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추워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팔에서 긴팔을, 긴팔에서 코트를 입어가며 제 몸을 얼려버릴 듯한 추위를 막으려고 애를 썼다. 덥다면서 징징대고 잠도 제대로 못잤던 게 엊그제인마냥 생생한데 요즘엔 두꺼운 이불 속에서 자꾸만 덕지덕지 달라붙어 눈꺼풀을 잡아 내리려하는 잠들을 내쫓느라 정신이 없다. 꿀같은 주말을 통해 아껴뒀던 잠을 한번에 다 쏟아놓고 깜깜한 저녁이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마음같으면 날이 새도록 쓰러져 잠을 청하고 싶은데 그렇게 가다간 아까운 시간을 잠을 자는 데에만 낭비할 것만 같아 일부러 과장되게 기지개를 켰다. 보일러를 킨 집 안은 꽤 따끈따끈해서 어디라도 등만 대었다 하면 잠이 솔솔 올 것 같았다. 입을 쩍 벌려 크게 하품을 하고 갈아입을 옷과 속옷을 챙겨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 나와보니 보이는 건 세차게 몸을 떨어대다가 축 가라앉은 휴대폰. 못다말린 머리 위에 마른 수건을 얹고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부재중전화 8통 메세지 3통. 정택운정택운정택운, 그리고 정택운. 마지막으로 정택운. 참 알맞은 타이밍에 연락을 다 하고 난리야 라며 휴대폰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으면 휴대폰은 또 다시 몸을 떨며 전화가 왔다는 화면을 비춰주었다. 발신자 정택운. 괜한 오해을 사기 전에 냉큼 전화를 받았다. 녹색의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들려오는 한마디 '……어디야.' 매우 짧고 간단명료한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응? 어디긴 집이지. 방금 샤워하고 나왔어.
웬 일로 전화를 다 하나 싶었더니 좀만 있으면 집에 도착한단다. 달달한 안녕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은 뒤 소소하게 정리가 안되어 있는 집 안을 마구잡이로 정리했다. 거실 소파 위에 널부러져 있는 옷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나서야 울리는 벨소리. 마냥 좋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가 현관문을 열면 얼마 전에 주문한 택배기사가 서있던 게 함정이었다면 함정이겠지. 머쓱한 마음으로 택배를 소파에 내려놓으면 몇초 지나지 않아 벨소리가 또 한번 들려왔다. 이번에는 정말 그겠지 하는 마음으로 문을 벌컥 열면 추운 겨울바람에 코가 빨갛게 변한 그가 내 앞에 서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며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는지 조금 새초롬함 표정으로 날 꼭 껴안았다. 시린 겨울 눈꽃의 냄새와 그가 쓰는 샴푸의 냄새가 어우러져 기분 좋은 향을 만들어냈다. 어쩜 그에게서 비롯되어 있는 모든 게 이리 좋을 수 있는 걸까. 내 어깨에 얼굴늘 파묻고 있던 그는 얼굴을 살짝 들어 조곤조곤하게 말하였다. 위험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문을 벌컥벌컥 열어줘. 다음부턴 누구인지 묻고 인터폰 보고 열어. 걱정어린 잔소리에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며 너인 줄 알고 문열었지~. 능청스럽게 그가 말하는 주제와 살짝 엇나간 대답을 하였다. 그는 날 보고 따라서 웃으며 그래도 다음부턴 꼭 조심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지인에게서 얻어놨다는 귤 한봉지를 내게 넘겨주었다. 안그래도 먹고 싶었는데.
택운아.
…….
택운아?
…….
택운아 그만.
콕, 콕 콕콕. 카메라 앞에서는 한없이 조용한 그는 왜 이런 때만 되면 이리도 정신 사납게 구는 것일까. 내가 그만 하라고 해도 그만 재미가 들려버린 건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자꾸 찔러댄다. 내 볼살이 그리 통통하더니? 어젯밤 갑작스럽게 티비가 고장나 휴대폰으로 프로그램을 한창 시청하고 있으면 사정없이 볼찌르기 공격이 시전된다. 볼을 찌르는 행동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라서 내 볼을 찌르는 손을 탁 잡았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지지 않았고 남은 손으로 내 볼을 감싸안아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세례를 날렸다. 그렇게 평생 받을 뽀뽀를 불과 몇분만에 다 받아내고 난 뒤 설상가상으로 내게 자신의 몸을 기대오는 그의 덩치에 밀려 뒤로 밀려나는 몸을 막지 못하고 겨우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있으면 그는 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내 볼에, 코에, 이마에, 그리고 귀에다 도장을 찍듯 입술로 꾹 꾹 눌러 쪽 소리나게 입을 떼었다. 네 입술에 뭐라도 발라져 있었으면 내 얼굴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거야 하고 실없는 생각을 방해하며 그는 내 귀에 듣기 좋은 미성을 흘려보내었다.
샤워했네.
응.
별빛이 또 샤워하게 만들어서 미안.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다 묻기도 전에 그는 날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드세게 안아올리고는 진한 입맞춤을 선사해주었다. 한발짝 한발짝 큰 방을 향해가는 발걸음. 주말을 끝내려 여유롭게 흘러가던 시간이 한순간에 높은 온도를 웃돌았다. 내일부터 다시 바빠질 거라며 조금 급하게 내 입술을 찾는 그. 옷을 헤치고 맨살을 쓸어내리는 손이 차가워 그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내 옷을 돌돌 말아 올리며 그가 작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