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새벽 두시 반 정도였다. 추운 날씨 탓에 이불 속을 벗어나기 싫다며 본능적으로 무기력한 몸뚱이를 웅크리고 꿈 속을 헤메는 중이었으나 내 머리 바로 옆에 있는 핸드폰이 몸을 부르르 떨며 아우성을 쳐 무심코 눈을 떴다. 잠결에 팔을 뻗어 전화를 받으려 했지만, 화면 위로 눈에 익은 숫자 열 한자리가 시야를 통과하여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정신이 깨는 순간 움직이던 팔을 멈추고 휴대폰으로 향해있던 걸 도로 거두었다. 자기 좀 봐주라는 듯 난리를 부리는 전화기를 일부러 받지 않고 억지로 잠에 들기 위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쓰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한번 꺼졌던 전화기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울려대어 날 괴롭혔다. 일분일초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는 지금. 새벽 밤에 잠을 깨는 게 어느덧 익숙해진 무렵이었다. 그 사람은 이 시간만 되면 매번 날 부르고는 한다. 먼저 이별을 고했던 그가, 그 차가운 눈으로, 날카로운 말들로 내 마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더럽게 미련하게도 난 그의 부름에 응답하기 일쑤다. 그가 아직까지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에 기쁜 마음이 사무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언젠가는 아예 연을 끊어버리고 저 멀리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생각 뿐이었다.
"……여보세요… ."
일어난지 얼마 되지않은 터라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는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가, 내가 정신을 놓아버리고 잠의 무게에 눈이 버티지 못할 때쯤에야 그사람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야, 정택운."
"알아."
"…보고 싶어……○○아………. 이번만 … "
그저 '보고 싶다' 라는 말 한마디였다.
엄마잃은 아이마냥 날 찾는, 마약같은 너의 목소리로 점칠된 그 한마디. 고약하게도 내 잠을 단숨에 달아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