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일곱, 여자 하나
─ 지민 번외
24. 그 남자의 속사정
"아가야, 일어나야지."
팀 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무언가가 거슬린다는 생각이 없던 한 남자는 며칠 전, 아니 몇 달 전부터 어느 무언가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가. 그 놈의 아가. 지민은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노력하면서, 손으로 두 눈을 박박 비벼댔다. 역시나 하루 중 가장 힘든 것은 아침에 기상하는 일이다. 지민은 옅게 웃는 00을 빤히 봤다. 이미 깔끔하게 씻은 상태다. 어젯밤 같은 시간에 잠들었음에도. 지민은 무의식적으로 00의 입꼬리를 만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호석. 홉아."
"아으……."
"안 일어날래. 너도 아가냐."
"일어나써……."
……그렇게 몸 막 두들기지 말지. 지민은 어느새 잠이 다 깬 말짱한 정신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 층 침대를 쓰고 있는지라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다리들이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호석의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치는 00이 내심 못마땅했다. 지민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자신의 입을 꾹꾹 밀어넣으며, 자신의 다리에 시선을 옮겼다.
"박지민, 귀여운 짓 하지 말고 얼른 나와. 씻고 밥 먹자."
"……."
박지민이라고 부르지 말지. 지민이라고 불러 주지. 귀여운 짓이라고 하지 말지. 그냥 누나랑 같이 나가자, 하지. 지민은 무언가 끓어오르는 속을 잠재우고는 입을 열었다.
"……누나."
"응?"
"……아니에요."
뭐야, 싱겁게. 00은 여전히 미소를 걸친 채였다. 지민은 00이 나감을 확인하고 다시 침대에 철푸덕 누웠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감정을 숨기기란 어렵다. 신경이 곤두섰다. 혹여나 작은 구멍으로 새어나가면 어떡해. 지민은 얼굴을 쓸었다. 하루 새에 턱 주변으로 올라온 털들이 까슬하게 만져졌다. 지민이 눈을 감았다.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25. 그 무언가
지민은 무언가가 어긋나 있다고 느꼈다. 평소와 같은 멤버들을 보는 자신의 마음이 그랬다. 심사가 뒤틀릴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알 것 같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원인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지민은 자꾸만 찌푸려지는 얼굴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대기실을 쭉 바라보았다. 데뷔를 막 했을 때와 상반되는, 꽤 큰 대기실이었다. 지민은 멤버들 모두를 관찰하다 숨이 막힘을 느꼈다.
"……."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그러했다. 고요하고도 깊다. 까만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어 더욱 불안케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더 조용하고, 더 잔잔했다. 지민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그랬다. 잠식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꿰뚫는 듯한 모습에 지민은 긴장된 몸으로 침을 삼켰다. 00은 그런 지민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눈을 돌렸다. 그러나 지민의 경직된 몸은 풀릴 줄을 몰랐다.
……들켰나.
지민이 벽에 머리를 쿵, 박았다. 대기실이 언제나 소란스러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신에게 시선이 쏠렸을 테니까. 지민은 잠시 00을 곁눈질했다. 00은 즐겁게 떠드는 멤버들을 보며 잔잔히 웃었다. 들키지는 않았나 보다. 지민은 00의 입꼬리가 시원하게 말려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또 울렁거림을 느꼈다.
지민은 그저 눈을 감았다. 잠을 청해야겠다. 안 그러면 울렁거려 참을 수가 없으니까.
26. 요즘
"형, I NEED U 틀어 주세요."
"갑자기 그건 왜?"
"요즘 그 노래가 좋더라고요."
"난 질려서 못 듣겠던데. 활동할 때 너무 많이 들었어."
투덜대는 호석에 지민이 짧게 웃었다. I NEED U. 화양연화 파트 원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다. 앞좌석에 앉은 남준이 몸을 움직여 지민의 말대로 노래를 틀었다. 지민은 렌즈를 껴 뻐근한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박지민 I NEED U 활동할 때는 혼자 사랑 안 해 봐서 가사 이해 안 된다더니."
"……."
"요즘은 이해돼?"
