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기현 - 바다를 보면 잊혀질 것 같다
| ONE MORE TIME |
by.팊 “ 태환아. ” “ 예? ” “ 에이전시 쪽에서 연락 왔는데, 오늘 좀 보자고 하더라. ” “ 갑자기 왜요? ” “ 글쎄. 오늘 오전 훈련은 여기서 접자. ” “ 예. ” 물 속에서 나와 수모를 벗고, 젖은 머리를 흔들며 털었다. 2012년은 어찌보면 내 생애 최악의 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명백히 내가 실수를 했었던 과거와는 달리, 실수가 없는 내게 실격처리가 떨어지고, 그속에서 나는 솔직히 마이페이스를 잃었다. 그 결과 금메달은 물건너가고,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은메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날의 일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괴로운 일이였다. “ 형, 제가 부탁한 자료들은요? ” “ 아, 여기. 너 임마, 여자친구 만들고 싶다며? 선수들 자료 모으지말고 차라리 좀 밖에 나가놀아라. ” “ 금메달 따왔었으면 그러고 있었겠죠. ” “ …아직도 그때 일 생각하냐? ” “ 안하려고 노력해도 안되는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 “ 태환아. ” “ 아아, 됐어요. 자료 고마워요. USB는 내일 돌려줄게요. ” “ 어휴. ” “ 저녁에 봐요, 형~ ” “ 아, 근데 태환아. ” “ 예? ” “ 쑨양, 걔 국내 대회에서 또 순위 다 휩쓸었다더라. ” “ 아‥, 그래요? ” 고개를 떨구며 수영장을 나와 대기중인 차에 올라탔다. 아직 덜 마른머리가 얼굴에 늘러붙어왔다. 매년 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다. 손을 펼쳐서 까만 USB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조금 전 스탭형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그러던때가 있었다. 국내대회. 그래, 국내대회에서는 아직도 나는 건재했다. 다만 내 몸은 점점 세계대회에 서기가 힘겨워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젊다. 하지만 기록은 더이상 좁혀지지않았다. 기록의 변동없이 매일매일 끝이 없는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공부와 수영을 병행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건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 박선수~ ” “ 그렇게 부르지마세요. ” “ 이야, 이젠 진짜 남자네. 박선수? ” “ 실장님. ” “ 그래, 이리와서 앉아봐. ” 하얀 집무실에는 내 포스터들과 다른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포스터가 쭈욱 붙어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그곳에 내 자료들이 주르륵 붙어있었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화이트보드를 훑어봤다. “ 태환아. ” “ 네? ” “ 음‥ 몸은 좀 어때? ” “ 항상 최상이죠. ” “ 공부는 잘되고? ” “ 열심히 하고는 있어요. ” “ 그렇게해서 교수님 소리 듣겠어? ” “ 에이, 아무튼 오늘은 왜 불렀어요? ” “ 그게 태환아. ” “ 왜요? ” “ ‥우리 이제 그만 준비해야될거 같아. ” “ 준비요? 뭐를요? ” “ … ” 내가 어린 시절 부터 내곁에서 나를 챙겨주며, 수영선수 박태환을 스포츠 스타로 키워낸 실장님은 나를 띄우기위해 물불안가리고 노력했지만 그 속에서도 항상 나를 걱정해주던 사람이였다. 사실 실장님이 없었다면 스포츠 스타, 박태환은 그저 일개 수영선수로 남았을 수 도 있었다. 그런 실장님이 항상 웃으며 위기 속에서도 너는 해낼 수 있어. 우리는 해낼거야. 라고 했던 실장님이, 웃고는 있지만 왠지 너무 슬퍼보였다. 그래서 자꾸만 불안해졌다. “ 은퇴하자. ” “ 아… ” 은퇴. 그래, 나는 원래 박수칠때 떠나라, 라는 말에 어울리게 2012 런던 올림픽이 끝나면 은퇴 할 예정이였다. 하지만 예상치못하게 400m 경기에서 은퇴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결국 은퇴는 흐지부지되며 미뤄졌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군사훈련을 위해 훈련병으로 입대하고, 4주 후 다시 제대했다. 그 후 나는 우선 계획해뒀던 공부를 하며, 가장 앞선 경기인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중이였다. 그래서 한동안 은퇴는 잠시 잊고있었고, 갑작스런 실장님의 말에 조금 당황해버렸다. “ 갑자기… ” “ 우리 원래 준비중이던거잖아. 