문국이 나라를 이어받게 된다. 힘이 약했던 전문국은 대신들의 간섭에 못 이겨 월음국의 정복을 위해 그들과의 약조를 어기고 잦은 침입을 일삼았다. 지칠 줄 모르는 전쟁에 일국의 백성들은 배가 말라죽고 월국의 백성들은 배가 갈려 죽어갔다.  

이를 보던 하늘 님이 노하시어 불쌍한 백성들을 보우하사 그때와 같은 벌을 내리신다. 부디 그때가 되풀이되어 많은 이의 피가 땅에 뿌려지며 울부짖는 그 소리들이 하늘까지 들려오지 않길 바라면서. 어리석은 땅의 자식들은 해와 달이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려야 할 거라고. 

   




"그래서 그 후엔 어떻게 되었게?" 





하늘의 해와 달이 하나가 되었다 다시 갈라지는 그때, 기구한 운명을 지닌 두 아이가 태어난다.





   

   

   

   

   

   

   

   

   


-

"오라버니는 또 어딜 가신 거야."

   

   


공주는 오늘도 어김없이 야전 내 작게 꾸며진 정원을 빙빙 돌다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조각을 보며 붉은 입술을 내었다. 근 며칠 호석이 곁에 없는 날이 늘었고 적적한 마음을 달랠 곳이 필요하면 한번 틀림도 없이 늘 이곳을 찾았다. 특히 좋아하는 월견초(달맞이꽃)가 가득한 이 정원을 빙빙 돌다 보면 그 향내가 풍기는 것만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한데 한 번도 그 봉우리를 열어 향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공주는 제 앞에선 꾹 다물고만 있는 월견초가 활짝 피는 날만을 세며 이곳 별궁에서 세월을 보냈다.

보자, 공주가 태어난 지도 벌써 아홉 해가 지났구나.


적적함에 못 이겨 공주는 이내 그 주위를 온통 생글생글한 꽃풀로 둥글게 둘러싼 마알간 못을 바라보며 그 앞에 벌러덩 엎어졌다. 폭신한 풀밭에 누운 채 그 앙증맞은 손을 뻗어 못에 담그곤 참방참방 물을 쓸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시간이 어찌나 느릿느릿 기어가던지, 이곳 별궁에는 딱히 다른 재미난 것들도 없는데 말이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한창 신나게 뛰어놀 아직 어린 나이였으니, 천방지축에 퍽도 명랑하기까지 한 공주에겐 답답하고 좁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하루하루가 지루함과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그런 공주에게 있어 오직 호석만이 커다란 숨구멍 같은 존재였는데, 꼭 이리 고적할 때에 곁에 없다며 투정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별궁 밖의 이야기란 눈이 번쩍 귀가 번쩍, 온통 재미나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으니 아침에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언제 또 저를 찾아줄까 호석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다. 유일하게 저를 찾아주는 호석을 말이다. 이번엔 어딜 다녀오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지난번 들려주었던 하늘로 등불을 올리는 축제 이야기는 정말이지 꼭 한번 직접 제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 샘솟게 했다.

   

   


"꼭 한번 보고 싶은데."

   

   


세상이 온통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시작하는 참으로 장관인 축제라고 들었다. 그때가 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염원을 가득 담은 진황색 등불을 동시에 하늘로 올려보낸단다. 그럼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수백 마리의 나비들이 춤을 추며 흩어지는 듯하더라며 호석이 감삼평을 늘어놓았다. 까만 하늘에 콕콕 박혀있는 노란색 등불이라. 상상만으로는 그 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감히 구현해낼 수가 없었다. 흑색의 깜깜한 세상도, 춤 추며 날아가는 노랑나비 같다던 등불들도 공주는 하나 제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 없었으니 오롯이 상상만으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말이다.
아, 그리고 또 한가지. 낮이라는 것에 꼭 필요한 해님처럼, 온통 암흑에 잠겨버린다는 밤을 위해 고운 빛을 내며 해님 대신 세상을 비춘다는 달이라는 것마저도 공주는 살아 여태껏 보지 못 했다. 하물며 이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 아님 호석이 저를 놀리기 위해 꾸며낸 것은 아닌지 헷갈리기까지 하다니까.

   

   


"우악!"

   

   


그때, 쿵- 둔탁한 땅울림과 함께 사람의 소리가 어디선가 터져나왔다. 두발을 팔랑팔랑 흔들며 여유로이 물장난을 치고 있던 공주는 낯선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벌떡 들어 주위를 살폈다.
별궁이란, 궁 안에서도 인적이 꽤나 드문 곳이었다.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제법 컸으나 이곳에 머무는 사람은 공주 하나, 그를 모시는 궁인들이 여섯, 별궁을 지키는 무병이 여섯. 딱 그뿐이었다. 아아, 공주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들까지 포함이 되려나. 어찌 되었든, 철저한 보안을 위해 최소한의 인력을 배치해 놓은 것이었다. 아니, 감쪽같은 은폐를 위해. 하물며 그마저도 식사를 내오거나 치장을 돕거나 탕약을 내올 때를 제외하곤 모두 휴게방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공주와의 사적인 대화도 일체 금지되어있었으니 몇 안 되는 그들의 이름조차 들어볼 수가 없었다. 제 아무리 별궁의 수칙이라고 한들 너무하다 싶기도 했다. 이 또한 공주를 위한다는 뜻깊은 왕의 명이시겠지. 거역할 수 있으랴.

