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벌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제 아침에 부모님께 바락바락 대들고 와서? 공부 좀 하라는 엄마말은 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버리고 짜증만 부려서?아니면 어릴적 철없을 시절에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정말 맞아 죽어서?그것도 아니라면 날아가던 잠자리를 잡아 날아가지 못하게 날개를 뜯어버려서? 작은것부터 큰것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한 모든 속죄.그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내가 뭘 했든 이유를 몰라도 그냥 다 잘못했으니까 이게 꿈이라고 말해만 달라고.이 축축하고 어둡고 기분나쁜 곳에서 날 꺼내만 달라고 그렇게 빌고 또 빌었다.
난 불과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의 생활과 다를 것 없는 그저 평탄하고 지루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아침에 어느 날과 다를것 없이 일찍 깨우지 않아 지각을 하게 생겼다는 사소한 이유로 엄마와 말싸움을 하고 꽁한 기분으로 버스를 타서 아슬아슬하게 등교를 마친 후 점심시간만 기다리며 침을 흘리고 있다가 종이치자마자 좀비처럼 매점으로 달려나가 맨앞에서 빵을 쟁취하는 그런 생활 말이다.정말 아무런 변화도 일탈도 재밋거리도 없는 지루하기만 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단 말이다.언젠가 한번은 이런 색깔도 의미도 없는 무료한 삶에 지쳐 판타지 소설이나 스릴러 등에 나오는 파란만장한 삶에서 한번 살아보고싶다고 생각을 한적은 있었지만 정말 이런식으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서 뽑아버릴지도 모르는 방법으로 바뀌길 원한것은 아니었다.
정말 이런식으로 변하길 원한것은 아니었는데.
학교에 있는 시간 중 제일 의욕넘치고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 지난후 야자가 끝날때까지 나른하게 늘어져 잠이나 푹 퍼질러자다 일어난 개운한 정신으로 아직까지 내 옆에서 잘도 자고있는 표지훈을 깨워 밖으로 나가던 중이었다.그리고 언제나 그랬든 시시콜콜 시시한 이야기들이나 해대며 집에 돌아가고 있던 도중, 약간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오들오들 떨며 이제 완전 추워지지 않았냐고 옆에있는 표지훈에게 호들갑을 떨어 댈 즈음 골목길을 돌았고.그 골목길에 딱 하나 서있던,불빛이 간당간당하니 애써 빛을 내고있는 가로등의 불빛이 탁!하고 꺼지는 순간에 둔탁한 머리의 통증과함께 눈 앞이 깜깜해지며 정신을 잃었었다.
깨질듯 아파오는 머리를 짚고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일어났을 땐 생전 와본적도 생각도 해본적 없는 음침한 방 안이었다.습한 공기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또는 간간히 들려오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차있는 방에서 꽤나 오랫동안 허공을 응시했다.처음에는 솔직히 멍-해서 별로 두려운 생각도 들지 않았었으나 조금씩 사태파악이 되기 시작하며 서서히 밀려오는 두려움이 몸을 패닉상태에 빠지게 했다.
대체 이게 무슨일일까.여긴 어디고 나는 여기서 뭘 하고있는걸까.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겁에 질린 머리가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해결책 없는 쓸대없고 바보같은 생각만이 휙휙 맴돌았다.처음 겪어보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정신붕괴 현상을 겪고 있을 때 즈음 전에 떨어졌던 물방울 소리보다 유난히 크게난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들며 기절하기 직전 내 옆에 붙어있었던 표지훈의 생각이 났다.
