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는 학교 본동과 조금 떨어진 도서관으로 오기위해 지나는 구름다리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사각거리던 샤프질을 멈추고는 가만히 귀 기울였다. 그리고 흘긋 자신의 손목에 단정히 매여있는 손목시계를 보고 딱 시간이 정확한게 발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경수는 그제서야 자신이 숨 쉬는것도 있고 발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살짝 부끄러운 맘이 들어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끼익-하고 도서관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차마 고개를 들고 바라보지도 못해 슬쩍 눈만 들어 그 사람의 발치만 내려다보며 그사람이 걷는 한걸음 한걸음마다를 눈길로 쫓아갔다. 역시나 자신이 앉은 책상에서 두개의 분단을 건너 자신과 마주보는 위치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앉는 사람을 그제서야 재빠르게 고개를 휙 들어 살짝 바라본뒤에야 다시 눈을 조용히 자신의 책으로 내리 깔았다.
경수는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건만 주책맞게 뛰는 심장소리가 행여나 들릴새라 서둘러 중얼중얼 책을 입술로만 읽어내렸다. 하지만 이내 그것도 포기하며 자신이 앉은 의자에 살짝 등을 기대며 후-하고 땅이 꺼질듯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눈 앞에 있는데 책이 눈에 읽힐리가 만무했다. 경수는 고개를 다시 흘끔 들어 이제 막 무언가를 노트에 써내려가는 남자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손바닥에 흥건한 땀을 자신의 교복춤에 쓱쓱 닦아냈다. 아, 이 무슨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짝사랑이란 말인가
경수는 고3짜리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부모님 속 한번 썩인적도 없는 모범생이였지만, 성적은 그의 착실함에 반비례하는 꼴이였다. 수업시간 한번 졸지도 않고 대답도 꼬박꼬박 잘하고 선생님들께 질문도 많이 하건만 자신의 전교 등수는 단 한번도 두자리인적이 없었다. 실은 공부에 그렇게 흥미를 붙이고 있지도 않아서 이렇게 학교가 끝난뒤에 학교 도서관에 남아서 공부한 적 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런 경수가 벌써 2주를 도서관에서 이렇게 죽치고 있는 까닭은,
보면서 겨우 침이나 꿀꺽 삼키는 것밖에 못하는 저 남자때문이였다.
경수는 책위로 와락 엎어져 버렸다. 그리고 눈만 슬쩍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경수의 자리 건너건너에 앉아 한참 필기중인 저 남자는 전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구설수의 중심인 김종인이였다.
경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정말 매우 잘생겼다. 특유의 나른한 표정이며 두툼한 입술하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훅훅 냄새나는 남고에서 빛과 소금같은 존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수는 그의 얼굴도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점을 어디 하나 콕 집어 낼 수 가 없었다. 그렇다고 입학한지 2년이 넘어서 3학년이 된 뒤의 5월까지도 대화 한번 해본것도 아니다. 그냥, 3학년이 된뒤 어느 봄날 등교길에서 바라본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거 그게 전부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몰라- 경수는 책상위로 엎어져 책에 얼굴을 마구 부비었다. 이미 본인의 없는 인맥 있는 인맥 총동원해 그에 관한거라면 줄줄 읊을 지경이였지만 아마 종인은 자신의 이름조차 모를거라는 생각에 경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실은 말을 걸어볼까 시도해본 적은 많다. 하지만 경수의 얌전한 성격에 말을 걸어본다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무어라 말을 걸으면 좋을지 집에서 인형을 앉혀다 놓고 시뮬레이션을 해본 적도 있다. 그의 물건이라도 슬쩍해서 마치 우연히 주운 것마냥 가져다 줘볼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심지어 신발장이나 책상 안에 편지라도 써서 넣어볼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종인의 손에서 누군가가 쓴 편지가 뜯혀져보지도 못한채 북북 찢겨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을 직접 본 전례가 있길래 실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경수에게 있어서 종인의 거대한 장벽은 학교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망나니들-경수의 표현을 빌리자면-인 백현과 찬열이였다. 종인과 다른 반인 경수가 종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는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이 전부인데 하루종일 찬열과 백현이 종인과 함께였던 것이다. 극성스러운것과는 상극인 경수가 백현과 찬열에게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지경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거기서부터 종인과 경수는 벽을 사이에 둔 이들이였다.
그래서 알아낸 곳이 도서관,
종인은 항상 이렇게 방과후에 써클활동이나 과외 활동이 아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돌아갔는데 이순간만이 찬열과 백현이 종인에게서 떨어져 있는 유일한 시간이였다.
