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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억의 과정 中

 

 

 

나는 하루에 한 번, 24시간 동안 과거의 어느 하루로 시간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게 특정 시간으로 되돌려주길 바라는 의뢰인과의 거래만 깔끔하게 성립한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되돌려주곤 했다.

 

목돈을 바라는 어린 마음으로 능력을 악용했던 이 짓을 그만 둔지는 꽤 되었다.

철이 든 것도 있지만 목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버려버릴 수 있을만큼, 하다보면 기분이 이상해져서 싫었다.

 

나는 시간만 돌릴 수 있는 것이지 운명까지 바꿔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칼에 손가락을 베인 사람이 손가락을 다치기 전으로 시간을 돌린 후 칼을 멀찍이 치워둔다고 해도, 다른 무언가에 손가락을 칼로 벤 것처럼 똑같이 다치게 되어있다, 이런 말이다.
…즉, 과정만 바뀌는 것이고 그 결과는 같다. 그냥, 반복하는 것일 뿐. 이렇기 때문에 결과는 개의치 않고 과정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나를 찾았다.

 

…망할, 과정을 바꾸려고 힘들게 날 찾아와서 시간을 돌렸으면, 좀 그럴싸하게 바꾸란 말이야, 이 병신들아….

 

 

[김주영/기성용이나오는글] 1억의 과정 中 | 인스티즈

 

 

* * *

 


하나



그리고, 셋.

 


내 손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눈을 감고있는 그와 그의 눈에 손을 얹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내 위로 수많은 구름들이 거꾸로 되돌아 흘러간다.
되돌아가는 구름과 함께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도 순식간에 거두어졌다. 2주일 전의 그가 원하던 과거의 어느 하루엔 비가 내리지 않은 모양이였다.

그래도 비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짙어져 가고 있었다.

 


˝…울지 마세요.˝

 


그의 눈에 얹은 손바닥 안쪽이 그의 눈물로 젖어가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던 이유는, 비가 거두어져도 사라지지 않던 이 진한 비의 향 때문이였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비냄새의 정체를.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코가 아플만큼이나 진하게 풍긴 눅눅한 비냄새는 그동안 그가 얼마나 눈물에 절어 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눈물냄새였다.
그래서 나는 셋을 다 세었음에도 성용씨의 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여기서 향이 더 짙어진다면 이 이상은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성용씨가 우는 것이 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묘하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사랑의 무게는 가벼운데 그의 눈물의 무게는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다가온다.
1억을 바칠만큼의 사랑을 해보지 않고서는 그의 눈물로 인해 점점 무거워지는 내 손을 평생이고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울지 않겠습니다.˝

 


손바닥 밑으로 떨어지는 그의 눈물방울처럼 구름도 비도 없는 텅 빈 하늘을 가르고 품이 큰 빛줄기 하나가 우리를 향해 내리 떨어졌다.

준비하세요. 곧 있으면 성용씨가 원하는 과거의 0시 0분 0초니까요. 아마 주무시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빛줄기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날개가 우리를 감싸안고 끝없는 시간의 절벽으로 떨어져 내렸다.


칼날같은 바람이 우리를 지나쳐 위로 용솟음치듯 솟구쳐 오르고, 빠른 속력으로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몸이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서늘하다.
빛의 날개가 우리를 감싸고있어 흔들림만 없을 뿐 온몸의 모든 감각이 실제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그것처럼 생생히 느껴진다.

그의 눈에 얹고 있던 손을 슬며시 내렸다.
그러자 찡그린 것도 아니고 마냥 편한 것도 아닌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성용씨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알 수 없는 얼굴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여러번 시간의 절벽을 거슬러봐서 괜찮지만, 역시 그가 걱정이였다.

