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먹어."
"...."
"먹고 나와.밖에 있는다."
배가 너무 아파 움직이지도 못하겠어 집에 못가고 아무도 없는 빈교실에서 무작정 엎드려 찔끔찔끔 울고 있었다.
그 때 네가 내 숨소리밖엔 들리지 않는 적막한 교실에 긁적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툭 복통약을 던졌다.
눈만 힐끔 들어 보니 같이 들고 온 듯한 물병을 약옆에 툭 놓고는 내 가방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그러곤 네 그림자를 보여주며 약을 먹는 날 기다렸다.
그러고 넌 걷지 못하겠단 날 업고 운동장을 터벅터벅 걸어갔다.그 때 본 네 뒷목이 이상하게 정겨웠다.그리고 그때부터 난 널 앓게 됬다.
"꺼져."
기집애 같다며 날 놀리는 사내놈들을 조용히 물리쳤다.그 놈들은 이상하게도 네 말만은 잘 들었다.그게 너의 굵고 낮은 목소리 때문인지,
살기를 품고 노려보는 눈 때문인진 모르겠다.
넌 내 주위에 몰려드는 계집애들도 쫓아냈다.남학생이랑 어울려 놀고 싶어하는 계집애들이 내게로 몰려들면,넌 조용히 내 옆자리로 와 앉아
아무 말 없이 주위에 몰려든 계집애들은 노려봤다.계집애들은 항상 뒤로 돌아 우리 사이를 쑥덕거렸다.난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짝피구다.둘씩 짝지어 서라."
체육시간이었다.우리반은 남자가 넷이 많아 둘둘은 남남으로 짝을 지어야 했다.난 은근히 그게 너와 나이길 바라고 계집애들을 피해 슬금슬금 네 근처를 서성였다.
역시 무뚝뚝한 넌 아무와도 짝을 하지 않아 나와 짝을 지었다.계집애들은 저들이 좋아하는 망상으로 속닥거렸다.그런 것 따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주목받길 좋아하는 사내애가 우릴 더러 호모라느니 더럽다느니 조롱해댔다.나도 기분이 나빴다.널 봤다.넌 그 사내애가 한번만 더 입을 뗀다면
그 입을 찢어버릴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그 사내애도 그걸 느꼈을테지만 과시욕때문인지 화가 난 네 앞에서 계속 입을 놀려댔다.결국 넌 참지 못했나 보다.
무섭게 달려들어 사내애를 패기 시작했다.난 사내애의 얼굴이 뭉개지지 않을까 걱정했다.넌 말리는 사내애의 친구놈들에게 얻어맞았다.네 얼굴에 상처가 생겨
친구놈들을 말리려는 순간 체육선생님이 오셨다.사내애의 얼굴은 피떡이 되었고 네개도 자잘한 상처들이 올랐다.난 네가 무섭다기 보단 속이 상했다.
"너무 많이 때렸던데."
"..........아퍼."
"나랑 자꾸 엮여서 싫어?"
".........아니."
피떡이 된 사내애를 병원으로 보내고 너와 함께 보건실에 갔다.잔병치레가 많아 자주 들러 왠만한 약품은 다룰 줄 알았다.소독액을 거즈에 묻혀 니 얼굴을 닦아냈다.
간간히 말해오는 너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게 좋아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너도 날 좋아하는걸까.하는 생각이 민들레 꽃씨처럼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