앞좌석에 앉은 00이 고개를 비틀어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민이 대답하지 않았어도 00은 굳이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나 본지 곧 고개를 돌렸다. 옆에 탄 호석이 지민의 팔을 툭 쳤다. 왜 그러냐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요즘 지민은 상당히 이상했다.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만큼. 긴장에 좇기는 느낌이었다. 지민은 그저 눅눅한 입안 여린 살을 이로 꽉 깨물었다. 참을 수 없는 뜨거움이었다.
27. 주체가 안 돼
"지민아."
"……."
"박지민!"
"……네?"
"이제 그만 가서 쉬어. 땀 좀 봐. 윤기랑 00이도 곧 간다던데."
"……누나랑 형도 있었구나."
땀에 젖어 찐득한 몸 때문에 불쾌지수가 올라갔다. 연습실을 관리하는 직원이 지민을 두어 번 불렀지만, 연습에 집중했던 지민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직원의 입에서 나오는, 나란히 언급되는 두 이름. 지민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언제나 당연히 작업실에 있던 둘인데. 언제나 아무렇지 않던 지민은 이제 더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파스락, 상실된 것 같은 기분이 지민을 덮쳤다. 지민은 마음이 무거워 몸까지 무거워지는 기분을 무시하고 연습실 구석에 던져 두었던 가방을 들었다.
"윤기랑 00이랑 같이 갈 거야?"
"……아뇨. 너무 몸이 찐득거려서 빨리 먼저 가려고요."
"그래? 당연히 같이 갈 줄 알았는데. 지민이 네가 기다리면 윤기랑 00이가 그나마 빨리 가잖아. 걔네 둘 그러다 몸 상할까 봐 걱정이다."
"저도 걱정돼요."
나란히 언급되는 그 두 이름을 듣기가 힘들었다. 지민이 억지로 볼을 그러모아 웃었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아팠다.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연습실 밖으로 나간 지민의 표정은 역시나 어두웠다. 지민은 애꿎은 벽을 주먹으로 쾅 쳤다. 아프다. 어디가 아픈지 모르는 것이 흠이지만.
"열받아."
화가 났다. 원인이 불분명하면서도, 그것만큼 정확할 수는 없는 화. 지민은 혀를 씹었다. 주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이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27. 알았어
"요즘 지민이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물기 젖은 머리를 털던 손이 멈췄다. 자신의 대해 묻는 태형의 목소리가 퍽 선명해서였다. 지민은 머리카락 끝에 맺힌 물방울들을 의식하지 않고 머리를 넘겼다. 태형은 마저 말했다. 뭔가 기분 안 좋아 보여요. 날카롭다고 해야 하나. 지민은 핏,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참아 냈다. 눈치만 빨라선. 멤버들 모두가 느낀 거였다. 요즘 지민이 다른 때와 같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멤버는 없었다.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 지민은 젖은 수건을 빨래통에다가 가져다 두려 움직인 다리를 우뚝, 멈췄다.
"그러게. 왜 그럴까."
00의 목소리. 높낮이 없는 목소리였다. 감흥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 관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지민은 문득 울컥함을 느꼈다.
"누나가 얘기 좀 해 봐요. 그래도 지민이가 누나한테 그런 거 잘 말하잖아요."
"……누나가 하면 안 될걸, 그거."
"응? 왜요?"
"누나가 원인이거든."
아.
"누나가 나서면 다시는 이 관계 유지 못해."
들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라도 돼요, 태형이는."
"아, 뭐예요!"
지민이 급히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알고 있었다. 00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28. 과연
"어떻게 할 거야?"
"뭐가?"
"알면서 모르는 척이 제일 나쁜 건 알지?"
"나도 알아."
목을 쭉 빼고 모니터에만 시선을 보내던 윤기가 고개를 틀어 00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표정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윤기는 재차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00은 재차 대답했다. 모르겠어. 모르는 척하던 이전의 대답보다는 훨씬 더 솔직한 대답이었다.
"지민이가 감정을 잘 숨겨서 마련이지, 안 그랬으면 애들 다 알았을걸."
