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세계.00
타는 듯한 갈증에 몸을 일으켰다.얼마나 잔건지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냉수를 한 잔 마시니
정신이 조금 깨는 것도 같았다.거실로 가 시체처럼 자고 있는 너를 한 번 발로 걷어차주었다.순간 얼굴에
물을 부어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접어두기로 했다.밍기적거리며 창가로 걸어가 커텐을 걷자 보이는 것은
환한 아침이 아닌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다.
"일어나."
"우으..왜.."
"나 배고파."
나의 말에 너는 작은 웃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창 밖으로 보이는 어둠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곧 눈을
다시 감는다.그리곤 아픈 신음과 함께 상체를 일으킨다.어제 얼마나 미쳤었는지를 보여주는듯 너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에는 푸른 멍이 가득했다.너는 일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픽 쓰러지고는 나를 향해 베시시 웃어보인다.
"물."
"지랄 마."
"응?한 번만."
"한 번만 같은 소리하네.맨날 자고 일어날 때마다 물 떠달라고 하면서."
"그거야 자기가 늘 나보다 일찍 일어나니까 그렇지."
"말 같지 않은 소리하네.나 배고파.뭐 시켜먹자."
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달 책자를 살펴본다.물은 가져다주자마자 한 컵을 비웠다.너는 책자를
몇 번 읽더니 어디 한 곳에 전화를 건다.익숙하게 주소를 말하고 음식을 주문하자 다시금 어둠과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어색하지는 않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넌 힘 빠진 손으로 나의 팔을 이리저리
살펴보곤 내 팔에 자리잡은 수많은 멍들을 조심스레 쓰담는다.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미안함?죄책감?그도 아니면,너와 내가 같아졌다는 동질감과 희열?
그게 무엇이든 이젠 상관이 없어졌다.내가 이미 깊이 빠져버렸기 때문에.너와,너와 함께 하는 이런 삶에.
'띵동-.'
언제 들어도 고전적인 초인종 소리에 너는 몸을 일으켜 소파 한 구석에 박혀있는 지갑을 들어
현관으로 나간다.난 그사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주사기와 비닐들을 한 쪽으로 치워두고 물티슈로 가루들을 닦았다.
넌 배달 온 피자를 바닥에 두곤 소파에 털썩 앉아 티비를 켠다.그 안에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의사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조소가 흘러나왔다.사람이 죽고 산다는 게 참.덧 없는 일이었다.
"근데 왜 피자 시켰어.너 피자 안 좋아하잖아."
"네가 좋아하잖아.마음 넓은 태형님이 양보했다."
"저게 약 쳐먹으니까 진짜 돌았네."
난 혀를 끌끌,차고는 피자를 마저 입에 넣었다.꼬박 15시간을 자고 먹는 끼니였기에 둘은
피자 한 판을 다 비웠다.태형은 다 먹은 피자 박스를 저 쪽에 치워두고 한 상자에서
익숙한 것들을 꺼내왔다.남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겠지만,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그래서 죽어버릴 것만 같은 것들을.
넌 내 옆에 앉아 주사기 안에 무언가를 주입했다.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익살스럽게 웃으면서.연한 하늘색의
액체로 가득찬 주사기를 들고 나의 팔을 잡았다.나의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묘한 흥분감만
서려 있을뿐이었다.들어갑니다?태형의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주사 바늘은 나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윽,하는 신음과 함께 눈이 뒤집혔다.아으,악,흐아,악!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몸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지난 밤에 맞은 것보다 더 독한 것 같았다.고통이 잦아들자 몽롱해지는 게 꼭 구름 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내 눈 앞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이 펼쳐졌다.난 그 위에서 구름 조각들을 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곧 구름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나는 그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아."
그 환상에서 눈을 떴을 때 태형은 바닥에 괴상한 자세로 누워 웃고 있었다.실성한 사람인 양.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에 별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옆에 가 팔을 베고 누웠다.은은한 온기가 남아있는 너를 끌어안으며 난
다시 눈을 감았다.오늘 밤도 편안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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