하니, 이런저런 이유로 공주가 주로 여가시간을 보내는 이 야전에서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궁녀의 목소리도, 이곳에서는 꽤나 수다스러운 편에 속하는 호석의 목소리도 아니었으니.




"으아…."


 


담을 넘다 떨어졌는지 딱 보아도 공주의 또래만 한 사내아이가 자리에서 일어서 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아야야-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자의 모습에 공주 역시 몸을 얼른 일으키며 꼿꼿이 자리에 섰다. 호기심, 아니 그보다는 무서움이 더욱 먼저 떠올랐다. 별궁 밖, 것도 아니면 궁 밖에서 왔을까. 갑자기 뚝 떨어진 저 아이가 저를 헤치러 온 것은 아닌지 위험한 자는 아닌지. 그렇지 않은가. 공주가 왜 이곳에 갇혀 사는데. 별궁 밖은, 궁 밖은 공주를 헤하려는 포악한 자들이 넘쳐나며 뿐만아니라 험한 것들이 아주 많은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어머니와 호석이 수백번 강조했다. 그러니 지레 경계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
문제는 그것이 얼마 가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 든 감정은 무서움이 맞았으나 뒤이어 곧 따라붙은 것은 호기심이었다. 누구 하나 살갑게 말을 들어주고, 함께 웃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호석을 제외하고 말이다. 몇 안 되는 궁인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질까 무엇을 물어봐도 묵묵부답. 이건 뭐 잠시 들른 참새와 대화하는 것보다도 더 심한 정도였으니.
누누히 경고했던 외부인의 방문에도 금방 호기심이 돌고 관심이 생겼던 것은 사람냄새가 고팠던 공주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하물며 저와 비슷해보이는 저런 어린 아이가 정말 해가 될까 싶기도 했다. 아무런 힘도 없어보이는 작고 여리여리한, 그저 아이일뿐인데.

  

  


"괜찮아?"

  

  


공주는 더 참지 못 하고 발걸음을 사내 아이에게 옮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어딘가 다친 곳이라도 있는 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거든. 따끈따끈 달아오른 제 볼을 숨기느라 차마 얼굴을 쳐들지 못 하고 뻣뻣하게 굳은 것이리라곤 절대 모르고 말이다. 부끄러웠다. 바보같이 왜 발이 미끄러져선. 굴러떨어져 흙먼지를 뒤집어 쓴 창피한 꼴을 보이고 말았잖아. 처음으로 보인 모습이 영 멋스럽지 못 해 얼굴이 다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얼른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공주는 그 영문을 모를 테니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에 마냥 가만히 서서 그의 모습을 살필 뿐이었다. 시선이 점차 아래로 내려왔고 풀잎에 베인 것인지 앙증맞고 통통한 아이의 손등에서 송글송글 핏방울이 맺히고 있는 작은 생채기를 보았다.

  

  


"다친 거야?"

  

  


깜짝 놀라 물어오는 공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사내아이는 그제야 겨우 제 콧등이 보일 만큼만 빼꼼 고개를 들어 손등을 보곤 상관없다는 듯 이미 더러워진 군청색 도포에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아냈다.

  

  


"이, 이런 건, 별거 아니야!"

  

  


아이의 양볼은 더한 붉은빛으로 타올랐다. 다시금 고개는 저기 땅속에 박힐 듯 숙여졌고 그 모습에 공주에게 남아있던 모든 경계심이 순간 훨훨 날아가버렸다. 자꾸만 제 손을 등 뒤로 숨기려는 아이를 보며 공주는 손수건을 내어 조심스레 손을 싸매주었다. 그럼, 제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 하는 이런 어린아이가 내게 해가 될 리 없다.
순간 호석이 떠올랐기 때문도 있었다. 요즈음은 그 횟수가 더 잦아지는 것 같은데 호석 역시 곧잘 작은 상처와 함께 돌아왔다. 별궁 밖을 나갔다 돌아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팔이나 다리에 상처를 내왔다. 무예 수업을 받다 그리 되었다는데 조심 좀 하라 이르면 그저 가볍게 웃어넘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손수건을 내어주었고 호석은 다음 돌아오는 길에 붉게 물든 손수건 대신 하얀 새 손수건을 선물로 가져왔다. 그것도 항상 어여쁜 것들로. 너를 닮았더라, 하면서. 해서 이 손수건만 벌써 여덟 번째로 받은 것이었다.

아이는 피할 틈도 없이 제 손을 잡아오기에 차마 빼지도 못 하고 가만히 공주의 손길을 받고만 있었다. 비슷한 듯 하지만 저보다 미세하게 작은 몸에, 반짝이는 몇 개의 머리꽂이로 장식한 곱게 빗어 땋은 머리칼, 하늘하늘 흩날리는 연분홍색 치마, 흐릿하게 코로 들어오는 처음으로 맡아본 꽃내음까지.
하나하나 모든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으나, 이처럼 가까워진 거리가 처음인 아이에게 지금 상황이란 그저 꿈인가 싶기도 했다. 멍하니 정신을 놓아버릴 것도 같더라니, 정말 꿈인 건가.


  


 

"이 곳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래."

"… …."

"길을 잃은 거야?"

  

  


톡톡 몇번 두드리자 곧 백색 손수건에 붉은색이 묻어났고 미세하게 손을 잡고 있던 아귀의 힘이 풀리며 공주의 목소리가 둘 사이에 울렸다. 하며 몽롱했던 아이의 정신이 쨍- 하고 돌아온 것 같다. 아, 꿈이 아니구나. 처음 이곳을 발견한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단지 길을 잃어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넌, 누구야?"