종인의 다소 날라리 다운 생김새에 비해 3년 내내 전교1등을 놓이는 것을 본적이 없었기에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도서관에 남아서 공부를 하다 돌아가기 때문임을 알고서 경수는 감탄하며 진심으로 그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말 한번 걸어보지도 못했지만,
어차피 말 한번 걸어보지 못하고 졸업을 할 바에는 그의 얼굴이라도 독점해서 보자라는 마음에 매일매일 도서관에 발도장을 찍은지 2주가 되었다. 첫날에는 자신외의 사람이 도서관에 있던것에 놀랐는지 도서관을 들어오다 움찔하는 그의 모습에 경수는 걱정했지만 이내 지금처럼 저 자리에 앉아서 핏줄이 선 길쭉길쭉한 손으로 무어라 글씨를 써내려 가기도 했고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그럼 그 다음은 종인이 더이상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시간이 지나서부터는 경수는 한참을 종인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일을 할 뿐이였다.
사각사각거리던 펜소리가 종인의 손이 멈춤에 뚝 끊겼다. 그리고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아, 너무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나?
경수는 어느새 책상위에 팔로 얼굴을 괴고 본격적으로 감상 태도에 들어갔던 자신을 깨닫고 황급히 시선을 떨어트리고 샤프를 움켜 쥐었지만 숙인 자신의 정수리로 종인의 시선이 와 닿는것을 느끼고 온몸의 열이 얼굴로 확 몰렸다. 경수는 쥐여진 샤프가 파르르 떨릴정도로 손을 꽉쥐고 눈을 질끈 감고 어서 그의 시선이 물러가길 하나님을 찾아가며까지 기도했다. 다시 들리지 않는 사각거리는 소리 온통 신경이 쏠려 땀이 날 지경이였다.
이내 툭하고 자신의 책상으로 내려 앉는 묵직함에 놀라 감았던 눈을 확 뜨고 자신의 책위를 바라보았다. 단 한번만이라도 잡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길쭉길쭉하고 핏줄이 선 손이 내려 앉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경수는 몸을 뒤로 빼며 히익-하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다 고개를 든 순간에 딱 마주친 종인의 얼굴에 경수는 바보같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를 삐익 소리나게 뒤로 밀면서 도망치고 말았다. 주체할 수 없이 뛰는 가슴에 손을 가만히 얹은 경수가 곧 정신을 차리고 의아해 하는 얼굴을 지으며 종인과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에 경수는 그만 할렐루야를 부르며 자리를 뛰쳐나갈 뻔했지만 슬쩍 허벅지로 내렸던 오른손에 들린 샤프로 자신의 허벅지를 콕콕 찍으며 간신히 뛰쳐나가고 싶어했던 욕구를 꾹꾹 눌러담았다. 종인은 눈가까지 파르르 떨면서 오묘한 표정을 짓는 경수를 보며 이상한 애다라고만 생각하고 자신이 말을 건 목적을 이야기 했다.
"아니, 어차피 우리 둘 밖에 없으니까 전기 아낄겸 여기 앉아도 돼?"
종인의 말에 경수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자신들이 앉아있는 자리의 형광등만을 켜서 전기를 아끼자는 말임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경수는 자신의 가방과 짐들을 가지러 자리로 돌아가는 종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꼬박 2주를 도서관에서 보낸 보람이 있었다.
종인이 경수가 앉아있는 분단을 제외하고는 도서관의 형광등을 모두 꺼버리고 경수의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경수는 내내 종인을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털썩 앉는 종인에 놀라 화들짝 온몸을 들썩였다.
경수는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딸딸했다. 만약에 도서관에서 잠이 들어서 꾸고 있는 꿈이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종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종인이 막 책을 다시 펴다가 와닿는 시선에 고개를 들자 경수가 노려보고 있던 시선과 딱 마주쳤다. 경수는 달아오르다 못해 펑 터져 버릴 지경의 얼굴을 하고는 재빠르게 도로 책에 시선을 들이 박았다. 아아,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은 오늘 브이텍에 운명을 달리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한참을 마주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말이 공부지 경수는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로 언어 지문에 의미없는 밑줄만을 좍좍 그으며 온 신경을 종인에게 쏟아붓고 있는 터였다. 도서관 안에는 사각거리는 필기소리만 오가고 있었다. 경수는 글자 하나 바라보았다가 종인의 손을 바라보았다가, 그렇게 번갈아 바라보기만을 수백번 했을까.
