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벽 정구기를 좋아하는 해바라기 탄소. 정구기 맨날 따라다니면서 이거 챙겨주고 저거 챙겨주고 뭐 사주고 뭐 사주고 하는데 정구기는 그냥 여자 자체에 무신경. 그래서 탄소도 계속 쳐내는데 그렇게 탄소가 치대고 1년 쯤 됐을 때 몇 년에 한 번 아플까 말까 한 정구기가 아픈 날이 찾아옴. 탄소는 그때도 성심성의껏 간호해주지, 정구기 자취방가서. 근데 자취방 비밀번호를 정국이가 정신없는 틈에 알려줬는데 0308 이렇게 누구 생일처럼 그런 거. 우선 탄소는 정국이가 어쩔 수 없어서 알려준 거였다고 해도 알려줬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서 비밀번호 기억해둠. 그렇게 탄소는 정국이 아플 때 챙겨주고 그냥 아무 것도 아닐 때도 챙겨주고 함. 정국이는 탄소 도움 받는 게 꺼림직하긴 해도 아플 때 도와준 건 좀 고맙긴 한 마음임. 하루는 정국이가 많이 취했는데 어쩌다 보니 탄소한테까지 연락이 감. 연락 받은 탄소는 꾸기한테 직접 연락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국이 일로 연락받은 거니까 막 기분 좋게 정국이 데리러 가는데 애가 진짜진짜 너무 취했어. 원래 그럴 애가 아닌데. 게다가 술을 못 마시는 편도 아닌데, 아니 진짜 말술로 마셔도 멀쩡한 정국인데 그런 애가 제 몸도 못 가누고 자꾸 테이블 위에 픽픽 엎어지니까 무슨 일 있나 싶음. 걱정돼서 탄소가 꾸기 달래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데 오늘이 아미래. 그래서 날짜 봤더니 3월 8일. 원랜 물어봐도 씹는데 오늘은 정국이가 너무 취해서 드문드문 말을 이어감. 오늘... 아미. 아미날. 우리 아미... 보러 가야 하는데. 우리 예쁜 아미... 이 정도 들으니까 탄소도 눈치챔. 아, 정국이 여자친구 생일이었구나. 그럼 여태 여자친구 있으면서 나한테 챙김받은 건가? 아, 아니지 정국이는 싫다 그랬는데 내가 억지로 챙겨준 거구나... 순식간에 멍해진 탄소. 아미라는 정국이 여자친구한테도 미안해지고 여태 정국이가 밀어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는데 혼자 바보짓한 것도 모자라서 남의 남자 탐내고 오지랖까지 부렸던 게 너무너무 자책감이 듦. 그래도 일단 정국이 상태가 그러니까 집에 데려다주고 해장국도 끓여놓으려다가 여자친구 있다는데 계속 그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옴. 다음날도 정구기네에 찾아온 탄소. 정꾸는 어제 데려다 준 사람이 탄소라는 것도 모름. 그냥 친구가 데려다줬겠거니 싶음. 탄소는 정국이한테 너무 무겁게 얘기하면 나중에라도 서먹해질까봐 평소처럼 얘기함. 야아, 너 되게 순정파더라. 정국이는 말없이 탄소 바라봄. 원래 이런 거 대답해준 적도 없었어서 뭐, 익숙함. 누나 몰랐는데, 자취방 비밀번호도 여자친구분 생일이구... 여자친구, 라는 단어가 나오자 마자 정국이 표정 확 굳어짐. 원래도 살가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무표정에서 화난 표정으로.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응? 아니, 그냥... 탄소는 정구기가 어제 일 기억 못 하는 것 같아서 그냥 얼버무림. (그냥 기억 못 할 것 같은 게 아니라 못하는 게 당연한 수준이었으니까) 괜히 얘기하면 민망할까봐. 정구기는 왜 그걸 니가 알고 있냐는 마음임. 내가 얘기해준 적도 없고 얘기해주기도 싫고 진짜 친한 형 한두 명정도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왜 아무 것도 아닌 네 입에서 들어야 해, 내가. 나 좋아한답시고 뒤에서 그런 것까지 캐고 다녔나. 탄소에 대해 조금이나마 고맙던 감정이 싹 사라짐. 게다가 자취방 비밀번호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짜증남. 나 아플 때 잠깐 알려줬던 걸 왜 외우고 있는데, 네가. 그래서 얘기함. 그날. 어쩔 수 없이 누나한테 연락이 갔으면, 최소한 그날만 기억하고 일부러라도 잊으려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 여태 그걸 외우고 있었어요? 안 그래도 누나 나 따라다니는 거 존나 짜증나고 귀찮은데, 그러다 누나가 문 따고 들어와서 진짜 스토커짓이라도 하면? 아, 지금도 스토커 맞지. 누나 존나 개진상 떨고 있잖아요, 지금. 대체 여태 내 뒤에서 뭘 얼마나 캐고 다녔던 거예요? 스토커? 탄소의 여린 마음에 금이 크게 감. 아니, 아니... 정국아 그게,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싫다고 몇 번 말했어. 누나랑 밥 먹기 싫다, 영화보기 싫다, 오지 마라, 연락하지 마라. 몇 번 말했냐고 지금까지. 근데 누나 내 말 들은 적 있어요? 존나, 사람이 하지 말라면 적당히 해야 될 거 아냐. 누나 그냥 나 존나 무시하는 거죠? 내가 싫다는 건 싫은 게 아니죠? 어? 씨발, 진짜 내가 이딴 얘기까지 하게 만들어야겠어요? 탄소는 순수하게 정국이를 좋아함.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고 싶었던 건데. ...미안해, 난 그냥 챙겨주고 싶어서... 하지만 오늘 탄소는, 정국이에게 있어서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렸음. 따라서 꾸기는 멈추지 않는다. 누가 챙겨달래요. 누가 그딴 거 해달랬어. 누나가 지금 하는 짓이 챙겨주는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 존나 진상이라고. 싫다는데 쳐알아먹지도 못하고 지멋대로 구는 스토커라고. ...미안해. 난 너 여자친구 있는 것도 몰랐구, 아니, 그... 여자친구 없었어도 네가 그렇게 싫어하면 그냥 다 관뒀어야 했는데... 미안, 미안하면 가. 탄소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싹둑 잘라버림. 그렇게 미안하면 꺼지라고. ... 탄소는 또 미안하다고 할 뻔 했음. 근데 그말도 차마 못 하니까 입술만 달싹이다가 눈물이 핑 돔. 그렇게 울음 올라오려는 거 참으면서 잠시 가만히 서있다가 끝내 꺼낸 말. ...알았어, 다음에 봐.

인스티즈앱
현재 못입는 사람은 평생 못입는다는 겨울옷..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