궁금할만도 하지 않은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지, 사소한 그의 이름까지도. 벌써부터 공주는 아이에 대한 궁금증이 태산과도 같이 쌓여버렸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어쩌면 인연이지 않을까. 이 아이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나… 나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니면서 괜한 눈치만 힐끔힐끔. 이렇게 부끄럼을 잘 타는 성격이었던가. 아니, 난 그런 애가 아닌데 싶으면서도 몸이 제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말을 이렇게 더듬거리지도, 몸을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 이건 내가 아니다. 큼큼- 비장하게 목을 가다듬으며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아이는 그제야 공주와 똑바로 눈을 맞춰주며 입을 열었다.




"난, 첨의정승 김두형 대감의 아들 김태형!"




그럼 넌 이름이 뭐야? 당당히 제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난 뒤 속을 한번 더 쓸어내린 태형은 다시 한번 눈을 또렷하게 고쳐 뜨곤 공주에게 물었다. 언제 한번 말을 걸어볼까 했는데. 말을 걸 기회조차 올까 싶었는데. 늘 홀로 근심도 아픔도 없어 보이는 어쩌면 그림같고, 어쩌면 천상 같기만 한 이곳에서 살면서도 이따금씩 외로운 그 표정을 숨기지 못 했던, 그래서 더욱 이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 했던, 그래서 더욱 그 사연이 궁금했던.
너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야화." 

"… …." 

"야화라고 해."


 


 




 


 


 



-

"있지. 내 태몽은 어머니 대신 우리 아버지께서 꾸셨대.


그날따라 달님이 둥글고 커다랬는데, 꼭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나.


그때 아버지께서 서계셨던 곳이 월견초가 가득한 정원이었대. 달님이 저리 가까이 비추는데도 꽃망울이 꾹 참고 피지 않기에 오늘은 날이 아니다, 하시며 발을 돌리시려는데 하늘에 걸려있던 달님이 쿵- 하고 발밑으로 떨어졌다는 거야.


그리곤 그 달님이 반으로 쩍 갈라지더니,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던 줄 알아?


아주 크고 고운 노-오란 색의 월견초. 것도 방금 막 활짝 피었는지 물이라도 뿌려놓은 듯 초근하고 반짝반짝 광까지 나기에 깜빡 홀릴 뻔했다, 하셨대.

 


 


해서 내 태명이래. 야화."

 

 

 


"내가 태어나고 아버지께선 내 이름을 지어줄 새도 없이 나와 어머니를 이곳으로 보내셨어.


내가 너무도 여리고 작아서 바깥세상은 위험하다고.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없으니 어머니는 나를 계속 야화라 부르신 거야. 나도 이 태명이 썩 마음에 들었으니, 다행이지 않아.


후에 내가 더 자라 강인해진다면. 그때 아버지를 뵈옵고 지금이라도 좋으니 내 이름을 지어달라, 말씀드릴 거야.

 

 

 
그때까지, 나를 야화라 불러줄래?"


 


 
 


 


 






"못 본 새에 안색이 좀 밝아지셨나-."

"제가요?"

 

 


그전 호석이 별궁을 다녀간지도 한 주일이 훌쩍 지나버린 후였다. 왜 이제야 왔냐, 온갖 투정이란 투정은 모두 얹어놓았을 공주의 얼굴을 떠올리며 제 품 가득 선물 꾸러미를 안아 들고 당도하였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와 같이 호석을 반기기는 했으나 투정을 부리지도 미운 표정을 내비치지도 않더이다.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선물로 가져온 곶감과 가장 좋아하는 약과를 번갈아 오물거릴 뿐이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낯빛이 훤한 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있는 게지. 원체 낯빛이 어두운 편은 아니었으나 이리 기분이 붕붕 떠있는 모습은 호석에게도 꽤나 의아했다.

 

 

 

"예. 지금도 웃음꽃이 이리 만개했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겝니까?"

"그런 거 없는데…."

"제게도 숨기시다니 막 서운해지려고 하네-!"

 

 


공주는 올망하게 움직이던 입을 멈추고 도르르 눈알을 굴리며 말을 조심했다. 그에 호석이 별 의심 없이 넘길 수 있으려고. 뭔가 숨기는 것이 있으리라, 단박에 잡아내었다. 어딘가 어색한 모양새였으니. 가만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평소와 다른 점을 꽤 늘어놓을 수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나, 아! 잠시 별궁을 들린 새와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다는 것마저도 쪼르르 달려와 앵두와 같은 입술을 쪼무리며 전해주었는데 말이다. 그 작고 사소한 것들마저도 제게 있어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마냥 잔뜩 흥이 나선 말하고 싶어 했는데. 호석은 제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공주의 모습에 작은 놀라움과 서운함 또한 느꼈다.
근래 무예 수업이니, 글 공부니 자주 별궁에 들르지 못 하였으니 그 그리움에 호석은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한데 내가 느낀 그리움의 크기와 공주의 것에 커다란 차가 있을까 봐. 이젠 내가 별로 보고 싶거나, 반갑지 아니한가.

 

 


"어! 아니어요, 오라버니! 아무 일도 없습니다! 전 그저, 오라버니와 모처럼 이리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랬던 것뿐입니다!"

"참말입니까?"

"한 주일 만이지 않아요. 제가 더 서운합니다!"

