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변백현 바보.
종대는 창에 입김을 불어 하얗게 김이 서린 창에다 손으로삐뚤삐뚤 글씨를 써내려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종대의 입이뾰루퉁 튀어나왔다. 며칠 전 소개팅을 나간다며 별 난리를 다 치던 백현이 떠올랐다. 그 망할 소개팅이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쳇. 수업도 안나오고. 종대는 아침일찍 백현에게 받은 문자를 다시 한번 읽으며 짜증스럽게 홀드 키를 눌렀다.
[나오늘 수업 안들음ㅋㅋㅋㅋㅋ나 소개팅있어(박수함성)]
망할새끼. (박수함성)은 또 뭔데. 종대는 신경질적으로 자켓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넣었다. 소개팅 장소가 학교 앞 카페라고 했었나. 종대는 결심한듯 가방을챙겨 하차벨을 꾹, 눌렀다.
*
망할 변백현이 싱글싱글 웃고 있는 꼴이 재수없었다. 종대는 입술을 꾹, 깨물고서 여자와 백현이 앉은 테이블 근처에 자리를잡았다. 종대는 메뉴판을 들고 다가오는 여종업원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보이고서 화이트모카, 하고 입모양으로 벙긋했다.
하하, 저도진짜 그 영화 재밌게 봤거든요.
백현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조용한 카페 안을 쩌렁쩌렁하게울렸다. 뭐? 영화를 재밌게 봐? 종대는 백현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백현을 노려다봤다. 사실 그 영화도저와 단둘이서ㅡ뭐, 물론 교양수업 과제 때문에 다운받아 집에서 본 거긴 하지만ㅡ본 영환데 소개팅에서저런 식으로 이용해먹다니. 나쁜 놈. 종대의 주먹에 힘이불끈, 들어갔다. 종대는 한참을 웃고 떠드는 백현을 쳐다보다가결심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종업원이 쟁반에다 저가 주문했던 화이트모카가 든 머그잔을 얹고걸어오고 있었다. 종대는 여종업원에게서 쟁반을 빼앗아들고 백현의 테이블로 향했다.
어, 김종대?
백현의 축, 처진눈이 동그래졌다. 종대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씨발놈.
뭐?
난데없는 종대의 욕에 백현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 씨발놈? 백현은제 맞은 편에 앉은 여자를 흘끔, 보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딱봐도 선해보이는 여자는 백현의 어색한 웃음에 따라 웃어주었다. 백현과 여자가 마주보며 웃는 걸 본 종대는괜히 심술을 부렸다. 일부러 탁, 하고 큰소리나게 쟁반을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씨발놈아, 내가너 좋아한다고.
종대의 말에 백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라고? 지금 얘가 뭐라고 하는 거? 백현이 당황한 듯 되묻자 종대는 백현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추었다. 백현의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지금 이 새끼가 뭔 짓을 한 거야? 백현은눈만 껌뻑였다. 심장이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 처럼 미친듯이뛰었다. 맞은 편에 앉은 여자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김종대가 왜 저에게 뽀뽀를 했는지만 중요했다. 입술을 뗀 종대는 금방이라도 엉엉 울 것 처럼 눈에 눈물을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아니 기습뽀뽀 당한건 난데 왜 지가 울어? 백현은황당해졌다. 기어이 종대는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니까 소개팅 같은 거 하지마!
종대는 그 말만 남긴채 카페를 나가버렸다. 카페를 나오는 동안 뒤에서 백현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것도 같았지만 종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백현의 소개팅녀에게는 잊지 못할 소개팅 경험이 된 것에 미안하긴 했지만, 그건종대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카페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은 종대가 눈물을 닦아냈다. 고백을 해서 속이 후련하긴 한데…, 종대에게는 더 끔찍한 일이 남아있었다. 다음 날 백현과 단 둘이 듣는 전공 강의가 있었다. 것도 세 시간연강. 으어억. 종대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구었다. 백퍼센트 게이새끼라고 날 피할 거야. 백현이가 나더러 더럽다고 할까? 나를 증오할까? 종대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나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물고 있었다.