 


˝두려우신가요. 이렇게 깊은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시겠네요.˝

 

˝…아니요. 그 사람을 잃은 날, 다시는 오를 수 없을만큼 깊은 절벽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어서…나름 괜찮습니다.˝

 

˝그럼 두렵지 않으신가 보네요.˝

 

˝…아니요, 두렵습니다. 내가 잘 해내지 못할까봐.˝

 

˝…˝

 

˝하지만, 잘 해내지 못한다면….˝

 

˝…˝

 

˝다음 날 다시 1억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처음에 그의 손을 떠난 1억이 든 서류가방을 보았을 때 그가 어마어마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인 줄 알았다. 대장장이가 갓 구워 내어 붉게 불타오르는 서늘한 칼날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처럼 모진 말을 내뱉고 돌아서려다 비냄새가 나는 사람들의 사연은 꼭 들어줘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의 사연을 들었을 때는, 가벼운 가랑비를 맞은 듯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는 소중하지만 내게는 전혀 소중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부숴져 발밑에 흩뿌려져 있는 것처럼, 나는 ´응, 무언가 부숴졌구나.´ 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빨간 토끼눈을 한 그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1억이나 되는 접착제를 사서 붙이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는 그 하나의 장면을 내가 아닌 제 3자가 되어 보고있는 기분.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분명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 마음 속 어느 부분이 울적한, 그런.

 

그리고 그와 함께 시간의 절벽의 끝자락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지금, 어쩌면 사랑이란 것이 살인보다 그 무게가 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어마어마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보다 더 간절할지도 몰랐다.
더더욱 알 수 없는 기분 속에서 묘한 느낌과 함께 그가 원하는 과거의 하루인 2012년 X월 X일 0시 0분 0초가 시작되었다.

 

 


빛의 날개가 걷히고 처음 보인 것은, 하얀 침대 위에 하얀 이불을 덮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는 성용씨의 모습이였다.
찡그린 것도 아니고 마냥 편한 것도 아닌 부드러운 표정을 한 채로 눈을 감고있는 성용씨는, 아마 시간의 절벽 밑바닥에서 혼자 빛 속을 헤메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 잠든 얼굴을 향해 묻고싶었다.

 

두려우신가요.
나도, 그 사람도, 아무도 없는 빛 속을 헤메는 성용씨의 모습이.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하얀 빛 속을 헤메는 그 공활한 꿈의 순간보다, 어서 빨리 한시라도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데 자꾸만 끝나지 않는 이 꿈의 길이가 더 두려우신가요?

 


* * *

 


˝…주영군!?˝

 

 

부지런한 아침의 새들이 공허한 공기를 가르고 맑게 지저귀기 시작할 때즈음, 그가 벌떡 눈을 뜨며 일어났다.
그가 나를 찾는 부름에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의뢰인들이 묻는 질문에 꼬박꼬박 답해 주었는데, 그렇게하면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무언의 압박감에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혹시라도 성용씨가 내 존재를 인식할까 싶어 숨소리까지 참은 채로 그가 상체만 일으키고 앉아있는 침대에서 조금 멀찍히 섰다.

막 꿈에서 깬 그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침대 주변을 몇번 더 휙휙 훑어보더니, 이내 이마에 손을 얹고 앞머리를 느릿하게 부비적거리며 베개 옆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문자를 보내는 듯 했다.

 


「자기- 회사 오빠랑 영화보느라 문자 답장 이제함!T.T 자니…? 흑…자고있겠지…? -공주님-」
「└답장 : 회사 오빠랑 영화를 봐? 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을 바꾸고 싶다던 그가 또 화를 내는 듯한 문자를 보낸다. 내가 시간을 잘못 돌린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아까 나를 찾던 성용씨를 떠올리면, 분명 내 능력엔 착오가 없다.

 


「그냥 시험도 떨어지고…그래서 기분 전환도 할겸 영화 하나 봤지. -공주님-」
「└답장 : …됐다. 너 지금 집에있지? 내가 그리로 갈게.」

 


문자를 보낸 그가 조심스레 이불보를 걷고 침대에서 내려와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를 따라 화장실로 발걸음을 하다가 쿵, 하고 닫히는 문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렇게 그가 들어간 화장실 문 앞에 멀뚱히 서있는데, 이어 쏴- 하는 샤워기의 물소리가 은은히 울려와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으흑…으으으…으…끄으-˝

 


화장실의 문틈으로 익숙한 비냄새가 새어나와 내 코끝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시간을 제대로 돌린 것이 맞았다.