 

 


하지만 되려 공주가 고운 입술을 삐쭉- 내밀며 더한 서운함을 표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손에 들었던 약과도 이미 뒷전이고, 삐친 소리를 늘어놓으니 호석이 그제야 빙글 웃으며 공주를 달랬다. 손에 다시 새 약과를 쥐여주며 그 앞에 몸을 접고 앉아 빗질을 해 반질반질한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침부터 호석이 온다는 소리에 벌떡 눈을 떠 분주하게 움직이며 채비를 했다고 옆에서 수발을 들던 궁녀가 전해준 것을 떠올리며 더욱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랬었지.
하니 제 앞의 공주가 어찌나 대견스럽고 귀엽던지. 그 자그마한 머리통에 넘치도록 꽂아 놓은 몇 개의 머리꽂이는 또 어떻고. 그걸 보며 제 감정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이러니 아무리 제 일과가 그 누구보다 바빴어도 이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금도 줄일 수가 없지. 큰일이다 아주, 큰일. 할 수만 있다면 내내 이곳에 머물렀을 텐데, 매 순간을 공주와 보내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호석이었다. 날 위한 마음은 넘치는 기대고 바람이요, 그 또한 무엇 필요하리. 이리 보고만 있어도 좋은 것을.

 

 


"그간 제 곁에 안 계셨으니 오늘은 저와 재미나게 놀아주셔야 해요. 아시겠지요?"

"예. 그러지요. 해가 질 때까지 그리하겠습니다."

"어쩐 일입니까? 정녕, 해가 질 때까지 저와 함께 있어주시는 것이어요?"

"싫어?"

"설마요! 좋다 못 해 이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 하겠는걸요!"

 

 


야호- 공주는 마루에서 폴짝 내려와 제 치마를 흩날리며 빙그르 펼쳐놓았다. 송화색의 동그랗게 펼쳐진 치마와 그 가운데 화사하게 반짝이는 공주의 모습이란, 가히 활짝 피어있는 월견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펄럭일 때마다 코로 연하게 들어오는 그 내음 또한 혹여 환상은 아니겠지, 착각까지 불러일으키면서.
그 모습이 행복에 겨워 화폭에 담긴 그림이었으면, 싶기도 했다. 그랬더라면 평온하고 행복하기만 한 이 날을 평생 간직할 수 있을 텐데.

 


고개를 넘어 해가 떨어질 때까지 별궁은 두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호석이 들려주는 별궁 밖, 궁 밖의 이야기. 공주가 들려주는 그동안의 별궁 속에서 일어났던 작고 사소한 일화들. 오랜만에 함께한 저녁 식사는 특별히 공주가 호석을 위해 고사리와도 같은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만든 모난 주먹밥으로.
그리고 평온한 오늘을 만들어 준 탕약을 마신 후, 공주가 깊은 잠에 빠지는 것에서. 저기 먼 고개 뒤로 해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온 세상이 어둠으로 덮히자 늘 그랬듯 언제나 곱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던 공주가 한순간에 흉측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까지. 호석은 그 모든 것을 공주의 옆에서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이제쯤 익숙해졌다, 싶으면 아직도 끼쳐오는 죄책감과 두려움, 연민과 같은 것들이 깊숙하게 찔러와 가슴 한편을 꽉 쥐었다. 호석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공주를 처음 본 날도, 그녀도 모르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본 그 날도.



실은 부탁에 가까웠지. 처음 왕의 명으로 별궁에 들어와 공주와 마주했을 때, 호석은 투명하고 맑은 연못에서 막 깨어난 어린 선아를 보는 것만 같았다. 다들 이 별궁은 도깨비나 온갖 잡귀들이 살고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라 하던데. 아마도 이리 작고 어여쁜 공주를 나쁜 것들로부터 지키기 위함일 거라 호석은 생각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라고.
꼭 그 모습에 매료되어 마음을 쉽게 연 것은 아니었다. 연민, 동질감. 그런 것들 때문이었을까. 사실 어느 한 곳 비슷한 점이 없음에도 꼭 저를 보는 것 같아 가여웠다. 곁에 돌봐줄 부모가 없다는 것,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점은 어느 정도 비슷한 사연이려나. 난 두분 다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아직 한참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어 외로움에 사무친 가엾은 공주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기댈 품이라도 되어주고 싶었다. 내게도 힘들었던 그 시기에 곁에 함께 있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으니까. 그때 호석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던 것이 석진이었다. 그래,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달려와 정작 어린 공주를 보듬어줄 수 있으나 또한 그럴 수 없는 그녀의 친 오라비 석진 말이다. 대신 공주는 호석을 곧잘 오라비라 부르며 따랐으니 어찌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이 작고 여린 아이를 매정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도록 벗으로, 오라비로, 또 아비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공주는 가끔 알 수 없는 물음을 가져왔다. 맞아, 영 이상한 질문들을 해대곤 했지. 달은 어떻게 생긴 것이냐, 밤이란 것은 낮과 어떤 것이 다르냐, 그때 사람들은 무얼 하느냐. 의아함을 표하기도 전, 공주는 제 물음들에 대한 이유를 먼저 늘어놓았다. 참도 신기하게, 해가 지는 때가 오면 요술이라도 걸린 듯 잠이 솔솔 쏟아져 만물이 어둠에 잠기는 밤이란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 하였다고 그리 말했다. 한치 거짓도, 장난도 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눈으로 호석을 똑바로 보며 분명 그리 말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지. 공주의 말을 믿지 못 했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 얼마나 잠이 많으면 그와 같이 살아올 수 있지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보지 못 했다면 보게 해주면 되는 것. 또 참지 못 하고 니가 잠들어 버리면 내가 깨워줄게. 두 손가락 꼭꼭 걸고 함께 기다려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해가 채 지기도 전, 별궁 안 모든 사람들은 공주가 잠들어 있는 침소로부터 물러나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출입을 금하는 것이 이곳의 규율이요, 왕의 명이었다. 호석 또한 공주가 아닌 외부인에 속했으니 빠짐이 없어야 했다. 하나 끈기하면 호석이었고, 다른 방도야 찾으면 될터. 공주를 위해서라면 무엇 못 하리 그 작은 몸뚱이를 요리조리 굴리며 몰래 숨어들었던 것이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며 호석은 까만 밤보다도 짙고 영롱한 눈동자를 꽁꽁 가둬버린 공주의 눈꺼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혹 니가 평생 돌아오지 못 한다 해도, 꼭 곁에서 지켜줄 거야. 내 평생을 너에게 바쳐야 한다 해도, 그리할 수 있어.