"그럼 뭐 해. 너랑 나한테 들켰잖아. 아직 미숙해. 요즘 다 지민이 눈치 보고 있는 거 몰라? 감정을 숨기려고 신경이 곤두선 건 다 알아챘잖아."
"야. 숨겨지고 참아지면 그게 감정이냐."
노트를 끄적이던 00의 손짓이 뚝 끊겼다. 윤기는 기세를 몰아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애 불쌍하지도 않아? 너만 보면 긴장해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그게 짝사랑의 기분 좋은 긴장이 아니라 들킬지도 모른다는 기분 나쁜 긴장이고. 네가 변태라도 되냐, 그거 즐기게. 지민이 예뻐하는 애가.
"예뻐하면 뭐. 사귀라고?"
"삐뚤어지지 마."
"네가 나 몰아세웠잖아."
"……그건 미안."
한숨을 쉰 윤기가 완전히 의자를 뱅글 돌려 00을 향해 마주봤다.
"팬들 알아채는 거 순식간이야."
"당연하지."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
"왜 못해? 팬들이 알아채면 뭐."
"민윤기, 넌 우리팀이 갑자기 추락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네 연애 한 번으로 추락하라고 이 팀에 들어와서 음악 한 줄 아냐?"
"너 진짜."
"나 너네 좋게 봐. 그러니까, 내가 좋게 볼 때 잘해."
좋은 소식 좀 들어 보자. 윤기의 말에 00이 윤기를 눈으로 흘겼다. 윤기는 그런 00에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골이 아팠다. 00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29. 새벽
"지민아."
"……."
"박지민."
일어나 봐, 지민아. 00은 지민을 툭툭 깨웠다. 지민이 잠결에 내뱉은 신음들 때문이었다. 덥다며 거실에 나와 잠든 지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방에 들어갔다 나온 00은 지민이 배 어디쯤을 부여잡고 낑낑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 멤버들은 다 잠든 상태였다. 00은 계속 끙끙대면서도 일어나지는 않는 지민의 태도에 한숨을 쉬었다. 박지민, 안 일어나면 뽀뽀한다. 반응이 없었다. 00은 정말 얼굴 가까이 가져다댔다. 깊게 잠이 들었나 확인해 볼 찰나였다.
"박지민 말고 지민이."
"……."
촉. 풀린 눈으로 잠에서 깬 지민이 00에게 입술을 가져다댔다. 두 입술을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히 겹쳐졌었다. 숨결이 다가왔던 얼굴 언저리가 뜨거웠다.
"들어가서 자요, 그냥. 나 별로 안 아파."
"……야."
"얼른요."
지민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00의 등을 떠밀었다. 방에 다다른 00이 소파에 드러누운 지민을 소리 없이 돌아봤다. 지나치게 고요한 밤이었다.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시끄러웠다.
30. 정면돌파
"00 씨 이상형이 정말 꾸준하네요. 느낌이 좋은 사람. 요즘도 뭐 추가된 거 없나요?"
"딱히 없긴 한데……. 뭔가를 바라시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 들켰나요?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 봐요. 좋아하는 배우라든지, 아니면 느낌이 좋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정도. 팬분들이 00 씨에 대해 알아갈 기회를 주세요."
예정에 없던 질문이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아 00은 하하 웃었다. 이상형이라면 무어라 말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는 중인 00이 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00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웃을 때 눈이 감겼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예뻐 보이더라고요. 또, 입술이 도톰했으면 좋겠고. 특히 아랫입술이요. 손도 조금 작았으면 좋겠다. 아, 공감대도 중요하니까 춤 좀 춰 본 사람이었으면 해요."
물을 마시던 지민이 쿨럭, 기침을 했다. 옆에 있던 석진이 지민의 등을 두들겼다. 괜찮아? 지민이 입을 막고 기침을 해댔다. 목이 칼칼했다. 00은 여전히 지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인터뷰어가 그동안 이상형 얘기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대? 하고 장난스레 얘기했다. 그러게요. 00이 대답하며, 지민에게서 시선을 천천히 떼었다. 지민의 얼굴이 지나치게 붉었다. 사레 때문인지, 아니면 00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석진은 그런 00과 지민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요히 생각하는 것이다. 쟤네, 뭐 있구나, 하고.
