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저요..?"
"왜 자꾸 따라와요?"
"...네?"
"따라오지 마세요"
경수가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남자를 향해 새침하게 말을 하곤 다시 뒤돌아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선 남자만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어보였을 뿐이다.
"우리 집도 저쪽 방향인데..."
* * *
백현은 자신이 기억하기론 약 한 달 전부터 뭔가가 자신의 뒤를 따라붙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귀신처럼 서늘하다던가 변태같은 끈적거리는 종류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계속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시선은 주로 백현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급식을 받을 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상대가 제 또래의
학생이라는 것을 짐작케했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도 아니고 근처엔 여학교도 없는데...' 하고 생각한 백현은
곧 아무렴 어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눈 앞의 급식메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도 역시나 평소와 마찬가지로 보충수업을 마친 백현이 홀로 교정을 나섰다.
고3이지만 미술 특기생인 백현은 다른 학생들처럼 야자를 하지 않고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질 무렵인 저녁쯤엔
늘 혼자 학교를 빠져나왔다. 석식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라 그런지 운동장엔 사람은 커녕 개미 한마리조차 보이지않는다.
교문을 빠져나와 비탈길을 걸어내려가던 백현이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간간히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미술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끈질기게 따라붙는듯한 느낌에 백현이 MP3의 볼륨을 낮추고 귀를 기울이자
자박자박하며 조심스레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냥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혹시나 요즈음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던 정체모를 사람일까 궁금해진 백현이 천천히
발걸음 속도를 늦췄다. 여차하면 확 뒤돌아서 확인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아직 마음에 확신이 가는 것은 아니라서 조금 더 참기로 했다.
어느덧 미술학원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백현이 보폭을 빠르게 하면 똑같이 빨라지고, 속도를 천천히 하면 역시나 느려지는 그 사람은
꽤 긴 시간동안 백현을 따라오는 듯 했기에 백현은 이 사람이 지금껏 자신을 지켜본 사람이라고 확정지었다.
그래서 그 순간 백현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 사람을 향해 뒤돌아섰다.
갑작스레 자신을 향해 돌아선 백현의 행동에 놀란 모양인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채 백현을 쳐다본다.
"헙"
급히 숨을 들이마신 그 사람은 백현의 짐작대로 남자였다. 백현과 똑같은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백현이 좀 더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려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는데 그 시선을 알아챈 것인지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다.
"저기요"
"ㅈ..저요...?"
"그럼 여기 그 쪽 말고 누가 있어요"
백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 남자가 백현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다시 고개를 푹 수그렸다.
마치 꼭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그 모습에 백현이 살풋 웃음을 흘린다.
"왜 자꾸 따라와요?"
"ㄴ..네..?"
"그쪽이 아까부터 계속 저 따라오고 있잖아요"
"ㅈ...제가 언제요..."
"지금요"
"따..따라온거 아니거든요!!"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선 더듬거리며 소리친 남자가 도망치듯 백현을 지나쳐 허둥지둥 앞서나간다.
그저 그 자세 그대로 멈춰서서 고개만 돌려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가 익숙한 상황인데...
기억해내려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백현이 드디어 알아차렸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아! 그 때 그...!!"
몇 달 전 길을 가던 중에 갑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서며 당돌하게 말하고 사라진 남자가 떠올랐다.
그 땐 그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던 백현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의 그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똑바로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백현은 그 때의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을 지나쳐간 남자와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도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학교라는 사실은 알았으니 운이 좋으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현은 크게 마음쓰지 않기로 했다.
* * *
오늘도 어김없이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친구들과 함께 급식실 앞에서 줄을 서고 있던 백현은 저 멀리서 힐끔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자그마한 머리통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그것도 티나게 고개를 돌려 학생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는 모습에
백현이 배가 고픈 것도 잊고 소리내어 웃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귀여운 그의 행동에 백현은 그 아이를 좀 더 알고싶어졌다.
"뭐야? 갑자기 왜 웃냐? 배고파서 실성했냐?"
"방금 엄청나게 귀여운 생물체를 발견했거든"
"여자냐?"
