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이준혁 온앤오프 김남길 엑소 샤이니
치프 전체글ll조회 561l 6

계절의 언덕

남우현 김성규

W치프

 

 

 

 

 

 옅은 물때가 끼인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탁하다. 구름과 하늘의 경계가 흐릿하고 햇볕이 아스라하다. 비가 온다는 말도 없었는데 어두운 구름이 잔뜩 음울해 보인다. 해는 천천히 넘어가며 노을을 만들었지만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너울거리는 붉은 기운 밑으로 이파리가 익어가는 나무들이 흔들린다. 조금씩 날리는 노오란 이파리와 함께 새가 날개를 퍼덕거린다. 자꾸 움직이는 날개 뒤로는 아무것도 없다. 외로운 몸짓이다. 성규는 노트북의 화면이 어두워지는 것도 모르고 계속 창밖을 보다가 고개를 바로 한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 검게 꺼진 모니터에 저의 얼굴이 비춘다.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밝은 색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다. 입술은 거칠게 껍질이 일어나고, 말라서 볼이 들어간 얼굴은 샤프하다기보다는 초췌하다. 형광등의 불빛이 맺힌 눈이 탁하게 보인다. 다시 창밖을 본다. 잿빛의 새는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외로운가. 부끄럽지 않게 고개를 저을 수는 없었다. 성규는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마우스를 흔든다. 아내와 삼 년 동안 연애를 하다가, 어쩌면 조금씩 저를 압박해오던 묘한 부담감을 떨치기 위한 돌파구로 결혼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연애의 설렘은 빛바랜 사진 같고, 결혼의 정도 없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지만 그건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애정이 없다면 마찰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같은 지붕 아래 살았을 뿐, 함께 살지는 않았다. 아내나 저나 잦은 잠자리를 꺼려했다. 아마 아이의 존재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무책임한 방황도 더 이상 할 수 없을 테니까. 사랑의 빈자리를 책임이 메우게 되는 것이 싫었다. 아이가 둘을 잡아놓는 구실이 되는 것이 싫었다. 아마, 그래서, 아내가 해외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쉬운 마음 깊숙이 작은 흥분이 몸부림 쳤을지도 몰랐다. 아내가 떠나던 날, 공항에 바래다주고 손을 흔들어주던 저의 가슴이 일탈의 짜릿함으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떠난 집에서 혼자 소파에 앉아 텅 빈 집안을 둘러보니 외로움 속에서 야릇한 평화가 저를 엄습했다. 한결 편해진 가슴이 언짢았다. 그런 뻔뻔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일부러 고독을 갈망했다. 아내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기를 바랐다. 실제로 그 때의 성규는 외로웠다. 당연히도 아내의 부재가 저를 고적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에도 낙엽이 발밑을 구르는 듯한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어두운 골목의 가로등 밑을 걸을 때, 성규는 멈춰 섰다. 흔들리는 그림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노랗게 빛나는 주홍색의 가로등불을 바라봤다. 그제야 알았다. 저는 언제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뛰어들어 마른 날개를 푸덕거리는 날벌레처럼, 저는 외로웠다.

 

 성규는 노트북을 정리하고 의자에 걸쳐두었던 검은 자켓을 입는다. 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퇴근 시간이 꽤 넘었다. 책상 위에 커피가 말라붙은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회사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성규의 하얀 손이 팔랑팔랑 흔들린다. 사무실을 나서고 밖으로 걸어가는 걸음에 힘이 없다. 테이프를 감아 다시 재생 하는 것 같은 일상은 지독한 무기력함을 느끼게 했다. 막 사회인이 되던 때의 설렘과 기분 좋은 두려움이 기억나지 않았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 청춘은 봄꽃처럼 너무 빨리 져버렸다. 이제는 꽃이다 떨어지고 이파리만 남아서 그 흔적만 억지로 붙잡고 있을 뿐이다. 서른둘의 회사원에게 청춘은 그러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아니, 처음부터 잘못된 게 아닌지도 모른다. 사실 삶이란 것은 원래 이렇게도 지루한 것일지도 몰랐다.

 

 가을이라 해가 짧아져 벌써 하늘 구석으로 쪽빛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성규는 사람들이 만든 검은 무리에 섞여 걷기 시작한다. 길바닥은 뭉게진 은행 열매로 얼룩덜룩하다. 성규는 그 위를 천천히 걷는다. 열매는 구두에 밟힐 때 마다 으적 소리를 내며 깨어진다. 짓밟혀 깨인 은행과 낙엽이 발밑에 붙어 걸음을 무겁게 한다. 어깨가 묵직하고 허리가 뻐근하다. 한숨을 쉰다. 답답함이 가슴 한 켠을 꽉 움켜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이것마저 익숙해져서 당연스럽게 여기게 되는 것이 싫었다. 성규는 계속 걷는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일부러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서 얼마 걷지 않아 금세 익숙한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매일 아침 보던 꽃집, 퇴근 시간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댄스 학원, 항상 노오란 조명을 은은하게 켜고 있는 작고 따뜻한 커피숍. 성규는 멈춰 서서 커피숍을 바라본다. 커피를 퍽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집 앞의 아담한 커피숍은 발길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프랜차이저와는 다르게 몽글몽글 온기가 피어나는 느낌이다. 그냥 집에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히터의 훈훈한 공기가 끼친다. 성규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카운터로 걸어간다. 흰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 언저리까지 걷어 올리고 검은 앞치마를 단정히 입은 우현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똑같은 것 드릴까요?”

