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햇빛이 나른한 내 얼굴을 비춘다. ".........." 옆에 있어야 할 손이 잡히지 않는다.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찾게된다. 니가 보고싶다, 많이. * 12월 1일 * "엄마, 이게 뭐예요?" "오늘 꽃집 지나가다가 앞에 이게 놓여있는데 너무 예뻐서 사왔어. 선물이야." 오늘 일이 있어서 집에 좀 늦게 들어왔더니 엄마가 계셨다. 연락도 없이 오셔서... 집 청소 좀 해둘걸 그랬나. "연락 하고 오시지.. 고마워요, 엄마. 잘 키울게요. 너무 예쁘다." "금방 갈건데 뭐.. 나무 예쁘지? 잘 키우고. 엄만 먼저 가볼게."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번에 내 생일을 못 챙겨 주셨던게 마음에 걸리셨었나보다. 값이 꽤 나가보이는 나무를 사오셨으니. 집 거실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는 내 시선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나무는 꽤 오래된 낡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못 잊을 그리움에 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나무에게 다가갔다. 곧게 잘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손을 얹자, 기어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너도 곧게 잘 뻗었는데... 손하며 코하며. 자꾸 손을 가져다대게 만들었는데. "날카롭게 뻗은 것도...." 그리고 끝은 뭉툭한 것도. 너 잖아. "온통... 너 투성이야." 너와 함께했던 추억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 12월 2일 * 어제 너무 울어서 탈진하는 바람에 온 몸에 힘이 없다. 머리도 아프고 병 난 사람 마냥 몸이 축축 늘어진다. "으... 머리야.." 배는 고픈데 일어날 힘도 없고..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오빠나 부를까. '뚜르르- 뚜르르-' - 여보세요. "오빠." - 어, 동생. 오랜만. "응. 오랜만. 오빠, 지금 안바쁘지?" - 응. 근데 너 목소리가 왜그래? 어디 아파? "응. 나 아파. 빨리 와서 간호 좀 해줘." - 왠일로 어리광이래. 기다려 집 앞이야. 끊긴 전화 위로 보여지는 핸드폰 바탕화면. ".........." 그걸 보고 있자니 작년 이맘때로 돌아간 거 같아서 다시금 시큼해지는 콧등에 홀드 키를 눌러 화면을 꺼버렸다. '철컥' "내 동생, 오빠왔다." 정말로 집 앞이였는지 바로 도착한 오빠. "어.. 오빠 비밀번호 어떻게 알았어..?" 비밀번호 알려준 적 없었는데... "너 예전에 술먹고 널브러진거 오빠가 데려왔었는데. 기억안나? 너 잠들어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봤었어." "아... 맞다." "좀 누워있어. 죽 만들어 줄 테니까." "응. 고마워." 내 머리를 쓰다듬던 오빠는 죽 만들러 주방으로 갔고,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잠들지 않도록 버티기 시작했다. 잠들면 또 다시 너를 보게 될까봐. 그리고, 행복했던 과거가 현실의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테니. * 김민석 시점 * 오랜만에 본 동생은... 아파보였다. 아직도 잊지못한 듯 비밀번호도 그대로였고, 무엇보다 많이 수척해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좀 누워있어. 죽 만들어 줄 테니까." "응. 고마워." 어제 심하게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을 한 동생이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동생의 방을 나왔다. 거실로 나오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나무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어제 왜 저렇게 울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온통.. 그 녀석 투성이야." . . . '보글보글' "다 됐다."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만든 야채죽을 그릇에 담아 동생의 방으로 향했다. "ㅇㅇ아, 죽 먹자." 방문을 열고 죽 먹자며 불렀지만 대답이 없는 ㅇㅇ이. 그새 잠들었나? "ㅇㅇ아. 자?" 동생 침대로 다가가자 들려오는건 편안한 숨소리가 아니라 서럽게 울고있는 동생의 흐느낌 이었다. "...내 동생, 뭐 때문에 그렇게 서럽게 울어. 오빠 마음 아프게." 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우는 ㅇㅇ이를 품에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흐..흐으..." "괜찮아. 다 괜찮아." "흐으으... 