으아, 난정말 병신이야!
제 머리를 뜯으며 자책하는 종대를 버스 정류장에 있던사람들이 흘끔흘끔 보며 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종대는 상관없었다. 씨발, 씨발! 세륜 나레기! 세륜김종대, 사라져 주세요! 내일 변백현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뭐해?
미치광이처럼 머리를 쥐어뜯던 종대의 행동이 일순간 멎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익숙한 목소리. 한 팔년정도 들은 거 같 같은데. 푹, 숙이고 있던 종대의 고개가 기계처럼 끼기긱, 들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터라 희미하게 시야가 보였다. 또르륵. 눈물이 떨어지며 맑게 개인 종대의 시야에는 백현이 커다랗게자리잡았다.
병신.
백현이 퉁명스레 뱉은 저 말에도 종대는 눈에 다시 눈물이찼다. 계속계속 눈물이 나와서 온 몸에 있던 수분이 다 눈으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나를 아주 게이라고 소문을 내지 그랬어?
그 말에 종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백현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비수가 되어서 종대의 마음을 쿡, 쿡, 잔인하게 찔렀다. 그래, 물론백현의 입장에서는 난처하고 곤란했을 것이다. 무작정 일을 치른 것도 바로 종대, 본인이었다. 백현이 모진 말로 저를 찔러도 종대는 아무 할 말이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현기증이일었다.
김종대. 이왕소문 다 난 거 말이야.
백현이 벤치에 앉은 종대의 맞은 편에 쪼그려앉았다. 종대가 눈물을 흘리며 쳐다보자 백현이 슥, 손등으로 종대의 눈물을훔쳐내었다. 그 손짓은 예전처럼 투박했지만 나쁜 감정보단 좋은 감정이 실려있는 것 같았다.
이왕 소문날 거, 그냥대놓고 다닐까봐.
응?
한 번 만나볼래, 나랑?
응? 종대가 눈을 껌뻑였다. 깜빡, 깜빡. 종대가느리게 눈을 깜빡이는 동안, 백현은 그냥 웃고 있을 뿐이었다. 진심이냐고물을 정신도 없었다. 입술에다 꿀을 발라놓은 건지, 풀을발라놓은 건지 딱 붙어버린 두 입술은 떨어지지가 않았다.
싫어?
백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딱, 붙어버렸던종대의 입술은 그제야 벌어졌다. 파아, 하고 공기가 통하는소리가 나고, 종대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렸다. 울어서 조금은잠긴 목소리였다.
아니!
어찌나 큰 목소리였는지, 종대는 본인이 말해놓고본인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커다랗게 떴다. 백현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사실, 나 옛날에 너 좋아했었어. 바보야.
백현의 난데없는 고백에 이제 황당해진 건 종대였다. 옛날? 언제? 종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껌뻑였다. 백현이랑 같이 지낸지도 8년이다.근데 언제? 언제 좋아했대? 종대의 머리 속에서지난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종대의 기억 속 백현은 그저 장난만 치는 말썽꾸러기였다. 밥 먹으면서 놀려먹고, 밥 먹고 나서 놀려먹고, 하교길에서 놀려먹고, 등교길에서도 놀려먹고.
그, 그럼 소개팅은 왜 해?
정리하려고.
뭐, 뭘?
바보같이 말을 더듬는 종대를 백현이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그 시선에 종대는 한껏 움츠러들었다. 괜히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 이미충분히 예열이 되어있었지만. 백현의 빤한 시선에 종대는 자꾸만 작아져갔다. 백현이 그렇게 쳐다보고 있을 때면 벌거벗고 서있는 것 처럼 부끄러워졌다. 시선도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자꾸말만 계속 더듬고.
너 말이야, 너.
백현의 덤덤한 말에 종대의 마음이 쿵, 하고내려앉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져갔다. 배 깊은 곳까지가라앉은 마음이 두근두근 뛰었다.
근데 너가 다 망쳤어. 정리하려고 했는데다시 어질러버렸어. 니가.
….
그래서 말인데, 니가 다 책임져라. 나랑 연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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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앙
백첸 사구려라 사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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