별거 아니야, 태환아. 그렇지? ” “ 하지만‥ ” “ 많이 힘들었잖아. 괜찮아. 한국에서 하는 경기라고 굳이 우리가 무리 할 필요는 없는거야. ” “ … ” “ 응? 태환아. ” “ ‥일단 ” “ … ” “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할게요. 훈련이 힘들어서, 조금 피곤하네요. ”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실장실을 나왔다. 실장님은 애써 나를 불러 세우지 않았고, 에이전시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다시 올라타고 창밖만 묵묵히 바라봤다. 전담팀 스탭형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에이전시에 올때도,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지금도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말자 차에서 내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가방을 문 앞에 던져놓고 침대에 걸터앉아있다가 주머니 속에서 USB를 꺼내 잠시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 은퇴‥ 1년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 한숨을 푹 쉬고 USB를 노트북에 연결시킨 후 전원을 켰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노트북을 켜, 스탭형이 모아준 세계 선수들 자료를 확인했다. 뉴스들과 동영상들이였다. 영상을 대충 훑고 뉴스를 천천히 하나씩 살폈다. 스탭형이 각국의 언어를 한국어로 번역을 해주어 편하게 볼 수 있었다. ‘ 떠오르는 신예, 중국 쑨양! ’ ‘ 세계가 놀란, 중국의 별! ’ 쑨양, 쑨양, 쑨양, 쑨양. 모든 자료들은 쑨양을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물론 나 역시 이렇게 세계가 주목할때가 있었다. 수영의 불모지 아시아에서 태어난 영웅이라며 세계가 나를 반겼었다. 하지만, 1위는 언젠가 뺏기게 되있던것이였다. 다만, 다만 그게 이렇게 빨리 다가올줄을 몰랐다. 중국의 장린을 견제하면 견제했지, 쑨양이라는 선수가 이렇게 갑자기 치고 올라올줄은 분명 같은 나라 선수인 장린조차 몰랐을것이다. 포효하는 쑨양 선수의 사진이 노트북 화면 가득 찼다. “ ‥대단하네. ” 한국의 박태환이 우상이라던 중국의 수영선수는 이제 자신의 우상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다. 올림픽에 나가서 내가 세우지 못한 기록을 세웠다. 내가 얻지못한 메달을 얻었다. 위로 올라가기는 힘드나, 내려오기란 너무나도 쉬운 일이였다. 그걸 여러번 겪었지만 매번 겪을때마다 익숙해지지않은 고통이였다. 가만히 자료들을 더 보다가 픽 웃으며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 이제 무슨 상관이야. 접자. 그래. 됐어, 반평생 수영만 했으면 됐지. ” 내 목소리는 허공에 퍼져 사라졌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직 저녁이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피곤해져서 그대로 잠이들었다. 그때 나는 꿈을 꾸었다. 물 안에 있었고, 몸이 무거웠다. 그러나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멀뚱히 물 안에 서서 나는 표류하고 있었다. 둥둥 떠다니며 어디로 향하는지 여기가 어딘지조차 몰랐다. 그때 머리 위로 하얀 빛이 생겼다. 그 빛은 물 속에서도 눈이 부셔왔다. 잡고 싶었다. 팔을 뻗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잡아야한다. 발을 움직였다. 무거운 몸은 물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두 발과 두 팔을 저었다. 눈물이 날거 같았다. 갑자기 숨도 턱 끝까지 막혀왔다. 물 속에서 소리쳤다. 내 비명 소리는 누군가에게 닿지 못하고 물 속에 퍼져 사라졌다. 수영을 하고, 또 했다. 물 속에서 한참을 헤엄쳤고, 이내 나는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눈을 꾸욱 감았다 뜨자, 내 주변엔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 박태환 선수! ” “ 박태환 선수! ” “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 ” “ 태환아, 니가 이겼어! ” “ 우리가 해냈어! ” 귓가에 목소리 하나하나가 찌르르 울려왔다.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물 속에서 나왔다. 목에서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나 시선을 내려보았더니 묵직한 금메달이 걸려있었다.