같이 있었으니 만약 이곳에 끌려온 것이라면 분명 같이 끌려왔을것이다.여전히 몸은 덜덜 떨려서 제대로 움직이기는 힘들었지만 아까보단 많이 나아졌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둘러본 방 안은 꽤나 넓직한 방이었다.삭막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가구라고는 내가 누워있던 흰 침대 하나밖에 없는 그 곳을 둘러보다 핸드폰 생각이 나 급하게 입고있던 후드집업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하지만 역시나 잡혀오는것은 백원짜리 동전 몇 개 뿐.그럼 그렇지 이런곳에 잡혀왔는데 핸드폰을 그대로 놔두는 병신같은 놈이 어디있어.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끌려와 있다는 현실이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과연 이곳에서 나갈수 있기나 한걸까 오만가지 우울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끼익-낡아서 녹이 슨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잔뜩 긴장시킨채 앞을 쳐다봤다.방 안은 새어들어오는 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 했기 때문에 아른거리는 인영만이 보일 뿐 정확한 사람의 얼굴같은것은 볼 수가 없어서 몸이 잔뜩 굳어갔다.누구지 도대체 누굴까.이 기분 나쁜 곳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표지훈일 확률은 지극히 낮다.온 몸의 피가 마르는 듯 했다.검은색의 인영이 직직 기분나쁜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며 내게 느릿하니 다가오고 그것이 느릿하게 내게 가까워져 올때마다 침대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겁에 질려 비명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입술이 바싹바싹 매마르고 머릿속이 타들어가듯 하얘지며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는 패닉 상태가 찾아올 때 내 침대 앞까지 가까히 다가온 검은색의 인영이 우지호? 하고 익숙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왔다.
“표, 표지훈….?”
“하,씨발….”
아 이상한 일 생긴줄 알고 너 옆에 없어가지고.아 씨발…걱정이 가득 담겨있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말을 건내는 표지훈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다 눈물을 왈칵 하고 쏟아냈다.흐윽, 흑-흐으.혹시라도 밖까지 내 우는소리가 새어나갈까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푹 숙인채 흐느끼자 표지훈이 당황해서 침대위로 올라와 내 등을 어설프게 토닥이며 달래왔다. 울지마.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으며 등을 토닥이는 표지훈의 손이 미세하게 부들부들 떨려왔다.분명 저 자신도 무서운 것일테지.자신도 어안이 벙벙하고 무섭고 두려운데도 날 안심시키려고 강한척 쎈척 하고 있는것이 뻔했다.표지훈은 예전부터 그런 놈이었으니까.
히끅대며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대충 슥슥 문질러 닦고 난처한 표정으로 아직까지 내 등을 토닥이고 있는 표지훈의 눈을 마주봤다.표지훈은 조금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마주본 눈에는 착잡함과 함께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가득 담겨 있어 얼마 쳐다보지 못하고 그냥 시선을 피했다.서럽게 다 울고 나니 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그 상대가 표지훈이라는 사실이 안심이 되서 어느정도 진정된 몸을 감싸안으며 조용히 표지훈에게 물었다.
“여기, 어딜까.”
“글쎄.내가 아까 여기 너 찾으려고 돌아다녔었는데 병원같아.”
“병원?“
“어, 폐병원.”
폐병원….폐벙원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주위에 한기가 훅 끼쳐오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생긴거 답지 않게 겁이 많았던 내가 가장 싫어하는건 으스스한 곳,뭐 예를들어 폐교 폐가 폐병원 등등…음산한 곳들.그중에 하필이면 폐병원이라니.안그래도 좋지 않은 상황이 더 최악의 상태로 변하는거같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이제 이곳에서 뭘 해야할까.움직여야할까 아니면 계속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걸까.나름의 생각을 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 즈음 불안한듯 평소의 제 버릇답게 다리를 달달 떨어오는 표지훈이 눈에 밟혔다.표지훈의 다리 떠는 버릇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이었다.다리 떨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다리 떨지 말랬잖아.복 달아나.”
“까탈스럽긴.”
표지훈이 장난스럽게 한번 웃고 내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하던대로 아프다며 소리를 빽 지르고 표지훈의 머리도 한대 똑같이 쥐어박으려던 차에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버린 표지훈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그냥 옆에서 표지훈을 흘겼다.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는걸까.아까부터 계속 꾸준히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이지만 도통 대책이 서지 않는 방법을 끊임없이 되물으며 이제 어둠에 조금 익숙해져서 어느정도 보이기 시작한 주위를 할일없이 둘러봤다.생각에 잠겨 있던것만 한참.너무 긴장을 하고 있어 찌뿌드드한 몸에 기지개를 한번 쫙 피고 표지훈을 돌아보니 표지훈이 내 손을 딱잡고 일으키며 나가자.했다.
