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제도
w.콕스
살인자 X가 탈출했다. 그의 존재감은 꽤 컸다. 연쇄로 살인이 일어난 것도 충분히 쇼크였지만 그것들의 범인이 전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치밀한 범행계획은 경찰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미꾸라지마냥 잘도 빠져나가는 그는 경찰청장의 뒷목을 잡게 했다. 한 편, 어떤 시골 마을에서도 살인이 일어났다.
"아저씨, 오, 오지마요. 찌를거야."
"너희 어머니를 잘 돌봐준다니까? 그러니까 한 번만 대달라고."
경수는 들고 있던 칼을 힘껏 휘둘렀다. 넌, 어차피 날 못 찔러. 넌 착한 아이니까. 아저씨는 우악스런 두 손을 쫙 펴고 경수에게 달려들었다. 경수는 칼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아아악, 겨, 경수야.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던 그의 손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아냐. 난 살인자가 아냐. 경수는 자폐아마냥 이 말을 기계적으로 중얼거리다가 다리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때문에 자신이 들고 있던 피 묻은 칼이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수는 손으로 입을 가렸고 눈물이 손의 주름을 따라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믿을 수 없어서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얼른 도망가야만 했다. 경수는 죽고 싶지 않다는 비겁한 생각을 했고, 그래서 자신의 친구인 백현의 집으로 냅다 달렸다. 경수가 백현의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그의 뺨에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잔뜩 묻어 번들거렸다.백현아, 나 좀 도와줘. 심장은 아직도 쿵쿵거렸지만 말은 무섭도록 차분했다. 나, 죽고 싶지 않아, 백현아. 나 어떻게 해야 해?
"무슨 일이야, 경수야. 무슨 일인데."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그래도 이 따뜻한 목소리가 그대로일까? 불안했지만 나는 몰라도 우리 어머니는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의 일을 숨을 헐떡이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를 잘 돌봐줘. 난 도피성으로 가야할 것 같아, 그 아저씨 가족들이 해코지하지 않고 우리 엄마 고생하지 않게, 이유없이 욕 먹지 않게. 경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 도망가는 게 더 의심받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의 부인에게 하루종일 나와 함께 있는다고 했으니까 내가 범인임을 금새 알아챌거야, 백현아. 부탁이야 정말로. 근데 정말,"
정말 죽일 작정은 아니었는데, 경수는 뒷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서러움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울음을 터트려서 흐느끼게 했다. 백현은 그런 경수를 꼭 안아줬다.
"알겠어, 경수야. 네 말대로 할게. 그러니 울지마."
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백현의 손은 경수의 등을 토닥였고 경수의 흐느낌은 점점 줄어들었다. 울다지쳐 잠들었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경수는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백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왜 했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모친을 잘 부탁한다는 신신당부 정도로 여기겠다. 경수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고 파리한 안색의 엄마를 마주했다. 순간 울컥한 경수는 따스한 그 손을 매만졌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게 가장 큰 불효라던데, 자신의 죽음, 어머니의 슬픔, 어머니의 죽음, 백현이의 슬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져 갔다.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비겁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저 악운의 고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수는 감성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경수는 서둘러 버석하게 갈라진 어머니의 입술에 살포시 입을 댔다. 무사히 돌아올게요, 엄마.
xxx
도피성은 컸다. 하지만 담쟁이덩굴 때문에 웅잠함은 온데간데 없고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경계하기에 바빴다. 아마도 살인자 X 때문이리라. X가 도피성에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몇 살인지, 이름이 뭔지, 심지어는 성별은 아무도 몰랐기에 서로에게 벽을 쌓고 있었다. 간수쯤 되어보이는 사람은 나를 어떤 방으로 데려다줬다. 세 명의 사람이 있었지만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와도 별 반응이 없었다. 붙임성이라는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사람이 X는 아닐까? 사람들의 머릿속이 보이는 듯 했다.
"저기요."
한 번쯤은 돌아볼 법도 했지만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무관심했다, X에 대한 경계심은 둘째치고 어느 누구도 신입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경수는 이 방의 모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질문을 던졌다. 솔깃할 법도 한데,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경수는 한숨을 푹 내쉬고 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경수의 쓸데없는 호기심은 그를 제자리에 앉아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말을 걸고 싶다, 경수는 끊임없이 갈등했다. 결국은 옆의 밝은 노란색의 머리를 가진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예상한 결과였기 때문에 아까만큼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경수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물었다. 이름이 뭐에요?, 어디서 왔어요? 등의 의미없는 호구조사를 이어나가는 것을 듣다 못한 그 남자는 뒤로 홱 돌아 경수를 쳐다봤다. 정면에서 본 그의 얼굴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아름다웠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루한, 23살, 어디서 왔는지는 도피성 내에서 묻지 않는게 예의야, 그리고 아까와 같은 발언은 안 하는게 좋을거다. 따박따박 할 말을 다한 루한은 예의 자세로 돌아갔다. 아까와 같은 발언이라,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요?' 를 뜻함이 분명했다. 입조심하라는 뜻인가? 하지만 여기도 엄연히 감옥이었고, 나를 포함한 이 많은 수용자 중에서 X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일 터인데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라도 나가고 싶을 것이 아닌가. 근데 왜 한 번도 탈옥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경계하는 분위기에서는 밥도 못 먹을 것 같기는 하다. 점점 생각이 꼬이는 듯한 기분에 경수는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몰라, 배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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