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은 그런 사이니까
에필로그
" 하아, "
숨을 내뱉자마자 허공으로 하얀 김이 스르륵 퍼지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차가운 자전거 손잡이가 손바닥에 착 감겨왔다. 그러고보니, 이제 자전거 탈 일도 없구나. 익숙하던 것들이 모두 새삼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빠르게 흘러버렸다. 1년이라는 시간을 치열한 경쟁속에서 모두가 버텨 오늘을 맞이했다. 2014 대수능이 끝나고, 백현은 마지막으로 입은 교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익숙하게 교복을 입고, 3년간 밑창이 닳도록 신은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니 금방이라도 올라 타 페달을 밞던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새파란 아침하늘이 구름한점없이 깨끗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색이였다. 감성에 젖어든 백현이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걸어가고 싶었다.
새 한마리 울지 않는 조용한 동네를 걸어보기는 처음이였다. 여태껏 이어폰을 끼거나, 자전거로 쏜살같이 지나가버렸기에 새삼 신기했다. 원래 조용한 동네기는 했지만 뭐랄까,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했다. 신발 밑창으로는 오돌토돌한 돌맹이들이 밞혀왔다. 천천히, 이 흐름을 즐기듯 백현이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다시 내쉬었다. 몸 구석구석 깊숙히,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어깨를 부르르 떨고는 백현이 걸음을 재촉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질여왔다. 아직 싹이 트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거리를 매웠다. 시간이 멈춘 거리를 홀로 깨어 지나가는 기분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왜 이제서야 알은건지. 새삼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교문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여서 그런지 아무도 서있지 않았다. 그리고 교문위로 걸린 널찍한 현수막이 요동치던 백현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 만년고 제 25회 졸업식을 축하합니다
기나긴 3년이, 짧기만 하던 3년이 오늘을 종지부로 끝을 맺고 있었다.
*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한다. 올 수야 있지만, 더이상 이 학교의 학생으로는 학교를 올 수 없었다. 그것이 백현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괜히 감성에 젖어든다며 교실을 향해 걸음을 돌리다가도, 눈을 돌리면 모든것이 마지막이였다. 원래 마지막이란 것은, 기묘하고 신비해서 사람을 잡아 끄는 재주가 있는 것이였는지 백현은 자꾸만 걸음을 떼지 못하고 운동장을 천천히 돌았다. 마음이 붙잡혀서, 아니 도저히 마음이 놓지를 못했다. 아침마다 힘들게 일어나 교복을 입고 지긋지긋한 수업을 듣던 것이 어제와도 같았고 내일도 그럴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았다. 당연하게만 생각해 왔던 익숙함이 갑자기 사라진다니, 코끝이 조금 시려왔다. 학교를 다닐땐 막상 몰랐지만 이곳저곳, 구석구석마다 추억이 새겨들어있었다.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보는 기분이였다. 이제는 놓아야 하지만,
언젠가, 아주 오랜뒤에 가끔씩 펼쳐보며 그리워하게 되겠지.
이제는 만연하게 밝아진 하늘과 저 멀리 교문을 향하는 낯익은 교복들이 보였다. 백현은 감상을 접고 교실을 향해 올라섰다. 계단을 하나하나 밞을 때마다 마음 깊은 어딘가에서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 새삼 다시 한번 교실팻말을 올려다보고 뒷문을 열은 백현이 창가에 앉은 익숙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을 떠올린다면 단언코, 경아가 떠오르지 않을까. 살짝 웃어보인 백현이 익숙하게 경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피곤한 것인지, 경아는 웅크린 채 자고있었다. 활짝 열린 창가로 보드라운 햇살이 쏟아지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살랑살랑, 경아의 머리카락이 흔들려왔다.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따라 백현의 마음도 두근두근, 기분 좋은 울림을 내었다. 솜털이 일듯한 하얀피부위로 백현의 손가락이 천천히 얼굴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경아의 이마부터 시작해서 내려간 손가락이 콧등을, 콧등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입술이.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교실을 휙 둘러보던 백현이 뒷문에서 경아를 발견했다. 자신을 향해 앙칼지게 외치던 경아, 그모습에 반한 자신도. 어쩌면 운명,아닐까 장난스레 생각하던 백현이 다시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경아를 바라보았다. 항상 잠들면 흘끗흘끗 쳐다보던 경아가, 자신의 프린트를 슬쩍 가져가서 다 챙겨주던 경아가, 아침이면 항상 눈이 마주쳐 시선을 피하던 경아도. 지난 1년의 경아가 모두 스쳐지나갔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작은 미소가 백현의 얼굴에 자리잡아 떠나질 않았다. 조심스레 고개를 내려 경아의 입술에 닿을 듯,말듯 백현의 콧등이 경아의 콧등을 스쳤다.