호석은 곤히 잠이 든 공주를 꽤 오랫동안 눈에 담은 후 별궁을 빠져나왔다. 공주가 매일을 머물러 있는 따사로운 별궁에 비해 어째 그 밖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이 늦은 시각까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한데 혹 낯선 자가 이곳을 들었던 적은 없었는지요?"


 


아주 조금 전만 해도 공주를 보며 희미하게 띄웠던 따스한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이었던 듯, 그 문을 나서자마자 닿으면 얼어버릴까 차디차게 굳힌 얼굴로 별궁을 지키고 있던 호위병에게 호석이 물었다.
공주가 전처럼 별궁 밖의 이야기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이 다른 누군가 이곳을 드나드는 이가 있을 거라고. 내내 굴려보아도 답은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공주라면 자발적으로 제 세상인 이곳 별궁을 나서지도,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혹 호석의 짐작이 틀렸다 하더라도 조심을 해서 나쁠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웬 낯선 자를 말씀하시는 겝니까? 하루 밤낮을 이곳에 서서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지 못 했는 뎁쇼."

"그럼 누군가 지나다닐만한 개구멍 같은 것은요?"

"아이고, 큰일 날 말씀입니다! 그런 게 있었다간 저희 목이 날아갑니다!"

"그럼 다행입니다만. 만일을 대비해 보초를 더 엄히 봐주세요. 또한, 이곳 별궁의 담이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더 높다하여도 혹여 누군가 작정을 한다면 쉬이 넘을 수도 있을 터이니 그 또한 주의해 주세요."

"예, 그럽죠."

 

 


호석의 날카로운 직감이 맞아 누군가 공주와 접촉을 하고 있다면, 아직은 공주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지 않을지 모르나 후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미리 싹을 자르려는 것이었다. 작은 불씨를 무시했다 후일에 더 큰 화가 일 수 있음이라.
만일 공주에게 위협이 된다면 그 누구라도 주저 말고 목을 베어버려야지, 호석이 무예 수업을 가장 열심히 듣는 이유였다.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게다가 공주의 낯빛이 나날이 좋아진 것이 꼭 그것과 연관 있는 것 같아 무언가 찜찜하며 울렁이는 것을 그는 느꼈다. 언제까지고 무탈하니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나날에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 것이야.

 

 

 

 

 

 

 

 

 

-

"짠-!"

"우아!"


 


야전 내엔 이름 모를 여러 꽃풀들이 넓게 둘러진 정원과 그 한 가운데에 선선하니 바람이 잘 돌고 꼭 화폭에 담겨 있는 듯 썩 근사한 정자가 있었다. 근래 그 명당의 주인은 호석이 아닌 태형으로 바뀌었는데 오늘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더라. 자리에 알맞게 들어앉은 태형은 일단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를 위해 남겨두었던 간단한 다과들도 미뤄놓은 채 뭐가 그렇게 바쁜지 널브러뜨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형형색색의 온갖 장신구며 난생처음 보는 진귀한 물건들이라니 눈이 제대로 부셨다. 별궁 담을 넘기 전 보자기에 꽁꽁 싸 목에 걸어두었던 것을 마침내 공주 앞에서 풀어내며 하나하나 소개하는 태형은 어깨를 으쓱 세웠다. 궁 밖을 나서지 못 하는 공주 대신 곳곳을 돌아다니며 하나씩 사들여 귀중하게 보관했두었던 것들이었다. 그에 얽힌 이야기들까지 덧붙이면 금상첨화요. 이걸 보며 기뻐할 공주 생각에 전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 하며 이불을 죄다 걷어차다, 방안을 굴러다니다 닭 우는소리까지 들었는데.




"이것은 요즘 궁궐 밖 여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머리 꽂이래. 바다 건너 먼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보석 그… 이름이…, 하여튼 그게 박혀있다고! 내가 홍이에게 부탁해서 구해온 거야. 큼, 이거 구하기 힘든 거라고 했어!"

"정말 유명하기는 한가 봐! 오라버니도 이와 비슷한 머리꽂이를,"

"또?"

