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어? 종인ㅇ.."
퍽-
3교시 수업이 끝나기까지 약 5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다음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생들 사이로
둔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 아직 강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강의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수는
멀찍이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남들보다 우월한 길다란 인영하나를 발견했고, 그 인영은 곧장 경수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더니
이내 미소를 띠우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경수의 얼굴을 주먹에 강한 힘을 실어 내리쳤다.
미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뜸 뺨부터 얻어맞은 경수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뒹굴었고, 주변에선 간간히 여학생들의
비명소리라던가 자기들끼리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문도 모른 채 무방비 상태에서 뺨부터 맞아 볼따귀가 얼얼한 경수가 한 손으로 자신의 볼을 감싸쥐고, 옆에 있던 백현이 경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야 이 김종인 미친새끼야- 너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변백현 넌 닥치고 빠져"
"하- 뭐? 이 새끼가 돌았나 진짜-"
다짜고짜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나선 경수의 얼굴부터 내리친 종인을 보고 기가 찬 백현이 경수의 어깨를 감싸쥐며 종인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종인은 그런 백현보고 넌 끼어들지 말라는 듯 무시하는 어투로 말한다.
이에 백현이 화가 난 듯 종인의 멱살이라도 잡으려는데, 경수가 뺨을 감싸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조용히 백현의 손을 내리누른다.
이건 그냥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 소리다.
백현이 경수의 손짓에 종인을 노려보며 으르렁대기만 할 뿐 잠잠해지자,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듯한 경수가 종인을 바라보며 묻는다.
"왜그래...? 무슨 일인데 이래"
"도경수 너 이 더러운 새끼..."
"뭐...?"
"너- 잠깐 나 좀 봐-"
침착한 경수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다짜고짜 경수에게 주먹을 내리 꽂았던 종인은, 또 마찬가지로 영문을 알 수 없게
다짜고짜 경수에게 욕을 퍼부으며 치솟는 화를 삭혔다.
여전히 자신이 왜 종인에게 한 대 시원하게 뺨을 얻어맞았는지 알 수 없는 경수가, 종인의 욕짓거리에 뭐? 하며 자신이 잘못들었나 싶어
해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종인을 쳐다봤지만, 돌아오는건 종인이 차게 식은 눈동자로 갑자기 나타났을 때 처럼 경수의 손목을
잡고 급하게 어디가로 끌고가는 것 뿐이었다.
종인의 악력으로 인해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경수를 멍하니 바라만보던 백현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경수를 부르려 했지만
둘의 뒷모습은 이미 점의 크기만큼 작게 보였고, 곧 그마저도 백현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Subtle relations(미묘한 관계)
종인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어딘가로 질질 끌려가던 경수가 손목의 통증을 호소하자 종인이 곧 목적지에 도착한 듯 경수의 손목을
마치 불결한 것을 만졌다는 듯한 손놀림으로 미련없이 쳐냈다.
경수가 손목을 주무르며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보이는 각종 실험도구들과 인체해부도, 동물들의 사체를 해부해놓은
병들이 즐비해있는, 한마디로 말해서 인적이 드문 자대의 텅 빈 실험실 안이었다.
자신을 왜 이 곳으로 데려왔는지 모르는 경수가 종인을 쳐다보는데, 종인이 다시 문 쪽으로 향하며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실험실의 문을 잠궈버린다.
"저... 종인아- 나 다음 시간에 수업있는데..."
"씨발 너- 아가리 닥치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응..?"
우물쭈물 종인에게 수업이 있다고 말하는 경수를 무시하며 종인이 또 욕을 내뱉는다.
종인이 다짜고짜 자신에게 주먹을 날리며 욕을 하고 다음시간 수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끌고와서 막무가내로 대해도
화를 내기는 커녕 그저 종인이 왜 이렇게 화가 나있나 걱정만 되는 경수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경수도 주먹이 나가진 않았더라도 적어도 한마디 쏘아붙여줬을테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경수가 종인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 누구한테 불었어?"
"응..? 뭘..?"
"누구한테 그딴 더러운 소릴 지껄였냐고!!"
"무슨 말이야 그게..? 알아듣게 설명해!"
"씨발... 그날 밤 일 말야!!"
"그날...밤...?"
"그래!! 젠장- 너랑 나랑 섹스한거!!!"
종인이 말을 내뱉곤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경수 또한 흔들리는 눈동자로 종인을 주시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날 밤은 또 무슨 소리?
우선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에 앞서 말하자면, 경수는 평소에 종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니까, 친구를 대하는 감정 말고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으로.