샤프를 틱틱 누르던 종인의 손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아마 샤프심이 없는 모양이다. 종인이 한손으로 샤프를 신경질적으로 틱틱 누르며 나머지 한손으로는 자신의 필통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경수는 그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성질이 폭발하며 미친듯이 샤프를 누르며 자신의 필통을 뒤집어 탈탈 털어 책상위로 쏟아버리는 종인을 보고는 질겁하여 몸을 살짝 뒤로 내뺐다. 성질이 어지간히 급한가봐. 필통을 통째로 뒤집었음에도 샤프심이 없었는지 종인은 짜증스런 얼굴을 하고 고개를 홱 들었다. 마침 경수가 종인에게 샤프심을 줄까 말까하고 자신의 필통을 들고 한동안 망설이고 있었는데 짜증으로 가득한 종인의 눈과 눈이 마주치자 경수는 그만 털썩하고 필통을 그대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주 작게 "..엄마야..." 하는 소리가 경수의 입에서 새어나온 것을 종인이 들었는지 안그래도 정적뿐인 도서관은 그소리 이후로 정적에 휩싸였고 이제는 종인과 경수 사이에 따끔따끔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경수는 울듯한 얼굴로 책으로 고개를 쳐박고 절대로 종인 쪽을 바라보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 한번만 더 눈이 마주쳤다가는 종인이 통째로 자신을 씹어먹어버릴거 같았다. 아, 내가 왜 저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걸까. 경수는 속으로 자신에게 마구 욕을 하면서도 도무지 종인이 싫어지지 않아 그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종인이 이쪽을 째려보고 있을까, 여전히 움직임 하나 없이 가만히 있는 종인이 궁금하면서도 무서웠다. 결국 경수의 고개가 다시 들리려던 찰나,
"도경수, 샤프심 좀."
종인의 목소리에 경수는 끄아악하는 소리를 내며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자신의 의자가 우당탕탕 뒤로 나뒹굴었다. 분명히 해두지만 이건 종인이 무서워서라기보단 종인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것에 대한 감격의 표현이였다. 경수의 격한 행동에 종인이 답지 않게 당황한 얼굴을 지으며 아니 그냥 조끼에 니이름이 있길래라고 중얼거리는 소리에 경수는 현실로 돌아왔다. 맞아. 교복에 이름이 뻔히 박음질 되어있었지. 경수는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서둘러 의자를 세우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경수는 그래 하고 시원하게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꿀먹은 벙어리마냥 꽉 막힌 목탓에 끝끝내 입밖으로 소리내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 오후가 되어서야 김종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메던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종인이 먼저 눈인사를 하고는 도서관을 나섰다.
"아아ㅡ 진짜 죽는줄 알았다ㅡ"
경수는 종인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던 것과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해주었단 여운에 잠기어 도서관 책상에 한참을 설레하며 엎드려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역시 도서관,
이제 종인은 경수에게 묻지도 않고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경수는 종인이 편 책을 흘끔 들여다 보고 역시 자신과는 급이 다르다며 속으로 좌절했다.
종인이 편 책은 무려 손가락 두마디는 되는 두꺼운 양장본이였는데 한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자신이 알아본 영어는 오직 medical 뿐이기에 그저 그 책이 의학과 관련되어있을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였다. 경수는 자신이 펴놓은 수학익힘책 미통기가 굉장히 부끄러워져 버렸다. 그래서 슬쩍 팔로 자신의 책을 감추려다가 포기하고는 한숨을 쉬며 샤프를 쥐고는 자신도 종인을 따라 노트에 사각사각 글씨를 적어내려갈 뿐이였다.
노트에 무어라 무어라 영어로 써내려가던 종인이 고개를 잠시 드는가 싶더니 경수가 펼쳐놓은 수학 익힘책을 바라보려는듯 몸을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살짝 몸을 움직였는데도 확하고 풍겨오는 종인의 냄새에 경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비가 내리고 별이 송송 박혀 있는 자신의 수학익힘책을 종인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내색하지 않고 팔을 살짝 들어 척하고 익힘책을 가렸음에도 종인이 이리저리 몸을 기울이며 익힘책을 들여다보려 하기에 경수는 그만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망각하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보지마아!!"
아뿔싸! 지금 내가 누구에게 소리를 지른것인가..
무언가로 딩하고 얻어맞은 표정을 짓는 종인을 보고 경수가 아차하고 입을 콱 틀어막았지만 이미 쏟아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경수가 어쩌지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이 놈의 욱하는 성질을 어서 고쳐야 한다며 자신의 머리를 조막만한 주먹으로 콩콩 내리찍으며 마음속으로 우우우! 하고 절규했다.