 

 


한데 이번에도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것도 늘 그랬듯 그녀의 오라비라는 사람에게. 실은 그 대단한 오라비라는 사람은 진짜 그녀의 오라비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 그녀를 보살펴 주고 가끔 이곳을 들여다보는 것이 다일뿐, 근래는 그것도 잦아들어 태형이 더욱 자주 드나드는 것이 아니냐고.
그 얼굴은 몇 번 본 적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궁에 들어올 때면 세자 옆에 꼭 붙어 있던 저보다 몸집이 아주 조금 더 큰 사내를 보고 단박에 알아차렸다지. 세자와 친형제와도 같이 지냈다나. 그래봤자 몰락한 가문의 자식이 아니었던가. 임금의 덕이 아니었으면 이곳엔 발도 들여놓지 못 했을뿐더러 공주와 평생 만나보지도 못 했을지 모른다. 그런 자가 하물며 공주에게 살갑게 오라버니, 란 호칭을 들으며 자유로이 이곳을 드나들다니 태형은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위해 몇 개의 담을 넘다 깊지 않은 상처를 내는 것은 다반사요, 만일 발각이라도 된다면 그 후의 일은 어림짐작도 못 한 채 죽을 각오까지 하고 있는 나에 반해 너무 쉽지 않냐고. 공주를 보기 위해 생고생을 한다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호석과 다름에 있어 열이 나는 것이었다.
별궁이 금지된 곳임은 태형도 익히 들어 아는 사실이었으니, 태형은 공주에게 미리 입단속을 시켰다. 내가 이곳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면 안 돼, 알겠지? 공주 또한 별 물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석이 예부터 외부 사람을 끔찍이 경계한다는 것은 공주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으니. 아직도 가끔 궁 내에서 호석과 마주치면 태형은 입 꾹 다물고 티 하나 내지 않았으며, 공주 역시 태형에 대한 언지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했으니 공주의 돌아오는 말에 태형은 신이 나 마구 승천하고 있던 눈꼬리와 입꼬리를 금방 떨어뜨린 채 입술을 불뚝 내밀며 눈썹 안쪽을 찌푸려 버렸다. 매번 같지 않으냐, 매번. 그 어떤 화려한 노리개도, 소려한 자수가 놓아진 댕기도. 언제나 태형보다 한발 앞섰다. 차마 부끄러워 그리 말했던 것이지 홍이에게 부탁은 무슨, 아버지께 혼이 나더라도 직접 공주와 닮았다 싶은 어여쁜 것들을 찾아다녔다. 이걸 구하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마치 그 가치가 뚝- 하고 저기 밑 차디찬 땅속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먼저 주고 싶었는데. 이번엔 꼭 먼저 주고 싶었는데. 칭찬을 받거나, 과시를 하거나, 자랑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기뻐하는 그 얼굴을 한번, 날 향해 펼쳐주는 그 웃음꽃 한번. 그것을 원했던 것인데.

 

 


"그렇지만 이것이 더욱 마음에 들어!"

"정말?" 

 

 


세상이 망하기라도 듯 시무룩해져 팔팔 넘치던 기운을 쏙 빼놓으니 공주는 절로 그런 소리가 터져버렸다. 그 한마디에 금세 다시 입꼬리를 하늘 높이 승천시키니 어찌 그 모습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있겠어. 공주도 결코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보따리를 채워왔는지, 어떤 기분으로 저를 찾아온 건지. 매번 호석이 선수를 치는 것에 때론 화도 나고 서운하고 실망하며 기분이 상하고 야속하여 투기 어린 마음까지 품고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를까.
하니 불쑥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으니 저렇게 덛붙인 것이다. 딱히 거짓도 아니었다. 모두가 제 맘에 쏙 들었으니까.

 

 


"정말이지! 지금 해보아도 돼?"

"그럼! 아, 내가 해줄까?"

"응!"

 

 


아등바등 제 모습이 보이지 않아 엉뚱한 곳으로 찔러 넣고 있는 모습에 곱게 빗어놓은 머리가 헝클어지기라도 할까 태형이 그 앞에 손을 내밀었다. 그의 제안을 딱히 거절할 필요가 없었으니 공주는 얼른 머리꽂이를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앞에 털썩- 앉아버렸다. 제법 신이 나 어깨를 들썩이는 공주에 비해 태형은 씁- 숨을 들이켜다 어째 머리 꽂이를 받아든 그 손 그대로 몸이 꼿꼿이 굳어버렸다.
팔랑이는 치맛자락 하며, 흩날리는 머리칼 하며. 가까이 끼쳐오는 향긋하고 달큰한 내음에 순간 아찔했던 게지. 그 내음이란 담상에 놓인 달달한 약과의 것도, 정자 주위에 활짝 피어있는 향기로운 꽃풀의 것도 아니었다. 그건, 글쎄 뭐랄까.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이끈 환각과 같은. 그래 그때도, 아니 다른 때에도 몇 번 느낀 적이 있었다.

그 뭐가 되었든, 깜빡 꿈이라도 빠진 듯 멍멍한 태형은 응?, 하는 공주의 목소리에 겨우 제 상태를 깰 수 있었다. 그새 말라버린 입술을 침으로 한번 닦아낸 뒤 조심조심 꽂이를 공주의 땋은 머리에 꽂아 넣었다. 손은 왜 이리 떨리는지. 몸은 왜 이리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움직이는지. 제 양볼 또한 땃땃한 게, 가슴 한 편까지 저릿했다.

 

 


"다 되었어?"

"으, 응."

"어때? 제법, 어울려?"

