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남친
Ep.1
헤어지자,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답답하다는 듯한 어조로 닫고 있던 입을 떼어 말하는 윤기였다. 나쁜 놈.
그렇게 하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점점 눈에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자존심이 바닥을 쳤다.
윤기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겠어서 고개를 떨구었고 내 시선은 자연스레 신발 코를 향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같이 맞춘 커플 신발이었는데, 집에 가서 이 신발부터 버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답도 안 하고 바로 뒤 돌아 집으로 간 것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고 욕이라도 할 걸 하는 후회도 하고 골목 모퉁이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자존심이 뭐라고···, 혼자 중얼 거리며 술도 잘 못했던 내가 맥주 두 캔을 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그렇게 윤기와 헤어지고 5개월이 흘렀고, 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 언니~ 나 오늘 학교 끝나고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 엄마한테 말 잘 해줘~ "
" 일찍 들어와 밖에 추워. 야 김민희!! 내 신발 신지마!! "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시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난 학교 끝나면 동생 돌보느라 바빴다.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했고, 놀더라도 동생이 학원 끝나는 시간이 되면 서둘러서 학원 앞으로 가 마중 나와야 했다.
동생의 지랄 맞은 성격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였다. 내가 가진 물건은 다 자기도 가져야 하고, 정작 자기 물건은 빌려주지도 않음. 시x
그 성격은 그대~로 고3인 지금까지 이어졌고, 난 저 년이 왜 아직도 학교에서 왕따를 안 당하는지도 친구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저 성격에 남자친구라니. 난 처음 사귄 남자친구한테 차였는데 ㅋ... 윤기야 잘 살고 있니?
휴학으로 인해 이번 가을 겨울은 백수로 지내야 한다.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미래를 위한 적금을 들어 놓자는 나름대로 멋진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동생 깨우느라 피곤함+내 신발을 굳이 신고 가겠다며 징징거림까지 받아주느라 매우 피곤하기 때문에 집에서 쉴 예정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아직 피곤한 몸을 위한 휴식으로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요란한 벨소리와 진동으로 있는 힘껏 11시임을 알리는 휴대폰을 당장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아직 약정 기간이 한참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눈꺼풀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니 그제서야 몸이 출출함을 느끼는지 민망할 정도로 꼬르륵 소리를 제법 크게 냈다.
마침 시리얼이 남아 있어 대충 아침밥을 챙겨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 볼만한 영화를 찾았다.
오랜만에 로맨스 영화를 보니 죽어 있던 연애세포가 다시 들끓었다.
나도 저랬는데, 나도 윤기랑 맛집도 찾아 다니고 놀이공원도 갔었지···, 등등의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전 남자친구 윤기와의 추억들로 괜시리 울적해졌다.
종종 친구들로부터 소식을 듣곤 하지만 헤어진 이후로는 얼굴도 마주친 적 없었다. 윤기가 하는 SNS라고는 카카오톡 뿐이었지만
프로필 사진이라던지 상태 메시지 같은 건 전혀 설정도 안 해놓던 윤기였다.
윤기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었고 처음으로 사귀게 된 남자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더 잘 해주고 싶었고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그러다 남들처럼 사소한 문제로 싸움이 잦았고 우린 서로 많이 지쳤었다.
연애가 서툴렀던 난 윤기와 만나면서 연애의 달콤함과 이별의 씁쓸함을 모두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의 남친
꽤나 늦은 시간에 집으로 가는 중이라는 문자를 보낸 민희가 걱정 돼서 고3 여동생의 언니로서 마중 나가기 위해 집 앞 편의점 쪽으로 향했다.
" 야!!! "
" 야? 너 지금 오빠한테 야라고 했냐? "
" 김민희? "
많이 듣던 목소리 꼭 우리집에 사는 돼지 목소리와 비슷함을 느끼곤 설마 하고 동생을 불렀더니
이게 무슨 일인 것인가. 쟤가 왜 민윤기랑 같이 있어?
" 뭐야 언니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
" 어 좀 위험하잖아···. "
" 아, 내가 전에 말했지? 남자친구 생겼다구. 언니보다 세 살 많아 "
" 친언니야? "
" 응! 안 믿겨? 내가 더 예쁘지~ "
민윤기랑 이런 곳에서, 이런 상황에, 상거지 같은 꼴로 마주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그나저나 두 달 전에 민희가 말했던 남자친구가 민윤기라니. 이게 말이 돼?
동생의 남자친구가 내 전 남자친구라니. 아니 무슨 개떡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어색한 침묵 속에서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윤기와 눈이 마주쳤고
계속 날 보고 있던 눈치였다. 하긴 자기도 어이 없겠지; 전 여친의 동생이 지금 여친이라니~ 아 헛 웃음 밖에 안 나오네.
