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수
사과를 포크로 쿡 찔러 한입을 베어먹었다. 성열의 입속에서 사과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원한 과즙까지 그대로 전해주는 것 같았다.
- 맛있네.
실제로 사과는 맛있었다. 그리고 미각을 전달받는 뇌 역시'맛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표현하건대, 그때의 사과는 썼다. 성종은 TV를 보다가도 우현과 성열이 사과를 포크로 절단 낼 듯이 집어 들 때마다 흠칫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자신이 먹기에도 호원이 잘 먹으라면서 가져다 준 이 고품질의 당도높은 사과는 맛이 꽤 있었다. 성열이 맛이 없어서 저러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 지금 사과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겉으로만 성규형, 성규형 하는 것만 같았던 남우현부터, 성열까지 단단히 가시가 돋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 이호우워어언!!!!
**
- 에취!!
갑자기 재채기를 하며 훌쩍거리는 호원을 보며 성규는 바닥에 손을 대어본다.
- 아주머니!
지나가던 아주머니를 청량한 목소리로 부르자, 청년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신다.
- 방이 좀 찬 것 같은데... 따뜻하게...
- 아! 그리고 물수건 좀 갖다주세요!
착하게 생긴 청년 두 명이 웃는 얼굴로 부탁하자, 아주머니 선선히 대답하시며 방을 나가셨다. 메뉴판을 보면서 생글, 하얀 얼굴을 보니까 금방 눈을 뗀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저사람은 그런 인간이다. 뭐든지, 재미없는 것도 재미있는 것처럼 보이게하는 사람.
- 형, 추워도 남자는 밑에가 차야....
- 얘가 못하는 소리가 읍써!!! 쩝, 이집 칼국수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비올 땐 죽이지~
죽이지, 할 때의 약간은 분명치 못한 발음이 오늘따라 다정하게만 들린다. 호원은 어제 새벽까지 카톡을 보내서 같이 밥먹자고 난리를 치던 성규를 생각하면서 씩 쪼갰다.
- 무슨 일 있어? 또 어제 밤에는 안자고 뭐했어?
- 그냥 연습 좀 하다가.. 으.. 요즘 애들이랑 소통이 안되는거 같고.. 너!!! 너! 특히 너도 그렇고!!!!
읭? 나 아무짓도 안했는데??, 괜히 혼자서 난리다. 응답하라 촬영 때문에 못챙겨줬다고 신경써주려 하는거 아냐?? 흐흐. 이쯤 되면 한 번씩 갈구는 것이 규몰이에 대한 예의.
- 단합해서 우두머리 따 시키는 건 아니고? 내가 주동하는거라 생각 안해봤어?
- 아!!! 진짜!!!!!!
웃으면서 버럭, 하는 성규를 보며 호원은 크게 웃는다.
- 우현이 잘 도와주고 있어? 요즘 잘 안맞더구만.
성규는 입을 삐죽 내밀며 반찬을 뒤적거린다. 몰라. 하고 말은 끄는 것이 영 시원찮다.
- 형도 실제로 별로 순한 것도 아닌데. 솔직히 성질 낼 거 다 내잖아, 얍삽하게.
-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호원을 쭉째진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성규는 꽤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이었다. 이쯤 되면 성규를 놀리던 사람들 중, 우릴 모르는 일반인들은 쟤 왜저러나 생각하게 되고 팬들이면 오빠 왜그래여 그러지마라여 이럴것이고 우현쯤 되면 애교를 살살 부려서 빠져나간다. 그러나 이호원은 다르다. 그는 김성규라는 섬을 장악하고 있는 고단수다. 전쟁따위 안 해도 땅따먹기 가능한, 그런 고수이다.
- 그러니까 신경전에서 밀리잖아. 뒤에서는 우리우현이 우쭈쭈쭈 잘 해주다가 끝에서 잘 못해주니 욕먹지말고 완전히 잘해줘서 남똥강아지 스스로 찔리게 하든지 아님 열받게 만들던가. 그녀석 빠져나가는게 완전 능구렁이잖아.
성규는 눈에 힘주던 것을 풀고 피식피식 웃는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임마. 그게 안돼서 문제지. 이번에는 호원이 오히려 슬슬 약오르기 시작한다. 저것 봐. 꼭 쓸데없는데서 신경질을 내고, 중요한 시점에서 백치미가 흐른다니까. 그러니까 맏형이 되서 아방하다는 소리나 듣지.
- 으이그! 하여튼 나이도 제일 많은데 왜 노래밖에 안들어가는거야.
처음에는 발끈하던 성규도 이제는 호원의 똑같은 한탄에 그냥 비죽이 웃는다.
- 몰라. 그래도 애들이 뭘 원하는지 안다구.. 맞춰 주려고 하잖아..
- 형이 무슨 애들 운영자야? 조련해? 정말 그랬었어??
성규가 약간 뜨끔한 눈치다. 진지하게 말한것은 아니지만 놀리고싶은 마음에 호원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성규가 규리다규리다 라고는 하지만 그저 애들에겐 규인네+규몰이=진리 인 것을...
- 아... 아니지.. 그건... 야!!! 나 몰고가지마!!! 이 문제는 이제 그만 얘기하자!!!!!
호원은 경악하는 성규 얼굴을 보며 크게 웃어보인다. 야!! 그만웃어!!! 성규가 하얀 손으로 찰싹 때리려는 시늉을 하려하자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다.
**
배부르게 한 끼 식사를 마치고 나더니 내가 낼게, 하고 일어나는 성규. 이제 슬슬 들어가야지? 하고 호원의 눈치를 본다.