어차피 이 방에서 나가기는 해야 할 것이다.언제까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 기다릴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하지만 그럼에도 망설여지는 것이 일어나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표지훈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불안하다.이 밖에 뭐가 있을지 무섭고 두렵다.그러나 나가야 했다.내가 일어설때까지 내손만 만지작거리며 날 보고있던 표지훈이 내가 마음을 다잡고 자리를 툭툭털고 일어나니 픽 웃으며 날 잡아 끌어 밖으로 나갔다.끼익-아까 표지훈이 들어올때 났던 기분나쁜 쇳소리가 다시한번 방 안을 크게 울리며 느리게 열렸다.밖으로 한발을 내딛자마자 훅 끼쳐오는 텁텁하고 축축한 공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202호…머물러있던 방의 호수를 되새기고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칠흑같은 어둠으로 덮혀있는 긴 복도를 표지훈과함께 터덜터덜 걸어갔다.뚜벅뚜벅 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에 유난히 크게 울리는 발소리가 요란하다.
“어디로 나가는거야 여긴?”
“이쯤 어디에 계단이 있었던거 같은데 더 가보자.”
발에 치이는 유리조각들을 요리조리 요령껏 피해다니며 잘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으려 한참을 해맸다.나가는 출구가 있기는 한걸까 한참을 해매여도 보이지 않는 계단이 야속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으려 할 때 즈음 표지훈의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단이다.”
눈이 번쩍 뜨이며 앞을 봤다.눈을 얇게 찡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지려 최대한 집중했다.어디?고개를 더 앞으로 내밀며 묻자 표지훈이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르켰다.
“저기 왼쪽.”
어어, 보인다.표지훈이 가르킨 쪽에는 희미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정말로 정말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빛이라고 알수 있을정도의 미세한 빛이 일렁였다.우리 말고도 또 다른 사람이 있는것일까.우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사람이 나쁜 사람이건 좋은 사람이건 우선 반가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무표정하게 앞만 보고있는 표지훈의 팔을 잡고 흔들며 저쪽으로 한번 가보자고 재촉했더니 표지훈이 내손목을 잡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계단쪽을 흘겼다.
“쉿. 조용히해봐.”
“……”
“안들려?”
“……?”
“노랫소리.”
노랫소리? 고개를 갸웃하고 신경을 곤두세운채 소리를 들으려 집중했다
“…들린다.”
.라랄,라.라라라…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묻혀 희미한 노랫소리가 귀를 간질였다.약간 미성의 목소리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조용히 울려퍼졌다.반갑던 마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풍겨오는 분위기가 음산했다.꿀꺽 긴장으로 넘어간 침을 삼키고 그자리에 가만히 얼어서 표지훈을 힐끗 쳐다봤다.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진지해서 말을 걸 생각도 못하고 그냥 몸만 굳히고 있었다.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눈치만 보고 있으니 표지훈이 갑자기 내 팔을 잡고 조심히 계단 근처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조심조심. 혹여나 발소리가 크게 울릴까봐 조심 조심.점점 계단과 가까워져 갈수록 노랫소리가 뚜렷히 들리고 미세하게 일렁이던 불빛속에 있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빛이 더 어두웠던 이유가 저 그림자 때문이었나.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한발작 한발작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완전히 가까워진 계단에 노랫소리가 정확히 들렸다.이제 이 모퉁이만 돌면 계단이 나올것이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을것이다.누굴까.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작은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표지훈이 고개를 조심스럽게 빼꼼 내밀고 그 뒤로 나도 같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흔들흔들 계단에 걸터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의 몸이 즐거운듯 노래에맞춰 느릿느릿 움직였다.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노래.그 사람 앞쪽에서 나오는 작은 불빛에 반사되어 옅게 빛나는 검은 머리가 반짝였다.한참을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다 긴장으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는 표지훈을 끌어 되돌아가자고 말하려 할 때 그 사람이 갑자기 휙 뒤를 돌아봤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다.그 사람의 감정없는 큰 눈이 흔들리지 않고 곧게 우릴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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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숲을 좀 모티브 했슴다. 아 ..근데 그래봐야 아니그니까 아무런 생각없이 우선 질렀ㄹ는데요 뒤에 정해진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연재텀이 매우매우매우 느리고 끝까지 연재될지도 몰ㅋㅋㅋㅋ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왠일로 불마크 아닌걸로 하나 쓰긴햇는데 ㅏ참 ...ㅁ앞뒤문맥안맞고 븅신같아도 이해좀해주세요....사랑함니다 제글읽어주시는 독자님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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