그런 경수를 벙쪄 바라보던 종인이 이내 풋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허리까지 접어가며 격하게 웃는것이 아닌가. 경수는 얼굴이 빨개질대로 빨개져 파닥파닥 손부채질을 하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도서관 책상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웃는 종인을 경수가 눈을 흘기며 노려보는 모습에 종인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슥슥 훔쳐내며 허리를 똑바로 펴 앉았다.
뭐야, 박찬열이 변백현 귀여워 죽는다고 하더니만, 귀여운건 이런걸 두고 하는거지. 아 진짜 귀여워.
종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을리가 없는 경수는 불퉁한 얼굴로 비스듬히 앉아 종인을 노려보았다.
그래, 너 아무리 먼저 반한 사람이 지는거긴 한데 그렇게 대놓고 비웃을 이유가 뭐야
"..왜 사람을 그렇게 대놓고 비웃냐..."
경수가 거의 기어 들어가다시피 말끝을 뭉개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종인이 씨익 웃더니 두손을 모아 싹싹 비는 시늉을 하며 사과했다.
"미안 미안"
종인의 사과에 경수는 금방 화가 풀려 방긋 웃긴했지만 여전히 수학익힘책을 자신의 품에 감추고 있었다. 신줏단지라도 끌어안은 경수의 모양새에 종인은 손가락으로 경수의 품에 안긴 수학 익힘책을 가르키며 말했다. 아니 문제 접근 방법이 좀 특이해서 쳐다봤어. 종인의 말에 경수가 눈을 반짝하며 종인을 쳐다보았다. 수학문제 답이 맞아도 항상 해설지에 있는 풀이과정과 달라서 자기가 문제를 잘 푼건지 아닌건지 알 길이 없었는데 종인이 말하는걸 보니 틀리게 푼것만은 아닌거 같다. 헐! 그동안 도서관을 뻔질나게 출입을 한게 그나마 효과가 있긴 한걸까? 경수는 그동안 공부를 하며 단순히 종인의 얼굴을 감상한것뿐인게 아니란 사실에 흐뭇하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종인이 턱을 괸채로 입을 열었다.
"공부 잘해?"
전교 1등인 네가 물을 건 아닌거 같다?
"몇반이야?"
너랑 같은 층인 3반. 일부러 네 앞에 알짱거렸는데 날 기억 못하다니
종인의 질문에 경수는 마음속으로는 이미 유창하게 대답을 했지만 제정신으로 종인의 앞에만 서면 목구멍에서 말이 튀어나오질 않아 그저 입만 빵긋거렸다. 마치 아기새마냥 입을 벙긋거리는게 우습기도 해 종인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까 소리는 크게 질렀으면서"
종인의 웃음기 섞인 말에 경수가 야아!하고 소리질렀다. 경수의 쩌렁쩌렁한 고함에 종인이 놀란듯 괴었던 팔을 풀어내며 눈을 크게 떴다. 경수는 다시금 툭 튀어나온 자신의 욱하는 성질에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하게 느껴져 머리를 마구 뒤헝클었다. 아, 왜 김종인이랑 있을 때는 내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을까? 차라리 멀리서 지켜 보는게 경수의 심장이나 정신상태를 위해서 더욱 좋았을 거란 생각이 경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종인은 놀랐던 것도 잠시 곧 그 예쁜 눈을 접어 웃으며 뭐야, 이제서야 대답해주네하고 다시 손으로 턱을 굈다. 경수는 방금까지고 종인과 가까워진 거리를 후회하다가도 그런 그의 웃음에 하마터면 넋을 잃을 뻔했다. 경수는 무의식중에 침을 흘린 것은 아닌가 하고 자신의 입주변을 셔츠 소매자락으로 재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떨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종인에게 고정했던 시선을 내려 책을 들여다 봤다. 하지만, 검은건 글씨요, 흰것은 종이로다. 당연히 책 내용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아직도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종인이 경수의 정수리에 느껴져 고개 드는것 조차 하지 못하고 점점 화끈거리는 얼굴에 파닥파닥 손 부채질을 했다.
"...그만봐"
경수는 자신의 정수리로 와닿는 종인의 노골적인 시선이 한참 이어져서 결국 샤프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종인에게 우물쭈물 말했다.
" 왜? 기분 나빠?"
"아아니ㅡ 그런게 아니라ㅡ,"
너무나 당연스런 종인의 물음에 경수가 도리어 화들짝 놀라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어 오른다 싶을정도로 몸을 들썩거리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웅얼웅얼 말을 내뱉지 못하고 도로 입안에서 삼켜냈다.