 

 

 앞머리에 숱이 많은 검은 고수 머리가 잘 어울리는 우현이 으레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 도톰한 입술이 부드럽게 올라가고, 오뚝하고 곧은 코 끝에 형광등의 빛이 살짝 맺히고, 속쌍커풀이 있는 눈이 다정하게 웃는다. 성규는 우현의 미소에 살짝 웃으며 예, 하고 대답한다. 청춘에 머물러있는 청년의 얼굴은 달콤한 커피향이 난다. 저와는 다른 느낌이다. 성규는 아마 저에게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날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모든 청량감을 박탈당한 기분이다. 성규는 씁쓸한 기분으로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든다. 지갑이 접힌 모양이 그대로 남은 구석이 꼬깃, 구겨진 지폐. 우현은 지폐를 받아들고 성규에게 거스름돈을 건네준다. 하얗고 가느다란 성규의 손은 보드랍기까지 해서 꼭 여자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성규는 우현이 저의 손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채고는 슬쩍 손은 거둔다. 계집애 같아서 부끄러운 손. 아내는 저의 손이 남자답지 못하다며 농담 같은 핀잔을 주고는 했다. 우현은 저의 시선이 들킨 것 같아 무안한 기분이 들어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서는 성규가 항상 주문하던 달콤한 카라멜 소스가 들어간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다. 하얀 얼굴과 갈색 머리카락에 퍽 어울리는 단 맛이다. 그 묘하게 쓸쓸한 분위기 까지고, 커피 특유의 끝 맛과 어울렸다.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가게를 찾아오는 성규는, 아주 묘한 사람이었다. 슬금슬금 뺨을 간질이는 봄볕 같이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항상 나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은 온화하지만 샐쭉 올라간 고양이 같은 눈매 덕에 어딘가 날카로운 것이 있다. 한 가지 단어로 틀에 가둘 수 없는 가슴을 간질이는 분위기도 있다. 그것은 봄바람 같다가도, 늦가을의 쓸쓸함 같기도 했다. 똑, 똑, 커피는 가을 색을 담으며 컵 안에 작게 울린다. 우유를 섞은 커피에 하얀 크림을 잔뜩 얹고 카라멜 소스를 뿌려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작은 스트로우 하나와 맛있게 드세요, 하는 한 마디. 성규는 커피를 받아들며 웃는다. 감사합니다. 달큰한 향기가 훅 끼친다. 우현은 그것이 커피 때문인지 성규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성규는 작게 구둣발 소리를 내며 가게를 나간다. 가을바람은 조금 벌려진 셔츠의 앞섶을 파고들었지만 손에 쥔 커피는 따뜻하다.

 

 커피숍에서 좀 더 걸어가자 오피스텔 단지에 이른다. 커다란 창문이 몇 개 있는 회색 오피스텔로 들어서 계단을 오른다. 터엉, 터엉, 하고 발소리가 울린다. 성규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되돌아오는 소리는 벽에 부딪혀 반사되어오는 똑같은 터엉, 터엉, 하는 발소리뿐이다. 마땅히 버릴 곳이 없어 계속 들고 온 빈 커피잔을 괜히 흔든다. 성규는 저가 사는 이층에 도착해서 번호키를 누른다. 기계음이 몇 번 나더니 문이 열린다. 복도의 불빛이 어두운 집안으로 들어간다. 몇 개 없는 신발이 놓인 현관의 신발장을 비추는 주홍색 불빛은 꼭, 억지로 엎질러 진 것 같이 꾸역꾸역 빈자리가 큰 신발장을 비춘다. 성규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불을 킨다. 조금 뒤늦게 켜진 형광등 밑의 테이블에는 아직 치우지 않은 커피잔들이 꽤 많다. 손에 들린 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서, 옷을 벗는다. 자켓은 소파에 던지고, 안방으로 걸어들어가 넥타이는 침대 위에 던진다. 벗은 바지는 벨트가 둘러진 채로 넥타이 옆에 던져진다. 셔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고리에 삐뚤게 걸린 옷걸이를 집어 대충 걸어놓는다. 침대 위에는 아침에 벗어놓은 그대로 옷이 널브러져 있다. 회색 트레이닝 바지, 하얀 반팔. 성규는 옷을 입으며 항상 옷을 똑바로 정리하라며 잔소리를 하곤 했던 아내를 생각한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옛 추억을 생각하는 향수 같은 것이다.

 

 거실로 나가 집안을 둘러보니 이것저것 구별 없이 어질러져있는 것이 정신이 없다. 허리에 손을 얹고 숨을 깊게 쉰다. 테이블로 걸어가 커피잔들부터 치우려고 하는데 자켓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풀이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한다. 아내의 이름이 커다란 액정 가운데서 빛나고 있다. 가만히 이름을 내려다본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댄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있어. 성규는 그런 생각을 한다. 전화가 아내와의 사랑을 증명하는 무언가가 되기라고 하듯 전화를 받는다. 작게 일렁이는 거북함과 꺼려짐은 뒤로 미룬다. 저는 아내를 사랑해한다. 저는 남편이고, 그녀는 아내이니까. 아직은, 사랑의 빈자리를 들키고 싶지 않다. 핸드폰 스피커에서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잘 지내? 성규는 꿀떡 침을 삼킨다. 목이 타는 것 같다. 응, 잘 지내지. 오랜만이야. 아내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한다.

 

 

 “전화 자주 못 해서 미안해. 요즘 일이 많이 바빠.”

 “괜찮아, 나도 겨우 시간 내서 전화했어. 일이 많아?”

 “으응, 이것저것 좀, 많네.”

 

 

 아내와의 통화는 이상한 괴로움이 느껴진다. 입이 마른다. 꼭, 저들의 사랑처럼. 성규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다시 입술을 꾹 다문다. 핸드폰 너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야? 핸드폰을 조금 떨어뜨린 건지 옅게 들리는 쉿, 하는 아내의 소리. 조용히 해. 남편이야. 그리고 선명하게 들리는 입맞춤 소리. 성규는 비참함을 느낀다. 얼마전부터 낌새를 알아챘다. 사람이란 것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아내가 저를 정말로 사랑했다 해도, 떨어져 있는 거리와 시간은 감정을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내의 불륜이 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내의 외도에도 배신감이 들지 않는 저들의 관계가 성규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 저 스스로 다정한 신혼부부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친한 친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더 이상의 감정 소모에 지친 자신이 싫었다. 애초에 분노를 느낄 자격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비워냄과 동시에 아내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잃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법으로 묶인 관계였지만, 정의 공허함 앞에서 법은 무색했다. 갑자기 지독한 외로움이 소름처럼 돋아난다. 성규는 말이 없다. 아내는 급한 채하며 목소리를 크게 한다. 미안해, 나 끊어야겠다. 아내가 앞에 있는 것이라도 된 듯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다. 긴 앞머리가 얼굴을 가린다. 아내가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린다. 성규는 대답한다. 응.

