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뜰 힘도 없는지 정국이는 몇 번 몸만 뒤척였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정국이는 부상이 유달리 적은 편이었다. 내게 말을 안 할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선수생활에 해가 되는 부상은 없는 것은 확실했다. 목감기도 그저 목이 쉬거나 그런 편이지 심하게 기침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아픈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웬만하면 아픈 건 숨겼을텐데 얼마나 아팠으면. 그동안 아픈 적이 있다면 이렇게 혼자서 끙끙 앓았을까 싶어 안쓰러워져 정국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 쓰다듬었다. 그러자 눈을 떠 날 진득이 쳐다보더니 몸을 일으켜 내게 쓰러졌다.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
“잠깐... 잠깐만”
“더워…”
안겨온 정국이에게 느껴지는 열기에 나도 같이 더워졌다. 물수건부터 가져와야겠네. 진짜 몸에 힘을 다 풀은 채 쓰러진 정국이를 힘겹게 떼어놓고 죽을 들었다. 아, 무거워. 이러다가 내가 그 다음 날에 몸져누을 것만 같았다. 죽을 휘젓고 숟가락을 정국이에게 건네자 움직이지 않은 채 날 또 진득이 쳐다봐왔다. 이거 사온거야. 내가 만든 거 아니니깐 맘 놓고 먹어도 돼. 내 말에 정국이가 바람 빠지듯이 웃었다. 저번에 한 번 배고프다길래 라면을 한 번 끓여줬는데 하필 그 날 물 조절을 실패해서 정국이에게 라면국을 준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내게 뭘 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힘없어”
아, 먹여달라는 거였군. 얼마큼 줘야지. 숟가락을 잡고 내밀자 그제야 한입 씩 받아먹었다.
“뜨거워? 식혀줄까?”
대답 대신 정국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배고프기는 했는지 죽은 다 먹고 무슨 약을 먹어야나 싶어 약 봉투를 뒤적거리자 정국이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더니 헤매고 있는 내 손길과는 다르게 약 몇 개를 집어갔다. 몸살감기랑 해열제. 알약을 손에 올려 물과 마시고 해열제까지 자주 먹어본 사람처럼 익숙한 손길로 약을 먹었다. 컵을 받아 책상에 올려놓고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들어갔다. 코치님한테 어떻게 말씀을 드릴까 곰곰이 생각하다 정국이에게 묻자 정국이는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서는 몸을 다시 눕혔다.
“말 안해도 괜찮다고?”
“알고 계실 거야"
“예약제로 아파? 거짓말하지 말고 혼나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면 내가 전화할게”
추궁하는 내 질문에 정국이는 몸을 일으켜 옆으로 옮기더니 빈 공간을 팡팡 내리쳤다. 병원을 안 가겠다는 말에 이어 이번에는 왜 또 코치님에게 전화를 한다는 내 말에 또 말꼬리를 늘렸다. 아까 병원은 가도 안가도 그만이었으나 코치님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정국이의 선수생활에 관련된 일이니 쉽게 넘어 갈 수 없었다. 팔짱을 끼고 책상에 기대어 바라보자 정국이는 아무말 없이 앞머리만 쓸어넘겼다. 선수생활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제일 칼같던 애가 오늘은 왜 이럴까 싶었다.
“대답 먼저 해. 바로 전화하게.”
“아파-”
흔들리면 안된다.
“그래, 너 몸 아픈 거 큰일이야. 지금은 약 먹어서 괜ㅊ..”
“누나-”
날 바라보는 정국이의 눈을 보니 결국은 마음이 약해져 한숨을 쉬고서는 빈 공간에 꿈틀꿈틀 기어들어갔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자 기다렸다 듯이 날 끌어당겼다.
“나 진짜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말씀 안 드려도 괜찮아?”
“시즌 끝나면 매년 이랬어.”
“매년? 작년에는 학교 왔잖아.”
“작년에도 똑같았는데.”
“뭐야. 왜 난 몰라?”
"몰라도 괜찮아."
아니, 그게 왜 괜찮은 거야. 정국이의 말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시 고개를 뒤로 빼 정국이를 쳐다봤다. 뭐지. 왜 난 모르지. 작년에도 그랬나 해서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정국이는 아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경기가 끝나면 항상 어디 안 다쳤는지 확인했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다. 더 이상 내 질문에 답할 힘이 없는지 다시 날 제 품에 끌어당겼다.
"후유증처럼 오는거야."
"그냥 안아줘"
그동안 숨긴 게 무색할 정도로 정국이는 내게 어리광을 부려왔다. 다른 이들은 정국이가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들에게 비치는 정국이의 모습은 그것 뿐이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보다 더 많은 정국이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사람들이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근데 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동안 투정 한 번 하지 않은 단면적인 모습에 마냥 참 어른스럽고 듬직하다고만 생각해 또 다른 평범한 남자아이의 모습을 잊고 있었다. 당연히 아프면 그럴 수 있는 건데.
연이은 경기를 소화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은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까.
아무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경기가 끝난 후 확연히 갈라지는 반응에 사람인데 어떻게 무딜 수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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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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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 오셔?"
"네. 수업 있대요"
"하긴 평일은 오기 힘들지"
스케이트화를 고쳐 신은 지민이형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17살 때부터 항상 선발전 경기는 누나가 구경하러 꼭 왔었는데 올해 평일로 잡힌 경기 일정 때문에 처음으로 누나 없이 치르는 선발전이었다. 사실 그동안 뛴 경기들에도 항상 누나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 딱히 보러 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근데 막상 또 누나 없이 선발전을 치르려니 자꾸만 허전한 기분이 들어 괜히 몸도 더 풀어보고 스케이트화를 풀었다 다시 묶어보기도 했다. 분명 누나가 못 갈 거 같다고 했을 때는 괜찮았는데.
