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호수에서 건져올려지는 하얀 덩어리.
라면 면발 처럼 퉁퉁 불어 시퍼렇게 뜬 그 모양새에 비위가 약한 몇몇은 고개를 반쯤 돌리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위생 장갑을 착용한 감식반 한명이 조심스레 다가가 얼굴에 얼기설기 엉켜있는 검은 생머리를 걷어 올렸다.
"이 반장. 이번에도..."
이번에도 텅 빈 안구가 드러난 익사체를 보며 태일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움켜잡았다.
"빌어먹을..."
01.
"이름 김미란, 25살. P대학 디자인과 4학년 재학중. 사망 추정시간은 나흘전 새벽 3시 반. 사망 원인은 안구척출로 인한 쇼크사 입니다. 사흘 전에 실종신고가 들어왔고, 오늘 오전 0시. 아파트 순찰을 돌던 경비원에 의해 이 인공호수에 발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안구 척출 이후 이 호수에 버려진 것 같은데...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고, 이번에도 증거 한톨 남아있지 않습니다."
"주변인 조사는?"
"아, 네. 우선 가장 친한 친구인 이민서. 사건 당일날 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 하더라고요. 그날이 과회식 날이였는데, 술에 거하게 취한 김미란을 후배 한명과 함께 집 까지 데려다 줬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증언이니 확실합니다."
"그때가 몇시지?"
"새벽 1시경이라고 하는데요."
"...사망 추정시간은 3시반이라며? 피해자는 뭣하러 취한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간거지?"
"그게..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이민서가 김미란을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서 쉬고 있던 새벽 3시, 전화가 걸려왔다 하더라고요. 김미란이 고3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가 한명 있는데, 3개월 전에 헤어졌답니다. 꽤 크게 싸웠다는데 친구들도 이유는 모르더라고요. 쨌든 전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으니 지금 만나러 가겠다는 둥, 아직도 사랑한다는 둥. 평소에도 자주 하던 주정이랍니다. 그러려니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뭐. 다시는 못 볼 사람이 됬죠."
"전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더 조사해봐. 그리고 실제로 만났는지도."
네, 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박경을 뒤로하고 태일은 호수 근처로 다가갔다.
다섯번째 연쇄살인사건. 통칭 눈알 귀신 사건. 지금 세간의 핫이슈이자 9시 뉴스 같은 정규방송은 물론 이거와 케이블 방송까지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일종의 도시 괴담이 되어 이 근처의 일부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기자와 언론은 아직까지 실마리 하나 못 찾아낸 무능한 경찰을 마구잡이로 깍아내리고 있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쉴 새 없이 경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상부에서는 얼른 사건을 해결하라며 압력을 가해왔다.
'누군 해결 하고 싶지 않은 줄 알아?'
으드득. 태일의 이가 갈렸다. 얼마나 용의주도한 범인인지 매 사건 마다 증거한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매번 목격자 조차 나오지 않으니 문제였다.
하지만 만약 김미란이 전 남자친구와 만난 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가 나올지 몰랐다. 그것도 아니면 혹여 전 남자친구가 범인이라던가.
크게 싸우고 헤어졌다니 아예 불가능한 얘기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안구 척출은? 전 남자친구는 전의 피해자들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아아. 머리가 아프다.
어쩌다 이런 사이코패스 같은 사건을 맡아선...혀를 차며 호수 가까이로 다가간 태일의 눈에 반짝이는 뭔가가 보였다. 인공호수 주변에 깔려있는 잔디 안 속, 뭔가가 햇빛에 반사 되고 있었다. 태일은 조심스레 그것을 집어 올렸다. 핏물이 조금 튀어있지만 그것은 작은 피어싱 조각이였다. 하얀 큐빅에 백금으로 감싸져 있는.
태일은 주머니속에 있는 위생팩에 그것을 담아 감식반에게 준 뒤 경찰청으로 향했다. 우선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살 것 같았다.
*
"이 태일. 얌마 이반장! 일어나라."
"...음..."
"야! 야! 이 태일이! 일어나라고!"
"시끄러. 우지호."
한동안 잠복 근무라더니. 언제 온 것인지 꼬질꼬질한 차림의 지호가 태일이 자고 있는 쇼파의 끝에 걸터 앉아 그를 깨우고 있었다. 좀 씻어라, 이 거렁뱅이야. 하며 지호를 발로 걷어차며 일어난 태일은 다시 현장에 나갈 요량으로 겉옷을 걸쳐 입었다.
"나가게?"
"그래. 고맙다 깨워줘서."
"아니 뭘. 나 잘라고 깨운건데."