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들 나를 환호했고, 시선을 들어본 전광판에는 박 태 환, 내 이름 세글자가 맨 위에 떠있었다. 금메달, 그래. 이 느낌이였다. 바로 이 느낌. 그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 ‥꿈. ” 상체를 일으켜 숨을 몰아쉬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1위, 최정상. ‥금메달. 누군가의 우상. 나 자신의 한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놓으며 폰을 쥐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의 신호음이 흐르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실장님. ” [“ 목소리가 왜 이렇게 쉬었어? 울었어? ”] “ 실장님. ” [“ 그래, 나 여기있어. ”] “ 은퇴 안합니다. ” [“ 뭐라고? ”] “ 아니, 못합니다. ” [“ 그게 무슨소리야. 우리 예전에도 준비했‥ ” ] “ 아직 아니에요. ” [“ 태환아. ”] “ 고집 일수도 있고, 객기 일수도 있어요. 근데 아직은 안돼요. ” [“ … ”] “ 한번만 더, 한번만 더 수영하게 해주세요. ” [“ ‥하지만. ”] “ 차라리 부상이 있으면 몰라도, 나 멀쩡하잖아요. ” [“ 매일 그렇게 운동하면 언젠간 몸에 이상이‥ ”] “ 다시 한번만 1등해보고 싶어요. 누군가의 위에서서 웃어보고 싶어요. ” [“ 태환아‥ ”] “ 누군가의 우상이고 싶어요. ” [“ … ”] “ 내가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때, 그때 그만두고 싶어요. ” [“ … ”] “ 부탁할게요, 제발. 한번만 더 수영 할 수 있게해주세요. ” [“ 처음으로. ”] “ … ” [“ 처음으로, 나한테 부탁이라는걸 하네. 우리 박선수. ”] “ 처음이자, 마지막일겁니다. ” [“ ‥알았어. 하지만 스폰서가 점점 빠지고 있어. 그럼 니가 점점 훈련하기 힘들거야. ”] “ 사비로라도 할테니까 걱정마세요. ” [“ ‥진심이니. ”] “ 저 한번 결심하면 못 꺾는거 아시잖아요. ” [“ ‥그래. 기왕 그렇게 결정한거, 제발 금메달 따. ”] “ 그럴거에요. ” [“ 다시 한번, 정상에 우뚝 선 박선수 보게 해줘. ”] “ ‥감사합니다. ” [“ 힘내. 응원할게. ”] 전화는 끊어졌고, 마음은 가벼워졌다. 하지만 머리는 복잡해졌다. 내가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사실 1년 전만해도 아시안게임 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세계선수권 대회도 아니였고, 아시아 선수들과 경쟁하는 경기였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아시안게임도 힘겨웠다. 다리가 떨려왔다. 팔을 뻗어 허벅지를 붙잡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자. 박태환. 마지막이야. 한번만 더 팔을 내뻗는거야. “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과연 나는 쭉 누군가의 우상으로 그렇게 남을 수 있을까. ” 아무도 알 수 없는 답이였다. 그때가되면 알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오후에 있을 훈련을 준비하기위해 짐을 다시 챙겼다. 아직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조금만 더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기록은 깨라고 있는거니까, 다시 깰 수 있다. 한번 깼었던걸 다시 못 깰리가 없었다. 박태환. 한번만 더 하자. 이 싸움의 끝에 웃을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한번 더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
팊.
신알신 와서 오신 분들... 내바보가 아니라 실망하셨죠 ㅠㅜㅜㅠ
내바보가 너무 안써져서 잠깐 내려놓고 요즘 듣는 피아노 곡들이 너무 좋아서
그 곡들을 들으면서 그냥 짧막하게 써봤어요! 별 쓰잘떼기없는 조각글이네요ㅎㅎ
이번 BGM은 꼭!! 함께 들으면서 읽으세요~ 데헿ㅎㅎ... 싫음 말구요ㅠㅜㅜ
너무 오래 2차 창작으로 쓰다보면 리얼물이 정말 쓰고싶어집니다 ㅇ<-< ......
쑨환 떡밥은 대체 언제 터지는 걸까요 ㅠㅜㅜ 엏어헝 ㅠㅜㅠㅜㅜㅜㅜ....
그냥 입다물고 내바보나 쓰러 갈게요 ㅇ<-< 얼른 글이 써져야할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릉흡느드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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