 

 성규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진다. 떨어진 핸드폰이 커피잔에 부딪힌다. 소파에 주저앉아 고개를 젖힌다. 베이지색 벽지가 붙은 천장이 보인다. 눈을 감고 팔을 들어 눈가를 가린다. 이혼을 생각한다. 곧 고개를 젓는다. 결혼이 주는 가장이라는 것은 좀 더 무거운 짐을 지어주는 동시에 사회인으로서 안정감을 준다. 적어도 사회구성원들에게 정해진 길을 제때에, 평균의 무리에 속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 결혼하기 전부터 자신은 이런 안심을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당한 때에 연애를 하고,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해서, 그래, 이 정도면 할 때가 됐지, 하는 말을 듣는 것. 이 정도의 평범함과 안식을 바랐을 거다. 낭만과 함께 떠나보낸 사랑이 이제야 저에게 복수를 하나보다. 성규는 눈을 가리던 팔을 뚝 떨어뜨리고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별이 흐릿하게 보인다.

 

 

 

 

 

 

 괜히 생각이 많아져서 냉장고에 박아두었던 맥주를 마셨더니 머리가 멍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마친 성규가 물에 젖어 색이 진해진 머리카락을 말린다. 결이 상한 머리칼을 말리고 대충 매만진 후에 화사한 베이지색 가디건을 걸친다. 현관문을 여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늦가을 치고는 꽤 따뜻한 날씨다. 단지를 빠져나가 큰길로 들어서니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걷고 있다. 원래 걸음이 느린 성규가 천천히 걷다가 자연스러운 발길로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포근한 온기와 커피 냄새. 아침이라 사람이 얼마 없다. 성규가 카운터를 둘러보는데 매일 보이던 우현의 얼굴 대신 처음 보는 직원이 있다. 우현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화려한 얼굴이다. 짙은 쌍커풀에 깊은 눈이 꼭 만화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미남이었다. 검은 앞치마에 삐뚤게 달린 명찰에는 김명수라는 이름 석 자가 써있다. 명수가 입을 열려는 찰나에 어디선가 달려온 우현이 명수의 허리를 살짝 밀친다. 야, 바닥 좀 닦아주라. 마침 주문을 하려던 성규는 멍청한 얼굴을 한다.

 

 

 “내가 그걸 왜 해.”

 “한 번만 해주라, 다음에 내가 할게.”

 

 

 우현이 손을 꽉 쥐고 검기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발을 구른다. 명수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더니 마지못해 대걸레 자루를 손에 쥔다. 당당히 카운터에 서서 성규를 마주한 우현이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고 있다. 그러고서는 또, 같은 거 드려요, 한다. 성규는 예,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대답하는 성규를 보던 우현이 허리를 숙여 고개를 조금 가까이한다.

 

 

 “얼굴이 별로 안 좋으시네. 무슨 일 있어요?”

 

 

 성규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눈을 내리깐다. 진한 커피 향기와 시원한 콜롱의 향이 난다. 아직도 치우지 않은 집안의 커피잔들이 생각난다. 테이블 위의 커피잔들, 어젯밤, 울리던 핸드폰, 아내. 성규는 다시 우현을 마주한다.

 

 

“아니요, 아무 일 없어요.”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아내가 바람을 피워도, 이미 꽤 오래전부터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도 괜찮다. 저의 안부를 물어주는 것이 단골 커피숍의 직원이어도 괜찮다. 괜찮지 않은 것은 너무 무감각해진 자신뿐이다. 아내의 외도를 알았지만 저는 평범하게 아침을 맞고, 매일과 같이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또 출근을 하고. 사랑과 이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비극이다. 이 우울함이 싫어하는 날씨를 맞은 정도의 슬픔이라는 것이 싫다.

 

 

 “아닌 것 같은데. 입술 많이 텄어요.”

 

 

 성규를 바라보던 우현이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하더니 아차, 소리를 내며 저의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그러더니 손에 쥔 작은 것을 내민다. 성규는 의아한 얼굴을 한다. 저와는 다르게 두텁고 선이 굵은 우현의 손에는 작은 튜브형 입술보호제가 올려져있다. 성규는 갑작스러운 우현의 호의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른다. 우현이 재촉한다. 받아요. 얼른.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성규가 우현을 쳐다보니 방긋 웃는다.

 

 

 “아직 한 번도 안 쓴 거예요.”

 

 

 성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우현의 작은 선물을 받아든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 뒤를 돌은 우현의 등을 바라보다 성규가 저의 손에 들린 것을 내려다본다. 앙증맞은 복숭아가 그려져있다. 우현의 커피향과 함께 복숭아의 수줍은 향기가 난다.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것은 우현의 온기로 따뜻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의 온기다. 온갖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간지럽다. 손바닥도, 손끝도, 가슴팍도 간질간질. 원래 피곤하면 입술이 잘 트는 편이라 자신조차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름만 겨우 아는 남자가 저를 챙겨준다는 것이 한 없이 묘하다. 그 사이 우현은 항상 크림을 잔뜩 얹은 커피를 성규의 앞에 내민다. 성규는 커피를 손으로 감싸쥔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성규의 말에 우현이 웃는다. 또, 웃는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사무실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화면이 검게 꺼진 노트북의 자판 위에 분홍색 입술보호제를 올려놓는다. 성규가 가게를 들를 때 마다 다정하게 웃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아내에게 비싼 시계를 선물 받아도, 고급 넥타이를 받아도 의무적인 웃음을 지었을 뿐인데, 한참이나 어린 남자애가 주는 작은 선물에 마음이 동할 줄은 차마 몰랐다. 검은 앞치마를 깔끔하게 입으며 웃던 그 얼굴. 눈썹을 가리며 길게 내려온 앞머리와 사랑스럽게 접히는 눈웃음. 어설프게 달려있는 명찰의 남우현 이름 석 자. 그 이름에서는 덜 익은 풋내가 난다.