"그럼 오늘 경기 끝나고 바로 갈 거냐"
"모르겠어요"
내 대답에 지민이형이 의아한 눈을 하며 내 눈앞에 손을 휘적거렸다. 전정국, 드디어 미쳤냐. 거치적거려 손을 쳐내니 지민형은 손을 붙잡고 궁시렁거렸다. 항상 선발전 경기가 끝나면 누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몰래 빠져나왔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다른 선수들도 내 어설픈 변명을 들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감아줬다. 항상 그렇듯 오늘도 그냥 경기가 끝나면 누나를 찾아가면 됐다.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좀 달랐다. 항상 매 시즌의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나면 후유증처럼 몸살감기에 걸렸는데 시니어가 됐으니 괜찮을까 했는데 작년에도 그런 걸 보면 이번 년도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벌써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났지만 계속해서 잡혀있는 경기 일정에 아직 몸이 긴장 상태인지 오늘까지는 컨디션이 좋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오늘 경기 이후로 당분간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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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라, 너 지금 넘어질 뻔했어."
"네"
아직 예선전밖에 하지 않았는데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심지어 누가 밀거나 잡지도 않았는데 코너링에서 속도를 이기지 못해 중심을 잃을 뻔했다. 오늘 경기 안 보는 게 나았네. 혼나는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머리를 헤집으며 핸드폰을 보자 카톡이 남겨져 있었다. 몇 개나 보낸 거야.
[ㅠㅠㅠㅠㅠㅠㅠ못 가서 진짜 미안해ㅠㅠㅠㅠ]
[아니 빙상연맹은 맨날 주말에 잡아놓고 이번에는 평일이야ㅠㅠㅠㅠ]
[나 그냥 쨀까? 자제휴강할까?]
[나 수업 들어간다...ㅠㅠㅠㅠㅠㅠㅠ랑ㅎ류ㅠㅠㅠ]
[ㅠㅠㅠㅠㅠ속상해!!! 내가 응원해줘야하는데]
[오늘 경기도 잘 즐기고 꼭 다치면 안돼]
[위험하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꼭]
온통 눈물바다에 걱정들이었다. 아까 넘어질 뻔해서 다칠 뻔했는데. 아마 누나가 보면 기겁을 했을 거다. 다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깐. 다시 한 번 읽어본 후 밀려왔던 허전함도 사라진 채 핸드폰을 내려놓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누르고서는 남은 경기를 위해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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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로 가서 푹 자"
"네"
"몸 고장 나면 결국 손해는 너야. 관리 잘해."
"한두 번도 아니고, 걱정 마세요."
코치님이 투박한 손으로 그만 들어가 보라며 손을 휘저으셨다. 원래의 기량대로 남은 경기는 잘 끝냈다. 핸드폰을 열어 갤러리에 들어가 예전에 누나가 시간표 망했다며 보내줬던 시간표를 보니 오늘이 최악 중의 최악의 날이었다. 아직도 수업 중이겠구나. 약국에 들러 몸살 감기약과 해열제를 산 후에 오늘은 못 볼 거 같다 할까 하다가 보고 싶은 마음에 그냥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집 앞까지 도착해버렸다. 평소처럼 문 앞에서 기다리다 이제 슬슬 아픈 게 올라오는지 머리가 어지러워왔다. 물 없어서 약 못 먹는데. 먼저 들어갈까. 핸드폰을 켜 카톡창을 들어가자 그 이후로 바빴는지 보내온 카톡은 없었다.
[아직 수업중이야?]
아직 수업중인지 확인을 했다는 그 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기다리다 자꾸만 열이 오르는 게 느껴져 몸에 힘이 빠졌다.
[언제 와]
또 사라지지 않는 1에 평소와 다르게 그 1이 얄밉게 느껴졌다. 결국 무작정 도어락을 열어 들어가 소파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누워 카톡창을 보니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1을 보고서 그냥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덥고 어지럽고 목은 잠겨오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누워있으니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놀라겠지. 뒤이어 그렇게 듣고싶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으면 바로 일어났을 텐데 애기들이 아프면 칭얼거리게 된다는 데 지금 딱 그 상태인 것 같았다. 카톡은 왜 그렇게 확인을 안 했냐고. 아픈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오늘 누나가 경기 못 보러 와서 경기 끝나고 바로 못 봤잖아. 그래서 더 보고 싶었어.
그리고 나 오늘 넘어져서 다칠 뻔했어. 누나가 제일 걱정하는 거잖아.
그래서 코치님한테 엄청 혼났어. 사실 나 그때 속상했어.
그리고 아픈데 아무도 안 챙겨줘서 나 약국에서 약도 혼자 사 왔어.
누나, 나 아파.
나 좀 챙겨줘.
"그냥 누나랑 있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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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베리입니다ʕʘ̅͜ʘ̅ʔ
오늘은 아프네여... 내 맘도 같이 아프다...
왜 다들 아프면 괜히 어리광 부리게 되잖아요.
아무리 어른스럽고 듬직해도 그런 날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요?
(전 그래욯ㅎㅎ 신생아가 돼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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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에서 암호닉을 받아요!(۶்ิ▿்ิ)۶่่
왜? 우리 소중한 더 많은 독자님들과 더 많은 소통하기 위해서♡⁺◟(●˙▾˙●)◞⁺♡
언제까지? 24일 00시까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12시!)
재신청은 안하셔도 괜찮아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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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๑❛ڡ❛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