 

 

 

샤워를 마친 그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왔다. 탄탄한 그의 몸이 혹여나 내 몸에 닿을 새라 얼른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날 스쳐지나가는 그의 잔상을 따라 샤워코롱 냄새가 살짝 진하게 퍼졌다.


다시 하얀 침대가 있는 침실에 들어선 성용씨가 킁킁거리며 자꾸만 자기 몸의 냄새를 맡았다. 샤워코롱 냄새가 어색한 것 같았다. 평소 잘 뿌리지 않다가 일부러 뿌린 것처럼.

 

과거의 이맘 때, 홧김에 제대로 씻지 않고 잠옷 차림새 그대로 그 사람을 향해 뛰쳐나가기라도 한 것일까.
성용씨는 샤워코롱도 모자라 옷장의 옷을 죄다 꺼내 침대 위에 쏟아 붓듯이 펼쳐놓고 거울을 보며 하나하나 몸에 대어보고 있었다.
검정색 슈트, 하얀색 슈트, 빨간색 슈트… 어딘지 세심한 여자의 손길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은 형형색색의 슈트를 두고 성용씨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참을 더 고민하던 성용씨는 결국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침대의 가장 끝 언저리에 펼쳐져 있던 진회색 슈트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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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드디어 기다리던 다음 편이 올라왔네요 꼼꼼하게 아주 천천히 정독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도 지금 비가 오거든요... 그래서 한층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시간은 돌릴 수 있지만 결과를 바꿔주진 못하는 걸 아는 성용이도 안쓰럽고, 자꾸만 눈물냄새 비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괜히 울컥했어요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 다음편도 또 기다릴게요!
11년 전
독자2
신알받고 두근두근!!!! 이번편도 대단해요!!!!!!!! 성용이가 어떻게 바꿔나갈까요ㅜㅜ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11년 전
독자3

11년 전
독자4
하....ㅠㅠㅠ 나 증말 너무너무 설렘,...ㅠㅠ 아 근데 왜 신알신이 안왔쪄..ㅠㅠㅠ 아 나 증말 나 또울음... 당신은 왜이렇게 내 감수성을 퍽ㅋ발 시킴...ㅠㅠㅠ 나 징짜...ㅠㅠㅠ 아 증말 김주영이 제 삼자 입장에서 보는건데 너무 생생하게 다가옴... 아 증말 내가 보고있는 것 마냥.. 하... 당신의 손을 내가 루팡...☆★ 브금도 엄청 젖절해서... 나 쥬금...ㅇ<-< 나진짜 ㅠㅠ 당신의 영원한 팬이 되갔어...ㅠㅠ 아 증말 진짜... 기성용의 마음을 아는 것 처럼 가슴이.. 허헣...ㅠㅠㅠ 나 진짜 쥬금..ㅠㅠㅠ 아 여친...ㅠㅠ 쥭지 마라여..ㅠㅠ 아 죄발... 해피 앤딩이겠져?ㅠㅠ 그래야 해..ㅠㅠㅠ 아 근데 실패해서 다시 1억 가지고 와서 또 하는 장면 보고싶기도 하고...ㅠㅠ 그러면 이야기는 길어질 테니까? ⊙▽<-★ 아놔... 무튼 진짜 이 소설 너무 사랑함... ㅠㅠ 나 또다시 당신의 다이아문드 두뇌와 다이아몬드 손을 존경함...ㅠㅠㅠ 날 제자로 받아줘여...ㅠㅠ 흡...ㅠㅠㅠ
아 즈말.... 할마리 피료음슴... 아이러브 유.
메리 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헣..ㅠㅠㅠ 얼른 더 써줘여...
아 현기증나...핡....ㅠㅠㅠㅠㅠㅠㅠㅠ 아...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 담편줘여!!!!!!!!!!!
ㅋㅋㅋ그러므로 난 독촉몬이 되겠어
독촉독촉독촉독촉ㅋㅋㅋㅋㅋㅋㅋㅋㅋ언닌 내 독촉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촉독촉독촉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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