31. 너네 뭐야?
탁탁탁, 칼과 도마가 부닥치는 경쾌한 소리가 부엌을 울렸다. 파를 송송송 썰어 보글보글 끓던 찌개에 휙. 석진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00은 살짝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냄새에 코를 찡긋거렸다. 계란국. 오늘의 아침은 계란국이었다. 어제부터 태형이 노래를 부르던 그 계란국. 평소에 햄버거와 짜장면만 찾던 태형이 무슨 일인지 계란국 계란국 노래를 불러 석진은 냉큼 계란국을 끓였다. 아침부터 같잖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이는 것보다야 계란국이 훨씬 더 나으니까. 순조롭게 끓는 냄비를 두고 석진은 냉장고로 가 습관처럼 계란 네 개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00이 얼른 그 손을 제지했다. 오빠, 계란국인데 계란 프라이는 좀. …역시 그런가. 석진은 계란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며칠 전 부모님이 보내 주셨던 반찬들을 꺼냈다. 콩나물무침부터 어묵볶음까지. 책을 읽으면서 메모장에다가 글을 끄적이던 00이 냉장고를 슬긋 보고 말했다. 두부조림 곰팡이 피었던데.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00아."
"네."
"지민이랑 뭐야?"
"지민이요?"
아직 다른 멤버들이 깨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00이 연필을 쥔 손을 꼼지락댔다. 석진은 국자로 완성되어 가는 계란국을 국자로 휘휘 저었다가 뚜껑을 덮었다.
"썸이라도 타?"
"아뇨, 그건 아니고……."
"응."
"그냥, 박지민이 고백을 안 해서요."
00의 음성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아직 다른 멤버들이 깨어나지 않았다. 석진은 벽 뒤에 있는 지민을 곁눈질했다. 지민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겼다. 00은 다시 메모장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의미 없는 낙서였다.
00은 코너쪽 벽에 몸을 숨긴 지민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오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걸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32. 낭만적
"누나, 들어가도 돼요? 지민인데."
지민이 00이 있을 작업실을 똑똑, 두어 번 두들겼다. 옆에 있는 연습실에서 방금 막 온 참이었다. 지민의 머리가 조금 젖어 있었다.
지민이 굳이 자신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00이 지민이란 건 알아채기 쉬웠다. 다른 멤버는 그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음 들어왔지, 이렇게 방문을 두들긴다거나 서성거린다거나 하지 않으니까.
00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지민이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 00은 불을 전부 다 꺼 놓은 채 자신이 벽에 붙여 두었던 포스트잇들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다. 00이 분홍색 포스트잇을 떼며 들어온 지민을 바라보곤 물었다. 아직 숙소 안 갔어?
"아직 누나 작업실에 있는 거 아는데 왜 가요."
작업실은 어두웠지만 켜진 모니터가 방을 밝혔다. 그 옆에 놓인 바닐라향 향초 또한 빛을 더했다. 지민의 말에 00의 시선이 밑을 향했다. 긴 속눈썹이 눈밑에 가볍게 내려앉는다. 지민은 그 속눈썹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지난번에는 00의 속눈썹이 몇 개인지 세어 보곤 00에게 누나 속눈썹을 세어 봤는데 마흔 두 개다, 하고 넌지시 말했더니 00은 양 볼을 그러모아 웃었더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민의 말에 00은 노랑색 포스트잇을 떼며 살풋 웃었다.
"집 언제 갈 거예요?"
"글쎄. PD님이 주신 비트 들어 보고 가야 해."
시간 좀 걸려. 냉장고에서 뭐 좀 꺼내서 마시고 있어. 소파에 몸을 기댄 지민이 슬쩍 웃었다. 지금 한 00의 말은 평소 앨범 프로듀싱을 맡던 형들이 하는 말이어서였다. 지민이 바닥에 깔린 카페트를 발로 말았다가, 폈다가 했다. 00은 어느새 몸을 말아 앉아 벽 아래쪽에 있는 포스트잇을 떼 내는 중이었다.