 

 회사에서의 생활은 지루하다고 생각 할 것도 없이 천편일률적이다. 차트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고, 가끔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신입사원들이 발발 거리는 걸음으로 타다주는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고. 일탈을 바라지는 않는다. 저에게 이미 일탈은 감동과 희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쳇바퀴를 굴리는 작은 쥐새끼 같은 삶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성규는 지루한 얼굴로 턱을 괸다. 저도 한 때는 장래희망란에 가수를 써넣을 만큼 세상 물정 모르는 때가 있었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낭만이고 사랑인줄만 알았던 어리석고, 황홀했던 때가. 고등학교 때 열심히 하던 공부를 놓아버리고 부모님 속을 썩이며 노래를 불렀지만, 결국 다시 손에는 연필을 쥘 수밖에 없었다. 현실감이라는 것이 악몽 속의 귀신처럼 두렵도록 다가 와서. 그때의 좌절이 노트북이나 두드리며 청춘이니 낭만이니 하는 것을 옛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만들었을까. 한 때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고, 시를 읽으며 감동을 받곤 했던 저는 이미 죽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연주법도 생각나지 않는 옛날이다.

 

 성규는 주머니에서 꺼낸 입술보호제를 넣어놨던 서랍을 연다. 갖가지 잡동사니와 함께 덜컹 흔들린다. 뚜껑을 돌돌 돌리고 손가락에 힘을 주니 조그만 구멍 사이로 분홍색 젤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여자애도 아니고 분홍색이 뭐야. 문득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던 우현의 미소가 떠오른다. 어쩌면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 손에 들린 분홍색 물건은 꼭 맞지 않은 신발처럼 어색해 보인다. 손가락이 괜히 간질거린다. 나이 먹어서 주책이라는 게 이런 말인가. 성규는 손 끝에 젤을 조금 짜내어 입술에 문지른다. 옅은 복숭아 향이 난다. 입술을 앙 다물고 오물거린다. 묘한 기분과 함께 부끄러움이 찾아든다. 성규는 급하게 뚜껑을 닫고 서랍 속 깊숙이 넣어놓는다. 꼭 처음 받은 연애편지 같이. 명치와 손끝이 간지러워 찬함을 꼬물거린다. 풋내. 입술에서 촉촉한 풋내가 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하던 일을 정리하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떠있는 뉴스를 보는데 옆을 지나가던 호원이 말을 건다. 형, 퇴근하고 시간 있어? 성규는 작은 속에 마우스를 꼭 쥔 채 동그란 눈으로 호원을 올려다본다. 퇴근 후에. 대뜸 커피숍 생각이 난다. 진한 녹색 칠판에 하얀 분필로 써 있는 메뉴판, 커피 향기. 성규는 잠시 동안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시간 있어. 왜.”

 “오랜만에 술 한 잔 하자.”

 “좋지.”

 “근데, 형. 입술에 뭐 발랐어?”

 

 

 아차. 성규는 뜨끔한 기분으로 입술을 맞물려 숨겨버린다. 그리고서 얼굴을 돌려 모니터를 본다. 어, 으응. 선물 받은 거. 말투가 괜히 쭈뼛한다. 호원은 아, 그래 하고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성규는 주먹을 그러쥐고 손목 안쪽을 관자놀이에 가져가댄다. 창피하다. 나이라는 것은 왜 자꾸 죄처럼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걸까. 이제는 동네 꼬마아이들이 굴러온 공을 차달라며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라서 그런 걸까. 복숭아 향이 나는 분홍색 입술보호제는 남사스럽다.

 

 호원과 곧잘 가곤 하던 술집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목소리로 왁자지껄한다. 고기 굽는 냄새가 맛있게 풍기고, 익숙한 주인 얼굴이 보인다. 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보고 웃으며 인사한 후에 가게 구석에 놓인 2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호원이 건너편의 의자를 빼어 앉는다. 단 둘이 갖는 술자리를 오랜만이다. 최근에는 항상 회사 사람들과 함께였으니까. 사람이 많은 자리를 썩 좋아하지 않는 성규는 회식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결국은 눈치 싸움의 연장선이다.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맘이 편치 않다.

 

 불판이 달궈지고 빨간 고깃덩이를 위에 올리자 기름이 튄다. 성규는 직원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든다. 호원이 술병의 주둥이를 까더니 성규의 잔을 채운다. 쪼로록 소리를 내며 들어찬 술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호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호원은 동생답지 않은 듬직함이 있다. 곧잘 어른 같은 모양을 하던 얼굴에는 든든한 묵직함이 서려있고는 했다. 옛날, 대학에서 처음 호원을 만났던 그 때부터 그 어른스러움을 좋아했다. 다물린 입술과 잘생긴 눈썹은 그 성격처럼 곧다. 성규는 작게 웃는다. 이제는 조금씩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우리두 이제는 늙었다. 그렇지?”

 “나는 아직이고, 형은 늙었지. 이제 아저씨 소리 듣는다며.”

 

 

 성규가 멋쩍게 웃는다. 저도 오빠거리며 좋다는 여자애들이 줄을 설 때가 있었다며 반박하려다 만다. 그 오빠 소리, 이제는 너울너울 떠나버린지 오래다. 성규는 쓰읍, 하며 술을 한 번에 입 안에 털어넣는다.

 

 

 “너두 평생 오빠 소리만 듣고 살 것 같니? 인마, 너두 아저씨 얼마 안 남았어.”

 

 

 심술이 찬 말투로 말한다. 호원이 하하, 웃고는 비어있는 성규의 술잔을 채운다.

 

 

 “형수님은 잘 지내?”