" 민윤깁니다. "
" 김여주예요. "
" 언니 분 오셨으니까 갈 수 있지? 집 도착하면 연락해. 오빠 간다. "
" 고마워 오빠 사랑해!! "
" 가~ "
여전히 윤기는 무뚝뚝 했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잘생겼다. 아니, 더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고.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곤 터덜터덜 걸어가는 윤기의 뒷모습도 오랜만이라 그마저도 좋았다.
날도 추운데 옷 좀 두껍게 입고 다니지 저게 뭐야.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현관에 주저 앉았다. '왜저래 미친년'을 내뱉고 지 방으로 들어 가는 동생의 뒷통수를 노려봤다.
복 받은 기집애. 고3이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이야? 게다가 민윤기랑?
정신 차리고 씻은 후에 침대에 누워 다짐했다.
" 이제 진짜 잊을거야. 민윤기 나쁜놈. 누구는 자기 때문에 연애도 못하고 있는데···. "
동생이랑 잘 사귀면 된거지.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글을 남겼다. 어차피 동생이랑은 친구 안 맺어져 있고 윤기는 페이스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 없다.
김여주
얼굴 봐서 좋긴 좋네 ㅠ 으 이제 그만할래
좋아요 41개 댓글 11개
김태형 설마?
김여주 쉿ㅋㅋㅋ
강영희 난 언제볼거냐 보고파
김미영 여주 힘
김여주 강영희 난 언제든 ㅇㅋ 날 잡아~
김미영 ㅎㅏ트
내일 카페가서 공부하려고 알람까지 맞춰 놓은 후에 잘 준비를 끝마치고 휴대폰을 잠금해놓자마자 하나의 카카오톡 메시지 때문에 잠이 다 깼다.
민윤기
오랜만이네 오후 11:38
그러게
오후 11:40 카톡 아직 하는구나
민윤기
너가 하라고 다운 받아준 후로
잘 쓰고 있어 오후 11:41
민윤기가 카톡도 보내고 이게 무슨 일인지 싶었다. 뭐 민희가 내 동생인 줄 몰랐었고 휴학 했다는 얘기 들었다는 뭐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름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했다.
왠지 오늘은 유난히 더 지치고 외롭고 우울한 밤이다.
카페에서 공부하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했는데, 진짜 매우 당황스럽다.
민희가 카페에 들어와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와 같이 앉아도 돼냐고 물으면서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이미 앉았다. 그것도 민윤기랑 같이.
'오빠랑 같이 공부하려고 온거야' 하고 본인의 문제집을 꺼내는 민희가 얄미웠다. 너가 공부할 애냐? 먹을 거 처 먹으러 왔겠지.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내 할 일에 전념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지나자 졸다가 그제서야 10분만 자겠다고 엎드린 동생이 한심하다. 남자친구 앞에서 잘 한다.
한숨 쉬고 다시 공책에 필기하려는데 내가 들릴만한 소리로 웃는 민윤기였다.
" 왜 웃어? "
" 웃기잖아. 공부하겠다고 와놓고 엎드려서 자는 게. "
" 웃기기 보단 한심한데. "
내 말에 입꼬리를 더 올리며 웃는 민윤기였다. 살인 미소 제발 그만!
" 카페라떼 한···, "
" 아니요 그거 말고 핫초코 주세요. 휘핑크림 많이 좀 부탁드려요. "
언제 뒤따라 왔는지 내 옆 쪽으로 붙어서 핫초코를 주문하는 민윤기에 당황했다.
'커피 많이 먹으면 안 좋아.' , '휘핑 많이 올려진 핫초코 좋아하잖아. 아 취향 바뀌었나?' 하고 계산까지 본인이 하는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
내 취향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친절까지 베푸니까 어젯밤 다짐 했던 게 물거품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 마음 다 휘젓고, 너 뭐야. 짜증나.
" 오늘 핫초코 사줬으니까 다음에 보면 밥 사. "
" 너 왜 갑자기 연락하고, 잘해줘? 흔들리잖아. 하지마. "
" 흔들려? "
" 응. 잊으려고 했는데 너가 자꾸 이러면 흔들리니까 민희 앞에서나 뒤에서나 나한테 잘해주지마. "
" 민희 언니잖아. 잘 보여야지. "
민희 언니니까 잘 보여야 된다는 말이 너무 자존심 상하고 짜증나고 속상하고, 민윤기 나쁜놈. 망해라. 아니 망하진 말고, 씨. 몰라.
* * *
여러분 안녕하세요! 처음이라 낯설어서 뭐라 인사를 드려야 할까요,,,
'동생의 남친'이 첫 글이라 필명을 <동남>으로 지었어요. 귀엽지 않나요 ㅋㅋ
부끄럽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 글을 몇 분이 봐주실지는 몰라도 열심히 완결까지 노력할게요. 감기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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