경수가 웅얼거리는 소리에 일부러 종인이 몸을 반쯤 일으켜 내밀더니 "뭐라고?"하며 자신의 귀를 경수에게 들이댔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옴에 체취가 확 풍기기까지 하자 그만 또다시 경수는 좀 더 큰 목소리로 "보지말라고!" 소리쳤다. 아, 또 그만 욱하고 말았다. 경수는 입을 삐죽거렸다. 아니 정 안떨어지게 사근사근 웃으면서 대해줘도 모자를 판에 빽빽 소리를 지르니 정분이고 나발이고 정조차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근데 종인은 또 저의 반응을 마냥 재미있어 하는 것만 같아 경수는 서서히 약이 오를 판이였다.
종인은 웃으며 자신의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은뒤에 샤프를 다시 손에 쥐었다. 그리고 종인때문에 약이 올라 씩씩거리는 경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나랑 말할때는 항상 그렇게 크게 말해"
종인의 말에 경수는 펼치고 있던 페이지가 구겨질 정도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무엇에 만족스러워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흐뭇하게 웃으며 신이 나기까지 해보이는 종인의 얼굴에 경수는 마냥 설레고 떨렸다. 종인이 자신과 말할때라고 말하는걸 보니 아마 종인이 이렇게 종종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단 이야기인것만 같아 종인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눈이 시큰거리고 코마저 찡한것 같아서 고개를 황급히 책으로 떨구었다. 설렘으로 발갛게 물든 경수의 얼굴을 미쳐 종인이 보지 못하고 책으로 시선을 떨구었는지 종인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사각거리는 샤프 소리에 경수는 눈을 감았다.
으아, 어쩌지 심장이 터질거 같아. 아주 중증 짝사랑이야. 자신의 심장 부근에 얹은 제 손으로 느껴지는 심박수에 경수는 조용한 도서관에 행여나 들릴새라 한참을 속으로 끙끙 앓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학교에서 어쩌다 마주치면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로 지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번이라도 종인의 눈에 더 띄고 싶어서 종인의 근처를 알짱거린게 보람이 있었는지 경수는 종인과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했고, 종인에게 조금 갖고 있던 낯가림이나 긴장감은 많이 없어진 편이였다. 오히려 복도나 이런데서 마주치면 자신이 먼저 번쩍 손을 들며 아는척을 할때도 많았다. 그럴때면 항상 종인이 지나쳐 간후에 자신의 친구들이
"야, 너 갑자기 쟤랑 어떻게 친해진거야?"
하며 의아하게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경수는 새삼 종인과 자신 사이의 갭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었다. 그건 특정한 경우에 시너지를 발휘하며 확연해졌다. 바로,
"안녕? 경수야!!"
하고 급식실이 떠나가도록 목청을 높이며 인사를 하는 백현과 찬열 사이에 있을때면 더욱 심했다. 종인은 덤덤하게 인사를 하고 스쳐가는데 오히려 백현과 찬열이 마치 옛친구를 만나기라도 한듯 경수의 등을 두드리며 어깨동무를 하며 경수를 종인쪽으로 몰아갔다. 경수는 잠깐만, 저기... 잠시만, 하며 점점 멀어지는 자신의 친구들을 돌아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찬열이 아예 경수의 식판을 뺏어 들어 앞장 서 가버리고 백현은 뒤에서 경수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갔다. 경수가 다급한 눈길로 자신의 친구들을 돌아보았지만 백현과 찬열이 여간 성 가시는게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아는 친구들을 그런 경수에게 어서 사라져 버리라는듯 밥을 먹으며 대충 손을 내저을 뿐이였다. 찬열이 종인의 옆자리에 식판을 내려놓고 백현이 경수의 어깨를 꾹 눌러 앉히는데 경수가 엉덩이가 의자에 닿자마자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백현이 꾹 누르는 손아귀힘에 그대로 자신의 식판을 든채로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기..나 친구들이랑 밥 같이 먹어야 하는데....
울먹거리다시피 하는 경수의 울상에도 백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응? 그래서 우리랑 밥을 먹는건 기분이 나빠? 하고 물었다. 경수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는 백현에게 서둘러 고개를 저어보이며 자신의 옆에서 묵묵히 밥을 먹는 종인을 힐끗 바라보고는 이내 숟가락을 들었다.
"아.."
