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알친구. 나와 김태형의 사이는 한 단어로 충분하다. 딱히 더 할 말도 없는 사이. 김태형이 나라면 나는 김태형이라는 그런 아주 간단명료한 사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서로 못 볼꼴도 다 보고 모든 비밀을 다 안다고 자부심이라는 하찮은 감정을 가지기에 우리는 충분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입학하며 졸업했고, 심지어 대학교까지 같이 우리는 그냥 친구라는 선이 아닌 이제 한 가족이 된 느낌과도 같았다. 그만큼 나와 김태형에게 남녀라는 관계보단 친구라는 관계가 더 앞서 나갔다고.
김태형과 나는 ‘너희 둘이 도대체 무슨 사이야?’ 라는 질문을 제일 싫어한다. 친구라는 관계에서 그 질문을 받을 때면 나와 김태형은 서로 깊은 한숨을 뱉으며 말한다. 그냥 친구사이야. 중학교를 올라와서도 고등학교를 들어와서도, 심지어 대학교에 올 때까지 지겹게 들은 질문에 ‘너희 무슨,’ 이런 말이 뱉어질 때마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친구사이. 라고 말했다.
김태형이 맨 처음 몽정을 한 나이도 알고 있고 김태형이 포경수술 한 날도 알고 있다. 그리고 김태형도 나도 모르는 월경을 한 나이도 알고 있고, 내 생리주기까지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남매처럼 가까운 사이이며 서로보다 더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녀사이보단 친구사이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성인이 된 첫 날, 서로 ‘우리 이제 성인이야! 씨이바아!’를 외치며 도수 낮은 이슬톡톡을 마시며 아예 취한 날 나는 김태형에게 물었다.
야, 우리 무슨 사이냐?
내 질문에 김태형은 풀린 눈으로 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무슨 사이기는. 존나 좋은 친구 사이지.
김태형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땐 그냥 웃음이 나왔다. 죽을 때 가장 친한 친구를 생각할 때 서로의 이름을 먼저 떠올린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서. 그런데 이젠 그 추억을 떠올려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좋은 친구 사이라는 말이 무척 내 가슴에 깊게 박혀온다.
나는 이제 김태형은 좋은 친구로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불알친구의 관계 정리 : 01
W.몬그
김태형의 첫사랑은 무척 스펙타클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반반하게 생긴 얼굴로 많은 인기를 얻은 김태형의 뒤는 졸졸 따라다니는 여학생들로 가득 찼었다. 발렌타인데이는 물론이며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로즈데이 가릴 것 없이 과한 선물 공세를 받는 김태형이었다. 물론 그 선물의 대부분은 내 배와 김태형의 배에 직행했지만. 아무튼 김태형의 첫사랑은 김태형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 2학년에서 가장 퀸카라고 불리는 선배와 사귀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땐 김태형이 나보다 솔로 탈출한 것에 대해 치를 떨었지만.
김태형은 나에게 첫사랑이 시작되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선배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었다. 그럼 난 대충 답하고 끝이었다. 김태형의 첫사랑이자 첫 연애는 단 일주일 만에 깨지고 말았다. 그 이유라고 말하자면 쉬는 시간에 선배는 날 부르더니 김태형과 작작 다니라며 경고를 날렸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엉엉 하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안 김태형은 그 선배를 찾아가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우리 탄소 괴롭히지 마! 라고... 그리고 나와 김태형은 2학년 선배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고 말았지.
그렇게 나와 김태형은 지금까지 지내면서 서로 사귄 애인 수, 싸운 이유,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서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서로 못 볼꼴, 흑역사 등 대부분 인생의 쪽팔림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 모든 치부를 알고 있는 김태형이 모르는 건 딱 하나이다. 내가 김태형을 예전과 다르게 본다는 거. 사실 언제부터 김태형이 다르게 보인 건지 잘 모르겠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 예전부터 코트보단 패딩이 최고라면서 나와 놀 때도 패딩을 고집한 김태형이 처음으로 코트를 입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때부터 김태형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대학교에 와서 동기는 물론이며 선배들한테도 인기 많은 김태형을 볼 때마다 예전 고등학교 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상황인데도 괜히 불편하고 웃는 낯짝의 녀석이 싫었다.
