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자죠," "아뇨,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잘자는데." 검지손가락으로 미간에 진 주름을 살살만져대다, 진료차트를 내려다 보더니 피식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지금 내 진료기록이 웃기다는 거잖아 저 태도. "8월달엔, 찾아오셔서 진료에 협조도 안하시고 무조건 수면제 달래서 처방해줬더니 지금 그거 다 드셨다고 와서 또 땡깡피우시는거잖아요, 내말 틀려요? 그약 지금 잘 듣지도 않죠? 수면제가 면역쌓이면 얼마나 무서운약인줄이나 알고 그러는거에요? 자다가 확 죽어버리려고?" 매섭게 쏟아부치는 의사의 말에, 괜히 손끝의 거스름만 만져대다, "처방하기 싫음 말던지, 여기말고 정신과 더럽게 많아요 그거 모르시나봐?" "환자분, 저 환자분한테 그말 13번째 듣고있는데 도데체 그 더럽게 많다는 정신과 안가시고 굳이 여길 찾아오시는 이유가..?" 앞에서 씩씩거리는 날 흘끔 쳐다보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곤 "환자분, 여기 엄연히 병원이고 정신적 질환고치는데 협조 안하실거면 그 많다는 정신과 가서 수면제나 처방 받으세요," 재수없는 말투가 귓바퀴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흰 가운에 이름마저 재수없는 의사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전 정국." "13번째 봐도 재수없는 이름이란말이야." 오늘은 글렀네, 진료실 문을 쾅- 소리나게 닫곤 병원을 나서면서 오늘밤도 잠자긴 글렀네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 잠이안와. 은은한 스탠드불빛에 비추는 보잘것없는 내 몸뚱아리를 끌어안고,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탈탈 손바닥위에 약병을 털어내면, 마법같이 작은 수면제 하나가 또륵 굴러 손바닥 가운데로 안착한다. 하나가지곤 어림도 없다, 이미 수면제에 면역이 쌓여버린 몸에 이무런 영향하나 끼치지 못한 수면제 한알을 입안에 넣곤 물도없이 넘겨낸다. 최악이다, 잠이 들 수 없는밤. - "정현숙씨 따님분, 병원측에서 환자 상태 위급하다고 밤새연락드렸는데 못들으셨습니까?" 그게, 그게요... 전 그냥....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들을 꾹꾹 눌러담으며 멍하게 손에 들린 사망진단서를 내려다 봤다. '어떻게 엄마가 저렇게 위독한데, 딸이란 여자가...쯧쯧' 눈물이 툭,툭 떨어져내려 봉투 위에 동그란 물자욱을 찍어나갔다. 나쁜 딸, 고작 잠잔다고 병원전화한통화 못받아서는 엄마가 가는길을 그렇게 외롭게 만들었니.. 그날이후부터, 그래 아마 그날 이후부터가 확실하지. 돌아오지도 않을 엄마를 기다리면서, 수면제 없인 잠한숨 못드는 날들이 시작되었던게, 잠결에 조그맣게 들리는 소리에도 혹시나 그날, 엄마가 외롭게 떠나던 순간 걸려온 전화가 아닐까, 신이 못난 나를 용서해, 그날로 돌아가게 허락해 준건 아닐까 하고 착각하는 날들이 반복되던게. -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다시 찾아간 정신과, 마악 점심시간이 시작되려던 참인지 왠일로 가운을 벗고 캐쥬얼한 복장을 차려입은 의사가 날 의아하다는듯 내려다 봤다. "다른 병원 수면제가 좀 별론가봐요?" 일부러 자존심을 건드리려 한 말의 의도를 알면서도 괜히 속이 뒤틀려서는, 죄없는 입술만 짓씹다 등을돌리려는데. "잠깐 휴전하고 밥이나 먹읍시다. 그쪽같은 환자 상대하려면 하루에 다섯끼는 먹어야되니까." - 얼마만에 먹어보는 제대로된 밥인지, 볼이 미어 터져라 입에 우겨넣곤 씹어대는데, 앞에서 나를 몇일 굶은 돼지보듯 구경하는 의사의 태도에 밥맛이 뚝 하곤 떨어졌다. "혹시 집이 순돌이네농장이에요?" "거기가 어딘데요." "저기 사거리쪽 가다보면 있거든요, 돼지농장." "새우젓 코로 드시고싶으신가봐요 ^^" "아니, 먹는게 참 예뻐서요." "뭐래." 신경쓰지 않는척, 입에 반찬을 우겨넣는 내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 "그래서 수면제 처방해달라구요?" "싫으면 말구요, 여기 병원말ㄱ...." "환자분 그 말씀 하시는거 14번 째인데," "...." "그러면 이렇게 하죠, 진료에 협조할때마다 딱 하루치씩. 면역쌓인거 감안해서 수면제 두알씩 드릴게요, 환자분은 매일와서 나한테 상담만 하면 되는데. 어때요 쉽죠." 무슨 밥 아저씨마냥 쉽죠? 하고 묻는 의사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재수가 없어서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야, 진짜 어려운 환자네. 뭐어떡해야 해, 응? 