 

 

 아. 성규는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새살이 위태롭게 덮고 있던 상처가 툭 터진 느낌이다. 그 상처가 아내, 그 자체에 대한 상처일 수도 있고, 저 자신에게 느낀 환멸에 대한 상처일 수도 있다. 성규는 잠시 동안 대답 없이 술잔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안에서 터진 상처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오는 것 같다. 여태까지 곪았던 것들이 울컥울컥, 심장까지 울리며 쏟아진다. 성규는 대뜸 그런 걸 왜 묻니, 하고 소리피고 싶다. 아내를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그것은 거북한 일이다. 자신은 버려졌고, 여러 가지 감정으로 인해 고립되고 있다. 성규는 손끝으로 작은 술잔을 쓸다가 입술을 두드리는 갖가지 말들을 술과 함께 꿀떡꿀떡 삼킨다. 안에 고이는 쓰디 쓴 술이 선연하게 느껴진다. 으응, 잘 지내. 외간 남자와 사랑을 나누며 잘 지낸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처지가 퍽 불쌍해질 것 같아 그만 둔다. 호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형은 결혼까지 해 놓고 혼자 살면 외롭지는 않아?”

 “자주 전화하구, 그러는데 외로울 것이 뭐 있어.”

 

 

 주머니에 넣어놓은 전화기가 거짓말이라고 울어댈까 겁이 난다. 사실은 전화는 물론 문자도 자주 안한다고 저의 거짓말을 일러바칠까봐. 성규는 스스로도 호원을 속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겉으로라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욕심인가. 손에 들린 술잔을 천천히 돌린다. 가끔 보러 한국에 오시라 그래. 얼굴도 좀 보고 그래라. 호원의 진심어린 말에 성규는 괜히 죄짓는 기분이 든다.

 

 

 “거기서 공부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무얼 굳이……. 괜찮아.”

 

 

 작게 콧바람을 뿜으며 멋쩍게 웃는다. 가슴이 찌르르 아려오고 눈덩이에 열이 오른다. 괜찮다는 말은 참 그렇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울린다. 성규는 홀짝 술을 마신다. 넘어가는 술이 여기저기를 찔러서 안이 쓰라리다. 딴에 형이라고 약한 소리를 하기 부끄러운 건가. 원래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성격이기는 하지만 혼자 가슴을 둥둥 울려대는 것이 우습고 멍청해서 속이 쓰리다. 호원은 손에 술잔을 든 채로 멈춰서 성규를 응시한다. 그러다가 눈을 내리깐다. 발끝을 보는 건지, 술잔을 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툭, 테이블에 다시 내려진 술잔이 운다. 호원은 형, 하고 성규를 부른다.

 

 

 “나는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잔을 들려고 했는데 들리지 않아서 손을 내려놓는다. 갑자기 술잔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심장이 쿵쿵 울리는 것 같다. 성규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다. 들켰나보다. 호원은 옛날부터 눈썰미가 좋았다. 너무 어설프게 숨겨서 들켰나보다……. 아주 꼭꼭 숨겼어야했는데 들켜버렸다. 성규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조금 벌려서 웃는다. 목이 메는 초라함이 무섭게도 몰려온다. 문득 올려다본 조명에는 작은 나방이 퍼덕거린다. 검은 나방은 아주 작고 더럽다. 성규는 겨우내 술잔을 들어올린다. 응, 고맙다. 유리가 가볍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쟁, 하고 울린다.

 

 호원은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성규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지만 성규는 고개를 저으며 어둑해진 밤을 걷기 시작한다. 길가 옆의 큰 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소리가 매섭다. 뒤에서 호원이 형 조심해, 하고 위치는 소리가 들린다. 성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래를 꾸벅꾸벅 흔든다. 술을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술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손 안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서류 가방을 더욱 세게 그러쥔다. 날은 차가웠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썩 괜찮은 날씨다. 어두운 하늘에는 구름이 얼마 없고, 노란 달은 둥글게 차올라서 거의 보름달처럼 보인다. 시간이 늦어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 길가를 비추는 것은 옅은 별빛밖에는 없다. 성규는 아주 천천히 걸으며 숨을 크게 쉰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매연과 섞여 탁하다. 성규는 예민한 목을 가르랑 거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발 끝에 차이는 낙엽들이 이리저리 구르다가 도로에 떨어져 내린다. 경주장의 말처럼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를 엉망으로 헤맨다. 저 낙엽은 나무를 떠나 어디로 흘러갈까. 결국 어딘가 가게 될 것이다. 삶 또한 그러할 것이다. 지속한 염세를 달래주는 것은 어딘가로 흘러가겠지, 하는 나태의 위안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성규는 속이 쓰린 것을 느끼며 샤워를 한다. 주말이지만 업무가 많아서 쉴 수가 없다. 그래도 늑장을 부려 늦게 일어났더니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샤워를 끝낸 후에 속옷을 입고 상의만 걸친 성규가 젖은 머리를 말린다. 아내가 유학을 간 이후로 염색을 한 번도 안했더니 검은 머리가 꽤 내려왔다. 미용실에 갈까 생각하다가 귀찮아서 다음으로 미루어버린다. 머리를 손으로 털며 말린 후에 정리하지 않고 거울 앞에 잔뜩 쌓아놓은 옷가지들을 뒤진다. 먼저 바지를 찾아 입고, 짙은 회색 니트를 입고, 검은색 가디건을 걸치고 거울을 한 번 본 다음 다시 벗는다. 아직 겨울도 아닌데 너무 답답하고 무거워보인다. 그 밑에 구겨져있던 밝은 색 가디건을 허공에서 몇 번 털어낸 후에 입는다. 성규는 손으로 빗질을 하며 머리를 손질하고 어젯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던져두었던 노트북을 손에 든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으나, 볕이 따뜻하다.

 

 동네의 꽃집에는 가을 향기를 물씬 풍기는 노란 국화꽃이 빛나고 있다. 꽃집의 직원은 국화 옆에 놓여 망울져있는 프리지아를 손질하고 있다. 물기를 조금 머금고 있는 노오란 프리지아는 생명처럼 반짝이고 있다. 그것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저를 이끌었다. 그 선명한 화사함이, 이른 때에 몽우리를 드러낸 꽃은 쓸쓸해 보였지만 야릇한 빛이 났다. 성규는 꽤 오랜만에 꽃집으로 걸어 간다. 직원이 인사하며 무엇을 찾냐고 묻자 성규는 구경하러 왔다고 대답한다. 허리를 숙여 손끝으로 프리지아를 만진다. 아직 피지도 않은 것에서는 향이 강하게도 풍긴다.