"남학교에 여자가 어딨어"
백현의 대답에 김샜다는 듯 궁시렁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친구를 무시하고 백현은 계속해서 깎아놓은 밤톨만큼 가지런한 정수리가
있던 곳을 주시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머리통에 아쉬움의 한숨을 흘린 백현이 시선을 뗀 채 급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는데에 집중했다.
백현이 자신을 주시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한동안 아이는 백현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물론 그런다고 모를 백현이 아니었지만. 본인은 잘 숨어다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백현이 알아차리고 관심을 가진 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니 이젠 어딜가나 아이의 모습이 백현의 눈에 띄고 마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가 백현을 몰래 훔쳐봤던 것처럼 백현이 아이의 동선을 따라 눈을 맞추고 있었다.
급식실에서 보이는 하얀 얼굴에 바가지 머리라던가 창가자리에서 가끔 눈을 돌리면 마침 체육시간이었는지 운동장을 뛰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아이 딴에는 조심한다고 행동했는지 처음 마주친 날 이후로 5일 정도는 백현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슬슬 백현이 자신을
잊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혼자 나름의 결정을 내린 듯한 아이는 눈치없이 오늘도 백현의 하교길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이젠 일상처럼 아이를 주시하게 된 백현이 그 사실을 모를리 없고 말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귀에 이어폰을 꼽고 콧노래를 부르던 백현은 그 날과 마찬가지로 쫄래쫄래 티가나게 자신을 미행(?)하는 아이의
발소리를 들으며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둔한건지 순진한건지 모를 아이는 끈질기게도 백현의 뒤를 쫓는다.
피식하고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낀 백현이 이 때다 싶어 자신을 따라오는 아이를 향해 뒤돌아섰다.
"애기야"
"저...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저 애기 아닌데요..."
"알아 애기야"
아이가 도망가지 못하게 바짝 앞으로 다가온 백현이 아이의 앞에 멈춰섰다.
자신보다 조금 작은 키의 아이가 양 손에 가방끈을 꼬옥 말아쥐고 시선은 땅바닥에 꽂아둔 채 미동도 없다.
"얼굴 좀 들어볼래?"
"ㅇ...왜요..."
"궁금한게 있어서 좀 물어보려구"
"저... 아세요?"
백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니 아이가 슬쩍 눈을 들어 백현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무의식적으로 손을 든 백현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학년 5반 도경수. 맞지?"
어느새 아이의 신상까지 알아낸 것인지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백현에 경수가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너 왜 자꾸 나 따라다녀?"
"제가 언제요..."
"학교에서도 그렇고 끝나고 나 따라오는 것도 그렇고. 야자안해?"
"학원... 다니는데요..."
"무슨 학원?"
"저어기 보이는 실용음악학원이요..."
경수가 손을 들어 방향을 가르킨다.
슬쩍 고개를 돌려 경수가 가르킨 방향을 쳐다본 백현이 다시 고개를 돌려 경수에게 묻는다.
"나한테 관심있니?"
"ㄴ...네에??!!"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그냥 그렇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걸"
능청스럽게 말하는 백현에 정곡을 찔린 듯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가 된 경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도무지 들 생각을 안한다.
인내심있게 경수의 대답을 기다리던 백현이 보다못해 손을 뻗어 경수의 양 볼을 잡아올렸다.
찹쌀떡같이 말랑말랑하고 하얀 볼이 백현의 손에 보들보들하게 착 감긴다.
"이 형아가 마음에 들어?"
"......"
"흠... 형 이름이 뭔지는 알아?"
"...변백현"
"그래. 형은 3학년 5반 변백현이야. 가끔 놀러오면 맛있는 거 사줄게 애기야"
"...근데요"
"응?"
"저, 애기 아닌데요..."
"나보다 키 작잖아"
경수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리자 백현이 피식 웃으며 경수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꾹꾹 누른다.
"그럼, 형보다 키 더 커지면 그 때 이름 불러줄게"
"... 그럼 그 때 까지 계속 애기라고 부르실거예요?"