“야, 오늘 선화선배가 밥 사준다는데 너도 갈래?”
“뭐래, 선화선배는 너랑 같이 먹고 싶은 거지. 나랑 같이 먹고 싶겠냐?”
“너 밥 안 먹었잖아. 혼자 못 먹으면서.”
“이 자식이 난 밥 사줄 선배 없는 줄 아네? 어, 윤기 선배!”
“너희들 또 붙어있냐?”
"선배 안녕하세요!”
“아, 선배. 김태형이 선화선배랑 같이 먹어서 저 혼잔데 밥 같이 드실래요?”
“네가 사준다는 전제하에.”
“야! 내가 같이 먹자고 했잖아!”
“됐거든. 선배 가요! 제가 밥 살게요!”
오. 개이득. 야! 김탄소! 나와 선배는 김태형을 두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좀 살 거 같네. 김태형과 같이 있을 때면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고 모든 감정이 꾹 눌러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요즘 들어 서로 같이 있는 시간보단 다른 사람과 있는 시간을 더 찾는 편이었다.
“선배,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나 밥 먹었는데.”
“에? 밥 드셨어요?”
“어, 근데 네가 자리 피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너 혹시 김태형 불편하게 느끼냐?”
네? 아니요? 걔랑 같이 있는 날이 몇 년인데 제가 왜 불편해 해요? 하하... 윤기 선배의 질문에 덥지도 않은 날씨인데도 땀이 날 거 같다. 저 선배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문제야. 심각하다고! 선배는 부정하는 나를 보며 특유의 표정을 지은 채 볼을 긁었다. 그래, 뭐. 근데 너 밥 뭐 먹을 거냐. 그냥 간단히 학식 먹어. 선배의 말에 딱히 허기진 게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곤 식당으로 향했다.
“야, 근데 너 김태형 좋아해?”
“네, 억, 으...”
켁, 켁! 선배의 말에 목으로 넘기던 국물에 사례가 결리고 말았다. 선배는 얼굴이 빨개지고 눈물이 고인 내 모습을 보더니 물을 건네줬다. 목으로 넘어가는 물에 잦은 기침이 멎어졌다. 그냥 물어본 건데 뭘 그렇게 당황 하냐? 선배의 무미건조한 말에 이번에 체할 거 같았다. 선배, 당황할 만하니까 당황하는 거 에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다시 물을 들이켰다.
“그... 근데 왜 물어보신 거에요?”
“요즘 김태형을 보는 표정이 다르시 길래.”
“다르기는 무슨...”
“아니면 말고. 근데 너 그러니까 진짜 속마음 들킨 거 같잖냐.”
선배, 장난 그만치세요. 저랑 김태형은 온리 친구사이. 프렌드! 내 말에 선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휴대폰을 쳐다봤다. 괜히 긴장했네. 정말 내 치부를 들킨 거 같아 얼굴에 열이 올랐다. 사실 김태형을 좋아한다는 마음 있는지 없는지, 나도 잘 모른다. 그냥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좀 더 남자다워진 김태형을 보고 느껴진 낯선 감정이 김태형의 분위기에 나온 새로움인 건지, 아니면 내가 김태형이 더 이상 친구로 생각하지 않다는 건지. 복잡한 마음에 두통이 오는 기분이다. 그냥 단순한 위화감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김태형이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됐을 때 느끼게 된 위화감 말이다.
*
*
*
“야, 내일 무용학과랑 과팅 잡았는데 할 사람?"
“나! 나! 나! 선배 나요!”
“김태형, 시끄러.”