 

 

 “프리지아에요. 예쁘지요?”

 

 

 성규는 고개를 끄덕인다. 바구니에서 한 송이를 집어 건네는 직원의 모습에 성규는 손사래를 친다. 괜찮아요. 직원이 꽃처럼 웃는다.

 

 

 “잘 어울려서 그냥 드리는 거예요.”

 “그래두…….”

 

 

 결국 꽃을 받아든 성규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가방이라고는 노트북을 넣어둔 가방밖에 없는 성규는 꽃을 어디다가 넣어야할지 몰라 당황한다. 손에 계속 들고 있는 노릇도 창피하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넣자니 꽃망울이 구겨질 것 같아 마지못해 꽃 한 송이를 손에 든다. 프리지아 향기. 성규는 이제 겨울이 오겠구나 생각하며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니 금세 포근한 공기가 느껴진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 가게 안은 시끄럽다. 성규는 입구에 서서 카운터를 쳐다본다. 긴 머리 늘어뜨린 여자들의 검은 뒷모습 건너에 우현이 있다. 줄이 꽤 길고 남는 테이블도 없다. 어쩐다. 괜히 늑장을 부려서 하필 점심시간에 도착할게 뭐람.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니 집에서는 이것저것 딴 짓을 하느라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성규가 고민하는 사이 성규는 발견한 우현이 손을 흔든다. 성규는 어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우현이 뒤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던 명수에게 뭐라고 말을 걸더니 카운터를 나와 바쁜 걸음으로 성규에게 다가간다. 성규는 영문을 몰라 얇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 우현은 성규 앞에 멀뚱히 서더니 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가게를 둘러본다.

 

 

 “미안해요.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없네.”

 “아니, 아니요. 제가 늦게 와서 그래요. 조금 있다가 다시 올게요.”

 

 

 성규가 웃으며 슬쩍 뒷걸음질 치자 우현이 손목을 잡아끈다. 성규는 깜짝 놀라 고양이 같은 눈을 동그랗게 치뜬다. 키가 비슷해서 똑바로 보이는 우현의 눈빛이 아주 다정해서 성규는 입을 꾹 다문다.

 

 

 “기다려요. 자리 만들어 줄테니.”

 

 

 우현은 성규의 마른 손목을 살짝 그러쥔 채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성규는 야릇한 기분이 든다. 이제 갓 대학생이나 되었을 법한 어린애가 저의 손목을 잡고 뛰는 게 우습다가도 묘하다. 저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은 두터운 것이 퍽 남자다워서 꽤 든든한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카페 직원이 자리 하나 더 만드는 것 쯤 아무것도 아니겠지마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곡 무언가 해줄 것 같이 느껴진다. 성규는 작게 웃는다. 막상 우현이 해준 것은 정말로 별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재밌다. 작은 나무 테이블 두 개가 붙어 있는 곳에 앉아있던 여자들에게 다가가서 테이블 하나를 옮기겠다고 하고서는 옆으로 조금 떼어낸 것이 전부다. 그리고서는 아주 대단한 무엇이라고 해준 것처럼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 퍽 귀여워 보인다.

 

 성규는 우현에게 고맙다며 인사하고는 테이블에 먼저 프리지아를 올려놓고서 옆에 노트북 가방을 올려놓은 후에 자리에 앉는다. 돌아가려던 우현이 노랑 프리지아를 보고서 멈춰선다. 아, 이거.

 

 

 “프리지아, 맞지요?”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 오면서 꽃집에서 봤어요. 예뻐서. 산거에요?”

 “아뇨, 받았어요. 직원한테.”

 “아는 사이에요?”

 

 

 성규는 고개를 젓는다. 어렸을 때도 생전 꽃이랑 잘 어울린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서른이 넘은 이제야 그런 말을 듣게 될지는 몰랐기 때문에 성규는 상당히 민망해했다. 성규는 우현의 눈을 마주치기가 부끄러워 괜히 눈을 내리깐다. 그냥 줬어요, 잘 어울린다면서. 성규의 말에 우현은 길게 아아, 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서 가만히 프리지아와 성규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노란 프리지아. 성규의 하얀 얼굴, 눈동자, 입술, 머리칼. 우현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 끝으로 꽃의 줄기를 만진다. 

 

 

 “맞아요. 잘 어울리네.”

 

 

 성규는 우현의 표정을 보고서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우현의 얼굴에는 으레 항상 밝았던 천진난만한 미소 같은 것이 없었다. 원래는 꽤 날카롭게 생겼는데도 웃을 때 마다 곱게 접히던 눈동자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도톰한 입술은 살짝 웃고 있었지만 어른들의 쓴웃음 같은 것이다. 성규는 그 낯선 얼굴이 어떤 감정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우현은 커피 가져다드릴게요, 하고는 터벅터벅 걸어가버린다. 허리 부근에 단정하게 리본을 묶은 넓직한 등은 어딘가 공허해보이기도 한다. 성규는 멀어지는 우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래를 돌린다. 사람이 어른이 된 다는 것은 썩 좋은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아주 쓸쓸할지도 모른다. 프리지아가 꽃을 피우면 향이 덜하게 되는 것과 같은 걸까.

 

 점심시간이 지나고 세 시가 되자 사람들이 점점 빠져나가 가게 안은 꽤 한산해진다. 곳곳에 비어있는 테이블도 있고 명수와 우현도 의자에 앉아 얘기를 하거나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거나 했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 앉은 성규가 빈 머그컵을 만지다가 테이블에 엎드린다. 햇볕이 얼굴이 닿아 따뜻한 것이 기분이 좋다. 하얀 뺨이, 코끝이, 속눈썹이 반짝하고 빛이 난다. 그렇게 잠시 동안 있다가 몸을 일으켜 턱을 괴고서 손가락을 따분하게 까닥거린다. 노트북이나 두드리고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다. 성규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대뜸 우현이 테이블 위에 노릇하게 구워진 머핀 하나를 올려놓는다. 그리고서 성규의 맞은편에 놓은 의자를 빼어 앉는다.