새삼 작아. 나보다도 더. 몸을 웅크린 00의 몸이 새삼 작았다. 꽉 안으면 아스라질 것같이. 지민이 00의 몸선을 눈으로 죽 그려나갔다. 딱 떨어지는 어깨에서 뻗어나간 팔, 그 팔 끝에 달린 손, 펼쳐진 손가락들.
"누나."
"응. 왜."
"안아도 돼요?"
뭐? 00이 코끝을 찡그렸다. 지민이 천천히 00을 잡아끌었다. 00은 순순히 끌려왔다. 손목도, 손도 작았다. 지민보다 더. 불 꺼진 작업실, 켜진 향초에서 나는 바닐라향, 단둘이, 둘이, 둘만. 지민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눈앞이 새까맸다. 그저 본능이 품은 온기만을 느낄 뿐이었다. 00이 지민의 품에서 바즈락거렸다.
"좋아해요."
"……."
"알고 있었으면서."
좋아해요, 진짜. 지민의 중얼거림에 00은 꽉 쥔 탓에 조금 구겨진 포스트잇들을 가만 쳐다보았다.
"사귈까요?"
"……."
"사귀어요."
"……."
"누나, 대답."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지민은 이상하게 부끄러워야 할 타이밍에 대담해져서 사람을 민망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
"네?"
"…사귀어."
00은 열이 오른 얼굴을 지민의 어깨에 꾹 파묻었다. 아. 박지민. 쓸데없이, 왜……. 불이 켜진 상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빨간 얼굴을 보인다는 건 충분히 창피할 만하니까.
"그거 알아요? 나 지금 누나가 좀 더 좋아진 것 같아."
00은 으, 하고 짧게 신음했다. 심장이 얼굴로 옮겨진 듯 두근두근 뛰었다. 지민이 키득거렸다. 누나, 죽으면 안 돼요. 나랑 연애해야죠. 00의 손에 있던 포스트잇들이 빳빳한 형태를 잃어 갔다.
| 33. 커뮤니티 |
요즘 왜 때문에 지민이 오빠미 쩖? (N)
댓글 (N)
원래부터 짐니는 오빠미 쩔었음 문제는 그 쩌는 오빠미가 00이 뒤에서 발산되는 거지……
└ 000이 보고 있을 때의 짐니:
└ 000이 안 보고 있을 때의 짐니:
00이 앞에선 지가 아카미 쩔어 놓곤 00이한테 어린 애 취급하지 말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괘귀여움
└ 근데 박짐인 은근 귀여움받는 거 좋아함
아육대 여돌 인기 1위 00이 (N)
그리고 그걸 아니꼽게 바라보는 박오빠
댓글 (N)
헤엑 곧바로 키스할 기세네
└ 얜 또 모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도 1위 했으면서;;;;;;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초 펑 (N) 일단 난 관계잔데 진짜 우연치 않게 들은 거구! 추가 1분 펑
댓글 (N)
????????? 오빠
헐 00이 반응은?
└ ㄱㅆ) 사과가 좀 늦네, 하시면서 지민님 팔 툭 치셨어!
어 근데 이거 막 이렇게 풀어도 되는 거니? 사생활인데 음
└ㄱㅆ) 위에 써 있듯 어디 인터뷰에서도 말하셨대!
3초 펑은 못 봤는데 1분 펑 뭐야 대박 설렘 나 언니한테 시집 갈래
숙소 가서 뭐 하려구~ㅎ?
└ 짐니는 당연하게 00이 방으로 가겠지~ㅎ |
| ᕕ(ᐛ)ᕗ |
일단 울고 시작합시다. 애들이 컴백했으니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진짜 얼마나 심장을 부여잡았는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들을 앓기에 너무 짧은 주말이었네요. 내일이 월요일이라니 진짜 너무 싫다. 글이 한 번 날라가서 그런지 매끄럽지 않을 수 있는데, 이해해 주셨음 좋겠어요! 좋은 밤 되기를 바라요! 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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