 

 


그런 태형의 상태를 전혀 알리 없는 공주는 늘어가는 시간을 참지 못 했다. 잘 맞아들어갔는지 손으로 더듬더듬 그 자리를 찾아보곤 몸을 일으켜 요리조리 움직여보았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노라면, 태형은 언제 긴장을 했냐는 듯 그저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리 잘 어울리면 어떡해. 꼭 공주를 위해 만들어 놓은 듯, 그 자리가 제 자리인 듯했다. 하며 그 주위에 분홍색 꽃비가 내리는 듯도 한데, 진정 환각이라도 보는 것은 아닌지 태형은 벅벅 눈을 닦아보았다.
 


 

"태형아?"

"… 있지 말야. 내가 장담하는데 아마 공주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여쁠 테야."

"… …."

"두 나라를 다 합쳐도, 아니 그 어느 곳에서도 가장 어여쁠 테야."

 

 


환각은 아닌 것 같은데. 오롯이 저만을 바라보며 은은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건네는 태형의 말에 공주는 얼른 고개를 푹 숙이며 팔랑이던 몸을 멈추었다. 제 볼이 부끄럽게도 화끈거리는 것을 숨기기 위함이겠지. 더는 서있지 못 하고 다시 자리에 얌전히 앉아 공주는 하염없이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낯부끄럽게 저런 말을 잘도 한다니까. 한두 번 당해본 것이 아니었다. 어찌나 달디단 발림말을 잘하는지 뻔뻔스럽고 능청스럽게 그런 말들을 곧잘 뱉어 사람 민망하게 하는 데에 특기가 있었다. 사실 그런 달콤하고 살랑거리는 말들은 저에게만 하는 것인 줄은 눈곱만치도 모르고 있겠지만.

 

 


"… 아, 아!"

 

 


깜빡 그 모습에 홀려 저도 모르게 뱉어 놓은 말인 것도 아마 공주는 모를 것이다. 잔뜩 열이 오른 제 모습을 숨기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니 태형이 뒤늦게 방금 제가 뱉은 말을 되뇌다 눈을 꼭 감고는 그 입을 착착 때리는 것도 알아챌 리 없었다.
뻔뻔스럽고 능청스럽게 그런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었다. 늘 자신도 모르게 내어버리는 본심이었단 말이다. 제 진심을, 마음을 아무도 보지 못 하게 꽁꽁 숨길 능력은 그에게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티가 났고,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리기도 했다. 그만큼 솔직했던 것뿐이었다.


사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지금처럼 넋을 놓았었다. 아버지를 따라 궁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푸르고 높은 저기저 하늘과도 같이 넓은 궁 안은 당최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쏘다니다 결국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다 궁 깊은 곳까지 다다르게 되었던 것이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면 궁이 더 훤히 보일까 그 작고 동그란 몸으로 끙끙 올랐던 곳이 하필 별궁 담이었다지.
그곳에 올라 별궁 안을 쭉 보는데, 무언가 다른 곳들과는 풍겨오는 기운이 썩 다르지 않겠어. 그 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안으로 향했고 곳곳을 헤집고 다니다 공주가 가장 좋아하며 자주 머물렀던 곳인 야(夜)전 앞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가장 높은 담이었음에도 꼭 올라보고 싶은 마음에 끙끙 그 어린 것이 담을 올랐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작고 고운 달. 까만 밤 하늘의 달처럼 그 모습이 너무도 오색 영롱하고 향긋해서 깜빡 넋을 놓아버릴 뻔했다. 가만히 담벼락에 매달려 그 모습에 홀려있었지. 그 후로도 몇 번이고 그 달이 생각나 그곳을 찾곤 했다. 그렇게 몰래 숨어만 보던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 안으로 떨어졌지만, 어쩌면 그건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길을 잃어버리길, 그 안으로 굴러떨어지길 잘 했다고. 그래, 이건 운명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필 이곳을 발견한 것도, 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리고 지금 이 시간들도.

 

 


"어…, 그. 그것보다!"

"응?"

"내가 제일 주고 싶었던 건…,"

 

 


그리고 둘 사이 얼마나 어색하고 낯부끄러운 바람이 불었을까, 중요한 무언가가 떠오른 태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전해줄 선물들이 더 남아 있으니.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장 주고 싶었던, 가장 귀하게 보관해 두었던.

 

 


"비녀라는 건데, 호… 혼인한 여인만 쓸 수 있는 거래."

"아, 어머니께서 머리에 쓰시는 걸 보았어. 그러고 보니 이것을 본 지도 한참이 되었네."

"이건 아직 받지 않았지?"

"응. 나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그때까진 쓸모가 없을 테니까."

"다행이다."

 

 


그제야 후-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 사실 걱정을 꽤 했거든. 이것마저 호석에게 뺏겨버리면 어쩌나. 정말 중요한 건데. 내게 정말 의미 있는 건데.
밤에도 안고 잘 듯 가장 소중히 다루었던 옥이 박힌 은비녀를 공주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제겐 아직 필요가 없는 그것을 받아 손에 꼭 쥐며 공주가 촉촉하게 빛나는 눈으로 태형을 보아도 그는 눈길을 피하며 여기저기로 돌돌 굴릴 뿐이었다. 얼굴엔 다시 붉은 기가 도는 것이 그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긴 있는 것이지.

 

 


"마, 만약에 혼인을 한다면…, 그때까지… 이걸 가지고 있어 주겠어?"

"혼인?"

"응. 혼인!"

"… …."

"나랑 혼인하면,"

"… …."