 

 

 “서비스예요. 단골손님이니까.”

 

 

 머핀에서 달콤한 향기가 퍼져나온다. 성규는 또 다시 멍청한 얼굴을 한다. 우현의 친절은 부담스럽다가도 한 없이 마음이 훈훈해지고는 한다. 성규는 눈을 내리깔고 작게 웃는다. 분홍색 입술이 햇빛에 반짝인다.

 

 

 “고마워요. 저번에 그것두.”

 “아, 그거 잘 쓰고 있어요?”

 “네, 덕분에 입술도 안터요.”

 “다행이네.”

 “그런데 이런 것 막 줘두 되나? 사장님한테 안 혼나요?”

 

 

 우현은 팔짱을 끼고서 테이블에 팔꿈치를 댄다. 성규는 손으로 머핀을 조금 떼어 먹으며 슬쩍 우현을 본다. 운동을 하는지 셔츠에 가려진 팔뚝이 꽤 단단해 보인다. 단추를 하나 풀어놓은 와이셔츠의 앞섶 사이로 보이는 쇄골이 툭 불거져 있다. 강아지같이 순한 눈웃음에, 콧날에, 도톰하고 붉은 입술을 보니 어지간히 여자들에게 인가가 많겠구나 싶었다. 목소리도 낮고 부드러우니까.

 

 

 “그냥 내가 하나 집어먹었다구 하면 되요. 사장님도 부업으로 가게하시는 거구. 사실 명수 오기 전까지는 내가 여지 얼굴마담이었거든요. 뭐라구 못해요.”

 

 

 우현이 익살맞게 웃으며 말하자 성규가 그럼 다행이구, 한다. 성그레 웃는 성규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우현이 푸흐흐, 웃으며 천천히 팔을 겹치고 머리를 얹는다. 아까 성규가 했던 것처럼 창밖을 본다. 잠시 말이 없던 우현을 성규는 조용히 보고 있는다. 숱이 많아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 우현의 머리가 햇빛을 받으며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눈을 감고 있던 우현이 좋다, 하고 말한다. 성규가 되묻자 우현이 고개를 들고 입술을 곱게 휘며 웃는다. 눈동자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진 눈 밑으로 도톰하게 애교 살이 솟는다. 그리고서는 날씨 좋다, 그죠, 하는 것이다. 성규는 웃고 있는 우현을 가만히 보다가 볕이 들어오는 창문 밖을 바라본다. 늦가을 날씨에 노랗게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져 조금씩 철골 같은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햇볕은 따스하지만 굴러다니는 낙엽과 목에는 목소리를 두른 사람들이 지금은 가을이라고, 곧 겨울이 온다고 말하고 있다. 성규는 다시 우현을 응시한다. 분명히 가을인데 앞에 앉아 웃는 우현은 꼭, 사실은 지금이 봄이에요,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길가에 가로수 나무의 이파리가 파릇파릇하구, 광장의 분수에는 시원한 물이 흐르구, 들꽃이 반짝이구 있어요. 꼭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을 보면서 성규는 웃는다. 응, 그러네요.

 

 

 “이런 날씨에는 놀러가야 하는데, 그죠.”

 

 

 노트북의 모니터는 불빛이 꺼진지 오래다. 우현이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성규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급한 것 아니에요. 사실은 이번 주말에 끝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냥 덮어버린다. 우현은 또 마냥 웃는다. 혼자 일을 하던 명수가 은근슬쩍 다가와서 우현에게 눈치를 주면 그제야 일어나서 일 하는 시늉을 한다. 코를 찡그리고 웃으며 금방 올게요, 하고서는 카운터에 조금 서 있다가 커피를 몇 잔 만들고 슬쩍 성규 앞에 돌아와 앉는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으면 또 명수는 우현의 어깨를 지나가며 툭툭 치는 것이다. 우현은 울상인 시늉을 하며 일어나서는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가게 입구부터 닦기 시작해 조금씩 움직이더니 또 성규 주위를 얼쩡거린다. 그러면 성규는 성그레 웃는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낮이 짧아지며 금방 밖에는 노을빛이 쏟아진다. 길거리에는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창문 너머로 보니 꽃을 내다 팔던 꽃집의 종업원이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카페에는 사람들이 점점 들어찬다. 머리가 길고 짧은 여자들이 들어와 우현이나 명수에게 주문을 한다. 눈을 위로 뜨고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수줍어하는 것이 얼굴 마담이라는 우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구나 싶다. 여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가게 안의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것은 대부분 여자나, 남자친구를 데리고 들어온 커플이다. 성규는 점점 멋쩍은 기분을 느낀다. 테이블 위에는 비워놓은 커피잔 두 개가 멀뚱히 서 있다. 가렵지도 않은 머리를 긁는다.

 

 성규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쓰던 보고서를 저장하고 노트북을 덮은 후에 가방에 넣는다. 의자에 걸쳐 놓았던 가디건도 다기 입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테이블 위에 놓았던 꽃송이가 눈에 띈다. 손으로 들어 꽃을 코 끝에 댄다. 아침에 담에서 깨어 누워있는 뺨에 닿는 봄볕 같은 향이 난다. 은근하고 따뜻한 향이다. 나한테 잘 어울린다구? 그렇게 말하던 우현의 얼굴이 스친다. 성규는 몸을 일으킨다. 우현은 손님들의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부러 인사하지 않고 자리를 꽉 채우고 있는 여자들을 지나 카페를 빠져나가 문을 열려고 하는데 테이블을 닦던 명수와 눈이 마주친다. 몽환적인 우주 같은 눈동자다. 잘생긴 얼굴은 남자처럼 보이다가도 소년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수가 안녕히 가세요, 하며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성규는 웃으며 예, 하고 대답한다.

 

 밖은 생각보다 어두워져 있다. 벌써 하늘이 까맣게 변하고 조금씩 저물어가기 시작하던 해가 아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성규는 눈을 내리깐다. 사회 속에서 조금씩 상실하게 된 자신감은 죄책감까지 만들어버려서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성규는 손에 쥔 꽃을 허공에 들고서 천천히 흔든다. 꽃망울이 함께 하느작거린다. 방금 피어난 꽃 같이 반짝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의 존재는 너무 많은 빛을 잃었고, 닳고 닳아 탁해져버렸다. 야속한 일이다.

