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거리는 예쁜 방울 소리, 여종업원의 어서오세요 하는 인사소리. 은은한 클래식 음악에 따라 흐르는 커피향, 포근한 나무향.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아닌 오후 4시. 손님의 수는 적었고, 태일은 마침 잘 됐다, 라고 생각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여종업원에게 태일은 카페라떼를 주문하면서, 안재효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일하느냐 물었다. 꽤 예쁘장하게 생긴 여종업원은 주문서에 카페라떼 하나 라는 문구를 적으며 그가 이곳의 사장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저희 사장님 하고 아는 사이세요?"
"아뇨. 하지만 잠시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발랄하게 주방으로 뛰어간 종업원이 안쪽에 대고 뭐라뭐라 얘기를 하자 키가 큰 남자 한명이 홀로 걸어나왔다. 무슨 다리가 저렇게 길어. 괜히 울컥한 마음에 태일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만큼 남자와 태일 사이의 거리도 좁혀졌다. 태일이 있는 테이블 바로 앞까지 온 남자는 살짝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하고 잠시 얘기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오후 햇살에 비쳐진 남자는 빌어먹게 아름다웠다.
02.
"이 카페의 사장, 안재효 입니다."
"중앙 경찰청 겅력계 1팀 형사반장 이태일입니다."
태일의 소개에 재효가 피식 입꼬리를 올린다. 뭐지? 왜 웃는거야? 태일의 표정이 굳어갔지만 재효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 웃음도 태일에게는 기분 나쁜 요소였지만 가장 기분 나쁜 요소는 저렇게 웃는 남자의 모습이 마치 한편의 화보 같다는 것. 오늘 따라 엄마가 밉다 진짜.
"왜 웃으시는지 이유나 알죠."
"겅력계는 뭐하는 부서입니까?"
아 이런 미친 혀. 확 치밀어오르는 열기에 태일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잔뜩 분위기 잡고 말했는데! 그 순간에도 재효의 웃음소리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태일의 빨개진 귓가에 들려왔다.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아무말도 못하는 태일 대신 웃음을 멈춘 재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음, 김미란씨와 그날 새벽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날 만난 이유는 뭐죠? 혹은, 두 사람은 어떤식으로 헤어지게 된거죠?
...형사님이 질문할 건 이정돈가?"
태일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고, 재효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기가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예쁜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어디해보라는 식으로 태일을 도발하고 있었다. 태일은 더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셔츠의 가장 윗단추 하나를 풀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재효의 눈은 태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태일 또한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잘. 아시네요. 그럼 하나하나, 대답해주시죠."
"새벽에 나간 건 미란이가 꼭 줄 것이 있다 했기 때문이에요. 너무 애절한 목소리여서 거절하지 못하고 미란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갔죠.
다시 만나자고 하더군요. 줄 것이 있다는 것은 핑계였어요.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화가나 잠시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난 채로 바로 집으로 왔죠.
헤어진건 단지 성격이 안맞았을 뿐이에요."
대답은 평이하게 나왔다. 하나의 꾸밈도 없는 듯, 순조롭게, 그리고 미끄럽게. 박경의 말 처럼 얼버무리는 감은 없었다. 정말 할 말이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의심했다. 태일은 재효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떠나 그에게 뭔가가 있다고, 단서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답니까?"
"네. 그게 답니다.
자, 다 얘기 해드렸어요. 재효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쫙 벌려보였다. 이제 자신에게선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다는 뜻이였다. 이제 그만 물어주세요, 미란이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는 제효의 얼굴에는 슬픔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언뜻 보면 이미 죽어버린 연인의 기억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하는 가슴 아픈 남자의 모습 처럼 보였지만, 태일은 저 표정에서 미지근함을 느꼈다. 아무리 헤어졌다 하더라도 6년 가까이 사귄 여자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는 표정이라기엔 뭔가 부족해보였다. 재효의 표정은 마치 길가던 강아지가 차에 치여 죽었을 때, 그 예의 안타까운 표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당신.."
"정말 여기까지. 왜이렇게 저한테 관심이 많으실까. 형사님. 혹시 수사는 뒷전이고 저한테 작업거는거 아니에요?"
한쪽 팔에 턱을 기대며 태일 쪽으로 몸을 쭉 내민 재효의 얼굴엔 장난끼 가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쏠까? 태일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안쪽 자켓에 있는 총을 잡고 저 능글맞은 얼굴에 시원스레 한방 날려주고 싶었다. 자기가 한 농에 자신이 웃으며 재효는 태일 쪽으로 쭉 뺐던 몸을 다시 집어 넣었다.
더 이상 말해봤자다. 오늘은 이만 가자. 그렇게 생각한 태일은 아까 여종업원이 내온 카페라떼를 원샷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하나도 안감사했지만 그렇게 말하고 태일은 이 카페에서 나갈 생각이였다. 재효의 귀에 걸린 피어싱을 보기 전까지.
"한쪽 귀에만 피어싱을 하는게 유행인건가?"
하얀 큐빅에 백금으로 감싸진 피어싱.
태일은 안 주머니에서 자신이 주웠던, 재효의 왼쪽 귀에 걸린 것과 똑같은 피어싱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나게 올려두었다.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말다툼'으로 한쪽을 잃어버리셨나?"
늘상 웃고있던 재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다시 곧 웃는 낯으로 돌아온다. 타고난 표정인지 변화는 빨랐다. 태일은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자연스럽게 재효의 손이 테이블 위의 피어싱 쪽으로 갔다. 재효의 손가락이 피어싱을 톡 건드리자 데굴데굴 굴러 태일의 앞쪽으로 간다.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해보였다. 태일은 그 모양새가 지금의 이 분위기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잃어 버렸나 했더니. 형사님이 주워 주셨네요."
"정말 단순한 말다툼만 했습니까?"
태일은 확신했다. 분명 말다툼 외의 것이 있었을 것이다. 몇개의 시뮬레이션이 태일의 머리를 스쳤다. 재효에게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여자가 재효를 미치던 도중 뺨 쪽을 건드리고 격한 몸싸움 도중에 느슨해진 피어싱이 빠졌다. 그럴듯 한 시나리오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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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 짧네요 ㅋㅋㅋ
코멘트 한마디 한글자가 생명이에요 ㅠㅠ 그래야 기운이 쑥쑥!
아이고!! 수정 중에 ㅠㅠㅠ글을 실수로 올렸더니 두번 적혔어요 !! 으앙 뒤에는 잊어주세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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