"그때. 그때 내가 꽂아줄게."




이내 굴리던 것을 멈추고 단단하게 굳힌 눈으로 그녀와 맞추어 바라보며 태형은 말했다. 어디 다른 곳은 보지도 못 하게 시선을 꽉 잡아오며 흘러가는 시간 또한 꼭 쥐어 잠시 멈춰버린 듯하였다. 마치 하늘에 동동 떠있는 듯도 하였다. 거짓으로 하는 말도, 장난으로 하는 말도 아니었던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찾으려 해보아도, 나오는 답은 그뿐이었다. 제 연정을 서툴게 고백하는 것이었다.
함께 해달라고. 너를 좋아한다고. 너도 그렇지?




"응. 꼭 내게, 해줘야 해."




때를 맞은 매화가 활짝 피어 바람에 그 꽃잎이 훨훨 단비처럼 내리는 때였다.


 

 

 

 

 

 

 

 

 

 

 

 

 

 

 

 

 

사극뽕이 차올라서....  

요즘 방탄 글잡도 되게 침체기인 것 같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도 안 보셔도... 그래도 저는 올려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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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 1편부터 대작느낌 가득한데 왜 댓글이 하나도 없는지ㅠㅜ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 기대할꼐여ㅠㅜㅠㅜㅠㅜㅠㅜ 좋은글 부탁드려요ㅠㅜㅠㅜㅠㅜㅠ
7년 전
판타판다
그렇게 저는 혼자 열심히 연재를 하는 거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이렇게 봐주시는 분이 계시니까요ㅠㅠㅠㅠ 감사합니다!
7년 전
비회원175.114
전 봅니다!!!! 왕 사극물 엄청 좋아하는데ㅠㅠㅠㅠ 와주셔서 감사해요!!! 다음화에서 뵙겠습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7년 전
판타판다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 저도 요즘 사극에 푹 빠져서ㅠㅠㅠㅠㅠㅠ 네! 제가 더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2
제가 글잡 사극물밖에 안보는데 이런 대작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읽자마자 바로 신알신 눌렀습니다ㅠㅠㅠ기대하고 볼께요 이런 작품 감사드려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화이팅♥♥
7년 전
판타판다
화이팅!!!! 열심히!!!꿋꿋이 쓸거랍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3
아무도 안본다니요! 와 대작 냄새 ❤❤❤❤❤❤ [새싹]으로 암호닉 신청하고가요!! 소재진짜완전 신선하고 글도잘쓰셔서 짱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단군신화같은거 보는 기분이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잘 부탁드립니다 신알신 꾹
7년 전
판타판다
우아 암호닉을 신청해주셨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제게도 암호닉이 생기는 군요ㅠㅠㅠㅠㅠㅠㅠㅠ 안 그래도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하기도 했는데 알아봐주시니 더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4
헐... 왜 이렇게 필력 좋은 작품이 왜 여태 초록글도 못 가고 있는거죠.. 하아.. 완전 진짜 너무 잘쓰세요..! 언젠간 작가님의 필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올거라고 믿고 신알신 하고 갑니다 ㅠㅠ [슈가코팅] 으로 암호닉도 신청하고 가요!

참 아쉬워요. 필력 좋은 분들은 이렇게 존재하는데... 왜 다들 못 알아보는지.. 그래도 작가님 꾸준하게 글 써주세요 ㅠ

7년 전
판타판다
어휴 아닙니다ㅠㅠㅠ 제가 부족한 탓이겠죠! 그래서 전 초록글에 연연하지 않고 제가 쓰고 싶은 글 계속 써내리려구요ㅎㅎㅎㅎ 어차피 이 글도 제가 보고 싶어서 쓰는 거였고 하하하 우아 암호닉이 또 한분 늘었네요! 감사합니다ㅠㅠ 그럼요! 꾸준히! 완결까지! 끝까지 써야죠!!
7년 전
독자5
작가님 죄송한데 그 세자빈과 군주가 힘을 다하여 라는 문장부터는 군주가 아니라 공주라는 단어를 쓰시는게 많은 분들이 이해하시기 쉬울것 같아요 ㅠㅠ 만약 기분나쁘셨다면 죄송해요 ㅠㅠ
7년 전
판타판다
안 그래도 군주라는 말이 계속 걸렸는데...ㅠㅠ 하필 세자의 딸을 군주라 불렀을까여.... 아니요 전혀 죄송하지 않으셔도 돼요ㅠㅠㅠ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한걸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쳐야 할까요...
7년 전
독자6
아 세자의 딸을 군주라고 했군요ㅠㅠㅠㅠ 제가 한 수 배웠어요 ㅠㅠ 저는 그런것 도 모르고 그러면 이름을 넣는건 어떠세요?
7년 전
판타판다
야화라는 게 정식 이름이 아니라 이름이 없어 그냥 그렇게 불리는 거라서 그리 쓸 수는 없고 그냥 단어 설명을 해드리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ㅠㅠㅠ 피드백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7
사극좋아여ㅠㅠ내가 사극좋아하는건 어떻게 아시곻ㅎㅎ취향저격(탕탕) 빨리 다음편 보러 가야겟당 히힛
7년 전
독자8
신알신....대작이다..!!대작이나왓어....지금 영심히 주행중이에뇨ㅠㅠㅠㅠㅠㅠ작가님가랑합니다
7년 전
독자9
헐 이런글을 이제서야 보다니...ㅠㅠㅠ정주행 하러갑니다..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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