저런.개..아오...뻗쳐 오르는 화를 참으며 태일은 신발을 고쳐신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요기거리라도 사들고 가야지 싶어 지갑의 돈을 확인하는데, 쇼파에 자신 대신 몸을 눕힌 지호가 물어왔다.
"아직도 해결 기미가 안보이나 보지?"
"그러는 너는 해결했나보다? 마약 밀매범."
"오냐. 일주일 잠복의 인내끝에 드디어 잡았다, 이 몸이. 죽을 것같다. 아주!"
길다란 다리를 쭉 피며 지호가 기분 좋게 낄낄 거렸다. 하기사 지호가 속한 강력 1팀이 목숨 걸고 매달렸던 사건이니까. 자신도 얼른 이 사건을 해결 해야 두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텐데. 오늘 아침에 본 물에 퉁퉁 불은 시체가 갑자기 떠오른 태일은 속이 미슥거려지는 것을 느끼며 탁자에 놓인 물을 들이켰다. 아아. 한동안 악몽에 시달릴 지도.
"아마 우리 팀 너희랑 합류 할 것 같다, 태일아."
"뭐? 사건 하나에 두 팀이? 강력계 인원이 언제부터 그렇게 남아돌았냐."
"그만큼 빨리 처리하라는 거지."
인원이 많다고 빨리 해결되나 뭐. 마지막 한방울 물까지 탈탈 입 속에 털어 넣는 태일을 향해 지호가 비밀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뭐 위에서 다들 쉬쉬 하지만. 이번 눈알 귀신 피해자, 청장네 막내 조카라네."
넘쳐오르는 갈증에 다시 물을 따라 먹던 태일이 물을 역류 시켜 뿜어냈다. 물이 튀자, 에테테 더러운 이태일 하며 지호가 옷을 털어냈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김미란이 청장 조카라고?
"기자들 입은 어찌어찌 막았지만 원래 그런게 조금씩 세어나가기 마련이잖아? 나도 우연치 않게 들었다.
청장 조카가 피해자라면 우리 경찰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냐. 게다가 그 막내 조카를 청장님이 엄청나게 아끼셨다나봐.
슬픔에 잠기신 건 둘째 치고 엄청 나게 쪼아대나봐. 어제 과장님 이 얘기 하다 우시더라. 형사일 때려치고 싶다고."
허참. 묘한 기분에 태일은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
지호의 말대로 강력1팀과 태일의 반장을 맡고 있는 강력2팀이 합류해 사건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김미란이 청장의 조카라는 사실은 이미 경찰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는게 용하다, 용해.
이번 사건에도 마땅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발견 된 것이라곤 태일이 발견한 피어싱 뿐. 피어싱에 묻은 혈은 김미란의 것이 맞지만 그것이 주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감식반에게 건내 받은 피어싱을 안 쪽 자켓 주머니에 넣으며 태일이 박경에게 물었다.
"전 남자친구에 대해서 조사는 끝났어?"
"아, 네. 막 보고 하려했습니다."
박경이 수첩을 펴들자 저 쪽에서 현장을 둘러보던 지호가 다가와 태일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인다.
"우선 김미란의 전 남친으로 이름은 안재효. 나이는 25살. 김미란과 같은 대학을 다녔습니다만 3년전 군대에 갔다오면서 중퇴. 현재는 홍대 앞에 꽤 잘나가는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사건 당일 날 만난 것을 본인이 인정했고요. 하지만 사건에 대해서 안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원래 범인들은 다 자기는 몰랐다고 해."
지호가 태일의 어개 위에서 낄낄거린다. 그 머리통에 시원스레 딱밤 한대를 날린 태일은 박경에게 계속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리고 혹시나 싶어 전의 사건 피해자들과의 관계도 캐내봤는데, 전혀 관련이 없더라고요. 좀 수상한건 그날 일에 대해 설명하라니 좀 얼버무린다 해야하나? 그냥 만나서 말다툼을 했다. 이런식으로 답들이 명료하지 않았어요. "
"그 사람이 하는 카페가 어디라고?"
"홍대 근처에 보면 나무 집으로 된 곳이 있는데 'B'라고 여자들한테 꽤 유명하다 하더라고요."
"흠...알았다. 우지호 넌 여기 남아있어. 내가 카페에 갔다 올테니까."
아, 왜 나도 따라갈래! 하며 날 뛰는 우반장의 뒷덜미를 잡은 박경이 어서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주고 태일은 서둘러 B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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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게 원래 썼던 거에요., 더 이상한가.ㅠㅠ
답글하나가 생명이에염. 반응 없으면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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