오빠..." * ㅇㅇㅇ 시점 * 꿈을 꿨다. "ㅇㅇ아." 꿈 속에는 너와 나, 둘 뿐이었다. "응?" "우리 오늘은 밖에 나갈까?" 아니. 그러면 안돼잖아, 너랑 나.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너 때문에 착각 할 뻔 했다. 헤어졌잖아, 우리. 이러면 안됀다고 말을 해야하는데 내 입에선 정 반대의 말이 튀어나왔다. "응. 그럴까?" 내 말에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너. 너를 따라 몇 발자국 움직이니 우리 앞에는 또 다른 너와 내가 있었다. "우리 앞에..." "응. 우리야.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또 다른 우리를 가리키자 너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우리라고 말해준다. 또 다른 우리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또 다른 우리는 너와 나의 첫 만남을 보여줬다. ( * 첫 만남 ) '어서오세요~' '이 사진을 누가 찍은건데 자꾸 못찍었대.' '못 찍은건 아닌데 별로라고.' '그게 그거지!!' '엄연히 다르거든? 그리고 그림은 내가 그리는데 계속 그 사진만 강요할거야?' '아 왜! 이게 뭐가 어때서? 잘만 찍혔구만.' '아 몰라. 다른 사진으로 할래. 다른거 보여줘.' '내 사진 거부한 건 니가 처음이야. 오빠 상처받음.' '.......' '..알았어. 안할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개요.' 내가 조용히 주먹을 쥐어 올리자 금새 시무룩해진 오빠는 커피를 주문하고 어제 찍은 다른 사진들을 보여줬다. '잘 나온건... 여기 이렇게.. 다섯개.' '음... 이것도 좋고... 저건 별론데....어..! 이거 맘에든다.' '세번째꺼? 아 맞아. 그것도 괜찮지.' '응. 나 이걸로 할래.' '그래. 그럼.... 어.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 오빠가 잠깐 전화 받으러 나간 사이 주문했던 커피가 나왔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는 알바생의 손을 보니 여자인 내 손보다 더 예뻤다. 이 손의 주인은 어떻게 생겼을까 싶어서 고개를 들어 알바생을 쳐다보니 알바생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추졌다. '손도 예쁜데.. 얼굴은 되게 귀엽게 생겼다.' '네? 저요?' 내 말에 놀란 알바생은 자기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네. 강아지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하하.' 성격이 돌려서 말하는걸 답답해해서 직설적으로 칭찬하니 알바생이 당황했는지 귀가 빨개진다. 아. 오빠가 이렇게 말하는거 고치라고 했는데. 사람들 당황한다고. 내가 미안함의 의미로 알바생에게 웃어보이자 머뭇거리던 알바생은, '저기... 혹시 아까 같이 계셨던 남자분.. 남자친구예요?' '네?....네.' 처음엔 왜 물어보나 싶었는데 알바생의 표정을 보니 알 것 같아 일부러 남자친구라고 대답했다. 내 말에 시무룩해지는 알바생. 눈꼬리가 축 쳐진게 꼭 강아지같다. '...아...' '..장난이예요. 남자친구 아니고 친오빠예요. 우리 닮았단 소리 꽤 많이 듣는데...' '어.. 좀 닮았는데 남매인 것 같기도 하고 연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라....' 긴장되는지 횡설수설 하던 알바생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내 눈을 바라보며, '그 쪽, 마음에 든다구요.' 당당하게 말했다. '번호 좀 주세요.' '네?.....어....' 사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한 적이 없어서 내가 더 당황해버렸다. 좀 돌려서 말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당황하는지 알 것 같네.. 전화를 끝냈는지 이쪽으로 오는 오빠를 쳐다보니 알바생은 내가 오빠때문에 번호 주는 걸 망설인다고 생각했는지, '그럼 이따가 가시기전에 저 괜찮다 싶으시면 잠깐 카운터로 와주세요.' 라고 말하곤 카운터로 돌아갔다. '커피나왔네. 동생, 오빠 급한 일 생겨서 가봐야 하는데. 넌 여기 있을래?' '음.. 아니. 나도 집에 갈래.' '그래, 그럼. 집까지 태워다줄게.' '응. 차 시동 걸어놔. 내가 계산하고 갈게.' 오빠가 차 가지러 나가고 나는 간만에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카운터로 향했다. '어.. 벌써 가시려구요?' '네. 카드로 계산할게요.' '6000원이예요. 여기 싸인해주세요.' 지갑에 현금으로 만원이 있었지만 일부러 카드를 꺼내 계산했다. - 010.xxxx.xxxx. ㅇㅇㅇ. 연락주세요.- 알바생은 내게 영수증을 건네며 활짝 웃어 보였다. 나도 마주 웃어보이고 카페를 나왔다. 간만에, 정말 설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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