딱히 말하자면 경수와 종인이 친구따위의 관계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경수와 종인은 단지 같은 과에 몸담고 있는 '과동기'일 뿐이었고, 둘의 접점이라곤 경수의 친구들과 종인의 친구들,
그러니까 둘의 친구가 같다는 것에 있었다.
한마디로, 둘이 어울려노는 친구들이 같은 무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모임을 갖거나 수업을 들을 때에도 항상 얼굴을 보고 같이 행동하곤 했지만, 결코 둘이 친한 것은 아니었다.
말그대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막상 둘은 다른 친구들처럼 친하게 어울릴 수 없는 어색한 사이.
둘의 관계는 딱, 그 정도였다.
물론 이 것도 종인 혼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경수는 종인을 정말 좋아했다. 남몰래 좋아한게 아니라 남들에게 다 티가 날 정도로.
둘의 친구들이 알고 종인 당사자도 알만큼이나.
처음에 종인은 그런 경수가 불편했다. 딱히 경수가 종인을 귀찮게 한다거나 짜증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경수가 종인을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절대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았다.
미팅을 나간 종인 대신 자신의 수업을 빼먹고 대출을 해준다거나, 밤새 술마시고 노느라 떡이 된 종인의 레포트를 대신 써준다거나,
시험 때 종인에게 컨닝페이퍼를 만들어준다거나 하는 일은 모두 경수의 몫이였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종인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경수의 호의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고 이제는 자잘한 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경수를 부려먹기 시작했다.
워낙 조용하고 착한 성격의 경수인지라 경수가 게이는 아니지만 같은 남자인 종인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도 경수를 욕하거나
흉보기는 커녕 오히려 경수를 응원해준다거나, 경수를 마구 부려먹는 종인을 만류하며 핀잔을 놓기도 했다.
그래도 경수는 그런 종인의 태도에 불만 한 번 품지 않고 오히려 종인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며 수줍은 미소를 띠곤했다.
그런데 왜 지금 이렇게 종인이 경수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느냐고?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둘은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은 채로. 다같이 좋은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평소와 다름 없는 그런 날이었다.
종인도 늘 그렇듯 술이 떡이 되도록 들이붓고. 딱 한가지 다른 게 있었다면,
"어? 경수가 네가 웬 일이냐? 평소엔 입에 잘 대지도 않던 술을 다 마시고?"
"야 야!! 그만 마셔!! 너 무슨 일 있냐? 오늘따라 왜이래?"
"취하겠다 이자식아!! 속버려!! 착하지 우리 경수~ 이만 마시자 응?"
바로 평소엔 술을 마시더라도 적당히 조금만 마시다가 잔을 내려놓던 경수가 웬 일로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위장으로 알콜을 집어넣었다는 것이었다.
경수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잔이 비는 족족 술 잔을 채워주던 친구들이 경수를 걱정을 하며
그만 마시라고 했지만 경수는 듣는 둥 마는 둥 계속해서 술을 들이켰고, 이내 술버릇을 뽐내는 대신 조용한 성격대로 테이블 위에
머리통을 박으며 픽-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경수가 인사불성이 되던 말던 별 상관없이 쭉쭉 술을 들이키던 종인도 곧 취기가 올랐지만 다른 친구들보다는 그나마 멀쩡한 정신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주변에 널부러져있던 친구들이 종인을 잡으며 그나마 멀쩡한 네가 경수를 데려다줘라
하는 소리에 온 몸으로 거부하던 종인을 얌전한 양 한마리로 바꿔놓은 것은,
"술 값 면제"
하는 친구들의 구세주같은 목소리였다.
덕분에 돈의 노예인 종인은 마르긴 했지만 그래도 남자라고 꽤나 무게가 나가 결코 깃털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경수를 어깨에 짊어지고
술집을 나섰다. 당연한 수순대로 경수를 택시에 태워 보내려했건만, 어머 이런 젠장. 집주소를 모르네?
한차례 구성진 욕짓거리를 내뱉은 종인이 경수의 양 뺨을 결코 상냥하지만은 않은 손길로 터치하며 경수의 정신을 들게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이미 잠의 나락으로 빠져버린 경수로 인해 종인은 다시 경수를 질질 끌고 술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술집으로 향한 종인이 친구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했건만, 이미 모두 뻗어버린통에 까딱 잘못했다간 다른 친구들까지 자신이
떠맡을까봐 두려워진 종인이 슬그머니 발걸음을 돌려 술집을 나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종인은, 경수의 집도 모르고, 그렇다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기엔 뭔가 꺼림직스러워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눈에 띄는 호텔로 경수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냥 짧게 그리 길지 않은 연재형식으로 짧으면 다섯편에서 열편 사이에 끝날 것 같습니다.
보시고 피드백 좀 해주세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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