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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오래된 노래 | 인스티즈 

  

  

  

  

  

  

“아, 힘들어요.”  

  

“불평하지 마라. 니가 하겠다며.”  

  

   

  

   

  

   

  

백현의 단호한 말투에 세훈은 속으로 궁시렁대며 트럭 위에 쌓여진 박스 중 하나를 대충 집어들곤 계단을 올랐다. 학교를 다닐 땐 통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기숙사에서 지내다 1년동안은 아는 선배와 같이 동거를 했고 그 선배의 갑작스런 결혼으로 인해 평수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대학때만 해도 아부란 아부는 죄다 떨었으면서, 이젠 대놓고 불평도 하네. 오세훈. 백현이 웃으며 손에 있던 짐을 고쳐 든다.  

  

   

  

   

  

   

  

“형.”  

  

“왜.”  

  

   

  

   

  

   

  

단무지를 한입 베어문 세훈이 거실을 둘러보다 백현을 부른다. 심드렁한 백현의 표정과 대조되게 세훈의 눈엔 궁금증이 한가득이다. 또 뭘 물어보려고. 자장면을 입안 가득 밀어넣고는 젓가락을 신문지 위에 놓았다. 슬슬 정리나 해볼까. 박스 안에 들어있던 물건을 하나씩 늘어놓던 백현에게 세훈이 묻는다. 형, 저기 저 낡은 상자에 든건 뭐에요? 세훈이 가리키는 곳엔 그의 말대로 빛이 바래 낡아버린 종이박스가 있었다. 볼려고 본건 아니였어요. 아까 저거 나르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테이프 같은 게 들어있어서….  

  

   

  

   

  

   

  

“…그냥, 음악 녹음해 둔거야.”  

  

“되게 오래 됬나봐요.”  

  

“…좀.”  

  

   

  

   

  

   

  

백현은 상자에 머물던 시선을 거두곤 세훈을 부추기며 다시 이삿짐을 정리했다. 야, 일이나 해. 밥도 다 먹지 못했다며 엉겹결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세훈의 말에도 백현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거실에 널린 짐들만을 묵묵히 방으로 옮길 뿐이였다. 그 모습을 보곤 세훈은 의아했다. 저 형, 왜저러지?  

  

   

  

형, 저 가볼게요. 세훈의 인사를 끝으로 현관문이 쾅소리를 내며 닫힌다. 땀에 찌든 머리칼과 옷이 찝찝해 욕실로 향하던 발걸음이 거실에서 멈춰선다. 아. 짧은 탄식을 내뱉은 백현의 시선은 미쳐 정리하지 못한 낮에 세훈이 발견한 낡은 상자에 머무른다. 이거, 왜 안치웠지. 상자를 향해 뻗은 백현의 손이 잠시 주춤거린다. 먼지가 쌓여 뿌옇게 변해버린 게 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자 엉망으로 섞여버린 편지들과 두개의 테이프가 들어있다. 테이프를 잡는 백현의 손이 작게 떨려온다. 비디오기계에 테이프를 넣곤 거실 한가운데 앉았다. 한참동안 바닥을 향하던 눈동자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재생되는 영상에 머문다.  

  

   

  

   

  

   

  

   

  

   

  

   

  

   

  

   

  

   

  

   

  

   

  

  

   

  

이번 기말고사 1등도 도경수다.  

  

   

  

   

  

   

  

창밖을 향하던 백현의 시선이 둥그런 뒤통수로 향한다. 주변 친구들의 환호와 칭찬에 해맑게 웃으며 얼굴을 붉히던 녀석이 이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백현아, 나 1등했어. 말간 눈동자가 속삭이 듯. 그렇게 도경수는 웃고 있었다.  

  

   

  

   

  

   

  

백현아.  

  

   

  

   

  

   

  

교실 뒤에서 들리는 조심스런 목소리에 살풋 웃었다. 도경수 또, 눈 굴리고 있지. 의자에 앉아있던 백현이 고개를 돌리자 경수가 가방을 맨 채 교실 안으로 발을 들인다. 말없이 피아노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경수를 향해 몸을 왼쪽으로 당겨서 남은 자리를 툭툭 쳤다. 고마워, 백현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경수가 묻는다. 피아노 연습 잘 되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조곤조곤 물어오는 경수를 향해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였다.  

  

   

  

   

  

   

  

피아노 쳐 줘.  

  

듣고 싶어.  

  

   

  

   

  

   

  

피아노에 손을 올리던 백현이 이내 경수의 손을 잡아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적는다. 내가 만든 노래. 워낙 글씨를 예쁘게 쓰는 데는 소질이 없던 백현이지만 녀석을 위해 한자 한자 혼신의 힘을 다해 정확하게 적어 내려간다. 만든 노래?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글자를 적어내려갔다. 들어볼래?  

  

   

  

TV화면에는 교복을 단정히 입은 갈색머리의 백현이 보였다. 빨간색 목도리를 두른 나는 어렸다. 자꾸만 카메라를 바라보던 내가 피아노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익숙하던 그 노래는 가사가 없었다. 몇날 몇일을 울며 만든 노래였다. 짧은 노래반주가 끝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잘했어, 백현아.  

  

   

  

   

  

   

  

천천히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에 앉은키가 나보다 조금 작은 경수를 내려다보았다. 가사도 없고 볼품도 없는 노래에도 경수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기뻐서인지는 몰라도 한참을 울먹이던 경수가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 백…현아.  

  

   

  

   

  

   

  

가사 없어도, 괜찮아.  

  

다 좋아.  

  

   

  

   

  

  

   

  

그러니까 이제 울지마, 말 안해도 나는 다 알아. 잇새로 괴성이라도 흘러나왔으면 하건만, 결국 나는 아무 위로도 건내지 못한 채 경수의 작은 몸을 품에 담았다. 말을 하지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차례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너만이 나의 언어였다. 모든 걸 다 할수 없더라도 나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싶었다. 도경수 너랑.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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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ㅠㅠㅠㅠㅠ뭔가 마지막이 아쉽긴하지만 정말 좋은 문체예요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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