경수는 자신의 식판에서 날름 비엔나 소시지 하나를 집어가는 백현을 보고 작게 탄식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인데.. 경수가 차마 백현의 젓가락에 꽂혀 이미 반쯤 입안으로 들어가는 통통한 소시지의 뒷태에 무어라 하지 못하고 그저 아쉬운듯 젓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 모습에 찬열과 백현이 서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아, 진짜 귀엽네"
"내말이. 김종인이 귀엽다고 할 정도면 말 다한거긴 한데 진짜 쩔어"
경수에게는 들리지 않을 둘만의 대화임에도 종인이 백현과 찬열이 나누는 눈빛을 간파하고 식탁 밑으로 발을 놀려 둘의 정강이를 하나씩 차주었다.
으윽! 하는 찬열과 백현의 고통스런 신음과 몸을 배배 꼬는 이상한 행동에 경수가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어 둘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제 손에 쥐어진 숟가락 위로 소시지가 안착하는 모습에 스윽-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 젓가락을 입에 넣던 종인이,
"소시지 먹고 키 더 크라고"
하고 무심하게 하는 말에 경수는 목에 느껴지는 열기에 고개를 꾸덕거리며 작게 고마워 하고 웅얼거렸다. 역시나 설렌다. 역시나 좋다.
이상하게 찬열과 백현이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을 끌고 종인에게로 가버리는 일이 늘어났지만 적어도 방과후 도서관에서만큼은 백현도 없고 찬열도 없는 평화로운 곳이였다. 공부를 하며 간간히 나누는 대화가 이젠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매일을 당연하게 종인이 자신의 맞은 편자리에 앉는다는 사실이 뛸듯이 기뻤다.
경수는 눈만 살짝 들면 시선이 닿는 곳에 종인이 있다는 사실에 그 무엇보다도 날아갈듯이 기뻤다.
막 도서관으로의 출근이 한달을 훌쩍 넘어설 쯤일까,
여느때처럼 구름다리를 건너올 종인의 발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시켜 듣는데 어쩐지 오늘은 한명이 아닌 우르르의 발소리이다. 그때부터 경수의 마음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아, 그냥 여기서 도망가버릴까? 자신의 가방만을 빤히 내려다 보던 경수는 이내 요란스런 백현과 찬열이 쏟아지듯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툭 떨구고 말았다. 그 뒤로 매우 귀찮다는 티를 풀풀 풍기는 종인이 들어왔다.
경수는 찬열과 백현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몸을 뒤로 내뺐다. 급식실이나 복도에서 시달리는것만으로도 경수에게는 분에 넘치던 차였다.
유일하게 찬열과 백현이 없는 자신과 종인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까지 그들이 들어옴에 경수는 당황해 했지만 말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종인과 자연스레 종인의 양 옆을 끼고 앉은 백현과 찬열 앉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경수는 왠지 모를 섭섭함에 코 끝이 찡해짐을 느끼고 서둘러 책으로 정신을 쏟아부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올리가 만무했다.
서글펐다.
이제 종인과 단 둘이 만나는 장소가 없어졌다. 아니 만난다기 보단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것에 불과했지만 경수에게는 그것도 과분한것이였다. 경수는 이런 제 자신이 참 한심하고 비참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말 한번 먼저 걸지도 못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것만으로도 만족해 하다가 그 공간을 침범당했다고 서글퍼하는 제 자신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종인과 말 한마디 해보겠다고 한달이 넘는 시간을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있었던 제가 한심했다. 같은 공간에 좀 같이 있어봤다는, 고작 그 사실 하나에 의미부여를 해가면서 종인을 붙잡고 있는 제 마음이 그렇게 하찮게 느껴질 수 가 없었다. 거기다가 아까부터 계속 종인을 사이에 두고 무어라 떠드는 백현과 찬열의 자리에 자신이 있었으면, 나 같은 애는 저런 친구 자리에도 왜 있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가슴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경수가 보고 있던 책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경수는 그 눈물들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울음소리가 새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버틸 따름이였다.
무어라 무어라 지들끼리 키득거리던 찬열과 백현 사이에서 종인이 솟아오르는 짜증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계점에 다다를 지경이였다.
하, 애초에 맘에 드는 애가 생겼다고 이 새끼들한테 말한 내가 잘못이지.
그동안 찬열과 백현이 경수를 꽤나 성가시게 굴었던것이 맘에 들지않았지만 자신을 배려 해주지 않을 친구들이란걸 알아 종인은 그 상황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경수가 꾹꾹 참는게 눈에 보였는데... 종인은 경수가 자신을 귀찮아 하면 어쩌나 하고 불안한 마음에 습관처럼 입술을 뜯고 있었다. 아 이 새끼들을 여기에 데려오는게 아니였어. 경수와 종인만 있는 공간에 백현과 찬열을 데려온다는게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였지만, 유일하게 자신이 경수를 맘에 들어하는걸 알고 있는 애들이니 작은 햄스터마냥 자신의 행동에 깜짝 깜짝 놀라는 경수를 자신을 좀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것이 매우 큰 실수였다고 생각되는 종인이였다. 종인은 한숨을 푹푹 쉬며 찬열과 백현이 경수를 보며 뽀로로를 닮았다는 둥 귀엽다는 둥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대는 가운데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딴 놈들을 바라보고 있는것 보다 차라리 경수를 바라보는게 낫지.