과팅이 그렇게 좋냐? 석진 선배의 말에 발광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 켠이 뒤틀렸다. 따끔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 거 같은 그럼 아픔. 이런 감정이 김태형을 보면 나오는지 나도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지금 웃고 있는 김태형의 얼굴이 싫다.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과팅, 과팅. 노래를 부른다.
“그럼 김태형 너도 나가는 걸로 안다? 내일 3시 학교 앞 카페 알지? 거기로 나와.”
“네!”
“...”
김태형의 밝은 목소리에 기분이 더욱 안 좋아졌다. 머리를 복잡하고 마음은 따끔거린다. 나도 왜 김태형이 과팅 하는데 기분이 안 좋은지 모르겠고, 그런 김태형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따끔한 것도 모르겠다. 그냥 무지의 바다에 빠진 느낌이다. 축축하고 찝찝한 느낌. 김태형이 연애할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야, 무용과라니 대박이지 않냐?”
“어, 대박이다.”
“진짜 쩐다... 와 무용과...”
김태형을 계속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 가게? 응. 그럼 데려다줄게. 김태형을 거절하고 싶었다. 근데 두 입술을 각자 붙어진 채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미 몸도 나갈 준비를 하는 녀석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김태형과 함께 자취방으로 향했다.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지 부쩍 쌀쌀해진 밤공기가 유독 차갑다. 야, 추워? 김태형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형이 자신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건넸다.
“이 오빠는 아무 여자한테나 옷 벗어주는 남자 아닌데 너한테만 특별히 해준다.”
“뭐래.”
김태형의 농담에 대충 받아치며 웃었지만 심장 쪽이 잘 못된 건지 어느 한 쪽이 계속 뜨겁고 빨리 뛴다. 가디건에 남은 김태형의 체온에 얼굴이 붉어진다. 밤이라 다행이지 낮이었으면 녀석에게 놀림감이 될 게 뻔하다. 김태형과 걷는 거리가 유독 짧게 느껴진다. 기분탓이겠거니 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자취방이 아쉬웠다. 통학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쉬워진다. 녀석은 자취방으로 향하는 동안 방긋 웃으며 떠들었다. 내일 과팅 때 뭘 입을 것인지, 코디 정해달라느니. 등등 기대하는 김태형의 모습에 억지로 웃고 있는 광대가 아파왔다. 무용과면 예쁜 여자 엄청 많겠지. 다시 추락하는 기분이다. 어느새 자취방 앞까지 오게 됐고, 마침 김태형의 말도 끝났다.
“다 왔네. 집에 잘 들어가고, 내일 연락할게! 점심 같이 먹자.”
“어, 그래.”
“그리고 과팅 코티 해줘야하는 거 알지?”
“어...”
“잊지 마! 알겠지?”
“저, 김태형.”
“어? 왜?‘
“그게...”
너, 과팅 안 나가면 안 돼? 말을 기다리고 있는 김태형에게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아니, 잘 가라고. 시답잖은 내 말에 김태형도 푸스스 웃으며 손 인사를 하곤 뒤돌았다. 멀어져가는 김태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취방 건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김태형과 나는 단지 친한 친구 사이일 뿐이니까. 김태형이 미팅을 하든지, 과팅을 하든지, 소개팅을 하든지. 내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신경 쓰면 이상한 부분이기에. 하루가 김태형 때문에 즐겁고 김태형 때문에 울적하다. 녀석이 내 감정선을 가지고 노는 느낌이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김태형을 보다 주저앉았다. 내가 정말로 김태형을 좋아하는 구나.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김태형의 웃음이 보고 싶은 것이.
몬그의 LOG |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글잡에 오게 된 몬그라고 합니다. 불알친구의 관계 정리는 사실 공부다가 갑자기 떠오른 소재라서 급하게 틀 잡고 오늘 너무 쓰고 싶어서 결국 지르고 말았네요! ^ㅁ^ 첫 작품이라 떨리는데 첫 편부터 너무 재미없어서 걱정되네요 8ㅁ8... 하지만 이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재미있어 질 거니까 기대해주세요! ^ㅁ^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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