"걱정마. 애들 앞에서는 똑바로 이름 불러줄테니까"
"헤헤..."
"좋아?"
"네... 근데요, 있잖아요..."
또다시 수줍모드에 들어간 경수가 양 손을 꼼질거리며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길래 백현이 걱정말고 물어보라는 듯 어깨를 토닥인다.
"선배 예대 가실거예요...?"
"음... 미대 지원할 생각인데..."
"아... 그러시구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풀이죽은 경수가 마음 속으로 '나도 미술학원 다니겠다고 졸라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략 경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는 듯 백현이 경수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구부리고 말한다.
"형이 예대가면 경수가 따라올래?"
"네...?"
"실용음악학원 다닌다면서. 예대갈거 아니야?"
"네, 네!!"
"형이랑 같은 대학 다니고 싶어?"
백현의 물음에 두 볼을 붉게 물들인 경수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결국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 백현이 배를 잡고 웃는다.
"아 진짜...큭큭... 너 되게 귀엽다"
경수의 머리를 흐트리며 웃던 백현이 멀뚱히 서있는 경수의 어깨를 잡아채고 걷기 시작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끌려가는 경수만이 어리둥절해하며 흘깃흘깃 백현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
"학원 늦겠다"
* * *
백현의 자취방에서 백현의 팔을 베고 누운 채 TV채널을 돌리는 경수의 볼에 백현이 기습뽀뽀를 시도한다.
"아, 뭐야!!"
"왜. 이 오빠가 맘에 안들어?"
"형 진짜 변했어"
닭살돋는다는 듯 양 팔을 부빈 경수가 백현의 품에서 떨어져나왔다.
그런 경수의 행동에 백현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경수에게 따지듯 말한다.
"나 좋다고 그렇게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헐... 먼저 꼬신건 형이거든"
"도경수 많이 컸네"
"그래. 나도 이제 키 컸으니까 애기라고 그만 불러!"
"키만 크면 뭐하냐. 하는 짓이 애긴데"
"이씨... 거짓말쟁이"
"내가 뭘. 나보다 키 크면 애기라고 안부른다고 했지, 그냥 단순히 키만 크면 애기라고 안부른단 소리는 안했어"
얄밉게 대답한 백현이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놓여진 하다 만 스케치를 집어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경수의 옆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는다.
"근데 너 그거 아냐?"
"뭐"
"네가 나 따라다니기 전에 길에서 나한테 갑자기 '따라오지 마세요!'이러고 가버린거"
"뭐? 내가 언제?"
"너 그 때 그랬다니까? 난 우리 집 가고 있는데 니가 엄청 새침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더니 나한테 그러는거야,
왜 자꾸 따라와요? 따라오지 마세요. 이러고. 나 완전 어이없었음"
"... 그게 형이었어?"
"어. 겨울이라 목도리 두르고 있어서 니가 기억 못하나보다. 하긴 알았으면 나 따라다니기 전에 진작 알아차렸겠지만서도"
"어우... 쪽팔려..."
"괜찮아. 나중에 너인거 알고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그 날의 일이 떠오른 듯 경수가 창피함에 얼굴도 못들고 고개를 바닥에 쳐박고 있는데 백현이 사람좋게 껄껄 웃으며 경수의 등을 토닥인다.
"다음에 또 한 번 그래봐? 가고 있는데, 따라오지 마세요!! 하고. 큭큭"
"이씨!!!"
경수가 백현의 손에 들려있던 연필을 뺏어들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백현을 흘겨본다.
"야, 야!! 장난이야!! 잘못했어!!"
"이리 안와!!!"
작은 방 안에 TV소리와 함께 두 남자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인적으로 풋풋한 학원물 갱장히 좋아해요...[]
특히 요런 귀여운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미소...ㅠㅠㅠㅠ
매일 도시락 싸서 손에 들려보내고 싶어요 마구마구 키우고 싶은 욕구 수직상승
그치만 내가 쓰면 풋풋함도 없고 그냥 언어 쓰레기만 나뒹구는 삭막한 벌판...........(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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