종인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 경수 쪽을 바라보다가, 심장이 발 밑으로 떨어진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처음 알았다.
경수가 정말 서럽다는 듯 입술이 하얘지도록 꾹 깨물며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종인은 머리가 새하얘져버렸다. 가슴이 철렁한다는게 이럴때 쓰는 말이구나 하고 종인은 납득을 해버렸다. 안그래도 강아지 같은 눈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가슴이 미어지는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종인은 안쓰러운 마음에 미간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경수"
종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름에 경수는 죽어라 참아내던 울음을 툭 터트리고 말았다. 흐어어엉ㅡ
엉엉 어린아이처럼 도서관이 떠나가라 우는 경수의 모습에 종인은 물론 신나 떠들던 백현과 찬열마저 당황해 어버버거리며 경수를 달래기에 급급했다.
"경수야ㅡ 도경수ㅡ 여기 봐라? 쨔잔! 테크토닉 보여줄까? 응?"
"경수야. 서울구경 시켜줄까? 서울구경?"
말도 안되는 춤사위 따위를 보여주는 백현에 경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찬열이 경수에게로 다가와 경수의 관자놀이를 마치 짜부술듯 꾹 누르려 하자 경수는 그 손에 오히려 빽 소리를 지르며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저리가아ㅡ! 너네 싫어 미워! 엉엉 울며 경수는 다가온 찬열과 백현에게 주먹을 투닥거리며 반항했다.
"너네만 사라지면 돼. 나가"
에고, 저러다가 애기 큰일 나겠네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찬열과 백현의 뒷덜미를 종인이 낚아채 도서관 출구로 질질 끌고 나갔다. 그리고는 문 밖으로 백현을 밀어버리고 찬열의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낸 종인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공든 탑을 무너트려도 유분수지, 내가 도경수랑 그나마 친해지는데 얼마나 애썼는줄 알아? 도경수가 나 싫어하면 너네 가만 안둬.
찬열과 백현이 도서관 밖 복도에 나뒹굴었다가 말 없이도 종인에게서 느껴지는 뜻에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종인이 냉정하게 안에서 도서관 문을 걸어잠궈버렸다.
아, 귀여워서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치?
맞아. 근데 경수가 종인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김종인이 우리 가만 안둘텐데
야, 김종인이 지 맘에 드는거 놓친적 있냐? 싫어해도 어떻게든 손에 쥐고 말걸?
.......하긴 그래
백현과 찬열이 도서관에서 점점 멀어져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백현과 찬열을 쫓아낸 종인에게 남은 일은 이젠 아예 책상에 엎어져 통곡하는 경수를 달래는 일 뿐이였다.
종인은 어쩌면 좋을까하고 한숨을 푹 쉰 뒤에 경수에게 다가가 경수야, 하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정하게 부르는 종인의 목소리에 경수의 울음소리는 더 높아졌다.
종인이 경수의 얼굴을 한번 들여다라도 볼까 싶어 경수의 어깨를 끌어당겨 일으켜 볼까 하다가도 마치 책상과 합체라도 한듯 끝까지 늘어져 붙어 있는 경수 때문에 종인은,
"경수야, 내가 맛있는 과자 사줄까?"
엉엉ㅡ 너 미워 가
"아 맞아! 경수야,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뚝 하자 응?"
종인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보아도 경수가 통곡을 하는 소리는 잦아 들줄을 몰랐다.
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아니지, 도서관은 전교생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긴한데 그래도 어떻게 유일한 곳을!
경수는 단 한번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적이 없으니 종인이 자신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백현과 찬열을 도서관으로 데려온 종인의 야속함이 속상했다. 괜히 섭섭하고 괜히 서운하고 괜히 종인이 미웠다. 아니, 사실은 종인이 아직도 밉지 않다는 사실이 경수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난 니가 정말로 좋아ㅡ 내 맘 몰라줘도 좋고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찬열이랑 백현이를 도서관에 데려왔다고 해도 나는 너가 하나도 안 미워, 조금도 싫어지지가 않아 종인아.