 

 

 


치프

 

 

어휴 1이랑 2랑 같이올리니까 양이 꽤 되네요 ㅋㅋㅋㅋ 조금씩 수정했습니다 내용이 아주 조금 달라질거에요

원래 성규는 우현이한테 반말하고 우현이는 성규는 형이라고 불렀는데, 다 존대로 수정했습니다

이번에 수능끝내고 돌아왔아요 ㅋㅋㅋ 아 속시원하다.... 이제 열심히 쓸게요ㅠㅠ

저 존재감 없는 줄 알았는데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어서 너무 감동했어요 진짜.....ㅠㅠㅠ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미대입시생이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정시특강에 들어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 있는 바람에 시간이 더 없어질 예정이에요

하지만 저는 새벽에 쓸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 밤새서라도 꼭 계절의 언덕은 다 쓰고 싶어요ㅠㅠ 오랫동안 구상해오던거라ㅠㅠ...

 

연재가 빠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수능이 끝났다고 마냥 놀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도 예전에 썼던 단편들 조금씩 다시 만져서 올릴게요 기다려주세요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허거덩 일단 수능마치고 컴백하신거 축하축핯카캌ㅋ카푸ㅏ카카추카ㅏㅏ 드려옄ㅋㅋㅋ아 너무 아련하다유ㅠㅠㅠㅠㅠㅠ완전죠앙 신알신하고 사라질게영!!!!
11년 전
독자2
그대 필력에 감동하고 연재했으면 좋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니깐 기뻐요ㅠㅠ그대 진짜 글 잘써요ㅜㅠ존경스러워요ㅜ사랑합니다♥
11년 전
독자3
.........헐♥ 수능끝나고이런횡재를....작가님스릉해여......수능끝행복시작!땋!!
11년 전
독자4
헐 헐?! 헐 작가님 사랑해요 결국 돌아오셨군요 헐 징짜 사랑해여 자까니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헐 헐 헣 뭐라 할말이 없네여 제가 얼마나 목빠지게 기다렸는데ㅠㅠㅠㅠㅠ자까니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그때 그 비회원인데 기억하실라나 모르겠네요 아무튼 작가님 사랑해여 와ㅁㅇ에여ㅠㅠㅠㅠ
11년 전
독자5
ㅠㅠㅠㅠㅠㅠㅠ대박ㅠㅠㅠㅠㅠㅠㅠㅠㅠ저ㅠㅠㅠㅠ바카루라고기억해주세요ㅠㅠㅠ
11년 전
독자5
잠깐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6
그그저께 댓글달았던 독잔데여ㅠㅠㅠㅠㅠㅠ 수능친다고 수고하셨어요!!!!!1111111 엉엉 사랑해요 진짜 너모 감격적이에요...쪽지함에 이게와있길래 깜짝놀랐네요 제눈이잘못된줄....대박.....믿을수 없ㅋ엉...!....진짜져?ㅠㅠㅠㅠㅠ이건진짜레알정말...사랑해요S2
11년 전
독자7
신알신!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5 1억05.01 21:30
온앤오프 [온앤오프/김효진] 푸르지 않은 청춘 012 퓨후05.05 00:01
김남길[김남길] 아저씨 나야나05.20 15:49
몬스타엑스[댕햄] 우리의 겨울인지 03 세라05.15 08:52
      
인피니트 [현성/명성] HappyEnding 텍파 메일링 (95.5kb)30 드무 11.25 22:42
인피니트 우현 보는 독자그대들 잠시만 봐줘요54 카릿 11.25 20:24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인생그래프꼭짓점 [공지]86 나무위에는 11.24 23:50
인피니트 [인피니트/다각/수사물] 제 8의 피해자 메일링+여우사담45 여우 11.24 22:29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사랑에의 충실, 그것이 행복 -텍파메일링공지-24 CHI 11.20 19:37
인피니트 [인피니트] 병맛돋는 잉피단체톡 공지101 톡톡톡 11.17 16:01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인생그래프꼭짓점 공지 + 암호닉 공지133 남우이앤 11.17 10:02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인생그래프꼭짓점 공지128 남우이앤 11.15 20:23
인피니트 [인피니트/공커/경찰] 응답하라112 -특집-29 미스터몽룡 11.14 17:29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06 여우 11.12 22:34
인피니트 [인피니트/다각] 생리하는 김성규 재연재 공지240 조팝나무 11.11 18:52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계절의 언덕 01 + 02 + 공지(스압)8 치프 11.09 02:06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규선생과 남제자 공지6 기하와벡터 11.08 21:08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86 음_란_마귀 11.06 19:43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엘] A lethal dose of poison 메일링완료31 여우 11.04 22:27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수열야동] 투토피아(twotopia) ㅡ 그들이 사는 세상 공지22 Acafera 11.04 12:02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46 여우 11.03 22:39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인생그래프꼭짓점 [휴재 공지]92 남우이앤 11.03 21:11
인피니트 [인피니트/다각] A.B.O(Alpha.Beta.Omega) 공지!!!!25 남군 11.02 23:43
인피니트 [인피니트/다각/호러물/] Shadow of the day (공지)15 인스피릿 10.31 09:16
인피니트 [인피니트/호원동우] 비록 사랑은 아니더라도(for.who 그대) + 알파오메가 메일링 다 보냈습니다..28 세모론 10.28 15:45
인피니트 [인피니트/동총] 무서운 하숙집 (잠수 끝..)5 백숙 10.28 13:54
인피니트 [인피니트/호원동우] 알파오메가 메일링160 세모론 10.27 11:01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54 세모론 10.25 23:40
인피니트 [인피니트/다각]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 공지14 여우 10.22 21:09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인생그래프꼭짓점 [공지]70 남우이앤 10.20 16:26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열일곱의 봄 공지 + 완결 텍파 공지23 여우 10.15 23:10
공지사항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