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날개를 잃다 (Angel, Lose the wing)
w. 센티
모든것이 얼어붙은 그 새하얀 겨울이었다.
평소처럼 새빨간 목도리로 얼굴을 잔뜩 구겨넣은 소년이 보였다. 목도리 속에 숨겨진 새하얀 피부는 모든 이의 부러움을 샀으며, 연한 갈색을 보이는 눈동자와 머리카락은 사람을 이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입술은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늘 물어뜯어 촉촉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그의 위협적인 존재에 다가가지 못했으며,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그 소년’의 존재는 모두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그는 실내에 들어서자 얼굴을 반 정도 가렸던 목도리를 내려 무표정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발에 잔뜩 묻은 눈송이들을 보며 웃음을 짓더니 톡톡, 바닥에 눈을 털었다. 그제서야 만족하는 얼굴로 사람들이 가득한 실내에 자리를 잡아서 앞을 보았다.
예쁘다.
단지 그 단어로 머릿속이 가득 채워졌다. 그 만큼 아름다웠고 많은 시선이 그를 향해 꽂혔다. 불안했다. 그 중에서는 야한 농담을 하는 무리들과 주제거리를 찾은 듯 시끄럽게 수다 떠는 무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저 은근한 시선을 보내는 무리도 있었다.
마치 모두가 그를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 같았다. 그 생각까지 하자 화가 났다. 나의 아름다운 꽃을 향해 떠드는 것들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에 무언가 허탈한 느낌이었다. 나의 꽃은 늘 한결같았으며 시선에 연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관계는 지독하게 싫어했다. 아무도 모르게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보고 있었는지 이상한 눈길이 느껴졌다.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나는 그 소년을 닮아가나 보다.
사람들의 시선에 잔뜩 예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를 보면 시선에 연연하지 않았다. 감히 그 아름다운 생명체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 만큼 아름다웠으며 위험했다.
지루한 인사가 끝이 나고 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물론 함께 있었다. 요란스러운 강당에 어느순간 둘만 있다는걸 알아차렸을 때는 아름다운 나의 꽃이 다가왔을 때, 늦었다. 벅찬 감정을 무시하고 무감각하게 그를 보는 척 했다.
안녕.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걸었다.
아름다운 나의 꽃,
그 소년의 이름은 「루한」이었다.
*
나 좋아해?
루한의 의미심장한 말 소리가 귓가에 자꾸 울리는 듯 했다. 여전히 그의 따스한 숨결은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유혹을 하듯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꾸만 곁을 돌았다. 대답을 하기 전까지는 보내주지 않을 속셈인듯 보였다.
만약 루한에게 부정의 답을 했을 경우, 그는 나에게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사라질거다. 루한에게 ‘집착’과 같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저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정해진 운명이자 타고난 운명이었다.
혹은 루한에게 긍정의 답을 했을 경우, 그저 자신을 좋아하는 한 아이로만 볼 것 같았다. 매우 평범한 축에 속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호기심 강한 눈에 결국은 진실을 말했다. 그는 모르겠지만 아주 예전부터 좋아했다는 것.
“응.”
그는 새하얀 손으로 기쁘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러자 주위를 도는 걸 멈추고 다시 작은 속삭임 조차 들릴 듯 보이는 거리에 다가왔다. 매끄러운 목덜미가 보였다.
우스운 상상이지만 뱀파이어라면, 루한의 목덜미를 바로 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쾌감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나 너 알아.”
“……”
“며칠전에 너 봤어.”
루한과 눈이 마주친 기억은 없었다. 그는 늘 무표정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앞만 지긋하게 봤기에,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날 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딱히 관심을 끌 행동을 한 것도 아니였다.
그가 날 봤었다.
어쩌면 그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대충 주위를 보다가 비슷한 사람을 봤을지도 모르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루한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신이 넘치는 표정이였으며, 몽롱한 눈동자는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앵두처럼 빛나는 입술을 자꾸만 물어뜯었다. 반짝이는 입술은 침으로 더욱 반짝였고 아름다웠다. 나의 꽃에서 나오는 꿀과 같았다. 달콤함.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축였다. 그러자 루한은 잠시 눈을 반짝이더니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었다.
“나 네가 좋은거 같아.”
루한의 고백. 그것은 생각보다 더 달콤하고 현실적이지 못했다. 인형과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새빨간 목도리와 백옥의 피부. 분홍색 리본만 있다면 착각이라도 할 만큼 루한이라는 존재는 비현실적이었다.
19살의 루한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루한, 새벽사슴이라는 뜻과 같이 그는 매혹적이었다. 감히 거절을 할 수 없다고 느껴질 만큼 위협적인 루한을 사랑했다.
“나도.”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에 움찔했지만 아마도 루한은 모를것이다. 그가 이렇게 고백한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았을 것이니 당연함에 익숙해져서 목소리의 떨림 따위는 감지하지 못할거다. 그런 생각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
그는 생각보다 위협적인 존재였다.
| 센티 |
프롤로그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사소한 오타나 어색한 문장의 경우, 댓글로 살짝 이야기 해주세요.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핑계고 영향력이 크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