- 낼부터 스케쥴 비잖아. 그래서 친히 애들몰래 카톡까지 쓰면서 나 불러낸 거 아니야?
아니, 연습을 해야하고.. 또 연습있고.... 또 그리고..... 하며 궁시렁거리는 성규의 어깨에 손을 딱 두르더니 호원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 이렇게 형 못보낸다!!! 나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이제는 내가 필요하니 좀 놀아달라!! 놀아달라!!!
에코까지 넣어가면서 남은 한쪽 팔로 시위하듯이 번쩍 팔을 치켜 든 호원을 보며 성규는 배를 잡고 웃었다.
- 임마, 너 진짜 웃기다.
결국 포장마차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
Rrrrr...
한적한 포장마차 안, 어디선가 시원찮은 벨소리가 울린다. 성규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더니 발신인을 확인한다.
- 누구야?
- 성열이
성열이는 전화 잘 안하는데.. 성규가 갸웃하며 전화를 받는다. 호원이 그래? 이자식 나한테는 전화 안하네 같은 멤버인데, 하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에게 안주 주문을 넣는다. 아주머니는 아주 환하게 웃으면서 주문하는 잘생긴 청년에게 혹시 자신에게 마음이 있나, 하고 은근한 착각을 하면서 1인분 정도 더 얹어주어야겠다 다짐을 한다.
- 응, 응 성열아. 지금? 호원이랑 있지.
성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김성규는 상대방의 질문이나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인물이므로 전화 내용쯤이야 간단히 파악 가능했다.
- 어디 있냐고? 아, 그냥있어. 왜?
호원은 삐질삐질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심히 참고, 그냥 미소를 띠고 마주봐주었다. 간간히 눈이 마주치는 성규가 씩 눈웃음을 칠 때 빙구 웃음을 짓지 않으려고 자제하면서.
- 음, 언제 들어갈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단 말이지 이성열. 호원은 소주잔을 엄지와 검지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살짝 심심한 표정을 지었다.
- 성열아. 형이 알아서 들어갈테니. 응. 어차피 호원이랑 같이 들어가니까 걱정하지 말구.
호원은 얼른 전화를 끊는 성규를 보면서 나이스, 하고 외친다. 물론 속으로만. 김성규가 엄한데에는 둔해도, 이럴때는 상대를 배려하는 섬세하고 예민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표정 변화만 잘하면 저절로 일이 해결된다는 거지.
- 근데 형은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진짜 대단하다. 자잘한 질문에도 너무 성의있게 대답해주는 거 아니야?
성규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빤히 쳐다보다가, 아. 이러고는 웃으면서 호원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며 대답했다.
- 그거, 여지껏 너한테 배운거야.
이번에는 호원이 어리둥절했다. 배웠다니? 형이 나한테?
- 네가 내 전화 받을 때 굉장히 살갑게 받아주잖아. 설령 좀 괴롭힐지라도.
- 아, 그거야 김성규가 하는 말 꼬투리 잡으려고 그러지. 경청하잖아. 흐흐.
- 응. 근데 그게 좋더라고. 내가 저번에 명수한테 전화 했을 때..
호원은 여기서 한 사람의 이름에 굳어지는 얼굴을 추스린다. 김성규가 누구와 있건 간에, 무슨 얘길 하건 간에 등장하는 이름 하나. 남우현이 하도 김성규에게 늘러 붙어서 이름이 하나 추가되긴 했지만, 명수에 비하면 우현은 새발의 피.
- 막 얘기했더니. 그래? 이러고 말고. 그럼 이렇게 이렇게 하자. 그랬더니 어, 알았어. 하고 끊어 버리는 거야. 완전히 좀 섭섭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안하려고.
성규가 푸짐하게 나온 안주에, 언제시켰어? 하면서 안면 전체에 웃음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호원은 움직이지 않는 입가를 풀며 웃어보였다.
- 형이 좋아하는 거지?
그래도 김성규, 많이 나아졌다. 김명수와 마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한번 마주쳐서 이것저것 말하고 있노라면 계속 자기에게 명수가 이렇게 생각한데, 명수가 그러더라, 명수가 말이지..
하지만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숙소에서 성열과 우현이 칼 씹은 표정으로 검은 오오라를 풍기며, 자신과 성규가 했던 얘기를 중요한 것 빼고 다 아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성규가 자신의 얘기를 했던 것일까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맛에 내가 애들 몰래 둘이 카톡 좀 하고.
김성규에게 시선집중하여 척하면 척척 해주고.
춤 출때 대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고.
하는 것 아니겠어?
아, 물론 춤에 대한 정확한 조언은 잘 해주지 않는다. 왜냐.
연습하는 것까지는 봐줘도, 김성규가 누구랑 안무해서 붙어있는 꼴은 내가 못보지. 그럼 둘이서 얼마나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유대감이 쌓일지 알아? 아 물론 남우현.. 그 똥개놈은 잠깐 더 생각 좀 해봐야겠다. 귀찮은 놈.
어쨋든 형 미안해. 춤 비기는 가르쳐 줄수 없어.
나는, 10수를 내다보고 발버둥치는 남우현, 이성열이 아니라 무대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고단수거든.
- 형 이거 먹어봐. 진짜 맛있어!!
남우현이 아~ 해봐. 하다가 한 대 얻어맞을 걸 이런식으로 해결하는, 뭐. 요종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춤은 호원이가 갑이죠. 피쓰!!!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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