경수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울음만 토해내는데, 전후 상황이나 경수의 속사정을 알리 없는 종인의 미간에 점점 깊은 골이 새겨지고 있었다. 큰 목소리로 우는 경수가 시끄럽고 귀찮다기보다는 자신이 모르는 이유에 이토록 엉엉 우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엉엉 우는 모습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혹시라도,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차였다던지 그런거여봐, 도경수 내가 진짜 가만 안둬.
종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종인은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쫌 그만 울어! 당장 뚝 안그쳐?!!"
하고 소리를 질렀다. 경수가 마침내 울음을 싹 그치더니 새빨개진 눈을 한채로 포개어진 팔을 베고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홱하고 종인을 쏘아보는 경수의 눈빛에,
내가 뭘, 어쨌다고 째려봐. 이젠 나를 네가 무서워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나도 이제 내 방식대로 나갈거니까.
종인이 다른 경우 같았으면 다다닥 몰아 붙였을 상황에도 그저 도경수였기에 마지막으로 이성의 끈을 놓치 않고 답답한지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수의 눈과 마주하기만 하면 마음이 약해지곤 하는것이였다.
그런 종인의 제스쳐에 경수는 욱하는 성질이 다시금 튀어나와 다짜고짜
"좋아해!!!!"
하고 빽 소리쳤다.
갑작스런 경수의 고백에 종인이 우뚝 멈추어 섰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나랑 너무 달라. 그래서 나 이제 너 안좋아할거야!"
라고 말하려했던게 경수의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켜 몽땅 잘라먹고 토해내듯 내뱉은 한마디가 좋아한다는 세글자였다.
경수는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렇게 울컥하는 성격도 고쳐야 하는데 큰일이다.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경수는 아직도 얼이 빠진 종인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다급한 움직임으로 우당탕탕 자신의 짐을 가방에 막 밀어넣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턱하고 종인에게 붙잡힌 손목에 실패로 돌아가버렸지만,
"언제부터?"
"....지난 3월부ㅌ.."
"더 크게,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나랑 이야기 할때는 크게 말하라고"
경수의 웅얼거리는 대답에 종인이 경수의 말을 뚝 끊으며 말했고 경수는 빨개진 눈시울을 하고는 에라 모르겠다하고는 크게 소리내 대답했다.
"3월부터! 3학년 올라온 날 부터 좋아했다 왜!"
경수는 이미 물꼬가 트였으니 종인에게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할말은 하고 죽어야겠단 생각으로 줄줄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을 공중으로 토해냈다.
"좋아하지 말라고, 욕하고 화내도 난 절대 포기할 생각 없어! 연애편지 찢었던 것처럼 내 고백 갈기갈기 찢어버려도 상관없는데 나는 그때마다 하나하나 주워서 빈틈없이 다시 붙일거니까 포기하라고 하지마! 나는 너 정말 좋아하니까 절대 포기안해!"
내가 너를 이렇게 좋아했는데 그런 너를 내가 먼저 어떻게 포기해?!
숨도 쉬지 않고 다다다 몰아 붙인뒤에야 경수는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느라고 몸을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씩씩거리며 산소부족으로 띵해지는 머리에 경수가 살짝 비틀거렸지만 자신의 손목을 꽉 쥐고 있는 종인탓에 경수는 지탱해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을 따라서 종인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니,
종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경수의 얼굴이 점점 환해졌다. 경수의 울상이였던 입이 서서히 위로 당겨져 올라가며 이내 아직도 붉은 눈시울이 예쁘게 접혔다.
경수의 시선 끝에는,
평소에 종인을 바라보던 경수의 표정이 종인에게 옮겨가 있었다.
얼굴이 한껏 달아올라 종인과 눈조차 못 마주치던 경수의 표정이 종인의 얼굴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경수가 종인에게서 하나하나 설레임을 느낄때의 표정이 고스란히 번져 있었다.
경수가 해사하게 웃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았다.
"..맙소사"
입을 막은 경수의 손가락 틈사이로 새어나간 경수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들은 종인은 그만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는 홱하고 고개를 경수의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목부터 귀까지 온통 새빨개진 종인의 모습에 경수는 이제껏 지었던 웃음중에 가장 해맑고 아이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냅다 종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
예전에 쓴 카디 리뉴얼 버젼입니다^.^
별로 달라진게 없는것 같다구요...? 기분탓일거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불마크를 달아야할것만 같은 야심한 시간에 오글거리는 달달물이네욬ㅋㅋㅋㅋㅋ
급작스런 똥글 테러 죄송하구요. 곶손은 이제 그만 나가실게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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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