사탕이라도 물려가면서 해야하나," 팔짱을 끼곤 의자에 푸욱 기대앉은 의사가,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따르릉 인포에서 걸려온전화인지, 손을뻗어 차분히 전화를 받으려는 의사의 손에서 전화기를 앗아들어 "어, 엄마야?" 다짜고짜 소리치는 나였다, 아 젠장할. 수화기를 든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고 삽시간에 눈물이 왈칵왈칵 눈가에 고여오기 시작했다, 내 귀에 딱 달라붙은 수화기에선, "전선생님?, 전성생님!" 웅웅거리며 간호사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수면제를 처방해달라 허구언날 진료실로 쳐들어와 쌩떼를 쓰던 웬여자 한명이, 인포에서걸려온 진료실 전화를 앗아들곤 다짜고짜 엄마를 찾아대다니, 치부를 들킨 사춘기 애마냥 자존심이 상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발개진 눈가를 까슬한 니트소재의 소매로 훔쳐내다, 앞쪽의 흰가운 그 단단한 손에 의해 행위가 저지되었다. "나중에 그러다 눈 너덜거리겠네." "뭔상관이에요," 건네주는 손수건을 앗아들곤 눈가를 꾸욱꾸욱 찍어눌러 눈가를 훔쳐내자, "그렇게 창피하고 부끄럽습니까?" 정곡을 찔러오는 의사의 말에 몸이 거짓말처럼 딱 굳어졌다. "대게 환자들은 정신과에와서 자기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놔요, 막상 들어보면 결론은 그거야, 내가 이렇게 힘들고 아파요. 약은 괜찮으니까 내 이야기 들어줘요 보듬어줘요 관심가져주세요, 근데 그쪽은 아무것도 아니거든 지금. 관심 꺼주세요, 약이나 주세요 약이면 다 되요, 나한테 다가오지마요." "....." "왜그러는데, 뭐가그렇게 무서운데. 뭘그렇게 잘못했는데, 이대로 그냥 수면제나 주고, 면역쌓여서 몇십알먹고 죽던말던 내가 내버려 둘까요? 어? 그러려고 여기 병원와서 생떼 쓰면서 있는거야?" 대답할 시간도없이 몰아부치는 의사의 말에, 의자에서 힘없이 일어나 진료실 문을 나서려는데, 털썩- 어이없게 문 앞에서 무거운 눈커풀이 감겨버렸다. "전선생님, 오늘 예약환자 취ㅅ...." 진료실문앞에 쓰러지듯 잠든 여자를 안아다, 정국이 피곤할때마다 쪽잠을 자는 간이 침대위에 올려놓으려는데 순간 인포의 간호사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환자분 쓰러진거에요? 매일 잠도 못주무시는거 같던데," 걱정스런 표정이 얼굴에 그득한 간호사가 안색이 좋지않은 여자를 내려다보다 질문을 건넸다. "몸이 버티다 버티다 쓰러졌나봐, 예약환자 더이상 없으면 이만 퇴근해, 나가면서 진료실 불좀꺼주고." - 바깥의 풍경마저 어둑어둑해진 시간, 환자들의 진료차트를 불꺼진 진료실에서 미미한 스탠드 불빛으로 넘겨보던 정국이,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소리에 잠든여자가 누워있는 침대를 흘끗 쳐다본다, '더 자야할텐데,' 걱정스런 생각이 정국의 머릿속을 스친다. "저 왜 여기서...." "그쪽이 또 조개마냥 입다물고 나 속상하게 하더니, 갑자기 쓰러졌어요 그것봐, 못된 주인 만나면 몸이 고생이라니까," "저, 갈래요." "아까 내 질문에 대답안할꺼에요?" 침대에 걸터앉은 내 시선을 맞추려, 간이침대앞에 쪼그려앉은 의사의 시선을 피하며 주섬주섬 옷 매무새를 고쳐댔다. "다른거, 무리하게 물어보진 않을게요, 그냥 여기 내 진료실 와서 더도말고 덜도말고 다른 환자들처럼만. 나 아파요, 힘들어요 그렇게만 이야기해요. 많은거 안바래." 희미한 스탠드 불빛아래, 이목구비가 잘 비추지 않는 남자가 목소리만으로 내게 속삭인다, 아파요 힘들어요, 몇년을 속에만 꾹꾹 눌러담은 말들을 이야기 해달라고, 그렇게 따듯하게 속삭인다. "선생님...." "네 환자분." "나...끄윽......끕..... 아파요...." "알아요." "나.... 으으.... 외, 흐으윽....외로워요...." "잘했어요, 잘하면서." 눈물이 범벅이된 내 얼굴에, 엄지손으로 살살 눈물을 훔쳐내주는 따듯한 손길에 터져나온 눈물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평생 눈물을 흘린다면, 계속해서 이 따듯한 손이 제 눈물을 훔쳐내주지 않을까 바보같은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아프고 외로운건 고칠 수 있는 병이에요, 환자들은 자기가 아프고 외롭다는걸 깨닫기까지가 제일 힘든거야, 그걸, 지금 당신이 해낸거에요." 이미 내 눈물로 축축해져버린 당신의 그 따듯한 손이, 마악 자신의 상처를 깨달은 세상 가장 나약한 존재를 끌어안는다, 잠이오지 않는 밤, 혼자서 끝없이 외쳐온 그 처절한 몸부림 또한, 따듯한 손 안에 조용히 구원받는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방탄소년단/전정국] 정신과 의사 전정국 X 자존심 쎈 환자 너탄 15
9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신민아 의리미친게 본인 결혼식을 홍보중인 루이비통 쥬얼리 끼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