" 아..... "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경아의 눈동자가 천천히 들어났다. 조심스레 깜박이던 눈동자가 코앞에 다가와있는 백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커다랗게 뜨이자, 경아가 자리에서 휘청였다. 조심해, 백현이 경아의 허리에 손을 감아 경아를 끌어올렸다. 영락없이 백현의 품안에 갇힌 경아가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손을 가만 놔두지 못했다.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서 하는거겠지,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큭큭 웃은 백현이 경아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나 피곤해,
" 응? "
" 졸리다, "
어제 너 볼 생각하니까 잠이 안오더라. 나긋나긋한 백현의 목소리가 경아의 귓가에 닿았다. 움찔 떨리는 어깨와 쿵쿵 맞닿은 가슴위로 기분좋은 울림이 흘렀다. 아,어쩌면 좋냐 진짜. 경아를 더욱 꼭 안은 백현이 경아의 손에 천천히 일어섰다. 왜? 의아한듯 경아를 바라보던 백현이 점점 다가오는 경아의 얼굴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촉, 아주 작은, 아주 미세한 마찰음이 마치 10톤 트럭이라도 되는 것 마냥 커다란 타격음이 되어 백현에게 들렸다.
" 이제 잠 깼지? "
살짝 웃는 경아의 얼굴이, 봄날의 햇살보다 더 따스해서 백현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말았다.
*
" 그동안 수고 많았다. 3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구나. "
교실안에는 졸업생들과 가족들로 가득 차 연신 플래시가 터졌다. 울음을 참는 듯 덤덤한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울려왔다.
" 이 중에는 3년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은 사람이 있을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아직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너희들의 인생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 옆의 다른사람들과 레이스에 달리지 마라 너의 삶은 너만이 달리고 있는거지 다른사람들 눈치보면서 달릴 이유가 없다. 속도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것이지 너희는 모두 착실하게 살아왔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너희의 20대를, 그리고 그 뒤를 달리고 또 달리겠지. 그리고 나는 그 레이스를, 응원하마. 졸업, 축하한다. "
그 말을 끝으로 몇몇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환호가 쏟아져나왔다. 많은 아이들이 움직이며 담임선생님을 향해 안기기도 하고, 연신 플래시사진 세례와 꽃다발의 행렬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현이 여기저기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꽃다발을 안겨 받았다. 바쁜 부모님과 누나가 짬을 내서 왔는데 표정이 이게 뭐냐며 혼이 나기도 했다. 물론 모두 웃고있었지만,
" 이따 외식할거니까 저녁에는 집에 와야한다? "
" 술마시지 말고! "
어머, 이이는 쟤도 이제 성인이에요 성인 ! 넉살좋은 부모님과 누나가 멀어져가고 얼마안가 학교가 텅텅 비어버렸다. 모두가 떠났다. 떠났다기보다는 시작을 한것이다. 불이 꺼진 교실로는 환한 햇살이 들어와 쓸쓸한 교정을 채우고 있었다. 텅 빈 교실을 지나, 발걸음 소리가 울리는 복도를 지나왔다. 백현의 마음도 텅 빈 것만 같았다. 무언가 작은 것이 마음속에서 피어나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몽글몽글 순식간에 크기를 더해 백현의 마음을 죄여왔다. 아쉬움? 글쎄,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천천히 교정을 나서니 맑은 하늘이 시야에 가득찼다. 아직 싹이트지 못한 나무들이 운동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저 가지에 꽃이 피고, 싹이 틀 즈음에는 나와같은 , 우리와 같은 아이들이 또다른 3년을 시작하겠지. 세상을 향한 첫 발돋움이리라, 눈부신 햇살에 잠시 눈을 감고 바람에 몸을 맡기던 백현이 저 멀리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변백현 ! "
꽃을 한아름 안고있는 경아가 보였다. 모두가 떠난 학교의 운동장을 지나 환하게 웃은 백현이 교문에 서있는 경아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걸음은 점차 속도를 가해 이윽고 백현은 경아를 향해 뛰어갔다. 한걸음,한걸음. 경아도 웃음을 지으며 백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 기다렸어? "
가볍게 뛰어온 백현이 물었다. 경아가 작게 끄덕였다. 귀끝이 붉은 것을 보니 부끄러운가보다. 킥킥 웃은 백현이 경아를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 너랑 내가 무슨 사이인데? "
응? 장난을 치는 백현이 야속한지 경아가 살짝 바둥거리다 포기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런사이, 그러니까 그런사이가 뭔데?
경아의 어깨위로 고개를 묻은 백현이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두사람의 머리위로 더할나위없이 밝은 햇살이 봄바람을 타고 흘렀다.
언뜻, 꽃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
드디어 끝이났네요 정말 끝. 너랑 나랑은 그런 사이니까 가 드디어 끝을 맞았습니다. 웬지 서글프면서 기쁘네요 사실 백현이가 느낀 기분이 제기분인지라..ㅋㅋㅋㅋㅋㅋㅋ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 하고있는 몇가지 조각들도 끝이나면 아마 내년 겨울쯤에 오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그때면 저도 졸업을 맞고 있겠죠? ㅎㅎ 아 텍본으로 만들어서 따로 개인소장할 계획인데 혹시 원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텍본공유는 암호닉내에서만 할 계획입니다 외전 몇가지 추가해서요 :)
없으면..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무안)
복숭아님 왜 안보이시지 ^^;; 얼른 펑 터뜨리고 싶은데 안보이시네요
복숭아 님, 깜동이 님, 쀼쀼 님, 킹오브킹 님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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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